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손해배상소송 최종답변서

재판장님

<제국의 위안부>내용중 34곳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판결이 끝나고 민사재판이 시작된 지 벌 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러한 판결이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었음을 답변서와 자료들을 통해 말씀드려 왔습니다. 가처분 판결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신청해 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18일에는 그동안 이 사건을 조사해온 검찰이 저를 기소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월에 첫 공판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민사재판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재판장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원고측은, 2014년6월에 저의 책 내용이 ‘허위’이자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 책이라면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매춘’‘동지적관계’라는 두 단어를 강조하며 제가 위안부할머니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는 저의 책이 그저 ‘한일간 화해’를 위한 책이며, ‘일본극우의 주장과 다르지 않’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오독이거나 곡해에 근거한 허위입니다. 그 사실을 저는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반론을 통해 항변해 왔습니다.

1.

저의 책은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책이긴 커녕 한국과 일본의 식자들이 “오히려 할머니의 아픔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해 준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책을 낸 목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이제까지 이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일본정부관계자들에게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대편의 주장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20여년 동안 지원단체는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이 지원단체의 주장과 다른 점은 부정론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 그리고 그에 입각해 그들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비판하려 한 점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를 비롯, 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부분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조선인위안부에 관한 서술과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와 검찰 역시 그러한 이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책이 정말로 그런 책이라면 한국에서 처음 발간했을 때부터 문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발간 후 10개월동안 그런 식의 비난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몇 언론은 호의적인 서평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의 지식인들과 한국의 지식인들마저 목소리를 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측 항의 성명에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고노전관방장관, 무라야먀 전 수상, 그리고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이 성명에 동참한 것은 저의 책이 원고측이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성명에 참여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저의 지인이 기도 합니다. 저의 인식이 위안부할머니들을 폄훼하는 것이었다면 이들과 지인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이들이 기소에 대해 항의성명을 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2.

고발은, 아직 학생신분인 젊은이들의 거칠고 조악한 독해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방후 70년의 문제를 말한 부분을 할머니를 비난한 것으로 읽고 제가 할머니를 비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저는 ‘위안부할머니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로지 책을 올바르게 이해받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따라서 이른 바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1년 반동안 법원과 여론을 향해 오로지 고발에 이르게 한 것은 “오독”이라고만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원고측은 처음에 “허위”에 중점을 두었던 고발취지를 중간에 바꾸어, 제가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면서 저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님, 오독이든 곡해이든, 거짓을 말한 것은 원고측 대변인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동안 고발의 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말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한국의 수치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가처분판결과 형사기소는 그러한 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일부나마 하려 합니다. 그리고 증빙자료도 제출 하겠습니다.

우선은, 원고측이 문제시 삼았던 인식이,실은 다른 위안부할머니의 인식이기도 했고 위안부 문제 발생 직후의 한국정부의 인식이기도 했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이유는 제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 할머니 중에도 저와 같은 인식을 가진 분이 계셨다는 것,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러한 분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고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계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구조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지 20년 이상이 지났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안부문제가 발생하자, 우리사회는 위안부할머니들을 50년동안이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해 왔지만, 여전히 침묵의 강요상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저는 위안부를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위안부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란 국가가 세력확장을 위해 개인을 동원해 신체와 성을 훼손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선인군인과 달리 여성들에겐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의 책은 그 점을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적 제국의 지배와 여성차별의 문제로서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물은 책입니다.

저는 강제동원인지 아닌지,소녀인지 아닌지 여부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점 에만 주목해 20년 이상 대립해 왔고 이제 차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안부문제 운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제가 만든 개념을 위안부할머니들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들 안에 자리한 차별의식과 그 밖의 요소들입니다.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조차, 위안부에 관한 인식은 저와 비슷합니다.

5.

재판장님, 그래서 이제 저는 죽은 자료들 대신,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이 사회에서 들으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저는 죽은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고 나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았고 결국 아무 들어주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죽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저는 저에게 들렸던 그 목소리를 세상에 들리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사와 마주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은 저와 위안부할머니의 싸움이 아닙니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운동가/학자와, 저의 “생각의 싸움”입니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생각의 싸움”입니다.

따라서 이 소송을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의감에서 저를 비난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를 고발한 이들을 세상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정의로운 이들과,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불행에 대해 다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5년 12월 16일

박유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