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학문적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연구 결과 발표에 사용된 표현의 적절성은 형사법정에서 가려지기보다 자유로운 공개토론이나 학계 내부의 동료 평가 과정을 통하여 검증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또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 영역에서의 ‘역사적 사실’과 같이 그것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학문적 표현 그 자체로 이해 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의 의한 사실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
”피고인은 오랜 기간 대학의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하였다.
피고인은 한일 갈등의 핵심에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고 보고, 그 해결을 위한 연구 결과를 저서로 출판하였다. 이 사건 도서는 위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학문적 표현물로 보인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 집필 과정에서 국내외 다양한 문헌과 자료를 조사하여 이 사건 도서에 직•간접적으로 인용하였고, 기록상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 집필 과정에서 인문사회분야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연구윤리를 위반하여 사료 등 연구자료를 위조•변조하였다거나, 학문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는 부정 행위를 하였다는 사정은 확인되지 않으며, 피고인이 이 사건 도서의 기획, 집필, 발간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조선인일본군 위안부’인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이나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도 확인 되지 않는다“
“이 사건 도서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맥락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검사의 주장처럼 일본군의 의한 강제 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하였다거나, 일본군의 적극 협력 하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이 사건 각 표현이 그런 주장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피고는 이 사건 도서에서 강제로 끌려 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은 분명하고,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제국의 구성원으로서 피해자인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써 일본 제국에 협력할 수 밖에 없었던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에 걸쳐 밝히고 있다. 이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것과 같은 ‘위안부의 자발성’ , ‘강제연행의 부인’, ‘동지적관계’ 와는 거리가 있다. “
“이 사건 각 표현 전후에 맥락이나 피고인이 밝히고 있는 이 사건 도저히 집필 의도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 전체를 통해 피고인의 주제 의식 즉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일본 제국이나 일본군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다른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하여 양국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펼쳐 나가는 과정에서 그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2024.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