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1심] 박유하, 최종답변서

재판장님

<제국의 위안부>내용중 34곳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판결이 끝나고 민사재판이 시작된 지 벌 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러한 판결이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었음을 답변서와 자료들을 통해 말씀드려 왔습니다. 가처분 판결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신청해 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18일에는 그동안 이 사건을 조사해온 검찰이 저를 기소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월에 첫 공판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민사재판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재판장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원고측은, 2014년6월에 저의 책 내용이 ‘허위’이자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 책이라면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매춘’‘동지적관계’라는 두 단어를 강조하며 제가 위안부할머니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는 저의 책이 그저 ‘한일간 화해’를 위한 책이며, ‘일본극우의 주장과 다르지 않’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오독이거나 곡해에 근거한 허위입니다. 그 사실을 저는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반론을 통해 항변해 왔습니다.

1.

저의 책은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책이긴 커녕 한국과 일본의 식자들이 “오히려 할머니의 아픔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해 준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책을 낸 목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이제까지 이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일본정부관계자들에게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입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대편의 주장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20여년 동안 지원단체는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이 지원단체의 주장과 다른 점은 부정론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 그리고 그에 입각해 그들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비판하려 한 점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를 비롯, 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부분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조선인위안부에 관한 서술과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와 검찰 역시 그러한 이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책이 정말로 그런 책이라면 한국에서 처음 발간했을 때부터 문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발간 후 10개월동안 그런 식의 비난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몇 언론은 호의적인 서평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의 지식인들과 한국의 지식인들마저 목소리를 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측 항의 성명에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고노전관방장관, 무라야먀 전 수상, 그리고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이 성명에 동참한 것은 저의 책이 원고측이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입니다. 성명에 참여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저의 지인이 기도 합니다. 저의 인식이 위안부할머니들을 폄훼하는 것이었다면 이들과 지인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이들이 기소에 대해 항의성명을 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2.

고발은, 아직 학생신분인 젊은이들의 거칠고 조악한 독해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방후 70년의 문제를 말한 부분을 할머니를 비난한 것으로 읽고 제가 할머니를 비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저는 ‘위안부할머니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로지 책을 올바르게 이해받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따라서 이른 바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1년 반동안 법원과 여론을 향해 오로지 고발에 이르게 한 것은 “오독”이라고만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원고측은 처음에 “허위”에 중점을 두었던 고발취지를 중간에 바꾸어, 제가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면서 저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님, 오독이든 곡해이든, 거짓을 말한 것은 원고측 대변인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동안 고발의 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말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한국의 수치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가처분판결과 형사기소는 그러한 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일부나마 하려 합니다. 그리고 증빙자료도 제출 하겠습니다.

우선은, 원고측이 문제시 삼았던 인식이,실은 다른 위안부할머니의 인식이기도 했고 위안부 문제 발생 직후의 한국정부의 인식이기도 했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이유는 제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 할머니 중에도 저와 같은 인식을 가진 분이 계셨다는 것,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러한 분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고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계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 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구조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지 20년 이상이 지났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안부문제가 발생하자, 우리사회는 위안부할머니들을 50년동안이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해 왔지만, 여전히 침묵의 강요상태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4.

저는 위안부를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위안부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위안부란 국가가 세력확장을 위해 개인을 동원해 신체와 성을 훼손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선인군인과 달리 여성들에겐 그들을 보호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저의 책은 그 점을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적 제국의 지배와 여성차별의 문제로서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물은 책입니다.

저는 강제동원인지 아닌지,소녀인지 아닌지 여부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 점 에만 주목해 20년 이상 대립해 왔고 이제 차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안부문제 운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제가 만든 개념을 위안부할머니들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들 안에 자리한 차별의식과 그 밖의 요소들입니다.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조차, 위안부에 관한 인식은 저와 비슷합니다.

5.

재판장님, 그래서 이제 저는 죽은 자료들 대신, 그러나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이 사회에서 들으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저는 죽은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고 나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았고 결국 아무 들어주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죽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저는 저에게 들렸던 그 목소리를 세상에 들리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사와 마주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은 저와 위안부할머니의 싸움이 아닙니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운동가/학자와, 저의 “생각의 싸움”입니다.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다른 생각의 싸움”입니다.

따라서 이 소송을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의감에서 저를 비난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를 고발한 이들을 세상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정의로운 이들과,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불행에 대해 다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15년 12월 16일

박유하

[뿌리와이파리 정종주 대표]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사실관계 및 기타 사항 공유

Jong-joo Jeong

December 6, 2015 · 

엊그제, ‘나눔의집’ 쪽에서 최근 한국-일본에서 나온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항의성명과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박유하 교수가 따로 얘기를 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제 짧은 소견으로나마 사실관계를 포함한 몇 가지 점만 말씀드려두겠습니다.

  1. 벌써 1년 반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줄곧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의견, 주장’ 모두 법정에서 다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려왔습니다. ‘사실’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공론장에서 비판하고 토론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2. 나눔의집 쪽은 입장 표명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작년 6월의 출판금지 가처분신청과 민.형사 고소 시점부터 이 책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해오셨습니다.(가처분신청 심리 중간쯤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 답변서 제출 이후 ‘신청 취지’를 ‘변경’하실 때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는 식으로 바뀌어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박유하 교수가 여러 차례 밝혔고 법원 및 검찰 답변서에서도 상세히 기술했듯이, 이 책에 언급된 어떤 내용도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어느 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결국 이 기사는 실리지 못한/않은 것으로 압니다).

-문:위안부 강제연행은 포주나 업자들의 취업 사기와 인신매매가 더 많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답: 제가 책에 인용한 증언집은 기존 위안부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이 낸 것입니다. 이걸 거짓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동안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은 모두 허위를 바탕으로 이뤄져 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라고 썼다는 ‘거짓말’을 비롯한 ‘허위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서는, 원고 측과 검찰이 들고 있는 이른바 ‘범죄일람표’와 거기에 대한 반박을 곧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 2015년 봄부터 몇 달 동안 진행된 검찰의 형사조정 과정과 관련해서도, 나눔의집 쪽에서 내놓은 입장은 저희가 아는 바와 다릅니다.

나눔의집 쪽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

형사조정위원회에서 나온 조정안들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조정 불성립’으로 끝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문구는 “가처분사건의 결정주문 제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내외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하지 아니한다”였습니다. ‘한국 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곧 한국에서 ‘삭제판’도 출판하지 말고, 비슷한 표현을 앞으로 나라 안팎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말 것이며, 결정적으로 한국어판과는 구성도 문장도 다른 ‘일본어판’마저 절판시키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예 입을 다물라는 요구였지만, 박유하 교수는 ‘일본어판’과 관련된 요구 말고는 모두 수용하려고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정안의 전문과 1항, 2항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사건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었던 형언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20년이 넘도록 갈등을 거듭해온 위안부 문제가 고령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하고 이를 위해 일본정부의 명백한 사죄와 보상의 행동을 촉구한다.

한편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한일양국간의 위안부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동시에 양국 시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호협력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이에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다음과 같이 조정하여 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한다.

1) 피고소인들은 피고소인 박유하가 저작하고 피고소인 정종주가 출판ㆍ배포한 책인 ‘제국의 위안부’(이하 ‘이 책’ 이라 한다.)로 인하여 고소인들을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대하여 고소인 및 위안부할머니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울러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 고소인들은 피고소인들이 이 책을 저작ㆍ출판ㆍ배포한 목적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내놓는데 있었고,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할 적극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1. 박유하 교수도 저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모진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눈 감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한시라도 일찍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어제 새벽에 돌아가신 최갑순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제국의 위안부>가 법정에서 단죄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토론되고 비판받고 논박하는 ‘공개토론’을 통해서 진정한 해결책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의 여러 선생님들도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공개토론을 제안하셨으니, 모쪼록 이 사안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국의 위안부』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194명 성명

2015년 11월 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하였다는 이유로 저자를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17일, 서울 동부지방 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검찰 측에서 제시한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저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것이며,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그 전쟁의 객관적 상황에 의거해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검찰이 과연 문제의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기소 결정이 과연 공정한 검토와 숙의의 결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론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입니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와세다 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국내 출판사 마흔일곱 곳이 참여하는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의 삭제판 출간이라는 오늘의 출판현실에 주목하여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의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당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의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 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을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입니다.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권위주의 정권을 퇴출한 이후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민주적 관례와 제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 또한 그러한 사회적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를 형법 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러한 민주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조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검찰의 기소가 취하되기를 바라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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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목사)

총 서명인 194명

일본인·미국인 지식인 67인, 박유하 교수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

원문 보기 : http://www.ptkks.net/kr/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인 박유하 교수를 서울 동부검찰청이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것에 대해 우리들은 커다란 놀라움과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작년 11월 일본에서도 간행된 『제국의 위안부』에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을 넘어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사태의 복잡성과 배경의 깊이를 포착하여 진정한 해결의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기소와 동시에 발표된 보도자료에 의하면, 검찰청은 본서의 한국어판이 「허위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박유하 교수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선입견과 오해에 의거하여 내린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으로 인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경험한 슬픔의 깊이와 복잡함이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일본의 독자들에게도 전해졌다고 느끼는 바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민이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제국일본의 책임을 어디까지 추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통된 이해에 도달함으로써 비로소 해결이 가능해지는 문제입니다. 이에 관하여, 박유하 교수는 「제국주의에 의한 여성멸시」와 「식민지지배가 초래한 차별」의 두 측면을 파고들어 이제까지의 논의에 깊이를 더하였습니다.

위안부가 전쟁터에서 일본군 병사와 감정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었다거나 모집에 관여한 조선인을 포함한 업자의 책임 등을 이 책이 지적한 데 대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식민지지배를 통해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낸 제국일본의 근원적인 책임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뿐이며, 위안부문제로부터 등을 돌리고자 하는 일본의 일부 논조에 가담하는 책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여러 이견들을 포함해서 위안부문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환기시킨 점에서도 본서의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소에 관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박유하 교수의 「잘못」의 근거로서 「고노담화」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고노담화를 섬세하게 읽어내고 이를 높이 평가하면서, 담화를 기반으로 한 문제해결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일본어판은 올해 가을 일본에서 「아시아태평양상」특별상과 「이시바시 탄잔기념 와세다저널리즘대상」을 잇달아 수상하였습니다. 이는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심화를 향해 새로운 한발을 내딛은 것이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이 책이 명예훼손의 민사재판에 휘말리게 된 것에 대해 우리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왔습니다만, 이번에 더욱 큰 충격을 받게 된 것은 검찰청이라는 공권력이 특정 역사관을 기반으로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사실로 인정하고, 역사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학문의 자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특정 개인에 대한 비방이나 폭력선동을 제외하고, 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대항해야 하며, 학문의 장에 공권력이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라고 여겨집니다. 학문과 언론의 활발한 전개야말로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한 중요한 재료를 제공하고, 사회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정치행위뿐만 아니라 학문과 언론이 권력에 의해 삼엄하게 통제되었던 독재시대를 헤쳐 나와 자력으로 민주화를 달성하고 정착시킨, 세계에서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한국사회의 저력에 깊은 경의를 품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헌법이 명기하고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나 「학문・예술의 자유」가 침해 받고 있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한일양국이 이제 겨우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는 때에 이번 기소가 양국민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여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번 기소를 계기로 한국의 건전한 여론이 다시금 움직여지기를 강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민주주의도 현재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만,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가 공명해 감으로써 서로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로운 논의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영구히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번 기소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의 상식과 양식에 부끄럽지 않은 판단을 법원에 강하게 요구함과 동시에 양국의 언론 공간을 통한 논의의 활성화를 절실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2015년 11월 26일

성명인 일동

(총 67인 참여)

浅野豊美(Asano Toyomi, 아사노 토요미)、

蘭信三(Araragi Shinzo, 아라라기 신조)、

石川好(Ishikawa Yoshimi, 이시카와 요시미)、

入江昭(Irie Akira, 이리에 아키라)、

岩崎稔(Iwasaki Minoru, 이와사키 미노루)、

上野千鶴子(Ueno Chizuko, 우에노 치즈코)、

大江健三郎(Oe Kenzaburo, 오에 겐자부로)、

大河原昭夫(Okawara Akio, 오카와라 아키오)、

大沼保昭(Onuma Yasuaki, 오누마 야스아키)、

小倉紀蔵(Ogura Kizo, 오구라 키조)、

小此木政夫(Okonogi Masao, 오코노기 마사오)、

加藤千香子(Kato Chikako, 가토 치카코)、

加納実紀代(Kano Mikiyo, 가노 미키요)、

川村湊(Kawamura Minato, 가와무라 미나토)、

木宮正史(Kimiya Tadashi, 기미야 타다시)、

グレゴリー・クラーク(Gregory Clark, 그레고리 클러크)、

ウィリアム・グライムス(William Grimes, 윌리엄 그라임스)、

栗栖薫子(Kurusu Kaoru, 쿠루수 카오루)、

河野洋平(Kono Yohei, 고노 요헤이)、

アンドルー・ゴードン(Andrew Gordon, 앤드류 고든)、

古城佳子(Kojo Yoshiko, 코죠 요시코)、

小針進(Kohari Susumu, 고하리 스스무)、

小森陽一(Komori Yoichi, 고모리 요이치)、

酒井直樹(Sakai Naoki, 사카이 나오키)、

島田雅彦(Shimada Masahiko, 시마다 마사히코)、

千田有紀(Senda Yuki, 센다 유키)、

添谷芳秀(Soeya Yoshihide, 소에야 요시히데)、

高橋源一郎(Takahashi Genichiro, 다카하시 겐이치로)、

竹内栄美子(Takeuchi Emiko, 다케우치 에미코)、

田中明彦(Tanaka Akihiko, 다나카 아키히코)、

茅野裕城子(Chino Yukiko, 치노 유키코)、

津島佑子(Tsushima Yuko, 쓰시마 유코)、

東郷和彦(Togo Kazuhiko, 도고 가즈히코)、

中川成美(Nakagawa Shigemi, 나카가와 시게미)、

中沢けい(Nakazawa Kei, 나카자와 케이)、

中島岳志(Nakajima Takeshi, 나카지마 다케시)、

成田龍一(Narita Ryuichi, 나리타 류이치)、

西成彦(Nishi Masahiko, 니시 마사히코)、

西川祐子(Nishikawa Yuko, 니시카와 유코)、

トマス・バーガー(Thomas Berger, 토마스 버거)、

波多野澄雄(Hatano Sumio, 하타노 수미오)、

馬場公彦(Baba Kimihiko, 바바 기미히코)、

平井久志(Hirai Hisashi, 히라이 히사시)、

藤井貞和(Fujii Sadakazu, 후지이 사다카즈)、

藤原帰一(Fujiwara Kiichi, 후지와라 키이치)、

星野智幸(Hoshino Tomoyuki, 호시노 도모유키)、

村山富市(Murayama Tomiichi, 무라야마 도미이치)、

マイク・モチズキ(Mike Mochizuki, 마이크 모치즈키)、

本橋哲也(Motohashi Tetsuya, 모토하시 데츠야)、

安尾芳典(Yasuo Yoshinori, 야스오 요시노리)、

山田孝男(Yamada Takao, 야마다 다카오)、

四方田犬彦(Yomota Inuhiko, 요모타 이누히코)、

李相哲(Lee Sangchul, 리상철, Li Sotetsu, 리 소테츠)、

若宮啓文(Wakamiya Yoshibumi, 와카미야 요시부미)

새롭게 추가된 서명인 목록

山室信一 (Yamamuro Shinichi, 야마무로 신이치)、

ダニエル・スナイダー(Daniel Sneider,다니엘 스나이더)、

アンドリュー・ホルバート(Andrew Horvat, 앤드류 호밧)、

ポール・ミッドフォード(Paul Midford, 폴 미드포드)、

ジュリオ・プリエセ(Giulio Pugliese, 줄리오 플리에세)、

尾山令仁(Oyama Reiji, 오야마 레이지)

小林孝吉(Kobayashi Takayoshi,고바야시 다카요시)

鳥羽耕史(Toba Koji,도바 고지 )

川人清(Kawahito Kiyoshi, 가와히토 기요시)

アレクサンダー・ブッフ (Alexander Bukh,알렉산더 부흐)

安倍オースタッド玲子 (Abe  Auestad Reiko,아베 오스타드 레이코)

楊大慶(Daqing Yang, 양다칭)

ピーター・ドゥス(Peter Duus, 피터 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