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소설가
박유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 서평
저자는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세계관과 시대상을 통해 국민 작가로 등극하게 되었는지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한갓 국가 이데올로기의 동조자에게 허여되는 칭호임을 밝힌다.
나쓰메 소세키는 ‘하루에 세 편씩 논문이 나온다’고 할 만큼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처럼 일본인의 주목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가 차지한 ‘국민 작가’라는 부동의 자리 때문이다. <나의 개인주의>(책세상 펴냄, 2004년)라는 제목의 나쓰메 소세키 강연집을 편역했던 한국 역자의 약력에 적힌 “일본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를 중심으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하고 있다”라는 문장은 더하거나 뺄 게 없는 그의 위상을 보여준다.
박유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문학동네 펴냄, 2011년)는 보유 격의 논문 몇 편을 빼고는 통째 나쓰메 소세키를 분석한다. 지은이는 이 책 전체를 나쓰메 소세키가 창안한 ‘자기 본위(개인주의)’를 해명하는 데 바쳤다. 그 전에 언제부터인가 당연시된 ‘국민 작가’라는 용어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우리는 ‘국민 가수’ ‘국민 배우’ ‘국민 투수’에다 ‘국민 여동생’까지 있으니, 국민 작가도 있는 줄 안다. 하지만 ‘국민 문학’이 문학사나 이론서에 등재된 것인 데 반해, 국민 작가는 문학을 설명하는 보편 용어가 못된다.
국민 작가라는 용어를 여기저기서 접하다보니,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전문적인 연구자들까지 저 용어가 근대문학이 발생한 모든 나라에 으레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 작가에 해당하는 영미(英美)·프랑스·독일·러시아·스페인어권의 대응어나 개념이 있느냐, 없느냐 따위가 아니다. 진짜 곤혹스러운 것은 저 용어를 통해 근대문학을 고민해보겠다는 비평가가 곧바로 ‘국민 작가를 가지지 못한 나라는 근대문학에 미달한 나라’라는 성급한 단정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런 억견에 대해서는 국민 작가가 일본에서만 쓰이는 그들만의 역사적이고 특수한 맥락의 산물이라는 것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메이지 유신으로 갱신된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근대적 헌법·군대·교육·의료 체계 등을 모방하면서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는 식의 문화적 상징물마저 갈구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슨 공식처럼 외우고 있는 ‘영국=셰익스피어’ ‘프랑스=위고’ ‘독일=괴테’ ‘러시아=푸시킨’ 따위 믿거나 말거나 한 상식에는 어서 서양을 따라 잡아야겠다는 일본의 문화적 후진성이 상당히 투영되어 있다. 한국 비평가가 일본의 전근대성에서 생겨난 국민 작가를 근대문학의 발달을 가늠하는 기준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이만저만한 촌극이 아니다. 메이지 시기의 일본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국민 작가를 주조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이고 특수한 맥락이 있었다면,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국민 작가가 만들어질 수 없었던 역사적이고 특수한 맥락이 있었다. 그것을 무시하면, 문학 연구라는 이름을 빙자한 또 다른 식민 잔재에 지나지 않는다.
‘없다’는 이미 ‘있다’는 전제를 수긍한다. 따라서 ‘있다’를 거부하며 ‘없다’를 주장하고 싶은 사람은 항상 ‘있다, 그러나 어떻게 있게 되었다’를 통해, 만들어진 기원을 폭로하고 허물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런 전복은 외국인을 위한 일본의 어느 역사 교과서가 러·일전쟁을 전후로 한 일본의 아시아 지역으로의 무력 진출을 기술하면서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방식에 대해 반대한 것은 사회주의자나 나쓰메 소세키, 요사노 아키코 등의 문인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에 의문을 표하는 작업이다. 위의 인용에서 문제가 되는 천황제(일왕제)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했던 사회주의 작가의 막대한 고난과 희생은 익명으로 표시되는 대신, 당대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했던 정도의 천황제와 제국주의에 대한 아리송한 회의를 토로했을 뿐인 나쓰메 소세키가 마치 일본의 양심이었던 양 제시되는 일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해서는 입 닫아
나쓰메 소세키는 어떤 기준에서 국민 작가가 되어 교과서를 오르내리고, 여타의 작가는 문학사에서조차 난외로 처리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의문 없이 마치 자연인 양 국민 작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 만들기’와 ‘국가 비판’을 양축으로 했던 근대문학의 임무 가운데 저항성(국가 비판)을 거세하는 일이다. 박유하의 <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는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세계관과 시대상을 통해 국민 작가로 등극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한갓된 국가 이데올로기의 동조자 내지 제조자에게 허여되는 칭호라는 것을 밝힌다.
일본의 근현대 작가와 평론가는 물론이고 이른바 패전 이후 일본의 진보 지식인에게까지 나쓰메 소세키가 추앙받게 된 데에는, 그가 펼쳤던 문명론과 개인주의 언설이 큰 몫을 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서구를 발달한 문명(과학·기술) 세계로 간주하고, 일본을 문명 세계에 위협받지만 그보다 뛰어난 문화(정신)를 가진 나라라고 여겼다. 문명과 문화를 양극단으로 나누는 이런 대립 구도는 프랑스 혁명 전후로 줄곧 유럽의 후진국이었던 독일 지식인이 프랑스에 대항하고자 만든 일종의 정신승리법이면서, 누군가로부터 침략받고 있다는 유사 식민지적 공포를 통해 민족주의를 동원하는 기제였다. 그렇게 저장된 독일과 일본의 민족주의는 머지않아 제국주의로 진화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항상 서양에 대항해서는 일본 문화를 내세웠지만, 조선이나 중국보다 앞서 문명화된 일본이 두 나라를 침범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의 문명론은 흔히 자기 본위라고 부르는 개인주의 옹호와 결합되어, 국가주의와 물질문명에 저항했던 것으로 예찬된다. 하지만 그의 모든 대표작을 분석한 이 책에 따르면, 나쓰메 소세키의 개인주의는 항상 국가나 사회 질서의 한 분모로서만 존재했다. 또 한번 그의 동서문명론을 끄집어내자면, 서양이 도전과 투쟁을 통해 불평등을 뒤집는 문명이었던 반면 동양은 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어야 했다.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가 등식화한 ‘문명/문화/자연’ 사이의 각축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잠시 요약했던 것처럼 나쓰메 소세키는 서양을 문명의 총화로 보고,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자리에 일본 문화를 올려놓았다. 여기에 책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계몽되어야 할 여성이 자연으로 등장한다. 메이지 시기와 같은 국민국가 탄생기에 자연과 동급으로 취급된 여성은 문명과 문화의 담지자인 남성에 의해 길들여져야 했다. 이런 분석을 통해 지은이는 다시 한번, 나쓰메 소세키의 개인주의가 철저히 근대국가의 기획을 거들었던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것이 지은이가 파헤친 국민 작가의 본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