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 Roh, 우리는 정말 ‘해방’ 된 것이 맞는걸까?

 

Anna Roh

2015년 3월 2일 ·

Park Yuha 선생님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하여.

영국을 중심으로 요즘 유럽에서 대세인 학문 중에 <memory studies> <memory policy>라는 것이 있다. 넓게 보아 메타 역사학이라 할 수도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집단과 개인의 역사는 선택적으로만 수용된다는 전제 아래 어떤 내러티브들이 어떤 집단에 의해 역사와 문화로 수용되고 거부되었는지 분석하는 학문이다. 똑같은 시공간을 관통하며 똑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기억하는 바는 개인의 정치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심지어 경제적(계급적)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만 보아도, 남한과 북한의 분단 이전 역사인식에 차이가 있고, 같은 남한 안에서도 박정희 시대에 대해 서로 다르게 추억하고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역사의 선택적 수용은 역사 왜곡과 다른 문제이다. 자연스럽게 수용된 문화와 역사가 있지만 각자의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로 인해 의도적으로 정책적으로 걸러지는 역사가 있다. 역사 안에 A와 B라는 사건이 모두 터졌는데, 누군가는 A만 기억하고, 누군가는 B만 유달리 강조한다. 이럴때 누구는 틀리고 누구는 맞다고 할 수 없다. 그보다는, 그들이 왜 유독 A혹은 B만 강조하고 기억하는지 현재의 관점을 분석하는 것이 더 현명한 시도이다. 다만, 나의 관점은 더 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하며 기억되는 역사가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이익만을 염두에 둔 역사보다 더 인류에 대한 포용력이 있다고 본다. 강자 뿐 아니라 약자의 역사를 포괄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에게 치욕스럽고 도덕적으로 불쾌한 기억 또한 포괄한 역사가 더 설득력 있다는 소리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일제 식민지 역사는 그런 의미에서 일본 뿐 아니라 한민족의 골치아픈 숙제라고 생각한다. 일제의 패망덕분에 한민족은 당당하게 ‘제국주의에 저항한 희생자’로 일반화되었지만 실제로 그러했을까. 친일명부에 오른 소수의 친일파를 제외하고 모두 그렇게들 저항만 했을까. 제국주의의 시스템 아래서 한반도에서 그들에게 세금을 내고, 그들이 제공하는 직업을 가지고,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을 받으며 묵묵히 자신들의 일상을 영위한 이들이 과연 나는 ‘반일’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 땅을 떠나 망명 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친일’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모 역사학자의 일침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는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해 강압적인 폭압뿐 아니라 문화적 교란과 동질화 정책도 한민족에게 해를 미쳤다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한 그들의 문화정책도 실은 불공정한 식민지 폭압의 일부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한데, 해방되고 나니 그렇게 일제에 설득당하고 동조한 사람들이 싹 사라지고 불굴의 애국투사들만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제의 문화 정책에 대한 책임을 거론하는 것은 물건너 갈 수밖에 없다.

36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쨌든 일본인들과 한데 어울려 그럭저럭 살던 사람들이 해방이 되고 나니 갑자기 모두 사라지고 저항하거나 강제 폭압에 시달리던 희생자들만 이 땅에 남았다. 소수의 친일파들에게 자신들의 제국에 대한 복종의 죄과를 모두 미뤄버리고, 이런 Victimisation은 해방 후 반식민지 역사교육을 통해 한층 더 한민족의 뇌리에 뿌리박혔다. 하지만 문제는, 이 식민 통치에 대해 보상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인 일본은 다른 기억을 한다는 것이다.

한쪽은 억압의 기억만을 고집하고, 한쪽은 ‘그래도 동조한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기억하는 이 한-일 양쪽 상황에서, 누구의 기억이 맞다고만 말할 수 없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서 계속 강제동원의 근거를 발굴해내더라도 다른 한쪽이 자발적 참여의 근거를 계속 들고 나오는 한 이 보상 협상은 평행선을 이룰 수밖에 없다. 왜냐. 양쪽 다 실제 존재했던 역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읽은 <제국의 위안부>는 이 양쪽의 역사를 모두 인정하고 문화적 동질화 정책도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동질화되어 자발적으로 일제 정책에 참여한 한민족 또한 희생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일본 정부가 계속 끌어내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위안부에 대한 주장을 무색하게 만드는 제안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이에 반기를 드는 이유는 기억하기 싫은 역사를 끄집어냈다고, 그 끄집어낸 역사가 – 엄연한 사실임에도 – 한민족의 희생자적 입장에 불리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가 휩쓸고 간 뒤에도 살아남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불의에 저항한 희생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촉발된 논쟁이, 그리고 내가 존경하던 학자들마저 양쪽으로 대립하는 이 모양새가 남탓을 하기 위해 나의 약점을 숨기는 것처럼 보여 못내 씁쓸하다. 반세기도 한참 지난 식민의 역사에서 우리는 정말 ‘해방’된 것이 맞는 걸까.

 출처 : https://www.facebook.com/anna.roh.94/posts/10203832833372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