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1/23

며칠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실망과 절망과 분노와 슬픔과 위안이 교차했던 시간들. 나쁜 기억은 내 안에만 기록할 생각이지만, 한가지만 써 두려 한다.

기소 다음날 아침, 대일피해자 보상문제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한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와는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차 한잔 한 사이일 뿐이다. 그는 나의 책의 취지를 이해한다면서, “해결하고 화해하자는 것이니, 당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했다. 뭐냐고 물으니 일본외무성이 뭔가 자료를 감추고 있는데 그걸 공개하라는 요구를 한국에서 기자회견이나 글로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대해 요구할 것이 있으면 한국이나 외압동원이 아니라 직접 일본을 향해 말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니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럼 재판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나눔의집과 가까운 사이다. 그들의 생각이 새삼 명백히 보이는 듯 했다. 함께 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 나에 대한 고발은 분명 그런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런 요구를 받아 들였다.

암담한 건 기소 다음날 아침에 전화해서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런 감성을 가진 그가, “약자”를 대변하는 이로 자신을 정의하고 또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부하리만큼 횡행해 왔다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사회의 본질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

내 사태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성명서 작성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만간 발표될 듯 하다. 두군데가 될 것 같다.

나는 나대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한 날, 냉전 종식후 태어난, 1992년의 문민정부를 상징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했다. 위안부문제는 문민정부의 출발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이어진 20여년에 대해 고찰한 책으로 인해 나는 국가에 의해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었다.

며칠동안, 무기력과 나를 포함한 세개의 의견표명을 위한 작업과 예정되었던 일정을 펑크내지 않기 위한 긴장의 무게에 짓눌렸다. 오늘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러자 구토가 시작되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구토할 때가 있는데 컨디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별로 없던 현상이 일어나는 걸 보니 생각이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기소 축하합니다. 유죄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라고 일본어로 트윗에 쓴 걸 봤다. 아마도 재일교포일 것이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눈의 여왕”얘기를 떠올렸다. 세상엔, 무언가가 눈에 박힌 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있는 거울조각은 씻겨내려질 수 있을까. 게르다와 카이의 이야기는 늘 내게 많은 시사를 준다.

(며칠전 포스팅에 달아주신 격려의 댓글과 좋아요에 감사드립니다. 당분간 일방적인 글쓰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日本の友人たちへ
ご心配をかけています。大丈夫ですから心配しないでください。少数ではありますが、韓国人友人たちにも支えられています。検察の暴挙は検事の考えに過ぎません。時間がかかるかもしれませんが、なんとかこの難関を打開していきたいと思ってます。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4594109900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