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통’

금요일 신문에 났던 세모녀 자살기사를 보았을 때,박민규의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는 소설이 생각났던 건,이 소설이 ‘가난’에 대해 말한 소설이고 ‘부재’에 대해 말한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어제 그 일에 대해 올리고 싶었는데 이미 여러 페친들께서 올려 주셔서 그럴 필요는 없게 되었지만 계속 그 일이 머리를 맴돈다.그 죽음이 ‘빈곤의 여성화’라는 작금의 테제를 증명한 사건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소설을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 애도하고 싶었고 아직 이 소설을 모르는 이들,특히 이 소설의 주인공이 십대소년이기도 해서 공부하느라 지쳤을 청소년들이 눈감고라도 들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어디에든 올려볼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녹음은 페북에는 올릴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애도의 음악을 깐 동영상을(책을 찍으면서) 만들어 볼까 했는데 그것도 책 읽으면서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다 생각해보니 오늘 올렸다간 원고작업 기다리고 있는 편집자에게 야단맞을 것 같아 일단 포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후의 꿈이 ‘책 읽어주는 여자’이기도 하니 언젠가 다시 시도하고 싶다(그런 야무진 꿈을 꾸게 된 건 맹인을 이끄는 개들에게 감화를 받아서다. 개도 하는 일 정도는 하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아무튼 이 소설,정말 좋은 소설이다. 소설분석이 직업이다 보니 웬만한 소설엔 감동받는 일이 드물어졌지만,이 소설은 예외였다.<카스테라>(문학동네)에 들어 있다.

위안부문제에 관해 전직외교관이 쓴 글에 대해 생각을 말하기로 페친몇분께 약속했었지만,어제 개인적인 일을 쓰느라 ‘사회적고통'(일본어번역판<他者の苦しみへの責任>)이 만든 죽음에 대해 침묵했으니 오늘은 뒤늦게나마 애도하는 마음으로,그런 일에 대해 생각하는 걸 미루기로 한다. 조금 기다려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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