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6/1/13

인천공항에 4시반에 도착했다. 핸드폰을 켜니 여기저기서 문자.
2시에 있었던 민사재판 선고에서 판사들이 원고측 손을 들어주었다는 소식들. 뒤이어 법원의 보도자료가 도착했다.

극심한 아이러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쩌면 이 재판은 아주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66956113331300

渦中日記 2015/12/16 – 민사재판 1심 변론

민사재판 1심이 오늘로 끝났다. 처음으로 재판장 앞에서 변론을 했다. 시간이 없다며 재촉해서 준비했던 말을 다 하지는 못했다. 오늘은 이 원고에서 언급한 할머니의 음성파일과 영상 파일도 제출했다. 조심스러워 이제까지 제출하지 않았던 자료다.
그 자리에서 판사가 음성 파일을 재생시켰다. 참석했던 할머니나 나눔의 집 관계자들도 놀란 듯 했지만 나도 놀랐다. 그 자리에서 공개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이 시작되면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자료들을 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건 내가 원했던 국면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도 이 재판이 취하되거나 기각 되기를 바란다.
재판이 끝나고 참석하신 위안부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 오해를 푸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이하는 준비했던 변론. 이로써 민사재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나머지 2주일은 심신을 이완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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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님.

<제국의 위안부>내용중 34곳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판결이 끝나고 민사재판이 시작된 지 벌써 반년 이상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러한 판결이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었음을 말씀드려 왔습니다. 가처분 판결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신청해 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18일에는 그동안 이 사건을 조사해온 검찰이 저를 기소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월에 첫 공판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민사재판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재판장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원고측은, 2014년6월에 저의 책 내용이 ‘허위’이자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 책이라면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매춘’‘동지적관계’라는 두 단어를 강조하였고 제가 위안부할머니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는 저의 책이 그저 ‘한일간 화해’를 위한 책이며, ‘일본극우의 주장과 다르지 않’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오독 혹은 곡해에 근거한 허위입니다. 그 사실을 저는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반론을 통해 항변해 왔습니다.

1.
저의 책은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책이긴 커녕 한국과 일본의 식자들이 “오히려 할머니의 아픔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해 준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책을 낸 목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이제까지 이른바 양심적 일본인은 물론, 이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환기시키고 일본정부관계자들에게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입니다.

대립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대편의 주장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20여년동안 지원단체는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이 지원단체의 주장과 다른 점은 부정론자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는 점, 그리고 그에 입각해 그들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비판하려 한 점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를 비롯, 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부분을 묵살하고 조선인위안부에 관한 서술과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와 검찰 역시 그들의 이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책이 정말로 그런 책이라면 한국에서 처음 발간했을 때 이미 문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발간 이후 10개월동안 그런 식의 비난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몇 언론은 호의적인 서평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의 지식인들과 한국의 지식인들마저 목소리를 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측 항의 성명에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고노전관방장관, 무라야먀 전 수상,그리고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동참한 것은, 저의 책이 원고측이 생각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또, 성명에 참여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저의 지인이기도 합니다. 저의 인식이 위안부할머니들을 폄훼하는 것이었다면 이들과 지인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을 내는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2.
고발은, 아직 학생신분인 젊은이들의 거칠고 조악한 독해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방후 70년되는 한국의 문제를 말한 부분을 할머니를 비난한 것으로 읽고, 제가 할머니를 비난했다고 말했습니다. 원고측의 그런 비난이 확산되면서 저는 ‘위안부할머니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책을 올바르게 이해받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따라서 이른 바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지난 1년 반동안 오로지, 법원과 여론을 향해,고발에 이르게 한 것은 “오독”이라고만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원고측은 처음에는 “허위”에 중점을 두었던 고발취지를 중간에 바꾸어, 저의 책이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면서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님.
오독이든 곡해이든, 거짓을 말한 것은 원고측 대변인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동안 고발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일은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가처분판결과 형사기소는, 저의 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일부 하려 합니다. 물론 증빙자료도 제출하겠습니다.

원고측이 문제시했던 저의 인식은,실은 생존 위안부할머니의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위안부문제 발생 직후의 한국정부의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저의 책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 할머니 중에도 저와 같은 인식을 가진 분이 계셨다는 사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런 분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런 말만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계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구조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지 20년 이상이 지났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안부문제가 발생하자, 우리사회는 위안부할머니들을 50년동안이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했었고 이제 할머님들은 당당하게 생각을 말씀하십니다.그러나 어떤 이야기들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4.
저는 위안부를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위안부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인위안부란, 제국이 세력확장을 위해 식민지치하의 개인을 동원해 신체와 성을 훼손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선인군인과 달리 여성들을 보호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은 그 점을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적 제국의 지배와 여성차별의 문제로서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물은 책입니다.
저는 강제동원인지 아닌지, 소녀인지 아닌지 여부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그 점에만 주목해 20년 이상 대립해 왔고 이제 차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안부문제 운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제가 제시한 개념을 위안부할머니들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들 안에 자리한 차별의식과 그 밖의 요소들입니다.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조차, 위안부에 관한 인식은 저와 비슷합니다.

5.
재판장님, 그래서 이제 저는 그동안 제출했던 죽은 자료들 대신,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이 사회에서 들으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저는 죽은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고 나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죽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향해 말해진 그 목소리를, 세상이 들을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사와 마주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은 저와 위안부할머니의 싸움이 아닙니다. 위안부문제 해결방식을 둘러싼, 기존의 관계자들과 저의, “생각의 싸움”입니다. 조선인위안부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다른 생각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생각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이 소송을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의감에 입각해 저를 비난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를 고발한 이들을, 세상이, 혹은 그들 자신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정의로운 이들과,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불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그로써 위안부문제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2015년12월16일
박유하 드림

작성일: 2015.12.16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7615505265361

渦中日記 2015/12/15-2

내일 오전 10시에 민사재판 결심이 있다. 연기된 형사재판은 1월20일로 정해졌다.

며칠 전엔 일본 아사히 신문 전주필이 나의 책을 위안부할머니를 명예훼손하는 책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칼럼을 써 주었었다.
오늘 읽게 된 SBS기자의 글은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함에 호감이 갔다. 정리에 일부 오류는 있지만, 시간을 두고 마주해 준 마음이 고맙다.

고발된 건 2014년 6월 16일이었다. 그동안 고발자체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는 극소수였다. 그리고 그들은 원래 나의 책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던 이들이었다.
이제, 그렇지 않았던 이들이 새롭게, 나의 책을 진지하게 읽어주기 시작한 것 같다. 꼭 1년 반만의 일이다.

최종심의 판결은 1월에 내려지게 된다. 어떤 새해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내일은 고요한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http://news.donga.com/…/3/70040100000103/20151210/75282476/1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35862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7149198645325

渦中日記 2015/12/13

내일이라는 통지를 받았던 형사재판이 연기되었다. 날짜는 모르지만 판사가 하나인 단독재판이었던 것이 복수가 심의하는 합의부재판으로 옮겨진 것이 이유라고 들었다. 따라서 이번주엔 16일 민사재판만 있게 되었다. 1심 마지막 재판이라 출석해서, 의견을 말할 예정이다.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여러가지가 보인다.
꼭 해야 했던 몇가지 일들을 온힘을 다 해 하고 나니, 약간의 무기력증이 왔다.

나눔의집 소장이 음해메일을 퍼뜨리는 일에 나서기까지 했다는 걸 알았다. 고발 직후부터 해 왔던 얘기라 놀라울 건 없지만 그가 안쓰럽다. 그는 불교도라고 들었는데, 무엇을 지키려 하는 것일까.
그의 말을 요약해 페북에서 공개질문장을 쓴 이도 있다고 들었다. 거짓과 비방을 퍼뜨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누군가가 얼마전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를 번역해 주었다. 번역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올려 둔다.
이 안에는, 대중들에게 읽히기 전에 “논문으로 써야 했다”고 비난했던 이에 대한 대답부분이 있는데 “나는 내 분야에서 충분히 학자로 인정 받고 있으므로 굳이 ‘학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학술서형식으로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는 의미였다.

http://dbzlanfk.blogspot.kr/2015/12/blog-post_13.html?spref=tw&m=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5723022121276

渦中日記 2015/11/11

오늘은 원래는 아시아태평양상 수상식 날이었다.
하지만 일본에 가는 대신, 우연히도 겹쳤던 네번째 민사재판에 참석했다. 재판은, 참석자와 쌍방이 제출한 서류를 확인 후 향후 일정을 잡기만 하고 10분만에 끝났다.

민사재판 마지막 날은 12월16일로 잡혔고, 1월에 선고가 내려지게 되었다. 조정위원회에서 검찰로 다시 돌아간 형사소송도 조만간에 기소여부 결정이 날 것이다. 약 1년 반만에, 또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될 것 같다.

법원으로 가기 전 아침에, 저녁에 있을 수상식에서 편집자가 대독해 주기로 된 스피치를 써서 보냈다.

오늘은 빼빼로 데이라는데, 내게도 앞으로는 해마다, 바다 하나 사이에 두고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 극명한 대조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일본어지만 기념으로, 오늘 아침에 주최측 언론사인 마이니치신문에 난 “심사평”과 스피치를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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アジア太平洋賞 受賞スピーチ(2015・11・11、朴裕河)

このたびは『帝国の慰安婦』にアジア太平洋賞特別賞を授けてくださり、心から感謝しております。11月11日の朝、ソウルでこのスピーチを書いています。本当は日本に赴いてご挨拶すべきでしたのに、足を怪我して行けなくなったことをまずお詫び申し上げます。
受賞のお知らせを聞いたとき、嬉しいながらも複雑な心境でありました。というのも、みなさんのご存知の通り、現在この本は韓国で、慰安婦支援団体によって、慰安婦の名誉を毀損したとして訴えられているからです。そのような状況の中にいるので、賞を受け取るべきかどうか、少し迷いました。ひとつには、わたしの意図とは別であるにしろ、原告として名前を連ねているおばあさんたちを無視したとみなされるだろうということ、もうひとつは、「日本」の賞であるだけで「日本の味方をしている、日本政府を代弁している」とする、原告側やその周辺人物の主張を証明するものと見られることが分かっていたからです。
しかし、そうした迷いの時間は長くありませんでした。わたしは、ある選択をめぐって迷うとき、そのことが発生させるであろう様々なことが、わたしたちの守るべき、考慮すべき、モラルと本質的に関係があるかどうかということを考えながら決めてきました。そして、今回の受賞は、誰かを傷つけるものでは、本質的にはないと考えたからです。そして私への評価や裁判に不利か有利かは、受賞自体が決めるのではなく、受賞を眺める人々の良識が決めるもの、と考えたからです。そして、その結果を、わたしは引き受けるつもりです。さらに言えば、現在私に向けられている批判より、わたしの拙い本を高く評価してくださった方々の「心」を受け止めることこそが、おそらく閉塞の中にある今の時代を切り開く方向のものと信じているからです。

この日本語版は、私が書きましたが、もはや私だけの本ではないと思っています。装丁を見たとき、とても嬉しかったのですが、装丁をデザインしてくださった方は、わたしがこの本に込めた意図を、本当に的確に受け止めてくださったと思っています。一輪の、韓国では国の花となっている、可憐なむくげの花は、少女であれ大人であれ、不遇な時代に生まれて耐え忍びながら生きた慰安婦の方々、そして砲弾の飛び交う中で亡くなった方々、そして病気で与えられた命を全うできずに亡くなった方々の悲しみと強さを、あますところなく表現していたからです。本の編集者である岡恵里さんは原稿を読んでいて涙が出そうになったと言ってくださり、日本人の最初の読者であるお二人にそのように受け止められたことは大きな励みになりました。そして、その二人をはじめ、出版するまで、そして出版してから多くの方たちの理解と気持ちが込められているわけですから、この本はもはやわたしだけ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書評や個別の感想の形で高く評価してくださった日本の方々との「合作」のようなものです。ですから、この賞はそうした方々と「一緒に」受け取るものと考えています。

日韓基本条約さえも締結まで14年かかりましたが、慰安婦問題は、はや四半世紀になろうとしています。この二十数年間わたしたちが経験してきたことが、後日どのように受け止められるのか、わたしたちはまだ分かりません。しかし、この本を評価してくださった方々の気持ちこそが今後を開いていけるとわたしは確信しています。わたしの本がよいからではなく、みなさんの気持ちをわたしがよく分かっているからです。様々な批判にさらされながらも、自分が考えていることを書いてこられたのには、ひとえにわたしが信頼する方々が支えてくださってきたからにほかなりません。
思えば数十年前に出会った日本人の方々がそうした信頼を最初に植え付けくれました。様々な事柄や人々が存在するなかで、信頼すべきものを見つけ、 大切にしていくことこそが世の中を平和に導いていくものと考えます。過去を考えるときも今を考えるときも。
悪い記憶や経験をみつめながらもそれに振り回されず、暗黒の中でも一筋の光のようなものを見つける心を維持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それこそが、今を生きるわたしたちが次の世代のためにすべき、もっとも価値のあることと考えます。今後もそうした姿勢を維持していきたいと思います。ほんとう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2015年11月11日
民事裁判4回目の日の朝に、ソウルにて、 朴裕河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28221010538144

渦中日記 2015/10/19

어제 유달리 건조하다고 느꼈던 건 감기가 오는 전조였던 것 같다. 바쁜 일정들 대충 끝내고 좀 여유롭게 지낼 수 있겠다 생각했던 첫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결정해야 하는 몇가지 일이 있어서 머리를 아주 쉬어 주지는 못한다.

2주일 전엔 오랫만에 검찰에 갔었다. 이제 곧 결정해야 할 “조정”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여름부터 3회의 가처분재판, 5회의 검찰조사, 3회의 민사재판을 받으며 느낀 것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의 책에 관해 논하는 일의 무의미함이다. “법”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일이란 “이미 존재” 하는 규범에 근거해 사고하는 일이어서, 나와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자체가 다르다는 걸 나는 법학자들의 사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위안부문제가 학계에서는 어떻게 이해되어 왔고 운동은 어떠했으며 나의 주장은 이러한 것이라는 주장을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말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원고측 주장에 최대한 답변해 왔지만, 검찰은 “정말 나쁜”일을 한 수많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구속하는 일만으로도 바쁠테니 국력을 소모하는 일에 나역시 가담해 온 셈이다.

최근 등장한 “고소사회”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소모가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 결코 그럴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하긴 늘 그랬는데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만큼 에너지가 넘쳐난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고발은, 할머니가 아니라 내가 비판했던 주변인들이 제기했고 주변인들의 의사만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최근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재판에 대한 나의 회의의 첫번째 이유였다.
법의 억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답변을 해 왔지만 그런 의미에선 나역시 나를 엉뚱한 방식으로 소모해 온 건지도 모른다. 1년하고도 4개월동안.

날이 흐리다. 비가 온다면 어젯밤 포스팅은 “기우제 포스팅”이 되는 걸텐데. 그랬으면 좋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1641782171846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7/28

우연히도, 어제와 오늘,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에서 나에 대해 언급한 기사가 났다. 어제 칼럼은 정우성대표님이 태그해 주셨으니 오늘기사만 우선 번역해서 올려 둔다.
마이니치신문은 얼마전부터 90년대에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실시했던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심층취재한 기사를 연재중이다. 그 공과(功罪)를 마주하려는 기사인데, 이렇게 말하는 기금에 대해 사죄의식이 없는 “꼼수”였다고 말한 것이 지원단체들이었다. 나는 책에서 그 부분을 비판했는데, 할머니들을 비판한 것처럼 왜곡유포된 것이 고발이라는 사태였다.

이달말로 닥친 형사고발조정과 다음달에 있는 민사재판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 변호사사무실로 향하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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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식민지책임

<전후일본의 반전사상이 국민들에게 뿌리내린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식민지지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오지 않았던 거 아닐까요>

금년 6월, 동경의 호세이대학에서 열린 일본사회문학회 30주년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한국/세종대 박유하교수는 그렇게 물었다.

부부이야기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 나츠메소세키 <명암>에는 가난 때문에 조선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근대소설을 바탕으로 박교수는 제국이 국민의 이동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 이주가 전쟁을 염두에 둔 국책이었다는 점,일본에서의 기민(棄民) 들이 식민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적했다.

그리고 위안부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요한 건 누구나가 기피하는 일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강제인지 매춘인지 하는 논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하고 말했다.
그의 전문인 일본근대문학에 그려진 식민지의문제는, 역사문제논의에도 반영되었다.

2006년,아시아여성기금이 연 국제심포지엄에 패널로 참석했던 박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 발언했었다.
금년 5월에 서울에서 식민지에 대한 관심에 대해 다시 물었을 때도 <개인적으로 차별당한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인여성이라는 사실은 관계가 있습니다. 좋아해서 시작한 소세키연구가 진보지식인으로 불리는 것에도 의문을 가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저술한 것이 화제작 <제국의 위안부>이다. 교토의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금년 2월에 열린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워크샵에서는 왜 썼느지,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햇다.
<위안부가 목소리를 낸 1991년, 누구나가 식민지지배문제로 이해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 위안부문제논의에서 제국의 문제가 빠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본남성의 문제로만 축소되었습니다 >

<조선의 여성은 “애국”을 당했고 일본인이 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조선인 위안부상을 통해 식민지지배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 겁니다. 일본이외의 다른 제국국가의 문제도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서구일본학자들에 의한 금년 5월성명에는 <제국에 관련된 인종차별, 식민지주의와 전쟁,그리고 그것이 (중략)시민들에게 끼친 고통과 충분히 마주해 온 나라는 아직 어디도 없습니다> 라는 말이 이오진다. 그리고 일본정부에 대해 <과거의 식민지배와 전쟁당시 침략문제와 마주하라>고 요구했다.

박교수의 화해방안은 책임을 무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한국판을 둘러싼 형사/민사쟁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책임은 과거의 제국 전체를 향한 난제가 아닐까.(기시도시미츠. 岸俊光)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6491844686840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5/27-2

재판은 20여분만에 끝났다. 양측이 낸 서류를 확인하고 양측 변호인들이 간단히 할 말을 하고 다음 공판 날짜를 정하고 종료.

오늘은 할머니들도, 나눔의 집 소장도,나눔의 집 고문 변호사인 박선아 변호사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직접관계자들 없이 혼자 나온 원고측 변호사는 좀 쓸쓸해 보였다. 내 책이 “전쟁을 찬양”했다고 쓴 그가, 지금이라도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한 언론이 감상을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에 답변문서를 다시 정리하면서 이 문답이 할머니들과 나 사이의 것이 아니라 연구자를 포함한 지원자들과의 논박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했다. 학문적인 견해를 법원에서 피력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서글프다.”
“내 사건은, 일본에 관한 얘기는 자유롭게 말하는 일조차 어려운 우리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일로 고통을 받았고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 이번 일이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그런 정황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가고 싶다.”

페친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돌발사태 없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611314332448

渦中日記 2015/5/27-1

오늘, 민사재판이 시작된다.
명예훼손소송이란 기본적으로 형사고발이라는 걸, 나의 일이 되고서야 처음 알았다.
그런데 곧 1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기소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민사재판이 이제야 시작된다는 것도 그나마 관계자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페친 정승원샘이 <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글을 다시 써주고 계셔서 링크해 둔다.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득 가슴에 품고, 오늘은 처음으로 법원에 나갈 예정이다.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0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4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67&thread=21r04

http://newsmin.co.kr/detail.php?number=4949&thread=21r0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448301015416

渦中日記 2015/5/23

5월의 두번째 연휴. 이틀째 변호사님과 함께 재판준비중이다.

새로 담당해 주게 된 변호사님은 책을 좋아하고 근대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한일관계관련 나의 책을 전부 읽었을 뿐 아니라 그런 책을 쓰도록 만든 이론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책까지 소개해 달라고 해서 나를 살짝 감동시킨.

이번 주 수요일에 민사재판이 시작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2041717822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