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유달리 건조하다고 느꼈던 건 감기가 오는 전조였던 것 같다. 바쁜 일정들 대충 끝내고 좀 여유롭게 지낼 수 있겠다 생각했던 첫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결정해야 하는 몇가지 일이 있어서 머리를 아주 쉬어 주지는 못한다.
2주일 전엔 오랫만에 검찰에 갔었다. 이제 곧 결정해야 할 “조정”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여름부터 3회의 가처분재판, 5회의 검찰조사, 3회의 민사재판을 받으며 느낀 것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의 책에 관해 논하는 일의 무의미함이다. “법”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일이란 “이미 존재” 하는 규범에 근거해 사고하는 일이어서, 나와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자체가 다르다는 걸 나는 법학자들의 사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위안부문제가 학계에서는 어떻게 이해되어 왔고 운동은 어떠했으며 나의 주장은 이러한 것이라는 주장을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말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원고측 주장에 최대한 답변해 왔지만, 검찰은 “정말 나쁜”일을 한 수많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구속하는 일만으로도 바쁠테니 국력을 소모하는 일에 나역시 가담해 온 셈이다.
최근 등장한 “고소사회”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소모가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 결코 그럴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하긴 늘 그랬는데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만큼 에너지가 넘쳐난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고발은, 할머니가 아니라 내가 비판했던 주변인들이 제기했고 주변인들의 의사만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최근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재판에 대한 나의 회의의 첫번째 이유였다.
법의 억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답변을 해 왔지만 그런 의미에선 나역시 나를 엉뚱한 방식으로 소모해 온 건지도 모른다. 1년하고도 4개월동안.
날이 흐리다. 비가 온다면 어젯밤 포스팅은 “기우제 포스팅”이 되는 걸텐데.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