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1심] 시민·독자의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관님께.

 

우리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형사상의 제재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로서 우리들은 <제국의 위안부>의 어디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비방 및 명예훼손의 의도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기술한 “자발적 매춘부”라는 표현은 일본 우익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그들의 표현을 인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귀향>을 보면 일본군이 직접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부분 강제연행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안소에 이르게 된 과정은 그보다 더 다양하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해당 저서는 다수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제국의 관헌이 아닌 일본인과 조선인 민간업자들에 의한 사기와 협박 및 회유에 의해 위안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편 위안소에 이르게 된 과정을 불문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위안소에서 일본군에 의해 원치 않은 윤간을 당하고 업자에 의한 강제노동과 폭행 및 갈취 등의 부당한 대우를 당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최소 수만에서 최대 수십만의 여성을 동원한 위안부 제도가 일본 우익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어느 국가에나 존재했던 군대 주변의 공창제와 다르며 그 규모상에서도 잔인성에서도 상이하다는 사실을 실체적으로 조명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군대에 의해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범죄였다는 것입니다. (<제국의 위안부> 155p, 157p 참조)

 

이상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인식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의 피해의 유형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피해자 중에서 자신의 상황에 격렬한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개인을 억압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그만 세뇌되고 만 경우도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가 이 사항을 굳이 조명하는 이유는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제국의 강제연행설을 부정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애써 외면하려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책입니다. 민간업자가 주체가 되어 위안부를 모집하고 가혹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도 일본제국이 위안부 정책을 입안함으로써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한 “구조적 강제성”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인 책임과 별개로 일본국에 대해 정치적/역사적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에 법적 책임을 지우기 곤란한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법적인 배상책임에 관한 한 일본 내의 사법적 판단은 이미 끝났으며 법적책임을 인정하는 별도의 입법도 의회 내에서 난망한 상황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편으로 이런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책입니다. 박유하 교수는 법적 책임이 불가하다면 일본이 그 이상으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263p 참조) 그런 의미에서 박유하 교수는 저서의 후반부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포괄적인 보상을 약속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계승하고 확대시킬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무라야마 담화마저도 우익의 술수로 폄하합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그런 방식으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무엇보다 한국 내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성이라고 평가받는 와다 하루키 역시 무라야마 담화에 호응하고 행동에 나선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우리 독자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견해가 특정단체와 특정이념에만 맡겨지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합니다. 확실히 <제국의 위안부>는 그 동안 언론에 조명되어온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과 궤를 달리합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전후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전쟁책임에 대한 나름의 인식과 논의의 발전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며 한일양국 시민사회의 인식지평과 공감대를 넓혀야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정부와 사법부 입법부를 향한 법적책임에 대한 인정투쟁에 경사되어 왔던 지원단체의 운동적 접근이 과연 문제해결에 있어서 유효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한 일부 지원단체가 강제연행을 당한 일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만 초점을 맞춰 취사선택함으로써 그 반대로 위안부 제도에서의 강제연행 부정설에 초점을 맞춘 일본 우익세력의 물타기를 허용하고 만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한 보통의 일본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에 대해 우익이라 싸잡아 매도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런 점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논쟁적인 저작입니다. 또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할 것을 촉구하는 저작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공론장에서 제대로 된 논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해당 저작과 저자에 대한 민형사상의 제재로 인해 제대로 된 논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옹호자와 비판자 사이의 감정적인 비난이 초래되었습니다. 이처럼 <제국의 위안부>에 법적 낙인이 찍힘으로써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시민의 이해의 엇갈림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이러한 교착상태가 하루라도 빨리 타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한일양국에서 온전한 형태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혀야 합니다.

 

이처럼 박유하 교수의 저서에 대한 독자들의 논의를 고려하시어 존경하는 재판관님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12월

380명

(법원에 제출한 탄원인 명부는 홈페이지에 별도 공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