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반복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일본이 꼼수를 부리려는 것으로만 보도하지만, 이번 대상은 어디까지나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다. 1868-1912,즉 메이지 천황이 통치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시설들이다. 말하자면 정확히는 일제시대 이전의 설비들이니 한국이 꼭 직접적인 관계를 주장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1925년에 나온 “女工哀史”라는 책이 말하는 것처럼, 당시의 노동자 착취는,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곳에 조선인노동자의 땀과 피와 눈물이 존재했다면 , 비록 시기가 다르더라도 기억되고 보존되는 일의 의미는 크다. 그랬기에, 시설들 어딘가에 그런 설명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래서 6월말 한일 외교당국자들이 “주석”을 다는 형태에 합의했다기에 안심했었다. (최근 기사들을 보면 설비가 아니라 등재 신청서에 적는다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직전에 한국당국자들이 생각을 바꾼듯 하다.
민족문제연구소등이 본까지 가서 반대시위를 했으니 그런 영향을 받은 걸까. 민디코틀러씨가 등장한 걸 보면 위안부문제 관련자들도 가세한 듯 하다.
코틀러씨는, 2007 년미하원에서 위안부문제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힘쓴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사안사안에 따라서 신중하게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역사문제도 아니고 정치문제도 아닌 “신뢰문제”가 되고 말았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간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뭔가 조치를 취해도 최종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또다시 사죄요구를 해오지 않을까 하는 불신에 있다. 이번 일로, 한국과는 어떤 약속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더 확산될 것이다. 8월 이전에 어떤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한걸음 더 멀어졌다.

물론 옳기만 하다면 한번 정해진 일이라도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일본에 관한 한국의 생각은, 충분치 않은 정보와 인식과 적대의식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

몇 년 전에 미국에 있었을 때 느꼈던 일 중 하나는 한국도 일본도 아주 작은 나라라는 거였다. 중국만 약간 존재감이 있었을 뿐.
불행한 일이다.

http://m.mk.co.kr/news/headline/2015/638250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

http://sp.mainichi.jp/select/news/20150705k0000m040048000c.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50534851640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