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 Kyun Kim, 현재에도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

Yong Kyun Kim

December 4, 2015 ·

무하마드를 풍자한 <샤를리 에브도>가 모독한 건 신이 아니라 그 신을 추앙하는 신도들이었다. 신성모독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 신에게 불경을 행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을 때, 그로인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때, 그가 모욕한 건 정작 신이 아니라 그 신의 절대성을 절대적으로 숭배한 나머지 그의 이름조차 입에 올릴 수 없었던, 세차게 돌을 던지는 바로 그 군중들 자신이었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를 바라보며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까닭은, 위안부 할머님들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느꼈다는 사실 자체를, 그리고 그분들이 자신들이 당한 피해에 대해 민형사상 법적 구제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내가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다. 할머님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느낀 것은 하나의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사실 이상이기 때문이다. 아니, 위안부 문제가 수천여 명의 위안부들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역사적, 정치적 문제가 되어버린 이상, 그것은 단지 하나의 사실에 그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제국의 위안부>가 공격한 건 위안부 할머님들이 아니라, 일본순사에게 끌려가는 열네살 소녀이자 일본대사관 앞에서 사죄와 배상을 외치는 칠순 투사로, 그렇게 단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우리 안의’ 위안부였으며, 그 박제화된 이미지에 사로잡혀 다른 어떤 해석의 시도조차 용인할 수 없었던, 박유하 교수를 향해 사정없이 돌을 던진 군중들 그 자신이었다. “할머님들이 피해를 입었다”라는 사태 자체와 바로 그 진술을 대변하는 단체, 학자, 정치인,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이 내보이는 할머님들에게 투영된 피해의식을 구분하는 건 따라서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명예훼손을 당한건, 그리고 그 피해의 구제를 바라는 건 누구보다 바로 그들이다. 이 점에서 이번 사태는 법적 문제 이전에 정치적 문제인 것이고, 이를 법적 문제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대해 나는 반대한다.

어디 위안부 문제 뿐이겠는가. 굴곡의 한국 현대사 장면장면마다, 하나의 ‘올바른 역사 해석’에 도전해 그 획일화된 단순한 이미지 속에 감춰져 있던 수많은 다양한 진실들을 누군가 들춰낼 때마다 그 재해석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의 명예는 그럼 어떡해 해야 하나. 아직 살아있는 ‘건국 공신들’의 명예는 훼손되어도 상관없는가. 4.3 항쟁은 모두 ‘무고한’ 양민이었고 군경은 ‘모두’ 학살자였는가. 베트남전에 참전해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웠던 것을 평생의 명예로 살아온 월남용사들을 이제 와서 베트남 양민을 무참히 살해한 전쟁범죄자라고 말한다면 그분들의 참혹히 무너진 명예는 그럼 중요하지 않은가. 이 모든 문제들을 법정으로 가져가 누구의 명예는 어떤 주장, 어떤 표현에 의해 훼손되었음이 인정되기에 삭제하고, 보상하고, 인신을 구속해 죄값을 치르게 해야 맞는 것인가.

내가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할머님들의 아픔을 단 1센티라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동시엔 난 위안부 할머님들이 명예훼손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입었다며 이의 법적 구제를 옹호하고 있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같은 고백을 할 것을 요구한다. 올해 봄 <제국의 위안부>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내가 가지고 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지식과 관심 수준은 한국 국민 평균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할머님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깊은 연민을 가지고 그분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14세 소녀를 강제로 끌고간 일본 순사에 대한 분노에 치가 떨리는 대신,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그분들이 아팠다. 의붓아버지 손에 위안부로 팔려가는 걸 옆에서 눈감았던 자기 어머니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는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에 마음이 무너졌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여동생을 두들겨 패고 책을 모두 불태워 버린 오빠를 피해 결국 학교가 아닌 위안소에서 성노예로 청춘을 보내야 했던 또 다른 할머니의 증언을 읽고 그 오빠를 대신해 사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꼭 분노가 아니어도 좋지 않은가. 그분들의 아픈 과거를,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그리고 여전히 자행되는 구조적 폭력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래서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그분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간곡히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