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기만과 태만

얼마전에는 김문길교수가, 일본정부가 이미 이십여년전에 발간한 자료를 마치 자신이 처음 발견한 것처럼 발표하기에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호사키 교수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같다. 호사카교수는 자신이 자료를 발견했다고는 말하지 않은 듯 하지만, 호사카 교수가 말한 내용은 이미 오래전에 일본 학자들이 한 이야기다. 20년 전에 일본 정부가 발간한 자료집을 일본 학자들이 연구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을 거라고 호사카 교수는 생각했을까. 나조차도 이 자료집은 4년전에 <제국의 위안부>에서 사용했다.
(이 기사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09192205025&code=940100) 는 그나마 이 자료집이 일본에서 나온 거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호사가 교수가 발견한 것처럼 쓰고 있는 언론도 많다.)
위안부문제 연구는 수십년 축적이 있어서 독창적인 의견을 말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호사카교수가 위안부문제 연구에까지 뛰어든 거야 이해되지만, 그럴려면 기존 연구를 다는 읽지 못한다 해도, 중심적 연구 정도는 읽고 발언했어야 했다. 그건 석사과정생도 아는 얘기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내가 재직하는 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대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발표했다니 부끄럽고 참담하다. 일본이 알아도 웃을 것이고, 이정도 자료 존재는 알고 있을 전세계 연구자들도 당연히 웃을 것이다(일본 정부가 한 일과 아시아 여성 기금에 대해서 관심이 너무 없어서 아는 이가 적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호사카 교수자신이 말하는 대로, 위안부 동원은 기본적으로 호주의 동의서를 포함,본인이 국가에 도항(이동)을 요청하는 서류가 필요했다. 말하자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요건을 갖춘 사람에 한해 “합법적”으로 허가하고 이동하도록 했다. 이 기사에서 말하고 있는 건 말하자면 오늘의 여권 같은 것이다. 설사 서류부족을 묵인( 호사카 교수가 지적한 맥락인지는 다시 확인해봐야겠지만)했다 해도, 중요한 건 기본방침이 어땠는지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합법이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
이 기사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위안부문제에 대해 일본이 부정하고 있는 책임은 책임 자체가 아니라 “법적” 책임이라는 사실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아 일본이 모든 책임을 부정하는 것처럼 이해되고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이 사실만이라도 제대로 공유되면 좋겠다.
또하나, 일본군 위안부의 중심은 일본인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훗날 위안부숫자는 조선인이 더 많아진 것 같지만, 위안부 중에는 늘 일본인이 있었고, 최후에 일본군과 함께 전쟁터에서 옥쇄라는 이름의 집단자살로 희생된 여성 중에는 일본인 여성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남의 해석을 빌린 거지만(일본의 배를 탔으니 강제연행, 이라는 해석도 이미 다른 학자가 내놓은 해석이다)., 호사카 교수의 발표가 말해 주는 건,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강제연행”에 대해서는 학계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무리한 해석까지 내놓으면서 “강제성”을 증명하려 하는 것이 학계의 현황이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1991년 문제제기 시점에서 학계가 조선인위안부문제도 글자 그대로의 “강제연행”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고, 그런 이해에 기반해 주장했던 “법적책임”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오늘의 혼란은, 연구가 진전되었는데도 무시하거나 스스로 해석을 달리 하면서, 초기의 “운동적 주장”을 고수하려는 태도가 만든 결과다.
조선에서는 더 강압적 동원이 이루어졌을 거라고 호사카교수는 말하는데, 그 부분도 이미 연구들이 있으니 참고하시라. 물론 그것을 비판하는 연구도 또 있다.
또하나, 호사카교수는 일본이 무슨 목적으로 이 자료집을 만들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는데, 당연히 위안부 문제 관련해서 자료를 공개하라는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정보를 먼저 독점한 학자의 기만이다. 목적은,
이 자료집을 발간한 아시아 여성 기금 홈페이지에 가면 다 나와 있다.
호사카교수의 “목적”은 고노담화 부정인 듯 한데, 그건 일본의 이른바 “양심적” 학자들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뒤늦게 위안부 문제를 흔들려면, 제대로 흔들어 주기를 바란다.
사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별로 쓰고 싶지 않은 기분이 강하다. 이 며칠 몸도 안 좋아 포스팅을 쉬고 있었지만, 이런 기만을 방치하는 건 또다른 태만일 수 밖에 없어서 쓴다.
어제도 다른 분이 언급한 다른 문제에 대해 대한 댓글에서 썼지만, 우리 사회는 소모가 너무 많다.

–> 전에도 올린 적이 있지만, 다시 올려 둔다. 이 자료집이 호사카 교수가 언급한 자료집이다.

–> 이렇게 내용을 전면 공개도 하고 있다.
http://www.awf.or.jp/k6/document.html (위안부 역사 관련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