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10/3

멀리서 페친 정나란님이 오신 걸 계기로 야심차게 만남의 기획을 했는데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가을햇살”과 청명한 하늘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다 어제부터 컨디션이 좀 이상하더니 감기기운. 따끔거리는 목과 묵지근한 근육통을 핑계로 머리맡에 책 몇권을 쌓아두고 게으름을 피울 특권을 누리고 있다.(하여 어제 올린 포스팅은 혼자보기로 돌려 두었다. 술을 마시긴 글렀고 오랜시간 앉아있는 것도 무리일 것 같아, 정나란님과 호젓하고도 조용한 대화의 시간을 가질 예정. 개별적으로 연락 드렸지만 참석해 주시겠다 한 분들과는 다음 기회에 만나기로 했다.)

페친들이 언급하기에 봐 봤던 한 드라마가 정신(마음)을 앓는 사람들을 다룬 건 소재만으로도 탁월해 보였다. 사실 마음의 병을 앓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울증”이니 “스트레스”니 하는 단어들이 생기면서 관리가능한 정도의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회 속을 활보하지만, 실은 누구나에게나 그 활보가 버거운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가 관리할지 타인에게 관리를 부탁할지의 차이일 뿐.
“일”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거나,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이야기나 대상으로 도피하는 건, 아마도 그런 “자기관리”의 시간들일 것이다.

어제는 반론을 쓰기 위해 이재승교수의 비판을 다시 읽었는데 비판자체보다 비판에 담긴 적의와 마주하는 일이 또다시 나를 우울하게 했다.
나의 싸움은 재판이나 폭력과의 싸움이 아니라, 오에겐자브로의 소설에서처럼 슬픔이 내 얼굴에 곰보자국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수많은 적의들이 나를 망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 분노도 경멸도 오만도 아닌, 다른 자세로 마주하는 일. 적의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오는 일. 그럴 수 있도록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일. 경험의 흔적을 다른 형태로 남기는 일.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날. 나라보다 먼저, 자신을 꼿꼿하게 세우는 일들이 도처에 필요해 보인다. 오늘저녁엔, 미움과 폭력과 적의에 의해 ‘찌그러진’영혼들을 위해 건배해야겠다. 의심과 증오와 욕망에 의해 일그러진 영혼들을 위해서도 무언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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