한국인의 윤리

십수년전에 쓴 책에서, 낙태되는 아이들이 하루에 백건 이상, 일년이면 3만이상의 생명이 죽어가는 나라가 한국, 이라는 얘기를 쓴 적이 있다. 지금은 백팔십도 변해 버렸지만 민족주의,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나라가 실은 다른 나라에는 “혼혈 권하는 사회”라는 아이러니를 썼던 것 같다.
몇년후에 “식민자일본인”,혹은 조선땅에 태어나 자랐으나 어른이 되기 전에 쫓겨간 이들,훗날 작가나 시인이 된 이들에 대한 논문도 쓰게 된 건, 그리고 이른바 “위안부”라는 위치에 놓이게 된 여성들을 “이동”이라는 시각에서 썼던 것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주/이동(해야)했던 삶에 대한 관심이었다. 누가 이 사회에 머물수 있고 누가 떠나야 하는가.

어제, 학회도중에 빠져나와 박상미샘의 영화를 보러 간 건 그런 나자신의 관심때문이기도 했다. 노혜경샘을 비롯해 낯익은 페친들의 얼굴까지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건 뜻밖의 수확.^^

영화에 등장한 미혼모들은 말하자면 낙태를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낙태를 하도록 만드는 사회적편견과 안이한 윤리의식에 저항한 이들이었다. 나는 낙태를 합법화해서 여성에게 자신의 신체관리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회가 얼마나 안이하게 수많은 생명을,”올바른” 것으로 여겨져온 삶의 모양새를 위해 죽여왔는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물 몇살의 나자신을 포함해서.

말하자면, 세계최고라는 저출산현상의 뒤안에는 무지막지한 낙태의 현장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만행을 겨우 벗어난 아이들은 바깥으로 버려져 고독과 방황, 새가족의 성추행(물론 성폭행도 있을 것이다)에 노출되어 있었다. 부모들이 호적문제를 제대로 처리해 주지 않아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이들도 있었다.

최근들어 “성공한” 입양아들이 환영받고 주목받고 있는 건 물론 나쁜 일은 아니다. 나는 우울과 고독을 이겨내고 멋진 경계인의 삶을 이룬 그들이 새로운 세계관의 주역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그저 “한국인의 성공”으로만 간주하고 한국인으로 포섭하려는 시도들에는 끔찍한 망각과 기만이 있다.

가족주의, 결혼주의, 가부장주의,새로운 공동체의 모습등, 생각해야 할 거리가 많은 영화지만, 우선은 여성부와 보건복지부와 관련 국회의원들이 봐야 할 영화다. 산부인과 의사가 모자라 시골에 사는 임산부들은 도시로 원격출산을 간다는데, 의사지망생들도 봐 주었으면 좋겠다.

어제 상영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4865181540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