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2/31

우울한 연말에 뜻깊은 선물을 받았다.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는 출발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간혹 이를 혼동하거나 구분하기를 거부한다.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의 이면에는 역사에 대한 판단과 학자의 양심과 주장이라는 복잡한 구조를 지극히 단선적 이해로 규정하려는 음모가 숨어 있다.”(출판기획자 이홍)

이렇게 평해 주셨으니 꼭 “삭제판”이라는 특수성에만 주목한 건 아니라고 멋대로 생각해야겠다.
다양한 레벨의 “음모”가 존재하는 건 사실. 음모와 맞서지 않고도 편안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인생은 일과 사람과 놀이.
일에선 상과 비난을 같이 받았고,
사람에선 새로운 만남과 오랜 만남들이 “성명”으로 가시화되었으니 가히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그런데 재판에 쫓기느라 놀이시간이 압도적으로 적었다.
내년엔 만나고 싶었으나 못 만났던 이들을 생각대로 만날 수 있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기를.

삭제판을 위해 조언주시고, 우울할 때도 기쁠 때도 늘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고개숙여 고마움 전합니다.

새해에도 늘 편안하시고 더 좋은 한 해 맞으시길 빕니다.

박유하 드림

https://www.facebook.com/jongjoo.jeong/posts/1668692550065804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58238324203079

渦中日記 2015/12/15

기소 이후 한달이 되어가는데 아직 원래의 일상을 못 찾고 있다. 원래의 일상이란, 재판과 그에 관련된 일들이 생활과 감정의 중심이 되지 않는 상태다.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은 기본적으로 내게 “비일상”일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기소 이전에는 조금은 평정심을 찾았었다. 그런데 기소 이후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일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아직 살아나지 않는다. 그저, 필요 최소한도의 말과 글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한일 양쪽 성명을 비롯해 이런 글들, 그리고 페북에서 여러 글들을 써 주는 분들을 위해서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장정일 작가의 말은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나는 이 1년동안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저 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해왔을 뿐이다.
얼마 전에 인터뷰를 해 주었던 기자가 이번에는 칼럼을 써 주었다. 욕 먹을 걸 알면서도 이렇게 쓴 기자가 여성이라서 더 기쁘다.

http://www.hankookilbo.com/m/v.aspx…

http://news.donga.com/3/00/20151215/75364063/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6940285332883

渦中日記 2015/12/7-2

기소이후, 한국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다른 곳의 의뢰도 받았고 일부는 이미 인터뷰를 했지만 동아일보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호의적인 내용이지만 “매듭지어야”한다던가 “한일 양심적 지식인들이”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책은 해결을 위해 힌트가 되었으면 해서 쓴 책이지만 해결에만 방점이 찍힌 책은 아니다.

또 위안부문제는 해결을 두고 늘 누군가를 배제해 온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틀 자체가 수정되어야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51207/75216867/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962239164021

渦中日記 2015/12/7 – 반론, 나눔의 집 입장에 대하여

고발직후, 나눔의 집과 여러 응수를 했다. 나를 “일제의 창녀”라고 쓴 트윗을 소장이 리트윗했기에 이후 차단까지 했다.

그들과 진실공방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을 말하면 우리는 그에 대해 반론을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일인지, 누구를 위한 일인지 잘 모르는 채로. 소송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허무하다.
(아까 이 글을 공유한다는 게 잘못 올렸습니다. 좋아요와 댓글 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엊그제, ‘나눔의집’ 쪽에서 최근 한국-일본에서 나온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항의성명과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박유하 교수가 따로 얘기를 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제 짧은 소견으로나마 사실관계를 포함한 몇 가지 점만 말씀드려두겠습니다.

1.
벌써 1년 반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줄곧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의견, 주장’ 모두 법정에서 다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려왔습니다. ‘사실’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공론장에서 비판하고 토론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2.
나눔의집 쪽은 입장 표명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작년 6월의 출판금지 가처분신청과 민.형사 고소 시점부터 이 책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해오셨습니다.(가처분신청 심리 중간쯤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 답변서 제출 이후 ‘신청 취지’를 ‘변경’하실 때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는 식으로 바뀌어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박유하 교수가 여러 차례 밝혔고 법원 및 검찰 답변서에서도 상세히 기술했듯이, 이 책에 언급된 어떤 내용도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어느 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결국 이 기사는 실리지 못한/않은 것으로 압니다).

-문:위안부 강제연행은 포주나 업자들의 취업 사기와 인신매매가 더 많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답: 제가 책에 인용한 증언집은 기존 위안부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이 낸 것입니다. 이걸 거짓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동안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은 모두 허위를 바탕으로 이뤄져 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라고 썼다는 ‘거짓말’을 비롯한 ‘허위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서는, 원고 측과 검찰이 들고 있는 이른바 ‘범죄일람표’와 거기에 대한 반박을 곧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3.
2015년 봄부터 몇 달 동안 진행된 검찰의 형사조정 과정과 관련해서도, 나눔의집 쪽에서 내놓은 입장은 저희가 아는 바와 다릅니다.

나눔의집 쪽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

형사조정위원회에서 나온 조정안들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조정 불성립’으로 끝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문구는 “가처분사건의 결정주문 제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내외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하지 아니한다”였습니다. ‘한국 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곧 한국에서 ‘삭제판’도 출판하지 말고, 비슷한 표현을 앞으로 나라 안팎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말 것이며, 결정적으로 한국어판과는 구성도 문장도 다른 ‘일본어판’마저 절판시키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예 입을 다물라는 요구였지만, 박유하 교수는 ‘일본어판’과 관련된 요구 말고는 모두 수용하려고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정안의 전문과 1항, 2항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사건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었던 형언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20년이 넘도록 갈등을 거듭해온 위안부 문제가 고령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하고 이를 위해 일본정부의 명백한 사죄와 보상의 행동을 촉구한다.

한편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한일양국간의 위안부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동시에 양국 시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호협력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이에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다음과 같이 조정하여 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한다.

1) 피고소인들은 피고소인 박유하가 저작하고 피고소인 정종주가 출판ㆍ배포한 책인 ‘제국의 위안부’(이하 ‘이 책’ 이라 한다.)로 인하여 고소인들을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대하여 고소인 및 위안부할머니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울러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 고소인들은 피고소인들이 이 책을 저작ㆍ출판ㆍ배포한 목적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내놓는데 있었고,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할 적극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4.
박유하 교수도 저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모진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눈 감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한시라도 일찍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어제 새벽에 돌아가신 최갑순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제국의 위안부>가 법정에서 단죄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토론되고 비판받고 논박하는 ‘공개토론’을 통해서 진정한 해결책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의 여러 선생님들도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공개토론을 제안하셨으니, 모쪼록 이 사안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래는, 나눔의집 쪽에서 낸 ‘입장’ 전문입니다.
——————————————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항의 성명서(2015년11월26일)와 국내학자들의 기자회견(2015년12월2일)에 대한 <나눔의 집> 입장

금번 박유하에 대한 기소에 대하여 학문적 잣대로 기소를 반대 하는 것은, 한국의 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으로 과연 그 동안 성명인들이 성의를 보여왔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 해결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합니다.

소위 연구서라는 것은 사실 묘사와 의견으로 구성되어 있고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 역시 그러합니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서문에서 그럴듯한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지만 박유하의 책 역시 다른 책들이 갖는 한계처럼 정확한 의견과 사실묘사 외에 부정확한 의견과 사실묘사가 존재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두어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타인의 기본권까지 무제한으로 침해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금번 성명서가 우려하고 있듯이 대한민국 검찰의 박유하에 대한 기소는 학문과 언론의 활발한 장을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검찰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표현되고 있는 부정확한 의견에 대하여기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 역시 박유하의 틀린 의견을 문제 삼아 형사 고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성명서에 밝힌 것처럼 박유하의 책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를 심도 깊게 연구한 대한민국의 학자들이나 직접적인 피해자 할머니들은 박유하가 자신의 책에서 피력하는 의견이나 역사관 등에 대하여 비록 동의를 하지는 않을 지라도 이를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니까요

2013년 8월에 박유하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출간의도를 밝히며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자 박유하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에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었던 ‘위안부’ 삶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거나 심하게 왜곡한 부분이 존재하였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박유하의 책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이 잘못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표하였고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명예가 심하게 훼손되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금번 성명서에서 한국 검찰과 박유하라는 두 주체를 중심으로 이분법적 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완전히 간과한 것입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은 사람을 도둑이라고 규정짓는 책이 발간된 경우 피해자가 이를 참아야만하고 이는 학문의 자유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는 더 이상 학문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표현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자신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 사실이 아니고 자신들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하였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2014년 6월 17일 박유하를 상대로 출판금지가처분, 민사소송, 형사고소를 하였습니다.

2015. 2. 17. 가처분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라고 하거나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였다.’는 등의 몇몇 표현이 객관적인 연구 결과나 사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표현으로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문제되는 표현을 삭제하라고 하였습니다.

한국검찰은 2014. 10.월 이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조사하고 박유하도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차례에 걸쳐 형사조정 절차를 거쳤습니다. 일본에는 생소하겠지만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는 제도입니다.

위 조정절차에서 피해자 할머니 측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유하는 형사조정절차에서 여러 이유를 대며 법원이 삭제를 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용한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검찰은 수차례 더 조정을 주선하였지만 결국 조정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검찰은 박유하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한국 형법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일반 명예훼손죄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금번 한국 검찰은 박유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일반 명예훼손죄 중 허위사실 공표로 기소를 한 것입니다. 즉 박유하의 연구 결과에 대하여 공소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박유하의 책 중에서 일부 표현이 할머니들이 겪은 경험을 왜곡하였고 이러한 행위가 할머니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금번 학자들이 발표한 성명은 한국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검찰이 어떤 것을 기소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표현에 분노하고 고통 받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박유하를 고소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자발적 매춘’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안부’ 생활을 견딘 것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견뎠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형사조정절차에서 위와 같은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지만 박유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이후 프랑스나 독일 등 몇몇 국가는 법제정을 통해 반유대주의를 표명하거나 나치의 대량 학살 등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였습니다. 의견표명에 대한 처벌이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법까지 제정하여 처벌을 하는 것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금번 기소는 박유하의 책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여러 의견을 대상으로 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국의 위안부> 책에서 표현되고 있는 여러 견해의 부적절함에 대한 논의는 학문의 영역에 속하지만 사실이 아님에도 사실인 것처럼 표현을 하여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준 부분은 시정되어야하고 그러한 사실과 다른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발표된 성명서는 금번 형사처분이 왜 이루어졌고 어떤 죄명으로 기소가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표현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표현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금번 성명이 단순히 한국 검찰이 기소를 한 것이 박유하의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비난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피상적인 비난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닙니다. 반복하지만 성명서 어디에도 고소를 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박유하의 표현으로 인한 고통을 보듬는 내용이 없습니다.

향후에도 위안부 해결을 위한 건강한 토론의 장은 늘 열려 있어야하고 학문의 자유 역시 완벽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사실과 다른 표현으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계속 고통을 주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형사사건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691312524447

渦中日記 2015/12/5

기자회견이 끝나고 사흘. 기소 이후 이주일 여, 내내 경황이 없어 답하지 못했던 전화, 문자, 메일, 메시지등에 답하기 시작했다.
이 주말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원고도 써야 한다.

경향신문 기자가 이번사태에 대해 정리한 기사를 써 주었다. 생각해보면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전면기사로 서평을 써주었던 매체다. 그럼에도 얼마전엔 나를 “친일교수”로 모는 기사를 쓰기도 했던.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의 매체가 결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나는 이 책을 간행한 이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이 내 이름과 함께 돌아 다닌다. 어떤 이는 “설사 직접 쓰지 않았어도 그렇다고 알 수 있는 내용을 쓰지 않았느냐”고 한다.
위안부문제 해결은 어쩌면, 뿌리깊은 매춘차별의식에서 벗어날 때에야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당사자든 주변인이든.

“논박”이란 때로 필요하지만, 때로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논지도 아니고, 지식도 아닐 수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건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태도, 그리고 타자와 마주하는 자세일 뿐이다.

http://h2.khan.co.kr/20151203163105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018259258419

渦中日記 2015/12/2

기자회견과 지식인 성명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한국언론 일본언론은 물론 미국 스페인 언론까지 와 주어 장내가 가득 찼을 정도였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기자,언론인 여러분들, 특히 Facebook 친구 언론인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위한 성명에 참여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국면이 될지 모르지만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셨으니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려주신 분 중 한 분인 김원우 선생님께서 내내 뒤에 앉아 계시다가 가셨는데 저와 함께 찍힌 사진이 있기에 올려 둡니다. 우연히도 옆에는 역시 오래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군요

우선 간단히 보고 드립니다. 먼저, 오래오래 소중하게 기억될 이름들, 191분의 성함을 옮겨 둡니다.

————

학계

강남순 (교수)
구인모 (교수)
권보드래 (교수)
권순엽 (교수)
권영돈 (교수)
권정희 (연구자)
권창규 (학자)
권희주 (교수)
김경옥 (교수)
김규현 (교수)
김두철 (교수)
김미영 (교수)
김석희 (교수)
김성보 (교수)
김승구 (교수)
김예림 (교수)
김용균 (교수)
김용찬 (교수)
김우재 (교수)
김유수 (학자)
김 철 (교수)
김현석 (교수)
김현주 (교수)
나병철 (교수)
나일경 (교수)
남기정 (교수)
남상욱 (교수)
문정인 (교수)
박경수 (교수)
박노현 (교수)
박삼헌 (교수)
박성현 (연구자)
박세진 (교수)
박슬기 (교수)

박정란 (교수)
박재석 (학자)
박진영 (교수)
박진용 (학자)
박현선 (교수)
박혜란 (교수)
박혜성 (교수)
배승주 (강사)
배아란 (연구자)
백규석 (연구자)
백문임 (교수)
서동진 (학자)
서현석 (교수)
소문수 (교수)
송기문 (교수)
송은영 (학자)
신경숙 (교수)
신인섭 (교수)
신형기 (교수)
심준섭 (교육가)
오경환(교수)
오김숙이 (연구원)
오덕재 (교수)
오석태 (학자)
오정환 (연구자)
유승경 (연구자)
유승진 (학자)
윤성호 (교수)
윤태진 (교수)
이강민(교수)
이경분 (교수)
이경원 (교수)
이경훈 (교수)
이권희 (교수)
이기연 (강사)
이순재 (교수)
이승은 (학자)
이승희 (학자)
이영준 (교수)
이우연 (학자)
이윤석 (교수)
이윤영 (교수)
이종일 (교수)
이진경 (교수)
이창남 (교수)
이한정 (교수)
이혜령 (교수)
이효석 (과학자)
임정화 (연구원)
임진영 (학자)
장세진 (교수)
장영철 (교수)
정규영 (교수)
정병호 (교수)
정승원 (연구원)
정영희 (교수)
정의태 (교수)
정종현 (교수)
정혜선 (교수)
정희모 (교수)
조관자 (교수)
조문영 (교수)
조석주 (연구자)
조세영 (교수)
진영복 (교수)
차승기 (교수)
최건영 (교수)
최길성 (교수)
최순애 (학자)
표세만 (교수)
한승욱 (연구자)
허병식 (학자)
홍윤표 (교수)

*작가・문인

고영범 (극작가)
고종석 (작가)
김경옥 (공연평론가)
김곰치 (소설가)
김도언 (작가)
김병익 (평론가)
김원우 (작가)
김현호 (사진비평가)
류 근 (시인)
문강형준(문화평론가)
문부식 (시인)
박일환 (시인)
배수아 (소설가)
배홍진 (작가)
변정수 (평론가)
서준환 (소설가)
손이상 (문화평론가)
송태욱 (번역가)
신은실 (영화비평가)
양한승 (문인)
양혜진 (번역가)
유시민 (작가)
이광호 (평론가)
이문재 (시인)
이원석 (문화비평가)
이제하 (작가)
장윤선 (번역가)
장정일 (소설가)
정과리 (평론가)
정숙희 (극작가)
정찬용 (작가)
조영일(평론가)
최규승 (시인)
최 범 (평론가)
함성호 (시인)
홍미화 (번역가)
홍세화 (작가)

*문화・예술인

강운구 (사진작가)
경 순 (다큐감독)
고성용 (건축사)
김인범 (예술가)
박진영 (사진작가)
안악희 (독립음악가)
유성준 (예술가)
임옥상 (화가)
장현우 (사진작가)
정경록 (독립영화감독)
조미영 (예술가)
조민숙 (예술가)
조세영 (독립영화감독)
최정우 (작곡가)
태준식 (독립영화감독)

*언론・출판인

김규항 (칼럼니스트)
김다미 (출판인)
김용범 (프로듀서)
김종영 (언론인)
김지현 (언론인)
노재현(출판인)
박성태 (언론인)
안보영 (프로듀서)
오태규 (언론인)
이강택 (프로듀서)
이수경 (언론, 예술인)
임현규 (광고인)
장혜경 (언론인)
정종주 (출판인)
조기조 (출판인)
조동신 (출판인)
조용래 (언론인)
주연선 (출판인)
최성욱 (언론인)
황성기 (언론인)
황영식 (언론인)
*법조인

금태섭 (변호사)
김용찬 (변호사)
김향훈 (변호사)
박도준 (변호사)
정우성 (변리사)
최명규 (변호사)

*의료계

김택수 (의학박사)
박성환 (의사)
윤종완 (의사)
윤준호 (치과의사)
정 부 (의료인)
최명환 (의사)

*종교계

이정우 (목사)

총 서명인 194명

『제국의위안부』의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성명

2015년 11월 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하였다는 이유로 저자를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17일, 서울 동부지방 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검찰 측에서 제시한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저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것이며,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그 전쟁의 객관적 상황에 의거해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검찰이 과연 문제의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기소 결정이 과연 공정한 검토와 숙의의 결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론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입니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와세다 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국내 출판사 마흔일곱 곳이 참여하는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의 삭제판 출간이라는 오늘의 출판현실에 주목하여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의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당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의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을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입니다.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권위주의 정권을 퇴출한 이후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민주적 관례와 제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 또한 그러한 사회적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러한 민주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조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검찰의 기소가 취하되기를 바라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12월 2일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39315759428669&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渦中日記 2015/11/26

오늘 오후에, 나에 대한 기소를 비판하는 성명이 나왔다.

이번에 중심에 있어준 건 와카미야 아사히신문 전주필이고, Masahiko Nishi 교수, 우에노치즈코 교수, 고모리요이치교수, 작가 나카자와 게이선생등이 각각 발벗고 나서 주었는데, 오에겐자부로 선생에 더해 무라야마담화의 무라야마전수상, 고노담화의 고노전관방장관까지 동참해 주었다.

일본 최고의 지식인들이, 입을 모아 내 책은 세간에서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얼마전에 통화했던, 원고가 된 한 할머님도, “당신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었다.

기사에 서명자 이름이 빠져 있어 첨부해 둔다. 오래오래 잊을 수 없을 이름들.

浅野豊美(Asano Toyomi, 아사노 토요미)、蘭信三(Araragi Shinzo, 아라라기 신조)、石川好(Ishikawa Yoshimi, 이시카와 요시미)、入江昭(Irie Akira, 이리에 아키라)、岩崎稔(Iwasaki Minoru, 이와사키 미노루)、上野千鶴子(Ueno Chizuko, 우에노 치즈코)、大江健三郎(Oe Kenzaburo, 오에 겐자부로)、大河原昭夫(Okawara Akio, 오카와라 아키오)、大沼保昭(Onuma Yasuaki, 오누마 야스아키)、小倉紀蔵(Ogura Kizo, 오구라 키조)、小此木政夫(Okonogi Masao, 오코노기 마사오)、加藤千香子(Kato Chikako, 가토 치카코)、加納実紀代(Kano Mikiyo, 가노 미키요)、川村湊(Kawamura Minato, 가와무라 미나토)、木宮正史(Kimiya Tadashi, 기미야 타다시)、グレゴリー・クラーク(Gregory Clark, 그레고리 클러크)、ウィリアム・グライムス(William Grimes, 윌리엄 그라임스)、栗栖薫子(Kurusu Kaoru, 쿠루수 카오루)、河野洋平(Kono Yohei, 고노 요헤이)、アンドルー・ゴードン(Andrew Gordon, 앤드류 고든)、古城佳子(Kojo Yoshiko, 코죠 요시코)、小針進(Kohari Susumu, 고하리 스스무)、小森陽一(Komori Yoichi, 고모리 요이치)、酒井直樹(Sakai Naoki, 사카이 나오키)、島田雅彦(Shimada Masahiko, 시마다 마사히코)、千田有紀(Senda Yuki, 센다 유키)、添谷芳秀(Soeya Yoshihide, 소에야 요시히데)、高橋源一郎(Takahashi Genichiro, 다카하시 겐이치로)、竹内栄美子(Takeuchi Emiko, 다케우치 에미코)、田中明彦(Tanaka Akihiko, 다나카 아키히코)、茅野裕城子(Chino Yukiko, 치노 유키코)、津島佑子(Tsushima Yuko, 쓰시마 유코)、東郷和彦(Togo Kazuhiko, 도고 가즈히코)、中川成美(Nakagawa Shigemi, 나카가와 시게미)、中沢けい(Nakazawa Kei, 나카자와 케이)、中島岳志(Nakajima Takeshi, 나카지마 다케시)、成田龍一(Narita Ryuichi, 나리타 류이치)、西成彦(Nishi Masahiko, 니시 마사히코)、西川祐子(Nishikawa Yuko, 니시카와 유코)、トマス・バーガー(Thomas Berger, 토마스 버거)、波多野澄雄(Hatano Sumio, 하타노 수미오)、馬場公彦(Baba Kimihiko, 바바 기미히코)、平井久志(Hirai Hisashi, 히라이 히사시)、藤井貞和(Fujii Sadakazu, 후지이 사다카즈)、藤原帰一(Fujiwara Kiichi, 후지와라 키이치)、星野智幸(Hoshino Tomoyuki, 호시노 도모유키)、村山富市(Murayama Tomiichi, 무라야마 도미이치)、マイク・モチズキ(Mike Mochizuki, 마이크 모치즈키)、本橋哲也(Motohashi Tetsuya, 모토하시 데츠야)、安尾芳典(Yasuo Yoshinori, 야스오 요시노리)、山田孝男(Yamada Takao, 야마다 다카오)、四方田犬彦(Yomota Inuhiko, 요모타 이누히코)、李相哲(Lee Sangchul, 리상철, Li Sotetsu, 리 소테츠)、若宮啓文(Wakamiya Yoshibumi, 와카미야 요시부미)  (54명)

사무국:西成彦( 니시 마사히코) [email protected]

http://news.donga.com/Inter/3/02/20151126/75041382/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6093969750848

渦中日記 2015/11/23

며칠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실망과 절망과 분노와 슬픔과 위안이 교차했던 시간들. 나쁜 기억은 내 안에만 기록할 생각이지만, 한가지만 써 두려 한다.

기소 다음날 아침, 대일피해자 보상문제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한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와는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차 한잔 한 사이일 뿐이다. 그는 나의 책의 취지를 이해한다면서, “해결하고 화해하자는 것이니, 당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했다. 뭐냐고 물으니 일본외무성이 뭔가 자료를 감추고 있는데 그걸 공개하라는 요구를 한국에서 기자회견이나 글로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대해 요구할 것이 있으면 한국이나 외압동원이 아니라 직접 일본을 향해 말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니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럼 재판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나눔의집과 가까운 사이다. 그들의 생각이 새삼 명백히 보이는 듯 했다. 함께 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 나에 대한 고발은 분명 그런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런 요구를 받아 들였다.

암담한 건 기소 다음날 아침에 전화해서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런 감성을 가진 그가, “약자”를 대변하는 이로 자신을 정의하고 또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부하리만큼 횡행해 왔다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사회의 본질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

내 사태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성명서 작성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만간 발표될 듯 하다. 두군데가 될 것 같다.

나는 나대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한 날, 냉전 종식후 태어난, 1992년의 문민정부를 상징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했다. 위안부문제는 문민정부의 출발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이어진 20여년에 대해 고찰한 책으로 인해 나는 국가에 의해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었다.

며칠동안, 무기력과 나를 포함한 세개의 의견표명을 위한 작업과 예정되었던 일정을 펑크내지 않기 위한 긴장의 무게에 짓눌렸다. 오늘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러자 구토가 시작되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구토할 때가 있는데 컨디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별로 없던 현상이 일어나는 걸 보니 생각이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기소 축하합니다. 유죄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라고 일본어로 트윗에 쓴 걸 봤다. 아마도 재일교포일 것이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눈의 여왕”얘기를 떠올렸다. 세상엔, 무언가가 눈에 박힌 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있는 거울조각은 씻겨내려질 수 있을까. 게르다와 카이의 이야기는 늘 내게 많은 시사를 준다.

(며칠전 포스팅에 달아주신 격려의 댓글과 좋아요에 감사드립니다. 당분간 일방적인 글쓰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日本の友人たちへ
ご心配をかけています。大丈夫ですから心配しないでください。少数ではありますが、韓国人友人たちにも支えられています。検察の暴挙は検事の考えに過ぎません。時間がかかるかもしれませんが、なんとかこの難関を打開していきたいと思ってます。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4594109900834

정승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읽기 2

정승원
2015년 2월 22일 ·

‘제국의 위안부’ 읽기 2
– 서로 다른 일본에 대한 인식

‘제국의 위안부’ 책 내용은 지금까지와 다른 일본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일본에 대한 인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일본을 긍정하는 일부 내용을 가지고 교묘하게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긍정하는 사람이니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에 사실상 동조하는 내용이라고, 일본의 우익에 교묘하게 동조하는 사상이라고 봅니다. 뉴라이트 사상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의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 우리는 주로 식민지 시기의 일본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립니다. 그것은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지난 해방이후 70년동안 일본이 변해온 모습에 대해 눈을 사실상 감아왔습니다. (참고로 일본의 세계적인 이미지는 굉장히 좋습니다. 우리와 달리, 세계인들은 평화적인 국가로 인식합니다.)

2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지원활동, 그리고 일본식민주의를 청산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상만을 주입받았고, 여기에 반대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본을 이롭게 해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3. 우리는 위안부 지원 단체에 대해 맹신합니다. 하지만, 박교수가 책에서 여러 사례들을 들었듯이, 위안부 지원 단체의 한계와 문제점들은 공론화되지 못했을 뿐,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위안부 단체를 비판하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4. 기존의 좌우, 보수와 진보 대립 구도하에서 양자 어느 쪽에 속하지 않는, 속해보이자 않는 학문은 낙인을 찍습니다. ‘뉴라이트’니! 박유하 교수의 책은 좌우 틀을 모두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3156654931

박일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3

박일환
2015년 2월 22일

<잠시 쉬어가며>

다른 이의 담벼락에서 논전이 이어지는 걸 보고 있는 중에, 박유하 교수가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는 이가 있었다. 그래서 아래 글을 타이핑해서 댓글로 달았다.(비판자들은 박유하 교수의 책에 있는 이런 구절들은 왜 모르는 척하는 걸까? 차라리 책 전체를 타이핑해서 연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에 앞서 ‘제국’ 구축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위안부를 필요시했던 나라로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제국’의 욕망과 지배를 다른 제국 국가에 앞서서 반성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미 영국과 이탈리아가 그런 사죄를 한 적이 있지만, 서양의 제국주의를 의식하며 제국주의로 향하게 된 일본의 사죄는 아시아의 통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것이 가능해질 때, ‘전후 일본’은 비로소 ‘제국후 일본’(포스트 제국 일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일본 정부의 ‘기금’ 안이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사죄나 보상의 형태를 정하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원단체와 ‘위안부’를 참여시켜 협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지원단체나 위안부들도 이제까지의 대표적인 주장 이외의 의견을 가진 이들 또한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와 당사자 간의 협의를 위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양국의 관계자/지식인들도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란 당사자와 운동가들만의 판단으로는 합의에 도달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20년 동안의 세월이 그것을 증명한다.

만약 해결안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서 새로운 ‘사죄와 보상’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세계를 향해 일본의 생각을 밝히는 공식적인 형태를 취하는 편이 좋다.

그때 일본은, ‘조선인 위안부’ 문제가 ‘위안부’라는 존재를 통해 드러난 ‘식민지배’ 문제임을 말하고,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가 포함되지 않았기에 그런 한일협정을 보완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한일기본조약 자체를 흔드는 어려운 사태를 감수하지 않고도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그때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지배하는 기간에 희생당했던 수많은 사람들 – 3·1 독립만세운동, 간토 대지진, 병사로 동원되어 참가한 전쟁, 고문 등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 – 에 대한 진심을 그 ‘사죄’ 속에 담아야 한다.” (271~272쪽)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9513320962

정승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읽기 1

정승원
2015년 2월 21일 ·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읽기 1
– 책을 읽는 몇 가지 방법

제가 오늘 페북에서 몇 차례 논쟁과 질문을 주고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기본적인 구조만 알면 논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음의 프레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1. 이 책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 위안부를 모욕하는 책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어느 용감한 교수가 위안부 부정이 담긴 책을 쓸 수 있겠습니까? 미치지 않고.

2. 위안부를 부정하거나, ‘자발적 매춘’만을 강조하고 책임을 방기하는 일본 우익의 논리가 아닙니. 당시 드러난 위안부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냈지만, 일본의 구조적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 고로, ‘친일파’가 아닙니다. 친일파 교수라고 생각하고, 온갖 추측성 말을 그만 뱉어내시기
바랍니다.

3. 이 책은 제국/국가의 치하에서 억압받은 여성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 입니다. 식민지 치하의 위안부, 기지촌의 양공주 등으로 이어지면서, 지금도 제국의 체제 하 에서 계속되는 여성의 억압을 다루고 있습니다.

→ 피해자인 여성을 모욕하는 책이 아니라,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페미니즘적인 책입니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 읽고 너무 좋았다. 일제 해방 이후 어느 누가 이토록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 위안부에 대해 기록하는 서술을 내놓았었단 말인가.”(어느 페미니스트)

4. 이 책에 나오는 정보는 ‘위안부’나 ‘위안부 운동’에 대해 언론 수준의 정보만 들어온 한국사람에게 굉장히 낳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정보와 다르다고 반발하지 마시고, 차분히 읽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많습니다. 그런 다음에 기존의
정보와 함께 검토해보면 됩니다.

5. 박유하 교수는 본인 스스로 밝힌 대로 뉴라이트가 아닙니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신빙성 있다고 생각하는 자료를 학자의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인용합니다. 이영훈 교수 인용했다고 해서 뉴라이트가 아닙니다.

6.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문제는 위안부 문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류 지원단체(과 학자들)를 통한 하나의 목소리만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박유하 교수가 제시하는 해법은 약간 다릅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지원단체에서 반대해온 ‘국민기금’에 대해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것은 일본의 진보파 일부(와다 하루키,
우에노 지즈코) 도 국민기금에 찬성합니다.)

– 지금까지와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고, 뉴라이트, 친일로 몰아가서는 안됩니다. 이런 해법은 토론이나 논쟁의 대상입니다.

7. 많은 사람이 화해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죄를 받지 않고, 무조건 용서해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박유하식 화해’를 꼼꼼히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비판하십시오.

8. 위안부 문제의 전체적인 상이나 연구 결과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위안부 연구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입니다. 위안부 숫자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제국의 위안부’가 기존의 위안부 연구보다 더 나아간 것은 확실합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런 연구의 한 지점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교수 한명이 위안부 문제를 모두 담아낼 수 없습니다. 이 책은 논의의 시작점입니다.

9. 탈민족, 탈국가의 이미지로 ‘제국의 위안부’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작 ‘화 해를 위해서’는 탈민족, 탈국가의 관점에서 한일 양국 시민들의 협력을 통한 한일의 화해를 이야기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 색채가 약간 다릅니다. 책임을 묻기 위해서 국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계급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탈민족’의 색채는 엷습니다.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가지고 와서, 이야기하는데, 헛다리 짚은 것입니다.

10. 이 책은 다차원적으로 읽힙니다. ‘탈민족주의적인 젠더’의 관점으로, ‘좌파의 역사관’으로, 탈민족주의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 교수는 동의하지 않을 실지 몰라도,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이 사민주의적이라고 봅니다. 기존의 좌우파 논리를 벗어나 있습니다. 제3의 길 같습니다. 저의 페친 최병천 샘과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특정한 이념으로 규정짓지 말고, 각자 자유롭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2076655039

박일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2

박일환
2015년 2월 21일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2>

두 번째 글입니다. 다른 사람 담벼락에서 짧게 논쟁을 이어가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아예 제 담벼락에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쓰려고 했던 내용과 다른 내용을 먼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다른 비판들은 대부분 근거가 부족하거나 허위에 의한 비방이라고 보이는데, 이 부분만큼은 충분히 논쟁이 될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법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의 상식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발은, 박유하 교수가 일본국가의 책임을 부정한다고 말씀하기에 그건 사실과 다르며 분명히 책임을 묻고 있다고 했더니, 박유하 교수는 일본국가의 ‘강제성’ 부분을 부정한다면서 저에게 법원의 가처분 결정문과 고노담화를 읽어보라고 하더군요. (쟁점은 일본의 책임을 어디까지 묻느냐는 것이겠지요.)

핵심은 조선인 위안부의 강제연행 여부인데요. ‘강제성’과 ‘강제연행’은 분명 다르지요.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에 대해 일본 국가가 기획하고 관리(주체적으로 관여) 했으며, 위안소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 군인의 직접 강제 연행은 드물며 예외적 일탈 정도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체적 사례가 드물다는 거지요. 이에 대해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일본도 고노담화를 통해 ‘강제성’을 인정했는데, 오히려 박유하 교수가 그런 부분을 사상함으로써 법적 배상을 어렵게 한다는게, 제가 이해하는 비판자들의 주된 요지입니다. 우선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고노담화에서 해당되는 부분을 살펴볼까요?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또한,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하에서의 참혹한 것이었다.” (한국위키피디아의 번역문)

자세히 읽어보면 표현이 모호합니다.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라는 부분은 직접 연행을 하지는 않았다는 의미가 강한데, 뒤에 나오는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라는 부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관헌은 아마도 총독부의 말단 관리(관헌이라고 했으니 군인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일 겁니다. ‘가담’이 ‘감언, 강압’인지 강제연행인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보기에 문맥상으로는 ‘감언, 강압’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문장의 출발과 중간 내용이 ‘모집’에 대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박유하 교수는 모집 과정에서 있었던 ‘감언, 강압’을 부정하지 않으며, 다만 직접 강제연행은 사례가 드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해석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론 강제연행이 없었어도 ‘감언, 강압’만으로도 충분히 범죄행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박유하 교수도 일본국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요.(지원단체는 보상이 아닌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이의 담벼락 논쟁에서 상대방에게 직접 강제연행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쉽게 풀릴 문제라고 했습니다(최소한 의미있는 정도의 수치가 나와야겠지요). 그에 대해 돌아온 답이 고노담화를 보라는 것이었고, 살펴본 것처럼 고노담화의 내용은 모호합니다.

현재 일본 우익은 고노담화를 부정 내지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위안부 지원단체는 고노담화로는 부족하며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국가범죄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죄문제에 있어서는 고노담화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허다한 고통을 경험당하고, 심신에 걸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올린다.”

제가 보기에 진심은 어떤지 몰라도 문구상으로는 사과의 내용을 충분히 담고 있습니다. 이후에 후속조치로서 보상 혹은 배상의 문제에 있어 ‘아시아여성기금’ 문제가 불거지는데, 여기서 정대협 등 위안부 지원단체는 일본의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이 문제는 복잡해서 따로 다루어야 합니다)

정리를 해야 할 듯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부분을 어떻게 보느냐는 충분히 논쟁이 될 수 있으며, 이 문제에 국한해서 문제가 불거졌으면 전문가도 아니고 특별히 아는 것도 없는 제가 나설 이유도 없었습니다. 학자들끼리 논쟁을 하면 되니까요. 언뜻 보기에 강압이나 강제연행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 차이가 작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줄곧 문제가 되고 있는 거지요. 일본은 고노담화에서 많은 것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우익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고노담화에서 더 나아가게 하려면 강제연행 부분을 더 명확하게 밝혀내는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박유하 교수는 본인이 파악한 자료에서 그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고요. 말로 떠드는 건 상대를 설득시키지 못합니다. 구체적 자료에 근거한 치밀한 논리가 필요한 법입니다.

제대로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판단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작성일: 2015.02.23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1649988415

박일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1

박일환
2015년 2월 21일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1>

책을 안 읽은 분들이 많고, 구하기 어려워서 내용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계시므로 제가 이해한 대로 몇 차례 서술하고자 합니다. 물론 저 역시 오독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며,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위안부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갈까 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위안부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상은,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하루에 수십 명씩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능욕당한 민족의 수난자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박유하 교수는 대체로 이렇게 말합니다.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은 10대도 있지만 주로 20~25세 정도의 여성들입니다. 일본군이 강제로 끌고간 사람도 있지만 그건 소수이며, 다수는 민간의 업자나 관청의 말단관료들이 감언이설로 속여서 데려간 경우이고, 나아가 위안부의 성격을 알고 간 사람도 있고, 실제로 매춘에 종사하다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간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위안부를 구성하고 있는 여성들은 층위가 매우 다양하며 하나의 이미지로 획일화해서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박유하 교수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러한 팩트마저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해석의 문제입니다. 우선 민간업자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면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면해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박유하 교수는 그런 민간업자들을 만들어낸 일본 국가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조선인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된 것이 ‘식민지’에 대한 일본 제국 권력의 결과인 이상 일본에 그 고통의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을 직접 ‘동원’한 것이 업자들이었다고 해도, 또 그들이 ‘가라유키상’처럼 유괴되거나 자발적으로 팔려갔다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또한 위안소를 기획하고 관리한 주체가 일본임도 분명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군이 성병 검사를 실시했다는 사실도, 일본군이 상품과 그것이 유통되는 시스템의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관리자로 돌아섰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식의 일방적 권력의 존재는 군이 시스템을 ‘관리’한 관리자라는 사실, 다시 말해 ‘관여’했을 뿐만 아니라 주체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자신들의 손은 더럽히지 않고(온건통치를 유지하면서) 식민지인들에게 불법행위를 전담시켜 그들을 동족에 대한 가해자로 만들었다.”

다음은 ‘자발성’과 ‘매춘’이라는 말에 대해 살펴볼까요? 혹자는 박유하 교수가 조선인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표현했다고 하는, 오도된 이야기를 사실처럼 퍼뜨리기도 합니다. 위안부들은 일본 군인들에게 관계의 대가로 분명히 돈을 받았습니다. 이 역시 팩트이며, 이 점을 가지고 일본 우익들은 위안부를 돈을 벌기위한 자발적인 매춘부일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박유하 교수의 견해는 이렇습니다.

“그런 ‘추업’에 그녀들이 ‘자발적’으로 향했다면 무엇이 그런 표면적인 ‘자발성’을 이끌어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남성이고 군대이고 국가였다. 그리고 ‘일본제국’이었다. 다시 말해 ‘위안부’란 어디까지나 국가와 남성, 그리고 격리된 남성 집단을 만드는 전쟁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생긴 존재다. 위안부의 자발성이란, 본인이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국가와 남성과 가부장제의 차별(선별)이 만든 자발성일 뿐이다. 그리고 그녀들은 폭탄이 터지는 최전방에서도 폭력에 시달리며 병사들의 욕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 를 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이유는 우리가 ‘일본군에게 순결을 짓밟힌 어린 소녀’, ‘일본에게 범죄를 추궁하며 싸우는 투사 할머니’ 정도로 알고 있는 위안부 상에 대한 단일한 이미지를 벗겨내야만(그것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하나이고, 다음으로는 지금도 일본의 국가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 우익들에게 근거를 들이대며 당신들 국가의 잘못이라는 것을 일러주기 위함입니다.

자꾸만 길어지네요. 이만하고, 다른 이야기는 이어서…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1543321759

渦中日記 2015/1/21

비교문학자 니시마사히코 (西成彦)선생이, 2월에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대학에서 내 책을 대상으로 심포지엄을 연다. 마침 어제 일본신문에 다른 책과 함께 책에 대해 다루어준 우에노치즈코 선생도 토론자로 나서 주기로. 나리타류이치선생(成田龍一)이나 이와사키미노루선생(岩崎稔)등, 가까운 지인학자들도 동경에서 일부러 와 준다고 하니 깊은 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
전체 테마는 <한일경계를 넘어서–제국을 대하는 방식>. 최근에 <제국의 어둠>이라는 책을 낸 김항선생의 책도 같은 테마로 묶어 논의한다고 한다.

우에노선생은 9년 전에 쓴 책<화해를 위해서>일본판해설을 써 주었던 분이다. 그 때는 내 책이 <뜨거운 불 속의 밤을 줍는 행위>(일본어로는 이렇게 표현한다. 직역)이라 했는데, 이번엔 <불 속에 직접 뛰어 들었다>고 표현했다. 고발당한 건 그 결과일 수 있겠지만, 나로선 고발이후 비로소 나를 덮쳐오는 <뜨거운 불>을 만났다는 생각.

————————————————-
朴裕河さんの『帝国の慰安婦』日本語版(朝日新聞出版)が刊行されて3か月余りがたち、多くの読者がこの本を手に取り、さまざまな反応を見せ始めている。
戦後70年の年にもあたる今年、私たちは「帝国日本」への向き合いを新たな形で求められており、その点では、東アジアの私たちすべてが、この課題の前で平等だ。
「慰安婦問題」ひとつをとってみても、それは「帝国日本」が招き寄せた問題であった。日韓で平行線をたどっているかに見えるこの問題に対して「共通の視点」をさぐりあてるための意見交換の場としたい。

立命館大学・公開ワークショップ
《日韓の境界を越えて~帝国日本への対し方~》
2015年2月22日(日)14:00-17:30
〈「帝国の慰安婦」という問いの射程〉
場所:朱雀キャンパス2階203教室
司会:西成彦(立命館大学)
パネラー:朴裕河(世宗大学校)、平井和子(一橋大学)、森岡正博(大阪府立大学)、上野千鶴子(立命館大学)

>>>>>>>>>>>><<<<<<<<<<<<<
なお、同企画は、下記企画と対をなすものであり、合わせて皆様の来場・参加をお待ちしている。
《日韓の境界を越えて~帝国日本への対し方~》第1回「帝国の擬人法」
2015年2月12日(木)15:00-17:30
場所:衣笠キャンパス末川記念会館第3会議室
司会:西成彦(立命館大学)
パネラー:金杭(延世大学校)、 沈煕燦(立命館大学専門研究員)、原佑介(日本学術振興会特別研究員)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46280138732233&set=a.578003518893233.14637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1・27ー2

아침엔 많이 외로웠다. 가처분심리가 종결되면서 심란했던 여파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지인들이 아사히신문에 서평이 났다면서 여기저기서 보내 주었다.

서평을 쓴 다카하시 겐이치로씨를 처음 만난 건, 1995년에 시마네에서 했던 한일문학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다. 나는 그 무렵 웅진출판과 <21세기 일문학의 발견>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편집해서 내는 작업을 했었고 그 시리즈에 그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책을 넣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더 반갑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3년 여름, 정말 오랫만에 이번에는 그가 재직하는 일본의 대학에서 만났다. 나는 위안부문제를 테마로 강연을 했고 그는 토론자로서 코멘트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와 따로 만날만큼 교류가 깊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나는 이토록 고독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고 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과분한 서평. 하지만 아마도 이 한마디때문에, 나는 이 서평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쓴 이가 일본인이어서 서글프기도 했던 하루.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06431722717075&set=a.1006431706050410.1073741834.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0/24

어제는 성균관대학에서 작은 세미나를 하고 왔다. <제국의 위안부>를 테마로 한 모임으로는, 출간 이후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한번 서평회를 열어준 것에 이어 두번째, 고발사태 이후로는 첫번째인, 내게는 역사적(!)인 초청이었다. 같은 성균관대에서 열린 다른 연구회에서는 작년에 내 책을 대상으로 논의했다는데 나를 부르진 않았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내겐 아주 중요해 보인다.

그저께, 두번째 재판이 있었다. 출석을 심각하게 고려했는데 변호사님을 비롯한 주변친지들의 만류도 있어 결국 나가지 않았다.
꼭 할머니들의 고성을 듣고 멱살을 잡히는 장면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서는 아니었다(원고측은 그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가능한 한 보지 않은 채로 있고 싶은 심경. 그게 강했다. 그리고 참석한 이들의 참관기를 들어보니, 그날의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책을 출판한 탓에 졸지에 “피고”이자 “채무자”라는 호칭을 얻게 된 정종주대표가 이번심리에 맞춰 멋진 답변서를 제출해 주었다.
몇년전 어느날, 나는 그가 내 친구와 논전을 펴는 장면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과연 굴지의 법대출신답게 치밀한 논리력의 소유자라는 걸 알았다. (그 때 그와 논전을 펼쳤던 초등학교 동창과, 고발사태이후 페이스북에서 만났다는 아이러니.)

그의 글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때의 논전이 다시 생각나는, 섹시한 글. 태그되었지만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해서 다시 올린다.
정대표와 만난지 어느새 14년. 그리고 그와 나는 지금 함께 “피고”의 신분이 되었다..

<제국의 위안부> ‘사태’와 관련된 이런저런 일 때문에 그동안 알맹이 없음을 핑계로 안 하던 페이스북에 가입했으나 여전히 알맹이 없어 아무것도 없는 맹탕이었던 이곳에, 오늘 열린 ‘도서출판등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신청’ 2차 심리를 앞두고 재판부에 냈던 ‘채무자 정종주’의 진술서를 올린다. 원래는 초안이었으나, 제대로 채울 틈이 없었던.
어쨌든, 소박하나마, (‘단순가담자’^^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

준 비 서 면

사 건 2014카합10095 도서출판금지 및 접근금지 가처분

채권자 이옥선 외 8

채무자 박유하 외 1

위 사건에 관하여 채무자 정종주는 다음과 같이 심문을 준비합니다.

다 음

1. 채권자 측의 ‘신청 취지’ 및 ‘신청 이유’에 대하여

(1) 채무자들의 대리인이 2014년 7월 8일자로 제출한 「답변서」 및 답변서와 함께 채무자 박유하가 제출한 참고자료 「도서출판 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서」, 그리고 2014년 9월 3일자로 대리인이 제출한 「준비서면」의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답변을 원용합니다.

(2) 그중에서도 특히 채권자들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의 근거로 들고 있는 대표적인 표현, 즉 ‘매춘으로 매도’하고, ‘일본군/일본제국의 동지이자 협력자로 매도’하고, ‘성적 착취와 학대를 당한 피해자임을 부정’했으며, ‘허위사실’로써 채권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은, 채무자 박유하의 진술과 준비서면을 통해 명백히 사실 무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이 320쪽인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에서 108개소를 명예훼손의 근거로 적시하는 채권자들(의 대리인 혹은 지원자)의 주장은 심각한 오독이거나 어떤 특정한 정치적 의도 또는 이해관계가 개입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 백보천보 양보해서, 설사 채권자들이 이 도서의 내용에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이 책이 법학 원론과 판례를 통해 확립된 ‘위법성 조각 사유’인 ‘진실한 사실’을 담고 있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책이라는 점 또한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채권자들의 신청은 기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출판의 경위에 대하여

본 채무자는 출판인입니다. 따라서 먼저 이 도서를 출판하게 된 경위, 그리고 채무자 박유하 교수의 문제의식에 대한 본 채무자의 이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본 채무자가 저자인 채무자 박유하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5월경의 일입니다. 2년 동안의 일본 도쿄대 사회정보연구소 외국인연수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출판사 (주)사회평론의 편집주간 직을 맡은 본인에게 처음 주어진 원고가 박유하 교수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초고였습니다. 저자는 게이오(慶應) 대학과 와세다(早稻田) 대학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했고, 귀국 후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시리즈(웅진출판)를 기획-번역하고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같은 일본의 지성을 소개하는 작업을 해온 저명한 일본/일본문학 전문가였습니다. 그 책은 본 채무자가 편집을 맡아 2000년 8월 1일자로 출간되었고,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던 『일본은 없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들의 허실에 대해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한 책으로서 언론의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사직한 이후인 2004년 4월에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역시 같은 (주)사회평론에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2) 본 채무자는 2001년 말에 출판사 ‘뿌리와이파리’를 창립했고, 2005년 9월 30일자로 박유하 교수의 전작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출간은 본 채무자에게는 뿌리와이파리의 ‘동아시아(한․중․일) 민중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공동의 미래를 향한 우호협력’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관심들은 『공자의 식탁―중화요리 4,000년의 문화사』,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2002), 『민족은 없다』(2003), 『한시와 일화로 보는 꽃의 중국문화사』,『해삼의 눈』, 『1945년 8월 15일,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 『옥황상제에서 서왕모까지, 도교의 신과 신선 이야기』, 『미녀란 무엇인가―중․일 미인의 비교문화사』(2004), 『일본불교사』(2005), 『돈가스의 탄생―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 『자이니치(在日),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대하여』, 『요시카와 고지로의 공자와 논어』(2006),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2008), 『시절을 슬퍼하여 꽃도 눈물 흘리고―요시카와 고지로의 두보 강의』(2009), 『일본국헌법의 탄생』(2010), 『근대 도시공간의 문화경험―도시공간으로 본 일본근대사』(2011) 등등의 책을 관통하며 ‘뿌리와이파리’에서 출간된 도서 130여 종의 중요한 한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저자 박유하 교수는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의 지은이인 한일 지식인들의 모임 ‘한일, 연대 21’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3)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는 한일 간의 ‘화해’를 가로막고 해묵은 갈등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가장 첨예한 현안 네 가지에 대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서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비판적인 제언을 한 책입니다. 이 책의 출간 ‘경위’는 간단합니다. 출판인인 본 채무자가 친분이 있는 저자에게 좋은 책을 한 권 써달라고 부탁했고, 그 부탁이 마침 저자가 관심을 가진 주제, 즉 한일 간의 ‘화해’를 위해 한국/일본의 시민과 지식인이 한국/일본 사회의 일반화된 ‘이미지’와 인식틀을 깨고 함께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보고 싶다는 의지와 만나 원고를 쓰고 편집해서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편협한)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대단히 논쟁적인 주장을 편 까닭인지 이 책은 한국에서는 3,000부밖에 팔리지 않았지만, 다음해인 2006년의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고, 일본어판(헤이본샤平凡社 발행)은 아사히(朝日) 신문사에서 수여하는 권위 있는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을 한국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최초로 수상하는 등 그 문제의식과 ‘용기’를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4) 다만,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가 다루고 있는 주제 자체가 워낙 민감하고 의견 대립이 첨예한 데다가, 저자의 주장 또한 대단히 근본적이고 (한일 양국의 기존의 인식과 주장들에 대해) 비판적인 까닭에, 한국의 이른바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도, 일본의 진보와 보수 진영에서도, 다양한 찬성과 반대의 주장들이 나오고 비판-반비판과 논쟁이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5) 그런 가운데, 저자 박유하 교수가 연구년 등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체류하며 연구하고 있었던 2011~12년 사이에도, 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문제, 독도 문제(바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가 다루고 있는 현안들입니다.) 등을 둘러싸고 한일 관계는 더욱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동안에도 일본 아사히 신문사의 웹논단 ‘론자(論座)’에 일본인 독자들을 향해 ‘위안부 문제’ 관련 글(이 내용도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에 약간 수정되어 실려 있습니다.)을 연재하는 등 한일관계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오던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다시 한번 총체적이고 구조적으로 조명하고 그 해결책을 한일 양국의 독자들과 함께 모색하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본 채무자에게 연락을 해왔고, 본 채무자는 원고를 보내달라고 응답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5~9쪽의 ‘서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6) 2012년 11월경에 초고를 받은 본인은 민감한 사안을 다룬 책이기에 본 채무자가 직접 편집작업을 맡기로 했고, 저자가 서너 차례에 걸쳐 원고의 구성을 바꾸고 내용을 수정보충하는 과정에서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2013년 7월 22일자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출간했고, 8월 초순에 경향신문, 동아일보, 한국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에 큼직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이하, 경향-동아-한국일보 서평기사 링크: 여기선 삭제함]

(7) 이 책의 문제의식은 책 뒤표지의 글을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하여!

위안부 문제는 왜 20년이 되도록 풀리지 않는가
이 책은 그 원인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그 ‘복잡한 구조’를 해부한다

● ‘강제로 끌려간 20만 명의 소녀’라는 인식은 정신대와 위안부의 혼동,
업자의 소거, 예외적인 사례의 일반화된 수용에 의해 만들어진 상이다.
● ‘위안부’의 불행을 낳은 것은 식민지배와 가난과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고,
그들의 체험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 위안부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의식되지 않았던 ‘죄’와
이미 존재하는 법에 저촉되는 ‘범죄’를 구별해서 물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국가의 세력확장)의 문제로 다루었다. 근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 ‘위안부’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위안부 문제’는 과거의 문제일 뿐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며, 구체적으로는 일본과 한국에 존재하는 ‘미군기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 것은 ‘냉전’적 ‘좌우갈등’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결론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모두가 함께 보는 일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풀고 제국과 냉전이 남긴 문제들을 함께 넘어설 수 있는 ‘동아시아’를 상상하고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다.”

본 채무자는 저자 박유하 교수의 문제의식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며, 저자의 학자적 양심과 식견, 한일 간의 진정한 상호이해와 ‘우애와 평화의 동아시아’라는 공동의 미래를 향한 열정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책이 ‘위안부 문제’라는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으며, 20년 동안 쌓여온 한일 두 나라의 다양한 인식 및 이해관계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논쟁적인 글이라는 사실 또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동안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앞장서서 많은 성과를 거둔 한편으로, 현재의 우리 사회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주도적으로 만들어왔고 지금의 운동을 잘못 이끌고 있(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이 책이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대협을 중심으로 한 반발이 있으리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의 온갖 문제들이 그렇듯이 ‘위안부 문제’ 또한 비판과 반비판, 토론을 통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제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관한 공론장의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서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 생산적인 토론과 논쟁을 위한 한 학자의 충정과 거기에 대한 본 출판인의 공감의 산물입니다.

3. 학문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그리고 공론장에서 더욱 심층적이고 폭넓게 이루어져야 할 토론에 대하여

(1)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채무자 박유하 교수와 도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은 결코 채권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할머니들이 이미 아흔 살 안팎의 고령에 이르렀고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분도 많은 터에 20년이 되도록 이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고 심지어 더 악화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의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구조를 규명하고 한일 양국과 두 나라 국민들이 어떻게 미래지향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지를 심도 있게 고찰한 대단히 귀중한 연구-출판물입니다.

(2)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되짚고 진정한 해결의 길을 모색하면서,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 서서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운동과 움직임들을 평가하고 비판해가며 공통의 인식틀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주류의 인식과 이미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또한 피하지 않습니다. 학계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론장의 토론과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이 도서의 출간 이후에 나온 여러 신문 및 논객, 독자들의 큼직한 기사와 서평들은, 저자의 주장이 우리 사회/독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에 비추어볼 때 ‘불편’할 수 있고 ‘자극적’일 수 있지만 공론장에서 토론되어야 할 ‘의미있는 문제제기’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류’의 비판과 감성적 반발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이 ‘가처분신청’ 사태 이후에도 저자의 견해와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의미있는 문제제기’라는 평가는 적지 않았습니다.

(4) 이 ‘가처분신청’이 이루어진 직후인 2014년 6월 20일,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한 간의 공방의 경위’라는 제목의 ‘고노(河野) 담화 검증 보고서’ 결과를 발표했고, 8월 5일자 아사히 신문은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전쟁 때 제주도에 가서 여성을 강제로 끌고 왔다’는 증언이 거짓으로 판명된 사실과 관련하여 그 증언과 관련된 이전의 기사들을 취소했습니다. 식민지지배와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사안에서 진보적인 아사히 신문은 이후 우익 세력과 산케이 신문, 요미우리 신문 같은 우익 신문의 공격을 받아 존폐가 거론될 정도로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열려왔던 정례 한일 국장급 논의 또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됩니다. 이런 작금의 상황을 단순히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는’ 일본의 우경화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70년,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맞는 2015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지향적인 공동의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가야 할 두 나라의 정부와 국민들이 ‘위안부 문제’를 더욱 폭넓게, 더욱 깊이 있게 고찰하고 두 나라 안에서, 그리고 두 나라가 함께 더욱 활발하게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할 것입니다.

(5) 거듭 말씀드리지만, 채무자 박유하 교수와 도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은 결코 채권자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지 않습니다. 형법 제309조 1항의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신문, 잡지 또는 라디오 기타 출판물에 의하여 제307조 1항의 죄를 범한 자’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방할 의사도 목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307조 1항과 2항의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채권자들(의 대리인)이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느꼈다고 하더라도, 제310조에 규정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 그러므로, 본 도서와 저자인 채무자 박유하 교수는 민주적 기본 질서의 핵심을 이루는 헌법상의 학문의 자유(제22조 1항), 언론-출판의 자유(제21조 1항), 표현의 자유를 보호받아 마땅합니다. 제21조 3항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이 ‘가처분신청’, 그리고 채무자들의 반박 혹은 입장 표명조차도 거의 없이 쏟아진 관련 언론 보도들이야말로 위 헌법상의 자유들을 위축시키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7) 결론적으로 본 도서의 내용과 주장은, 사실과 해석, 주장과 비판 모두 학계와 국민/독자들의 공론장에서 벌어지는 토론에 맡겨져야 할 사안이지, 결코 법정에서 다툴 바가 아닙니다.

2014. 10. 21.
채무자 정종주

서울동부지방법원 제21민사부 귀중

작성일: 2014.10.24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3395771687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