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7/10/29

판결이 나고 이틀이 지났네요. 당일 아침에 데리러 와 준 후배를 비롯해 재판, 점심, 그리고 저녁시간을 마음 졸이고 슬픔 혹은 분노로 함께 해 주신 분들, 소회를 이런 저런 형태로 써 주신 분들, 또 저의 포스팅에 댓글과 감정표현으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아직 기사들도 찾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판결직후 제가 인터뷰에서 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기사화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심때처럼 수많은 기자분들이 있었는데.
누가 보내준, 조선일보 기사가 저의 말은 싣고 있지 않았지만 그나마 사태를 중립적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실한 기사조차 1심 판결이 “틀린의견이라도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고 썼더군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그 기사를 볼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제가 엉터리학자일 수 있다고 말하는 게 되니까요. 1심판결문이 말한 건 “틀린의견인지 여부를 법원이 알 수 없으니 보호해야 한다”였습니다. 그 신중하고도 명쾌한 인식을 제대로 전달한 곳은 거의 없었고, 여전히 잘못된 기사가 다시 재생산됩니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명예가 훼손된 건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니라 저입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시켰고 여전히 훼손중인 건 제가 아니라,
저의 책이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썼다고 주장하면서 고발해 결과적으로 언론이 반복해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말하도록 만들었던( 그때마다 할머니들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겠지요),
차별의식 때문에 우리가 외면해온 그 옛날 소녀들의 삶과 실존을 여전히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나눔의집등 지원단체 관계자들과
그에 선동당한 언론과,
저에게 “자위대 위안부나 되라”고 말하는 이들을 방치하는 일로 이 사회의 여성혐오를 오히려 조장중인 이들입니다.
어젯밤에야 페북을 둘러 봤는데, 그동안 페북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적의가 다시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냈더군요.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제국의 위안부>의 “학술적수준”이 어떤 건지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즉 직접 자료와 증언집에 접하지 않은 이들이) 학술적논의대상이 아니라는 등의 말을 서슴없이 하는 정황입니다.
물론 그 역시 학자들의 말을 옮긴 거지만 그렇게 말한 대표주자인 재일교포 정영환은 위안부문제 연구자가 아니고(즉 스스로 자료로 판단한 게 아니라 남의 연구에 의존해 발언), 제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면서 구체적인 지적은 못하고 있는 강성현은 프로젝트 일원으로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고,
위안부문제를 가장 잘 아는 이들은 침묵하거나 인성공격에만 집중합니다.
그런데 그 정황을 모르는 이들이 저를 “무지””대단치 않다”는 등의 말로 저를 폄훼하는 것이지요.
사실 그런 말들은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의 구조가 이제는 너무나 명료하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게 제가 속한 한국사회의 문제여서 슬플 뿐입니다.
조만간 이 기간동안, 그리고 여전히 목도중인 정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쓸 수 있겠지요.
덧붙이자면, “내용에 반대하지만(엉터리지만/혹은 마음에 안 들지만) 법정판결에 반대”라는 말도 그 의도와달리 저의 책이 법정에 가게 된 걸 당연시하는 구조를 공고히 하고 만다는 얘기도 해 두고 싶군요. 저의 책을 “허위”라고 한 원고와 검찰과 재판부처럼요.
물론 마음은 감사하게 기억해 둡니다.
아무튼 책을 법정으로 보내고, 유죄판결을 부추기고, 그에 부응해 자료준비와 검토에 소요된 1심에서의 그많은 시간들, 저와 변호사의 노력과 판사의 진중하고도 섬세한 판단까지의 시간을
“전혀 고심/고려하지 않고 완벽하게 무시한” 2심 재판부의 인간에 대한 경시보다는 수백배 지적이고 겸허한 인식이니까요.
이제 판결에 대한 간단한 반박문을 쓸 생각입니다. 주심인 김문석 판사가 김영란 전 대법관의 동생이라 듣고 더욱 착잡한 심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