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1/23

며칠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실망과 절망과 분노와 슬픔과 위안이 교차했던 시간들. 나쁜 기억은 내 안에만 기록할 생각이지만, 한가지만 써 두려 한다.

기소 다음날 아침, 대일피해자 보상문제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한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와는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차 한잔 한 사이일 뿐이다. 그는 나의 책의 취지를 이해한다면서, “해결하고 화해하자는 것이니, 당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했다. 뭐냐고 물으니 일본외무성이 뭔가 자료를 감추고 있는데 그걸 공개하라는 요구를 한국에서 기자회견이나 글로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대해 요구할 것이 있으면 한국이나 외압동원이 아니라 직접 일본을 향해 말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니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럼 재판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나눔의집과 가까운 사이다. 그들의 생각이 새삼 명백히 보이는 듯 했다. 함께 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 나에 대한 고발은 분명 그런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런 요구를 받아 들였다.

암담한 건 기소 다음날 아침에 전화해서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런 감성을 가진 그가, “약자”를 대변하는 이로 자신을 정의하고 또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부하리만큼 횡행해 왔다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사회의 본질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

내 사태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성명서 작성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만간 발표될 듯 하다. 두군데가 될 것 같다.

나는 나대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한 날, 냉전 종식후 태어난, 1992년의 문민정부를 상징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했다. 위안부문제는 문민정부의 출발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이어진 20여년에 대해 고찰한 책으로 인해 나는 국가에 의해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었다.

며칠동안, 무기력과 나를 포함한 세개의 의견표명을 위한 작업과 예정되었던 일정을 펑크내지 않기 위한 긴장의 무게에 짓눌렸다. 오늘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러자 구토가 시작되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구토할 때가 있는데 컨디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별로 없던 현상이 일어나는 걸 보니 생각이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기소 축하합니다. 유죄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라고 일본어로 트윗에 쓴 걸 봤다. 아마도 재일교포일 것이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눈의 여왕”얘기를 떠올렸다. 세상엔, 무언가가 눈에 박힌 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있는 거울조각은 씻겨내려질 수 있을까. 게르다와 카이의 이야기는 늘 내게 많은 시사를 준다.

(며칠전 포스팅에 달아주신 격려의 댓글과 좋아요에 감사드립니다. 당분간 일방적인 글쓰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日本の友人たちへ
ご心配をかけています。大丈夫ですから心配しないでください。少数ではありますが、韓国人友人たちにも支えられています。検察の暴挙は検事の考えに過ぎません。時間がかかるかもしれませんが、なんとかこの難関を打開していきたいと思ってます。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4594109900834

渦中日記 2015/11/19 – 起訴

검찰이 나를 어젯밤에 기소했다고 한다.
조금 전에 간접적으로 알았다.

나눔의집에서 내보냈다는 보도자료를 우선 올려둔다.

検察が、私と出版社を起訴したよう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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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나눔의 집

<제국의 위안부>저자 박유하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님들이 동부지검에 2014년 6월10일에 고소를 했습니다.

나눔의 집 할머님들은 저자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책에서 할머님들을 <자발적 매춘부>, <일본군의 동지이자 협력자>로 묘사하여 모욕했다고 하여, 출판물에 의한 <일본 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를 했습니다.

동부지방검찰청은 2015년 11월 18일 저녁, 저자 박유하와 출판업자 정종주를 기소(불구속)했습니다.

그리고 저자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책이 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출판금지가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문제된 내용을 “ㅇㅇㅇㅇㅇ” 하여 출판하고, 일본어판을 출판하는 반인권적 행위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법적 판결도 무시하는 반복적인 범죄 행위로 할머님들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 했습니나.

권방문 검사(02-2204-4440)
사건번호 서울동부지방검찰청2014형제 25099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2216783471900

渦中日記 2015/11/11

오늘은 원래는 아시아태평양상 수상식 날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가는 대신, 우연히도 겹쳤던 네번째 민사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은, 참석자와 쌍방이 제출한 서류를 확인 후 향후 일정을 잡기만 하고 10분만에 끝났다.

민사재판 마지막 날은 12월16일로 잡혔고, 1월에 선고가 내려지게 되었다. 조정위원회에서 검찰로 다시 돌아간 형사소송도 조만간에 기소여부 결정이 날 것이다. 약 1년 반만에, 또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될 것 같다.

법원으로 가기 전 아침에, 저녁에 있을 수상식에서 편집자가 대독해 주기로 된 스피치를 써서 보냈다.

오늘은 빼빼로 데이라는데, 내게도 앞으로는 해마다, 바다 하나 사이에 두고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 극명한 대조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일본어지만 기념으로, 오늘 아침에 주최측 언론사인 마이니치신문에 난 “심사평”과 스피치를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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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ジア太平洋賞 受賞スピーチ(2015・11・11、朴裕河)

このたびは『帝国の慰安婦』にアジア太平洋賞特別賞を授けてくださり、心から感謝しております。11月11日の朝、ソウルでこのスピーチを書いています。本当は日本に赴いてご挨拶すべきでしたのに、足を怪我して行けなくなったことをまずお詫び申し上げます。
受賞のお知らせを聞いたとき、嬉しいながらも複雑な心境でありました。というのも、みなさんのご存知の通り、現在この本は韓国で、慰安婦支援団体によって、慰安婦の名誉を毀損したとして訴えられているからです。そのような状況の中にいるので、賞を受け取るべきかどうか、少し迷いました。ひとつには、わたしの意図とは別であるにしろ、原告として名前を連ねているおばあさんたちを無視したとみなされるだろうということ、もうひとつは、「日本」の賞であるだけで「日本の味方をしている、日本政府を代弁している」とする、原告側やその周辺人物の主張を証明するものと見られることが分かっていたからです。
しかし、そうした迷いの時間は長くありませんでした。わたしは、ある選択をめぐって迷うとき、そのことが発生させるであろう様々なことが、わたしたちの守るべき、考慮すべき、モラルと本質的に関係があるかどうかということを考えながら決めてきました。そして、今回の受賞は、誰かを傷つけるものでは、本質的にはないと考えたからです。そして私への評価や裁判に不利か有利かは、受賞自体が決めるのではなく、受賞を眺める人々の良識が決めるもの、と考えたからです。そして、その結果を、わたしは引き受けるつもりです。さらに言えば、現在私に向けられている批判より、わたしの拙い本を高く評価してくださった方々の「心」を受け止めることこそが、おそらく閉塞の中にある今の時代を切り開く方向のものと信じているからです。

この日本語版は、私が書きましたが、もはや私だけの本ではないと思っています。装丁を見たとき、とても嬉しかったのですが、装丁をデザインしてくださった方は、わたしがこの本に込めた意図を、本当に的確に受け止めてくださったと思っています。一輪の、韓国では国の花となっている、可憐なむくげの花は、少女であれ大人であれ、不遇な時代に生まれて耐え忍びながら生きた慰安婦の方々、そして砲弾の飛び交う中で亡くなった方々、そして病気で与えられた命を全うできずに亡くなった方々の悲しみと強さを、あますところなく表現していたからです。本の編集者である岡恵里さんは原稿を読んでいて涙が出そうになったと言ってくださり、日本人の最初の読者であるお二人にそのように受け止められたことは大きな励みになりました。そして、その二人をはじめ、出版するまで、そして出版してから多くの方たちの理解と気持ちが込められているわけですから、この本はもはやわたしだけ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書評や個別の感想の形で高く評価してくださった日本の方々との「合作」のようなものです。ですから、この賞はそうした方々と「一緒に」受け取るものと考えています。

日韓基本条約さえも締結まで14年かかりましたが、慰安婦問題は、はや四半世紀になろうとしています。この二十数年間わたしたちが経験してきたことが、後日どのように受け止められるのか、わたしたちはまだ分かりません。しかし、この本を評価してくださった方々の気持ちこそが今後を開いていけるとわたしは確信しています。わたしの本がよいからではなく、みなさんの気持ちをわたしがよく分かっているからです。様々な批判にさらされながらも、自分が考えていることを書いてこられたのには、ひとえにわたしが信頼する方々が支えてくださってきたからにほかなりません。
思えば数十年前に出会った日本人の方々がそうした信頼を最初に植え付けくれました。様々な事柄や人々が存在するなかで、信頼すべきものを見つけ、 大切にしていくことこそが世の中を平和に導いていくものと考えます。過去を考えるときも今を考えるときも。
悪い記憶や経験をみつめながらもそれに振り回されず、暗黒の中でも一筋の光のようなものを見つける心を維持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それこそが、今を生きるわたしたちが次の世代のためにすべき、もっとも価値のあることと考えます。今後もそうした姿勢を維持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ほんとう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2015年11月11日
民事裁判4回目の日の朝に、ソウルにて、 朴裕河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8221010538144

渦中日記 2015/10/22-2

하루에 渦中日記를 두 번 쓴 적은 거의 없다.

이 제목으로 쓰는 내용은 <제국의 위안부>, 혹은 재판에 관한 얘기들이다. 낮에 <제국의 위안부>가 높이 평가받았단 얘기를 썼는데 저녁에는 반대되는 상황을 써야 하니 아이러니다.

오늘, 그동안 진행해 왔던 “조정”이 중단되었다. 따라서 이제, 형사고발에 관한 결정은 검사의 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동안 제시된 원고측 요구는,
1.사과,
2.삭제요구부분을 000표시한 한국어삭제판을 다른 형태로 낼 것(000표시가 삭제된 내용을 “간접적으로”표현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3. 제3국에서 내는 책도 한국에서 삭제한 부분을 삭제할 것,
이 세가지였다. 그러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2번도 일종의 검열이었고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겠다고 했었다. 대신 3번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일본어판은 번역도 아니고 독자적으로 낸 책이어서 권리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요구를 내가 수용해 일본측 출판사에 요구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받은 연락은, 원고측은 일본어판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조정에 부응하기 어렵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2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 모든 게 아마도 나눔의집 소장의 생각일 것이다. 내가 얼마전에 통화했던 할머니는, 자신이 형사고발인 명단에 오른 줄도 모르고 계셨다.

두통/근육통에서 해방되었나 했더니 오늘은 기침이 심하다. 문득 겁먹으면 기침을 심하게 하던 영화속 러시아의 공주가 생각난다. 잉그리드 버드만이었을 것이다.
겁을 먹은 건 아니지만 긴장되기는 한다. 아무튼 이 달 안에 형사고발에 관한 결정이 날 것 같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17953421564903

渦中日記 2015/10/19

어제 유달리 건조하다고 느꼈던 건 감기가 오는 전조였던 것 같다. 바쁜 일정들 대충 끝내고 좀 여유롭게 지낼 수 있겠다 생각했던 첫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결정해야 하는 몇가지 일이 있어서 머리를 아주 쉬어 주지는 못한다.

2주일 전엔 오랫만에 검찰에 갔었다. 이제 곧 결정해야 할 “조정”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여름부터 3회의 가처분재판, 5회의 검찰조사, 3회의 민사재판을 받으며 느낀 것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의 책에 관해 논하는 일의 무의미함이다. “법”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일이란 “이미 존재” 하는 규범에 근거해 사고하는 일이어서, 나와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자체가 다르다는 걸 나는 법학자들의 사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위안부문제가 학계에서는 어떻게 이해되어 왔고 운동은 어떠했으며 나의 주장은 이러한 것이라는 주장을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말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원고측 주장에 최대한 답변해 왔지만, 검찰은 “정말 나쁜”일을 한 수많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구속하는 일만으로도 바쁠테니 국력을 소모하는 일에 나역시 가담해 온 셈이다.

최근 등장한 “고소사회”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소모가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 결코 그럴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하긴 늘 그랬는데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만큼 에너지가 넘쳐난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고발은, 할머니가 아니라 내가 비판했던 주변인들이 제기했고 주변인들의 의사만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최근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재판에 대한 나의 회의의 첫번째 이유였다.
법의 억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답변을 해 왔지만 그런 의미에선 나역시 나를 엉뚱한 방식으로 소모해 온 건지도 모른다. 1년하고도 4개월동안.

날이 흐리다. 비가 온다면 어젯밤 포스팅은 “기우제 포스팅”이 되는 걸텐데. 그랬으면 좋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1641782171846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9/22

오늘 또다른 기사를 봤다. 제3차 공격이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검찰이 1년 이상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이 부담되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내가 검찰조사도 안 받았고 내 쪽에서 조정을 신청한 것처럼 되어 있다. 또다른 오해를 유발시킬 수 있는 기사다.

나눔의 집은 삭제판도 내지 말라고 한다. 조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했더니, 김향훈변호사님이 “해설”을 써 주셨다.

https://www.facebook.com/kimhh.lawyer/posts/960997897275385

http://www.diodeo.com/news/view/1197123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01869916506587

渦中日記 2015/9/11

김곰치작가님이 재판에 대해 궁금해 해주셔서 간단히 씁니다.(관심,고맙습니다.😊)

1.가처분 소송
지난 2월에 원고가 지적한 53곳 중 34곳을 “삭제하지 아니하고는 출판, 판매 등등을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났고 이에 따라 지난 6월말에 지적된 부분을 000 처리한 삭제판을 발간했습니다. 현재 서점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출판사와 함께, 판매수익은 전부 동아시아 평화운동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판결에 대한 이의신청을 준비중입니다.

2.민사소송
지난 5월과 8월에 서울 동부지원에서 두 번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세번째 재판이 10월7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3.형사소송
검찰이 조정을 권해 조정위원회가 작성한 두번째 조정안을 받은 참입니다. 고발날짜에서 벌써 1년 3개월이나 지난 상태라 조만간 결정해야 하고,만약 성립되지 않으면 기소여부가 결정됩니다.

문안 중에는 “(가처분)결정 주문 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및 제 3국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구절이 있어 원고측이 의미하는 바를 확인 중입니다.
결정주문 1항이란 “(인용목록의)밑줄친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하고서는 위 도서를 출판, 발행,인쇄,복제,판매,배포및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입니다.
최종 확인이 필요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원고측의 요구는 “일본어판등 해외판과 함께 한국어삭제판도 판매금지” 인 듯 합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93119434048302&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7/29

정우성대표님이 올려 주신 마이니치 신문 칼럼을 번역해 보았다.
군인과 위안부관계를 강조하는 부분등 한두군데 불편한 곳이 있지만( 그리고 검찰에선 “사정을 들은”것이 아니다. “범죄리스트 53개항목”에 대해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조사”를 받았다.)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던 “제국”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만큼이나 제대로 읽어내고 또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준 이는 많지 않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 두자면 책의 인세는 변호사비용 착수금도 되지 않는다. 물론 세금을 내고 나면 한참 미치지 못할 것이다. 조정이 성립하거나 이길 경우엔 성공보수를, 질 경우엔 2억7천만원을 또 지불해야 한다. 2심,3심 갈 지도 모른다.
아무튼 착잡한 건, 일부나마, 일본에서 책 판 돈으로 한국의 재판비용을 대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팔리는 책은 앞으로 공적비용으로 쓰기로 한지라 더욱 그렇다.

나는 위안부할머니와 한일갈등해소를 위해 책을 썼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나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건 결국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나를 비난하는 이들이 곧잘 하는 소리인 “일본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가 아니라 별로 듣고 싶지 않았을 소리에 귀기울이는 일로. 그리고 그 상황이야말로 재판을 일으키고 지지하는 이들이 원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지독한 아이러니를 알까.

아무튼, 기존 운동이나 연구와 별 관계없는 사람들은 이 편집위원처럼 허심탄회하게 읽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주었다는 걸 이 9개월동안 느껴왔다. 물론 소수지만 관계자들 중에도 감동했다고 말해 준 이들이 있어 고마웠다.

야마다위원은 아베수상의 70년 담화를 위한 지식인모임의 멤버라고 한다. 영향이 있을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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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위안부> 다시 읽기 야마다 다카오

박유하 세종대 일문과교수가 고군분투를 이어가는 중이다.<일본군의 위안부-성노예>설을 부정한 노작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이 한국에서 판매금지처분을 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본 칼럼에서 전에도 한번 이 책에 대해 언급했는데, 제2차대전종료후 70년, 한일국교정상화 50년이 되는 지금이야말로 <제국의 전쟁>을 분석한 이 저서의 깊은 통찰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키워드는 <위안부>지만,그 이상으로 <제국>이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나라가 강대해지면서 다른 여라나라들을 합쳐 더 큰 나라가 된 것>( 신명해국어사전)이다. 제국주의란 <다른 소국의 권익/존립을 희생시키더라도, 자국의 영토/권익의 확대나 신장을 꾀하려는 침력적경향>(앞의 사전)이다

제국의 역사는 길지만, 근대사의 제국은 19세기의 유럽열강이다. 일본은 열강의 아시아 진출에 대항해서 제국이 되었다. 제국은 새로운 영토나 자원을 찾아 먼나라로 군인이나 상인을 보냈다. 그 지점에 위안부의 수요가 있었다. 가난한 집 딸들이 돈으로 팔려갔고 알선업자가 있었다. 인권같은 건 돌아보지 않았던 시대였다.
위안부는 그런 경제사회구조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이해는 과격하기는커녕, 국제사회가 본다 해도 이견은 적을 것이다.

저자는 위안부 증언집이나 일본의 전쟁문학을 꼼꼼하게 읽고 위안부와 일본군사이에는 사랑도 우정도 있었다고 썼다. 그것이 본질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노예적인 지배/복종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논했다.
이 책은 한국어판이 4000부, 일본어판이 15000부 팔렸다.

작년 6월, 전 위안부 9인이 한사람당 3000만원의 손해배상에 더해 출판/광고를 금지하는 가처분을 청구. 금년 2월에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34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도 광고도 할 수 없다는 가처분이 나왔다.
박교수는 지난 달말에, 복자를 많이 사용한 삭제판을 1000부 간행하는한편, 본소 준비에 들어갔다.
그 동안, 도합 5회 검찰이 사정을 들었고 명예훼손죄에 의한 기소는 불가피한 정세인 듯 하다.
제소 배경에는 <일본은 천황제와 사무라이전통에 근거한 툭수한 군국주의국가다>라고 하는 위안부지원단체의 생각이 존재한다.

박유하는 일본의 선의를 논증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과거를 제국주의 세계사를 기반으로 분석하려 하고 있다.
자본과 군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여성의 상품화>를 초래한다. 지금도 전세계군사기지 주변에 <위안부>가 보인다. 박교수의 문제의식은 그 지점에 있다.

박교수는이렇게 썼다.

< 위안부지원운동은 비판대상을 일본이라는 고유명으로 한정시킨 결과,위안부문제를 “남성과 국가와 제국”의 보편적 문제로 취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이나 미국을 비롯한 일본이외의 나라도 이 문제에서 무죄일 수 없다는 점을 오래도록 못 보게 만든 것도 그 결과일 것이다..>

한일의 불화는 양국에 고유한 의심과 미성숙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역사가 만든 것이다. 일찌기 서구에 추종하며 강자로서 아시아를 지배한 일본은 타자를 지배하는 서양기원의 사상을 넘어 국제사회를 평화공존으로 이끄는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의 이해를 얻어 가며 도전하고 싶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65405096819736

渦中日記 2015/6/30

6월 마지막날, 오늘은 검찰에서 두번째 조정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담당변호사가 혼자 가겠다 해서 나는 집에서 오늘이 마감인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늦은 오후. 받아든 조정안을 보니 짓누르듯 내려오던 하늘처럼, 가슴이 막혀 온다.

도처에 폭력과 불합리와 거짓과 무책임이 만연해 있다.
오늘은 고작 10살짜리 아이들이 친구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했고, 피해자임에도 피해가 묻혀지려 한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봤다. 그 아이들을 만든 어른들,사회와 나의 사건은 무관하지 않다.

비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파란 하늘을 보고 싶다.
맑은 하늘은, 언제 볼 수 있을까.

작성일: 2015.06.30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47597528600493

渦中日記 2015/6/3

햇볕 따갑고 바람 많았던 오후에, 형사고소에 관한 조정위원회가 열렸었다. 새로 담당하게 된 검사가 권고하기에 수락했던 조정이다. 두 변호사님과 출판사의 정종주대표님, 이렇게 넷이 같이 출석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두시간 가까이 걸렸다.

전에 나온 어떤 기사에 의하면 원고측은 삭제판도 내지 말라고 요구중이다. 5명의 조정위원들이 제안한 내용은 “사과”와 “삭제요구된 부분은 국내외 출판에서 영구히 복구하지 말라”였으니 그나마 “조정”된 거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는 “국내외”라는 단어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일본어판도 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니까. 이미 아는 얘기여도 공식석상에서 들으면 비현실감이 강해진다.

아직도 가끔,내가 당하고 있는 일이 현실인가 싶을 때가 있다. 하긴, 메르스 2차 3차 감염자들이 맛볼 절망감과 분노에 비하면 내가 당하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 가능한 한 희생자들이 적기를 기도한다. 나는 편견과 적의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야 하고, 그들은 공포와 죽음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야 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27464977280415&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5/27-2

재판은 20여분만에 끝났다. 양측이 낸 서류를 확인하고 양측 변호인들이 간단히 할 말을 하고 다음 공판 날짜를 정하고 종료.

오늘은 할머니들도, 나눔의 집 소장도,나눔의 집 고문 변호사인 박선아 변호사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직접관계자들 없이 혼자 나온 원고측 변호사는 좀 쓸쓸해 보였다. 내 책이 “전쟁을 찬양”했다고 쓴 그가, 지금이라도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한 언론이 감상을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에 답변문서를 다시 정리하면서 이 문답이 할머니들과 나 사이의 것이 아니라 연구자를 포함한 지원자들과의 논박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했다. 학문적인 견해를 법원에서 피력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서글프다.”
“내 사건은, 일본에 관한 얘기는 자유롭게 말하는 일조차 어려운 우리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일로 고통을 받았고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 이번 일이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그런 정황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가고 싶다.”

페친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돌발사태 없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611314332448

渦中日記 2015/5/27-1

오늘, 민사재판이 시작된다.
명예훼손소송이란 기본적으로 형사고발이라는 걸, 나의 일이 되고서야 처음 알았다.
그런데 곧 1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기소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민사재판이 이제야 시작된다는 것도 그나마 관계자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페친 정승원샘이 <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글을 다시 써주고 계셔서 링크해 둔다.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득 가슴에 품고, 오늘은 처음으로 법원에 나갈 예정이다.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0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4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67&thread=21r04

http://newsmin.co.kr/detail.php?number=4949&thread=21r0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448301015416

渦中日記 2015/5/23

5월의 두번째 연휴. 이틀째 변호사님과 함께 재판준비중이다.

새로 담당해 주게 된 변호사님은 책을 좋아하고 근대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한일관계관련 나의 책을 전부 읽었을 뿐 아니라 그런 책을 쓰도록 만든 이론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책까지 소개해 달라고 해서 나를 살짝 감동시킨.

이번 주 수요일에 민사재판이 시작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2041717822741

渦中日記 2015/4/24

오전에 검찰에 다녀왔다. 지난 겨울 나를 범죄자 취급했던 검사는 결국, 판단을 보류한 채로 이동해 버렸었다. 그리고 새 담당검사는 지난번 검사보다 훨씬 젠틀했지만, 기소할 생각을 내비쳤었다.

그런데 그 검사가 이번에는 “형사조정”이라는 것을 권했다. 기소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쌍방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몇몇 위원들이 조정하는 것이라니, 지난 가을에 했던 언론중재위원회와 비슷한 거 아닐까 싶다.

우연히도, 아침에 나온 뉴스를 보니 지원단체가 일본의 사죄와 보상에 대한그 간의 주장을 바꾼 것 같다. 사실 내 책은 지원단체의 주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말하려 한 책이었다. 생각을 바꿨다면 이제 소취하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아무튼 5월엔 원고측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이 좋은 봄날에 다시 검찰에서.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0575841611773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4/6

오늘, 새 변호사를 선임했다. 1심에서 승소한다 해도, 혹은 원고측이 취하한다 해도 6천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소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2심이나 3심으로 이어지거나 혹 패소까지 하게 되면 비용이 더 추가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늘이 내겐 진짜로 재판이 시작되는 날이 되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9468658722492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4/3

어젯밤 귀갓길. 생일파티를 해 준다는 동료들과 개강모임겸 만나 식사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앞차가 사고난 것도 모르고, 밀리는 건 줄 알고 한참을 얌전히 기다렸을만큼, 비가 퍼부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건지도 모른다. 누구나 앞을 보고 있지만 아무도, 정말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올해는 꽃을 봐도 여느 때처럼 설레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각기관의 어딘가가 상처입었나 싶기도 하다. 나를 향해 겨누어지는 적의와 다가오는 위로의 반복 속에서, 내 마음도 부침을 반복한다. 꼭 병행되는 건 아니지만. 가라앉는 나는 어린아이의 자아이고, 담담하고 당당한 나는 어른의 자아이다. 어린아이의 자아와 어른의 자아는 아직 내 안에서 행복하게 조우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때로 과잉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지나치게 경박하거나 지나치게 냉철하게.
어린아이의 자아가 부끄러워질 때,문득 노인의 자아를 생각한다. 여러가지로, 아이와 노인에겐 공통점이 많다.

하나의 사태에 대해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마도 윤동주는 “쉽게 쓰여진 시”를 부끄러워 했을 것인데, 윤동주를 사랑하는 우리는 “쉽게 말하고 쉽게 단정하고 쉽게 규탄하는” 일에 대한 주저와 부끄러움이 없다. 온나라에 분노와 규탄과 고발이 넘치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터. 분노와 규탄, 그에 대한 무시와 조롱과 경멸이 넘치는 지금의 대한민국상황은, 뒤늦게 온 세기말적 상황처럼도 보인다.

본안재판을 향해,이제 수임료를 지급하고 진행하기로 했다. 최소 수천만원의 소송비용에, 패소할 경우 지급해야 할 수억원의 돈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나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도, 함께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납득가능한 답이 있다면, 내게 보내 주기를.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92172664142980

渦中日記 2015/3・9ー응답을 시작하면서

의혹과 소문이 세상을 떠돌며 한사람을 한치의 주저없이 베고 다닐 때, 그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침묵하거나 항변하거나. 그리고 그동안 나는 다른 이들이 나서준 덕분에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수가 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늘, 차라리 침묵하고 싶었다. 10가지 소문은 곧 100가지가 될 것이고, 그 때의 절망감과 도로감이 미리부터 내 기분을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잘` 항변하기 위해서는 저들의 행위를 컴퓨터와 마음에 저장하고 미움으로 논리의 칼날을 가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일에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는, 나는 그저 그 시간에 아름다운 멜로디에 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보다 아름다운 말들에 귀기울이고 싶었다. 사실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외에는 부지런한 사람이 못된다.

그럼에도 이제 최소한도로나마 해명에 나서려는 이유는, 함께 해 주는 이들, 대한민국에서 극소수일 친구들을 위해서기도 하다. 이제 싸움은 나만의 싸움이 아니게 되었다. 2014년 6월과 다른 것은, 이제 내게는 나 이외에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 모두가, 원고측의 허위섞인 주장과 그 주장을 그대로 믿은 재판부가 만든 일이다.

어차피 나는 법정에서 항변을 해야 하고 원고측 변호사와 학자들—이른바 `지식인`들이 함부로 난도질하며 <공공선에 반한다>고 결론내린 나의 논지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 원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 내게 요구되는 건 ,지치거나 지겨워하지 않고 `법정을 떠올리며 광장을 만들어 가는` 일일 터이다. 그것도 헛소문에서 지적담론까지를 한자리에서 상대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광장을.

우연히도 아침에 관련 뉴스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응답1.<박유하가 위안부할머니에게 일본정부로부터 20억원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2003년가을, 사죄와 보상에 관한 나눔의집의 생각을 듣기 위해 내가 방문했을 때, 여성사무국장은 내게 국가배상이 아니라 실질적보상금을 받는 소송을 준비중이라고 말했었다.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조정`에 이르는 재판이고, 우리는 정대협과 달리 당사자중심으로 간다면서 할머니들의 사인이 들어간 서류까지 보여 주었다. 그 이후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정대협과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는 이 기사를 보고 그간의 나눔의 집의 행보를 알 수 있었다.

한사람당 `20억원`이라는 보상요구금액은, 바로 유희남할머니가 내게 말한 숫자다. 일본이 어떤 사죄와 보상을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사죄고 뭐고)….20억원은 받아야지`라고 말했던 장본인이시다. 그 정황에 관한 증거자료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나눔의 집의 또다른 변호사에게 말했더니, `20억은 많은 금액은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아마도 그는 이미 이런 소송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나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도 해야 하는 것이 슬프다. 유희남할머니가 법정에서 위증을 했다는 걸 듣고도 나는 그에 대해 법정에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법정의 `상식적인 판단`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처분판결이 났을 때 나는, 어쩌면 그 판결은 책 때문이 아니라 나에 관한 부정적인 소문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쩌면 가처분 판결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으로 하지 않은, 나의 불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http://kr.christianitydaily.com/…/…/위안부-피해자-미국-법원에-소송-추진.htm

http://www.yonhapnews.co.kr/…/0200000000AKR2015022717480006…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82184/20150227/%EC%9C%84%EC%95%88%EB%B6%80-%ED%94%BC%ED%95%B4%EC%9E%90-%EB%AF%B8%EA%B5%AD-%EB%B2%95%EC%9B%90%EC%97%90-%EC%86%8C%EC%86%A1-%EC%B6%94%EC%A7%84.htm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75557982471115

渦中日記 2015/2/27

압도적인 폭력아래 놓이면, 말을 잃게 된다. 마녀사냥식 비난과 추측성 의혹과 그럴듯해 보이는 비판들 속에서, 어느 쪽에 먼저 대답해야 할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웃고 있으면 짓밟아 울리고 싶다는 이들이 있었고 슬퍼하면 순교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이들이 있었다. 씩씩하려 하면 뻔뻔하다 했고, 침묵하고 있으면 반박을 못하는 거라고 했다.

검찰조사가 끝나자마자 지방국립대교수와 성남시장이 공격을 시작했고, 그리고 가처분 판결을 받았었다. 덕분에 주변지인들까지 설연휴를 반납하다시피 했고 나 역시도 견뎌내기만도 버거운 며칠이었다. 진작부터 약속한 두개의 일정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귀국하고 보니 이번엔 그 행사마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었고, 나는 “그 와중에 책을 팔러” 일본까지 다녀온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비난에 대해 “자신은 뒤로 숨고 지지자들을 내보낸” 비겁자가 되어 있었다.

작년 6월에는 했던 해명과 설명을 이번에는 일일이 하지 않았던 건 우선은 경황이 없어서기도 했지만, 두번째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나를 설명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나에 대해 말하는 날은 그런 나자신을 넘어서야 할 만한 어떤 계기가 주어진 날이다.

나를 일으켜 세워, 몇가지에 대해선 해명을 해야겠다고 비로소 생각했던 어제, 와다 하루키 교수의 인터뷰가 나왔다. 이 역시도 비판적인 부분에만 주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먼저 걸어둔다. 이 주말엔 페북을 하루종일 열어두어야 할 것 같다.

2월이 가고 있다.

http://www.hankookilbo.com/m/v/86fc1dfb784a4255a92a290849f7d32b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9593019734278

渦中日記 2015/2/17

8개월만에, 판매금지에 관한 가처분결정이 나왔다.
원고측의 두가지 신청중 출판판매금지는 원고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위안부할머니 접근금지신청은 기각되었다.
이렇게 나의 책은 오늘、”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여” 본안이 이루어지기 전에 판매금지되게 되었다.

이시점에서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재판의 원고는 나눔의 집에 계시는 할머니 아홉분 뿐이다.

그 중 다섯 분의 할머니의 진술이 결정문에 있었다. 그런데 속아서 가거나 한 경우를 인용하면서도, 결정문은 전부 “일본군의 강제연행”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런 식의, 너무나 거친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은, 아마도 , “강제연행”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결과일 것이다. 책에 없는, 원고측이 멋대로 요약한 얘기를 내가 쓴 것처럼 정리해 둔 이 글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명예훼손이 될 수 없고 해결을 위한 방안제시”임을 인정한 부분도 있었다. 사실 그래서 이 결정문이 아직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결론
2014년6월, 100여곳을 허위라며 고발했다가 10월에 53곳으로 줄였던 원고측 삭제요구는 재판부에 의해 34곳으로 줄었다. 삭제하면 출판해도 좋다고 하지만, 물론 나는 단 한곳도 삭제 생각이 없다. 조금씩, 이들의 요구에 어떻게 답변했었는지 자료를 올릴 생각이다. 결정문에도 있는 것처럼,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3957406964506

渦中日記 2015/1/29

세번째로 검찰에 다녀왔다. 이번엔 수사과가 아닌 형사과.

내용은, 지난번에 다 대답했고 서류까지 작성된 50여개 항목에 대한 반복질문과 약간의 추가질문. 나는 문간에 있는 나이든 계장에게 조사를 받았고 아직 젊은 검사는 안쪽 책상에 앉은채로 간간이 말을 섞었다. 책을 읽었다는데도 모멸감을 느낄만큼 적대적이어서 오랫만에 화들짝 “바깥세상”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사람좋게 생긴 계장도 검사에 맞춰 내 답변에 대한 반박과 부정. 원고들의 질문 이상으로 왜곡된 질문을 잇달아 날렸다. 그들은, 원고측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그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검사는 심지어 “전쟁을 수행했다”는 표현은 “자발적”이었다는 뜻이냐고 추궁했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림을 출력해서 보여 주면서, 이런데도 일본군이 위안부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냐고 추궁했다. 올리기는 끔찍한 그림이라 안 올리지만, <… 가 (위안부를) 목을 잘라 국 끓여 먹으라”고 말했다>고 북한출신 위안부할머니가 말한 증언을, 실제로 국끓여 먹은 것처럼 그렸던 그림이다. 원고측자료가 아니니, 검사 자신이 그런 자료의 영향을 받았던 듯 하다.

그들에게 난 “강제로 끌려간 조선소녀”를 “자발적으로 간 일본인위안부”와 똑같이 취급하는 불온한 사람이었다. 가부장제나 업자의 책임을 거론하는 일로 일본의 책임을 희석시켜 보려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일제시대때의 “비국민” 취급.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52365901456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