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소설가
『녹색평론』5~6월호(제148호)를 받았다. 목차에서 이명원 형의「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식인의 지적 쇠퇴」를 발견하고 그것부터 읽었다.
위의 글에서 이명원은 박유하의 한국어판『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2013)와 일본어판『제국의 위안부』(아사히신문출판,2014)를 가리켜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65쪽)면서,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의 지식인과 독자들이 격렬한 박유하의 팬덤(fandom)으로 전락하는 마술은 [판본을 달리한 지은이의] 이런 수사학적 책략 탓”(66쪽)이라고 말한다.
『제국의 위안부』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동일한 서적’이 아니며, 바로 거기에 박유하의 간계가 숨어 있다는 식의 이런 음모론은 원래 이명원의 것이 아니라, 일본어판 출간 즉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수의 것이다. 정영환의 주장은 이타가키 류타와 김부자가 함께 엮은『’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삶창,2016)에「’전후 일본’을 긍정하고픈 욕망과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이라는 제목을 실려 있다. 거기서 정영환은 한국어판 262쪽과 그것을 번역한 일본어판 251쪽을 비교하고 나서,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98쪽)라고 말한다.
하지만 위의 사례보다 더 심각한 사례가 있으면 모르되, 정영환이 먼저 제기하고 이명원이 고스란히 받아쓴 ‘(한국어판)262쪽/(일본어판)251쪽’의 차이는 결코 두 사람의 주장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한국어판)262쪽/(일본어판)251쪽’의 차이를 놓고 “『제국의 위안부』의 핵심 주장은 일본어판을 읽지 않으면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라느니,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좋게 봐서 오독이지만, 실제로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저 대목이『제국의 위안부』의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핵심 주장’을 다르게 하고 있는지, 정영환이『’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에 번역해서 싣고(94~95쪽), 이명원이「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지식인의 지적 쇠퇴」에 고스란히 인용한(64~65쪽) 문제의 대목을 살펴보자(일본어판 인용문에 나오는 밑줄은 정영환·이명원의 것이며,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에 있는 볼드체는 나의 것이다).
(한국어판) 말하자면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식민화 과정에서의 동학군의 진압에 대해서도, 1919년의 독립운동 당시 수감·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살해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 밖에 ‘제국 일본’의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옥되거나 가혹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단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 위안부’들은 국민동원의 한 형태였다고 볼 수 있지만, 제국의 유지를 위한 동원의 희생자라는 점에서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의 희생자다.
(일본어판) 그러한 의미로는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고 이 사실은 한국에 더 알려야 하겠지만, 그것(지금까지의 사죄 – 번역자 주)은 실로 애매한 표현에 불과했다. 1919년의 독립운동 때 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제국 일본’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언급할 기회가 없는 채로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정영환·이명원은 일본어판에 자신들이 밑줄 친 문장을 들어 박유하가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고 해놓고서, 일본어판에서는 그것을 뒤집었다고 말한다.
일본어판의 독자를 위해 바꿔 쓴 부분 중에 주목해야 할 포인트로서, 저자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어판에는 일본 정부는 식민지화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라고만 쓰여 있는데, 일본어판에는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다는 문장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문장이 추가되면 “공식적으로”라는 의미가 사죄를 한 사실은 있으나 “애매한 표현” 때문에 한국에 전달되기 힘들었다는 뜻으로 바뀝니다. (정영환 : 96쪽)
위의 각기 다른 판본을 보면, 삽입된 문장들 때문에 매우 상이한 의미를 띠게 된다. 한국 독자들에게 쓴 글에서는 식민지배 책임에 대해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다가, 일본판에서는 “양국의 정상이 만날 때마다 사죄를 해왔고”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이렇게 판본이 다른 두 책은 사실상 동일한 서적이라 보기 어렵다. (이명원 : 65쪽)
어떻게 읽으면 저렇게 될까? 두 사람 다 기가 찬 해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상한 것인가 싶어, 문과와 전혀 거리가 먼 통계학과를 나온 지인에게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을 읽히고 나서, 일본어판은 한국어판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지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일본어판에 정영환·이명원이 밑줄 친 대목은, 바로 그 위에 나오는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에 대한 부연이다.” 맞다!
그러면 한국어판의 “일본은 1945년에 제국이 붕괴하기 이전에 ‘식민화’했던 국가에 대해 실제로는 공식적으로 사죄 ․ 보상하지 않았다”에는 부연이 없는데, 왜 이 대목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일본어판의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에는 저런 부연이 필요했을까? 밑줄 친 대목으로 부연하지 않았다면, 일본인들은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라는 박유하의 단정에 의문과 반발심을 느꼈을 것이다. ‘무슨 말이야? 일본 정부가 사과하지 않았다니?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토미이치는 무려 총리였지 않는가?
박유하는 일본인의 의문에 답하고 반발심을 누그러뜨리고자 정영환·이명원이 밑줄 친 대목을 일본어판에 넣은 것이다. ‘일본 정부의 수반이 사과를 해온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공식적이라고 하기에는 늘 애매한 것이었다.’ 정영환·이명원이 일본어판에 밑줄 친 대목의 아래 부분을 보면, 밑줄 친 그 대목이 “일본은 1945년 대일본제국 붕괴 후 식민지화에 대해 실제로는 한국에 공식적으로 사죄한 적은 없다”의 부연 설명이라는 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박유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학문적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박유하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