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1심] 시민·독자의 탄원서

 

존경하는 재판관님께.

 

우리는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형사상의 제재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로서 우리들은 <제국의 위안부>의 어디에서도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비방 및 명예훼손의 의도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기술한 “자발적 매춘부”라는 표현은 일본 우익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그들의 표현을 인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귀향>을 보면 일본군이 직접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부분 강제연행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안소에 이르게 된 과정은 그보다 더 다양하다는 사실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해당 저서는 다수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제국의 관헌이 아닌 일본인과 조선인 민간업자들에 의한 사기와 협박 및 회유에 의해 위안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편 위안소에 이르게 된 과정을 불문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위안소에서 일본군에 의해 원치 않은 윤간을 당하고 업자에 의한 강제노동과 폭행 및 갈취 등의 부당한 대우를 당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최소 수만에서 최대 수십만의 여성을 동원한 위안부 제도가 일본 우익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어느 국가에나 존재했던 군대 주변의 공창제와 다르며 그 규모상에서도 잔인성에서도 상이하다는 사실을 실체적으로 조명하려 했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군대에 의해 조직화되고 제도화된 범죄였다는 것입니다. (<제국의 위안부> 155p, 157p 참조)

 

이상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인식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의 피해의 유형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습니다. 피해자 중에서 자신의 상황에 격렬한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개인을 억압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그만 세뇌되고 만 경우도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가 이 사항을 굳이 조명하는 이유는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제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제국의 강제연행설을 부정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애써 외면하려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책입니다. 민간업자가 주체가 되어 위안부를 모집하고 가혹행위를 저지른 ‘경우’에도 일본제국이 위안부 정책을 입안함으로써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한 “구조적 강제성”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인 책임과 별개로 일본국에 대해 정치적/역사적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에 법적 책임을 지우기 곤란한 현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법적인 배상책임에 관한 한 일본 내의 사법적 판단은 이미 끝났으며 법적책임을 인정하는 별도의 입법도 의회 내에서 난망한 상황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편으로 이런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책입니다. 박유하 교수는 법적 책임이 불가하다면 일본이 그 이상으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여러 차례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263p 참조) 그런 의미에서 박유하 교수는 저서의 후반부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포괄적인 보상을 약속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계승하고 확대시킬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무라야마 담화마저도 우익의 술수로 폄하합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는 그런 방식으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무엇보다 한국 내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성이라고 평가받는 와다 하루키 역시 무라야마 담화에 호응하고 행동에 나선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우리 독자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견해가 특정단체와 특정이념에만 맡겨지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합니다. 확실히 <제국의 위안부>는 그 동안 언론에 조명되어온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과 궤를 달리합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전후 일본의 시민사회에서 전쟁책임에 대한 나름의 인식과 논의의 발전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며 한일양국 시민사회의 인식지평과 공감대를 넓혀야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정부와 사법부 입법부를 향한 법적책임에 대한 인정투쟁에 경사되어 왔던 지원단체의 운동적 접근이 과연 문제해결에 있어서 유효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한 일부 지원단체가 강제연행을 당한 일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에만 초점을 맞춰 취사선택함으로써 그 반대로 위안부 제도에서의 강제연행 부정설에 초점을 맞춘 일본 우익세력의 물타기를 허용하고 만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한 보통의 일본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갖고 있는 오해에 대해 우익이라 싸잡아 매도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런 점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논쟁적인 저작입니다. 또한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할 것을 촉구하는 저작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공론장에서 제대로 된 논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해당 저작과 저자에 대한 민형사상의 제재로 인해 제대로 된 논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옹호자와 비판자 사이의 감정적인 비난이 초래되었습니다. 이처럼 <제국의 위안부>에 법적 낙인이 찍힘으로써 다시 한 번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양국 시민의 이해의 엇갈림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반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이러한 교착상태가 하루라도 빨리 타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한일양국에서 온전한 형태로 더 많은 사람에게 읽혀야 합니다.

 

이처럼 박유하 교수의 저서에 대한 독자들의 논의를 고려하시어 존경하는 재판관님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12월

380명

(법원에 제출한 탄원인 명부는 홈페이지에 별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형사1심] 박유하, 검찰기소장 반박문

1. 서론

(1) 검찰은, ‘피고인이 이 사건 서적을 통하여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① 위안부를 일본국에 애국적 자긍적 협력자로 표현하였고, ②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하였으며, ③ 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을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을 부정)함으로써 고소인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먼저, 뒤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첫째, 피고인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적도 없고,
둘째, 피고인은 이 사건 서적을 통하여 검찰이 말하는 의미로는
① 위안부를 일본국에 애국적 자긍적 협력자로 표현한 바도 없고,
②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한 적도 없으며,
③ 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을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을 부정)한 바도 전혀 없습니다.

(2) 피고인을 기소한 검찰의 공소장은, <기초사실>과 <범죄사실>, 그리고 고소인측이 지목하고 민사재판부가 2015. 2.에 그 일부를 인정한 34개 항목에 1항목을 추가한 <범죄일람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기소는, 책의 전체적인 그리고 부분적인 문맥을 무시하고, ‘고소인측의 웃지 못할 오독(예를 들면 “해방 70년“이나 지났으니 일제시대를 다시한번 돌아보자는 제언부분을 위안부할머니에 대해 말한 부분으로 오독,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것처럼 간주)에 더해 곡해로 가득한, 악의적인 고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어이없는 기소입니다.

(3) 피고인은 이 서면을 통하여, <범죄일람표> 각 항목을 구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재판부의 공판 준비명령, 즉 ‘위법성 조각사유와 관련하여 피고인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무엇인지, 즉 피고인이 어떠한 자료를 참조하고, 어떠한 취재와 조사 등을 실시하였으며, 어떠한 연구과정을 거쳐서 이 사건 서적을 서술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라는 명령에 응할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자료집’은 그 ‘증거설명서’와 함께 따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4) 이하에서는 <범죄일람표> 각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이전에, 우선, 공소장 본문의 <기초사실>, <범죄사실> 부분을 반박합니다.

2. 공소장의 <기초 사실>에 대하여

(1) 우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검찰이 <기초사실>에 설시한 내용을 보더라도, 이러한 자료가 어떻게 활용되어, 피고인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였다는 것인지, 그리고 피고인의 서술부분(즉, <범죄일람표>기재 각 항목의 서술부분)이 범죄일람표 <비고>란의 내용, 즉, 피고인이 이 사건 서적을 통하여 ① 위안부가 일본국에 애국적 자긍적 협력자로 표현하였고, ②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하였으며, ③ 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을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을 부정)하였다는 것인지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 검찰은 피고인의 <범죄>의 근거로 먼저 <기초사실>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기초사실이 있는데 박유하가 엉뚱한 거짓말을 하였으니 명예훼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검찰이 말하는 <기초사실>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서적을 통하여 ① 위안부가 일본국에 애국적 자긍적 협력자로 표현하였고, ②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 표현하였으며, ③ 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을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을 부정)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3) 한편, 검찰은 학계에서 어떤 논의가 있는지도 전혀 조사하지 않고, 고소인측의 왜곡된 의견을 그대로 베꼈을 뿐입니다

(4) 이하 검찰이 언급한 자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가) 고노담화

1) 검찰은 ‘피고인이 고노담화를 부정한 것’처럼 고노담화를 기초자료로 제시합니다.

① 그러나 피고인은 고노담화를 부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높이 평가했습니다.(책 173면-176면 참조)

② 그리고 피고인은,
“고노담화가 인정한 것은 우리의 이미지-`총칼로 무장한 군인이 강제로 끌어갔다`는 `강제성`은 아니다. 요청은 군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업자들이 한 감언이나 강압이라는 제3의 강제성만을 인정한 셈이다. 그렇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조선반도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고 요청을 한 주체가 군이니,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의 간접적 강제성에 대해서도 총체적 책임을 지겠다고 한 것이 고노담화다”라고 전제한 후(175면 7줄-12줄), “일본은 조선의 여성들을 일본군의 성욕을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된 것이 ‘조선반도가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던’ 결과. 즉 식민지배라는, 정신적 강제체제하의 일이었다고 인정했던 것이다”라고 서술하였습니다.(175면 14줄-17줄)

`또한 “‘조선인 위안부’ 문제는 성차별과 계급차별 이상으로 ‘식민지배’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이었고, 고노담화는 그 부분을 정확히 파악하고 응답한 담화였다”고 평가하였던 것입니다.(176면 3줄-6줄)

2) 그럼에도 검찰이 ‘피고인이 고노담화를 부정한 것’처럼 제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첫째, 피고인이 ‘일본의 양심으로 여겨져 온 고노담화(그나마 고노담화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위안부 문제 책임을 부정하는 일부 일본인들이 고노담화를 폐기하라고 요구한 최근 몇 년 전입니다)를 박유하가 부정한 것 같은 인상을 재판부 및 일반인에게 심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을 향해 피고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② 두 번째, (책을 읽었을 경우입니다만) 피고인의 정확한 고노담화해석을 완전히 무시하고, ‘고노담화가 물리적 강제성을 인정한 것’처럼 말해 온 지원단체 등 관계자들의 그간의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검찰이 책을 읽지 않았거나, 아니면 20여년의 기존 인식에 갇혀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성이 결여되고 만 결과라 하겠습니다. 참고로, 기소 이후 고노전관방장관이 기소에 반대하는 일본지식인의 성명에 서명한바 있다는 사실도, 피고인의 해석이 정확했다는 사실과 피고인의 책이 검찰이 말하는 식의의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합니다.

3) 고소인측이나 검찰은 이런 부분을 무시하고, ‘피고인이 한국을 향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미움을 표했던 우리 안의 책임자(대부분의 업자와 유괴범, 그리고 여성들을 보호하지 못했던 가족과 이웃)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고 했던 서술 부분’만을 떼어내어, 그 서술 부분에서 ‘피고인이 일본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해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피고인은 ‘이 책 중 일본을 향해 일본의 책임을 서술한 부분’에서 이를 충분히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향해 한국의 문제에 대해 서술한 부분’에 일본에 대한 비판이 없다고 억지를 부린 셈입니다.

(나) 유엔 등 해외에서의 인식

검찰은 ‘피고인의 인식이 해외의 인식에 반하는 것’처럼 말하기 위해, 유엔보고서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증거자료로 고소인측이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유엔 등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좀 더 면밀히 검토하여, ① 이 자료들 대부분이 지원단체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 ② 그러나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서문에 ‘세계의 상식에 이의제기를 하는 셈’이라고 썼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역시 피고인이 ‘지원단체 등이 한국에 유리한 부분만 전달한 결과, 그동안 한국에서는 한국의 인식이 전부 맞는 것으로만 인식된 유엔보고서’에 반하는 인상을 만들려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쿠마라스와미 보고서(1996/1998)

검찰은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가 일본에 대해 행한 권고만 쓰고 있고, 이후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권고는 이후 대부분 실현되었습니다. 즉, 정부 차원의 손해배상(1997년 일본 정부가 주도한 아시아여성기금발족, 보상금 지급), 일본 정부의 문서 및 자료 공개(종군위안부 자료 집성 5권으로 출판하고, 인터넷 공개), 서면에 의한 공적인 사죄(기금 전달시 총리의 편지로 표현), 역사적 사실의 교과서 게재 등입니다.

1991년에 문제로서 발생한 위안부문제에 대답해 1997년 시점에서 일본 교과서의 대부분에 위안부 문제가 실렸었습니다. 다시 교과서에서 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사라지거나 수정되기 시작한 것은, 그 기술이 <강제연행>에 치중되어 있어 그러한 기술에 반발한 이들이 반대 운동을 펼치게 된 이후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지원단체와 고소인측이 인식하지 못했거나 말하지 않은 탓에, 여론과 국민이 오랜 세월 사실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사재판부나 검찰은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검토했어야 마땅함에도, 피고인의 반박을 완전히 무시했던 것입니다.

일본이 이행하지 못한 것은, <범행자 확인 및 처벌>부분입니다. 그러나 누구의 어떤 죄목을 범행자로 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사태를 우선 정확히 봐야 합니다.

피고인이 시도한 일은 바로 그것이었음에도, 고소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방식만을 옳다고 주장하고,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에 대한 국가권력을 동원한 입막음’에 나섰습니다.

또한 검찰 역시, 고소인측과 똑같이 책을 왜곡하여 발표함으로써 전국민의 비난을 야기하도록 하였습니다.

2) 맥두걸 보고서

맥두걸 보고서는 지원 단체의 법적책임 요구 주장에 손을 들어 준 보고서입니다. 이 맥두걸 보고서는 ‘지원단체가 주장한 <강제연행> 주장’에 기반을 둔 보고입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인은 이 책을 통하여 그런 인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서술하였던 것입니다.(제1부1장 `강제연행과 국민동원 사이`)

3) 미하원의 결의/유럽 등 타국 의회의 결의

2007년에 나온 미하원의 결의는, 시간이 흘러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이 깊어진 결과 위안부 문제의 기반이 강제연행이 아니라 인신매매임을 인식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강제낙태 등을 일본군의 소행으로 말하고 강조해 보수의원들까지 설득한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여성의 증언에 자극을 받은 유럽이나 캐나다 의회 등도 이 결정을 그대로 이어갔던 것입니다.

이에 피고인은, 이러한 결정이 ‘네덜란드인에 대하여 행해진 일과 조선의 위안부를 대상으로 행해진 일의 차이’를 보지 못해 일어난 일임을 서술한 것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인에 대한 주동자는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도 서술하였습니다. 동시에 미하원의 결의가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을 높이 평가한 사실을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는 이러한 사실을 한국 사회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4) 유엔인권이사회

검찰은 이 외에도 유엔인권이사회의 보고서나 권고를 <기초사실>로 언급합니다.

그러나 유엔인권이사회나 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정대협의 전 대표들(정진성 서울대 교수, 신혜수 이화여대 교수)이 각각 이사나 위원으로 활동해 왔다는 사실이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들의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은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지원단체의 목소리가 이러한 보고서들에 검증 없이 반영된 배경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5) 검찰이 제시하는 <기초사실>은, 검찰이 결국 일부 학자나 지원단체의 기존 인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피고인의 책이 그러한 기존 인식에 대한 재검증을 시도한 책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하여 기소에 이른 것입니다. 새로운 학설이 기존학설과 다르다는 이유로,또한 국가가 기존학설만 믿었다는이유로 새로운 학설을 입막음하는 사태를 개탄하지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언론이 공식적으로 인신매매 사실을 인정하고 보도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일입니다.

피고인은 이런 사태가 일어난 원인을 해명해 보려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피고인의 책은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갈등의 원인과 배경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 위안부라는 대상에 대해서도 연구하게 된, 학제간 연구, 융합학문서입니다. 일부 역사학자나 법학자들이 피고인의 책을 폄하하는 것은, 이 책이 자신들의 학문체계나 이론을 넘어선 이론과 체계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시도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본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실을 제대로 알고 그에 기반한 비판과 요구를 하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평안을 바라는 피고인의 마음이 만든 집필인 것입니다.
또한, 잘못된 인식으로 오해가 깊어져 한일관계가 날로 험악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또헌 그러한 사태가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일본전문가/학자로서의 양심과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이 시킨 일이기도 합니다.

3. 공소장의 <범죄 사실>에 대하여

(1) 검찰이 피고인에게 <범죄>라 하는 것은, <일본군에 애국적 협력자였음을 표현><위안부 동원의 비강제성 강조(강제동원 또는 강제연행 부정)><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임을 표현>했다고 하는 3개 사항입니다.
이러한 표현들이 <허위사실을 적시>했으니 명예훼손이라는 것입니다.

(2) 검찰의 이러한 기소(고소인측의 고소)는 ‘잘못된 독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라유키상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라는 문장을, 검찰은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임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문장의 앞뒤를 보면, 피고인은 가라유키를 매춘부라고 정의하지 않습니다. 피고인은 가라유키를 <가난해서 팔려간 소녀><국가의 세력확장에 따라 이동/당한 여성들><일본인 여성>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매춘이 아니라도 그런 식으로 <가난해서 이동당한 일본인여성들>은 부지기수였으며, 조선인 위안부란 식민지화로 인해 그러한 틀 안에 들어가게 된 존재라는 것이, 피고인이 `가라유키상의 후예`라는 말에 담은 뜻입니다. 그녀들은 매춘이 아니고도 여러 직종에 있었으며, 매춘업은 어디까지나 그 일부일 뿐이므로 `가라유키=매춘`이 되지도 않습니다.

피고인은 <가라유키의 본질은 매춘>이라고 쓰지 않았고, 따라서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라고도 쓰지 않았습니다. `가라유키의 후예`라는 표현으로 박유하가 무엇보다 강조하고자 한 것은 <일본인 위안부>의 존재입니다. 일본군의 의뢰가 먼저 있었고 실제로 동원대상이 되었던 건 일본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런 한 위안부 제도에서 국가가 자국민을 <강제연행>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있을 수 없었고, 식민지화되어 <일본제국>의 일부가 된 식민지에서도, <연행>이란 <공식적으로> 지시될 수 는 없는 일이었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검찰의 이 지적은 지극히 자의적인 오독일 뿐 아니라 악의적 허위라 하겠습니다.

(3) 그럼에도 조선인 위안부에게 <물리적 강제>를 가한 것은 군대이기 이전에 업자들이며, 일본군은 위안부들을 차별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폭행을 금지했다는 점, 업자들에게 계약서를 확인해 본인 혹은 부모의 의사를 확인하도록 했다는 점 등을 따로 상세하게 밝히겠습니다. 이는 기존 연구자들이 지적하지 않았음은 물론, <제국의 위안부>에도 사용하지 않았던 자료에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에 기반해 피고인이 이 책에서 조선인 위안부가 시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특히 후반에는 <애국을 종용>하는 시대를 살았고, 따라서 <강제>하지 않고도 모집이 가능했으며 여성들을 속이거나 강제한 주체는 주로 업자였음을 설명할 것입니다.

(4) 피고인이 <애국>을 말한 것은, ‘위안부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당시 식민지의 정황을 아는 일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식민지에 대해서도 일본이 애국을 강요하는 과정이 있었고, <일선동조론>이니 <내선일체>결혼 등은 그런 시대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 시대의 한 가운데에 위안부도 놓여 있었음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일본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여성들이 그런 슬픈 시대를 살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한 일본에 대해 반성과 책임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위안소와 공창제와의 관계 등에 대한 언급은 다른 학자들, 특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학자들의 연구에서도 적지 않습니다. 자료로 제출하겠습니다.

피고인의 인식은 주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집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고, 그 골자는 이미 10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라는 책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문화관광부의 우수교양도서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도 발간 직후에 여러 매체들이 진지한 관심을 갖고 인터뷰와 서평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검찰이 말하는 것 같은 책이었다면 고발이전에 언론에 의해 비난받았을 것입니다.

(5) 이하 각항목에 관해 앞뒤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피고인의 책은, 검찰이 말하는 것과 달리,

(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는커녕 반복적으로 성노예적 측면이 있음을 기술했다는 점, 따라서 <위안부의 본질은 매춘>이라고 쓰기는커녕 그렇게 말하는 이들을 향해 비판한 책이라는 점,

(나) 원고로 기명된 위안부할머니들이 직접 수류탄을 나르거나 일본군의 빨래를 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당시의 위안소가 <애국><고향><평화>라는 이름을 달았던 데서 위안부제도가 <애국>의 틀에 편입된 제도였다는 점, 당사자들이 그러한 구도를 알았거나 믿었는지 여부를 떠나, 위안부에게 요구된 역할이 그런 것이었다는 것이며, 피고인이 그런 정황을 굳이 설명한 것은,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정책과 사고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희생구도에 들어가기 쉽게 만든 국가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 따라서 일본에 대한 책임을 기존의 한국의 주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묻기 위한 것이라는 점, 결론적으로 원고나 검찰이 말하는 것처럼 <위안부가 일본에 애국적 협력자>라고 비난한 것일 수 없다는 점,

(다) 결국 피고인이 기존 <강제성>인식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강제성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눈에 띄는 강제성’ 이상으로 ‘교묘한 강제성—<구조적 강제성>’이라고 이미 피고인이 10년 전에 자신의 저서에서도 기술한 개념을 더욱 명확히 강조해 일본의 책임을 정확히 물으려 한 책이라는 점

등을 밝힐 것입니다.

(6) 피고인의 책은 기존 연구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일본에 책임을 물은 책이며, 그를 위해 한국/일본 사회에 이 문제에 관한 공통인식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임을 밝힐 것입니다.

4.

전국민의 지지와 후원을 받아온 지원단체가 한 학자의 책을 고발한다는, 결코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면, 검찰은 중립적 입장에 서서 고소인측 주장도 충분히 재검증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아무런 재검증 없이 기존 인식에 얽매여 기소에 나섰을 뿐 아니라, 피고인이 `자발적 매춘부`라고 썼다고 보도 자료에 써서 배포한 일은,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피고인을 전국민의 지탄을 받도록 한 일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검찰이 국민의 명예와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형사1심] 제1회 공판기일 제출 의견서 (박유하 변호인)

전문 다운로드 : 형사소송 제1회 공판기일 제출 의견서 (박유하 변호인)

검찰은 범죄일람표 1번 내지 35번을 피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의 증거로 제시하였는 바, 피고인은 이하에서 위 각 범죄일람표의 기재내용이 ① 피고인 개인의 ‘단순한 의견표명’에 불과하며 ② 설령 위 내용이 의견표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위 부분에 대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해석을 통해서도 구체적 사실을 표현한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피고인은 이 사건 도서에서 위안부는 성노예였으며, 일본군의 강제연행이 있었으며, 일본국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책임이 있다는 점 등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서술하고 있는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가 성립하지 아니하거나,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피고인은 무죄임에 대하여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사1심] 박유하, 최종답변서

재판장님

<제국의 위안부>내용중 34곳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판결이 끝나고 민사재판이 시작된 지 벌 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러한 판결이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었음을 답변서와 자료들을 통해 말씀드려 왔습니다. 가처분 판결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신청해 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18일에는 그동안 이 사건을 조사해온 검찰이 저를 기소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월에 첫 공판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민사재판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재판장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원고측은, 2014년6월에 저의 책 내용이 ‘허위’이자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 책이라면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매춘’‘동지적관계’라는 두 단어를 강조하며 제가 위안부할머니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는 저의 책이 그저 ‘한일간 화해’를 위한 책이며, ‘일본극우의 주장과 다르지 않’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오독이거나 곡해에 근거한 허위입니다. 그 사실을 저는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반론을 통해 항변해 왔습니다.

1.

저의 책은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책이긴 커녕 한국과 일본의 식자들이 “오히려 할머니의 아픔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해 준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책을 낸 목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이제까지 이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일본정부관계자들에게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대편의 주장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20여년 동안 지원단체는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이 지원단체의 주장과 다른 점은 부정론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 그리고 그에 입각해 그들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비판하려 한 점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를 비롯, 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부분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조선인위안부에 관한 서술과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와 검찰 역시 그러한 이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책이 정말로 그런 책이라면 한국에서 처음 발간했을 때부터 문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발간 후 10개월동안 그런 식의 비난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몇 언론은 호의적인 서평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의 지식인들과 한국의 지식인들마저 목소리를 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측 항의 성명에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고노전관방장관, 무라야먀 전 수상, 그리고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이 성명에 동참한 것은 저의 책이 원고측이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성명에 참여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저의 지인이 기도 합니다. 저의 인식이 위안부할머니들을 폄훼하는 것이었다면 이들과 지인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이들이 기소에 대해 항의성명을 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2.

고발은, 아직 학생신분인 젊은이들의 거칠고 조악한 독해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방후 70년의 문제를 말한 부분을 할머니를 비난한 것으로 읽고 제가 할머니를 비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저는 ‘위안부할머니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로지 책을 올바르게 이해받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따라서 이른 바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1년 반동안 법원과 여론을 향해 오로지 고발에 이르게 한 것은 “오독”이라고만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원고측은 처음에 “허위”에 중점을 두었던 고발취지를 중간에 바꾸어, 제가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면서 저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님, 오독이든 곡해이든, 거짓을 말한 것은 원고측 대변인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동안 고발의 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말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한국의 수치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가처분판결과 형사기소는 그러한 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일부나마 하려 합니다. 그리고 증빙자료도 제출 하겠습니다.

우선은, 원고측이 문제시 삼았던 인식이,실은 다른 위안부할머니의 인식이기도 했고 위안부 문제 발생 직후의 한국정부의 인식이기도 했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이유는 제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 할머니 중에도 저와 같은 인식을 가진 분이 계셨다는 것,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러한 분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고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계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구조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지 20년 이상이 지났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안부문제가 발생하자, 우리사회는 위안부할머니들을 50년동안이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해 왔지만, 여전히 침묵의 강요상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저는 위안부를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위안부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란 국가가 세력확장을 위해 개인을 동원해 신체와 성을 훼손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선인군인과 달리 여성들에겐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의 책은 그 점을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적 제국의 지배와 여성차별의 문제로서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물은 책입니다.

저는 강제동원인지 아닌지,소녀인지 아닌지 여부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점 에만 주목해 20년 이상 대립해 왔고 이제 차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안부문제 운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제가 만든 개념을 위안부할머니들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들 안에 자리한 차별의식과 그 밖의 요소들입니다.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조차, 위안부에 관한 인식은 저와 비슷합니다.

5.

재판장님, 그래서 이제 저는 죽은 자료들 대신,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이 사회에서 들으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저는 죽은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고 나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았고 결국 아무 들어주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죽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저는 저에게 들렸던 그 목소리를 세상에 들리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사와 마주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은 저와 위안부할머니의 싸움이 아닙니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운동가/학자와, 저의 “생각의 싸움”입니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생각의 싸움”입니다.

따라서 이 소송을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의감에서 저를 비난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를 고발한 이들을 세상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정의로운 이들과,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불행에 대해 다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5년 12월 16일

박유하

[뿌리와이파리 정종주 대표]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사실관계 및 기타 사항 공유

Jong-joo Jeong

December 6, 2015 · 

엊그제, ‘나눔의집’ 쪽에서 최근 한국-일본에서 나온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항의성명과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박유하 교수가 따로 얘기를 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제 짧은 소견으로나마 사실관계를 포함한 몇 가지 점만 말씀드려두겠습니다.

  1. 벌써 1년 반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줄곧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의견, 주장’ 모두 법정에서 다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려왔습니다. ‘사실’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공론장에서 비판하고 토론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2. 나눔의집 쪽은 입장 표명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작년 6월의 출판금지 가처분신청과 민.형사 고소 시점부터 이 책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해오셨습니다.(가처분신청 심리 중간쯤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 답변서 제출 이후 ‘신청 취지’를 ‘변경’하실 때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는 식으로 바뀌어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박유하 교수가 여러 차례 밝혔고 법원 및 검찰 답변서에서도 상세히 기술했듯이, 이 책에 언급된 어떤 내용도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어느 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결국 이 기사는 실리지 못한/않은 것으로 압니다).

-문:위안부 강제연행은 포주나 업자들의 취업 사기와 인신매매가 더 많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답: 제가 책에 인용한 증언집은 기존 위안부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이 낸 것입니다. 이걸 거짓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동안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은 모두 허위를 바탕으로 이뤄져 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라고 썼다는 ‘거짓말’을 비롯한 ‘허위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서는, 원고 측과 검찰이 들고 있는 이른바 ‘범죄일람표’와 거기에 대한 반박을 곧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2015년 봄부터 몇 달 동안 진행된 검찰의 형사조정 과정과 관련해서도, 나눔의집 쪽에서 내놓은 입장은 저희가 아는 바와 다릅니다.

나눔의집 쪽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

형사조정위원회에서 나온 조정안들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조정 불성립’으로 끝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문구는 “가처분사건의 결정주문 제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내외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하지 아니한다”였습니다. ‘한국 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곧 한국에서 ‘삭제판’도 출판하지 말고, 비슷한 표현을 앞으로 나라 안팎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말 것이며, 결정적으로 한국어판과는 구성도 문장도 다른 ‘일본어판’마저 절판시키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예 입을 다물라는 요구였지만, 박유하 교수는 ‘일본어판’과 관련된 요구 말고는 모두 수용하려고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정안의 전문과 1항, 2항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사건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었던 형언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20년이 넘도록 갈등을 거듭해온 위안부 문제가 고령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하고 이를 위해 일본정부의 명백한 사죄와 보상의 행동을 촉구한다.

한편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한일양국간의 위안부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동시에 양국 시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호협력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이에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다음과 같이 조정하여 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한다.

1) 피고소인들은 피고소인 박유하가 저작하고 피고소인 정종주가 출판ㆍ배포한 책인 ‘제국의 위안부’(이하 ‘이 책’ 이라 한다.)로 인하여 고소인들을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대하여 고소인 및 위안부할머니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울러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 고소인들은 피고소인들이 이 책을 저작ㆍ출판ㆍ배포한 목적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내놓는데 있었고,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할 적극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1. 박유하 교수도 저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모진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눈 감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한시라도 일찍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어제 새벽에 돌아가신 최갑순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제국의 위안부>가 법정에서 단죄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토론되고 비판받고 논박하는 ‘공개토론’을 통해서 진정한 해결책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의 여러 선생님들도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공개토론을 제안하셨으니, 모쪼록 이 사안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국의 위안부』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194명 성명

2015년 11월 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하였다는 이유로 저자를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17일, 서울 동부지방 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검찰 측에서 제시한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저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것이며,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그 전쟁의 객관적 상황에 의거해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검찰이 과연 문제의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기소 결정이 과연 공정한 검토와 숙의의 결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론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입니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와세다 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국내 출판사 마흔일곱 곳이 참여하는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의 삭제판 출간이라는 오늘의 출판현실에 주목하여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의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당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의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 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을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입니다.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권위주의 정권을 퇴출한 이후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민주적 관례와 제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 또한 그러한 사회적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를 형법 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러한 민주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조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검찰의 기소가 취하되기를 바라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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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신 (출판인)
조용래 (언론인)
주연선 (출판인)
최성욱 (언론인)
황성기 (언론인)
황영식 (언론인)
*법조인

금태섭 (변호사)
김용찬 (변호사)
김향훈 (변호사)
박도준 (변호사)
정우성 (변리사)
최명규 (변호사)

*의료계

김택수 (의학박사)
박성환 (의사)
윤종완 (의사)
윤준호 (치과의사)
정 부 (의료인)
최명환 (의사)

*종교계

이정우 (목사)

총 서명인 194명

일본인·미국인 지식인 67인, 박유하 교수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

원문 보기 : http://www.ptkks.net/kr/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유하 교수를 서울 동부검찰청이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것에 대해 우리들은 커다란 놀라움과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작년 11월 일본에서도 간행된 『제국의 위안부』에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을 넘어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사태의 복잡성과 배경의 깊이를 포착하여 진정한 해결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기소와 동시에 발표된 보도자료에 의하면, 검찰청은 본서의 한국어판이 「허위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박유하 교수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선입견과 오해에 의거하여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으로 인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경험한 슬픔의 깊이와 복잡함이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일본의 독자들에게도 전해졌다고 느끼는 바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민이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제국일본의 책임을 어디까지 추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이해에 도달함으로써 비로소 해결이 가능해지는 문제입니다. 이에 관하여, 박유하 교수는 「제국주의에 의한 여성멸시」와 「식민지지배가 초래한 차별」의 두 측면을 파고들어 이제까지의 논의에 깊이를 더하였습니다.

위안부가 전쟁터에서 일본군 병사와 감정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었다거나 모집에 관여한 조선인을 포함한 업자의 책임 등을 이 책이 지적한 데 대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식민지지배를 통해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 제국일본의 근원적인 책임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뿐이며, 위안부문제로부터 등을 돌리고자 하는 일본의 일부 논조에 가담하는 책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여러 이견들을 포함해서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환기시킨 점에서도 본서의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소에 관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박유하 교수의 「잘못」의 근거로서 「고노담화」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고노담화를 섬세하게 읽어내고 이를 높이 평가하면서, 담화를 기반으로 한 문제해결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일본어판은 올해 가을 일본에서 「아시아태평양상」특별상과 「이시바시 탄잔기념 와세다저널리즘대상」을 잇달아 수상하였습니다. 이는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심화를 향해 새로운 한발을 내딛은 것이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이 책이 명예훼손의 민사재판에 휘말리게 된 것에 대해 우리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왔습니다만, 이번에 더욱 큰 충격을 받게 된 것은 검찰청이라는 공권력이 특정 역사관을 기반으로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사실로 인정하고,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비방이나 폭력선동을 제외하고, 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대항해야 하며, 학문의 장에 공권력이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라고 여겨집니다. 학문과 언론의 활발한 전개야말로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한 중요한 재료를 제공하고, 사회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정치행위뿐만 아니라 학문과 언론이 권력에 의해 삼엄하게 통제되었던 독재시대를 헤쳐 나와 자력으로 민주화를 달성하고 정착시킨, 세계에서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한국사회의 저력에 깊은 경의를 품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헌법이 명기하고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나 「학문・예술의 자유」가 침해 받고 있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일양국이 이제 겨우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는 때에 이번 기소가 양국민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여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번 기소를 계기로 한국의 건전한 여론이 다시금 움직여지기를 강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민주주의도 현재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만,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가 공명해 감으로써 서로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로운 논의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영구히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번 기소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상식과 양식에 부끄럽지 않은 판단을 법원에 강하게 요구함과 동시에 양국의 언론 공간을 통한 논의의 활성화를 절실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성명인 일동

(총 67인 참여)

浅野豊美(Asano Toyomi, 아사노 토요미)、

蘭信三(Araragi Shinzo, 아라라기 신조)、

石川好(Ishikawa Yoshimi, 이시카와 요시미)、

入江昭(Irie Akira, 이리에 아키라)、

岩崎稔(Iwasaki Minoru, 이와사키 미노루)、

上野千鶴子(Ueno Chizuko, 우에노 치즈코)、

大江健三郎(Oe Kenzaburo, 오에 겐자부로)、

大河原昭夫(Okawara Akio, 오카와라 아키오)、

大沼保昭(Onuma Yasuaki, 오누마 야스아키)、

小倉紀蔵(Ogura Kizo, 오구라 키조)、

小此木政夫(Okonogi Masao, 오코노기 마사오)、

加藤千香子(Kato Chikako, 가토 치카코)、

加納実紀代(Kano Mikiyo, 가노 미키요)、

川村湊(Kawamura Minato, 가와무라 미나토)、

木宮正史(Kimiya Tadashi, 기미야 타다시)、

グレゴリー・クラーク(Gregory Clark, 그레고리 클러크)、

ウィリアム・グライムス(William Grimes, 윌리엄 그라임스)、

栗栖薫子(Kurusu Kaoru, 쿠루수 카오루)、

河野洋平(Kono Yohei, 고노 요헤이)、

アンドルー・ゴードン(Andrew Gordon, 앤드류 고든)、

古城佳子(Kojo Yoshiko, 코죠 요시코)、

小針進(Kohari Susumu, 고하리 스스무)、

小森陽一(Komori Yoichi, 고모리 요이치)、

酒井直樹(Sakai Naoki, 사카이 나오키)、

島田雅彦(Shimada Masahiko, 시마다 마사히코)、

千田有紀(Senda Yuki, 센다 유키)、

添谷芳秀(Soeya Yoshihide, 소에야 요시히데)、

高橋源一郎(Takahashi Genichiro, 다카하시 겐이치로)、

竹内栄美子(Takeuchi Emiko, 다케우치 에미코)、

田中明彦(Tanaka Akihiko, 다나카 아키히코)、

茅野裕城子(Chino Yukiko, 치노 유키코)、

津島佑子(Tsushima Yuko, 쓰시마 유코)、

東郷和彦(Togo Kazuhiko, 도고 가즈히코)、

中川成美(Nakagawa Shigemi, 나카가와 시게미)、

中沢けい(Nakazawa Kei, 나카자와 케이)、

中島岳志(Nakajima Takeshi, 나카지마 다케시)、

成田龍一(Narita Ryuichi, 나리타 류이치)、

西成彦(Nishi Masahiko, 니시 마사히코)、

西川祐子(Nishikawa Yuko, 니시카와 유코)、

トマス・バーガー(Thomas Berger, 토마스 버거)、

波多野澄雄(Hatano Sumio, 하타노 수미오)、

馬場公彦(Baba Kimihiko, 바바 기미히코)、

平井久志(Hirai Hisashi, 히라이 히사시)、

藤井貞和(Fujii Sadakazu, 후지이 사다카즈)、

藤原帰一(Fujiwara Kiichi, 후지와라 키이치)、

星野智幸(Hoshino Tomoyuki, 호시노 도모유키)、

村山富市(Murayama Tomiichi, 무라야마 도미이치)、

マイク・モチズキ(Mike Mochizuki, 마이크 모치즈키)、

本橋哲也(Motohashi Tetsuya, 모토하시 데츠야)、

安尾芳典(Yasuo Yoshinori, 야스오 요시노리)、

山田孝男(Yamada Takao, 야마다 다카오)、

四方田犬彦(Yomota Inuhiko, 요모타 이누히코)、

李相哲(Lee Sangchul, 리상철, Li Sotetsu, 리 소테츠)、

若宮啓文(Wakamiya Yoshibumi, 와카미야 요시부미)

새롭게 추가된 서명인 목록

山室信一 (Yamamuro Shinichi, 야마무로 신이치)、

ダニエル・スナイダー(Daniel Sneider,다니엘 스나이더)、

アンドリュー・ホルバート(Andrew Horvat, 앤드류 호밧)、

ポール・ミッドフォード(Paul Midford, 폴 미드포드)、

ジュリオ・プリエセ(Giulio Pugliese, 줄리오 플리에세)、

尾山令仁(Oyama Reiji, 오야마 레이지)

小林孝吉(Kobayashi Takayoshi,고바야시 다카요시)

鳥羽耕史(Toba Koji,도바 고지 )

川人清(Kawahito Kiyoshi, 가와히토 기요시)

アレクサンダー・ブッフ (Alexander Bukh,알렉산더 부흐)

安倍オースタッド玲子 (Abe  Auestad Reiko,아베 오스타드 레이코)

楊大慶(Daqing Yang, 양다칭)

ピーター・ドゥス(Peter Duus, 피터 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