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2/15

기소 이후 한달이 되어가는데 아직 원래의 일상을 못 찾고 있다. 원래의 일상이란, 재판과 그에 관련된 일들이 생활과 감정의 중심이 되지 않는 상태다.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은 기본적으로 내게 “비일상”일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기소 이전에는 조금은 평정심을 찾았었다. 그런데 기소 이후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일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아직 살아나지 않는다. 그저, 필요 최소한도의 말과 글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한일 양쪽 성명을 비롯해 이런 글들, 그리고 페북에서 여러 글들을 써 주는 분들을 위해서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장정일 작가의 말은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나는 이 1년동안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저 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해왔을 뿐이다.
얼마 전에 인터뷰를 해 주었던 기자가 이번에는 칼럼을 써 주었다. 욕 먹을 걸 알면서도 이렇게 쓴 기자가 여성이라서 더 기쁘다.

http://www.hankookilbo.com/m/v.aspx…

http://news.donga.com/3/00/20151215/75364063/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6940285332883

渦中日記 2015/12/13

내일이라는 통지를 받았던 형사재판이 연기되었다. 날짜는 모르지만 판사가 하나인 단독재판이었던 것이 복수가 심의하는 합의부재판으로 옮겨진 것이 이유라고 들었다. 따라서 이번주엔 16일 민사재판만 있게 되었다. 1심 마지막 재판이라 출석해서, 의견을 말할 예정이다.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여러가지가 보인다.
꼭 해야 했던 몇가지 일들을 온힘을 다 해 하고 나니, 약간의 무기력증이 왔다.

나눔의집 소장이 음해메일을 퍼뜨리는 일에 나서기까지 했다는 걸 알았다. 고발 직후부터 해 왔던 얘기라 놀라울 건 없지만 그가 안쓰럽다. 그는 불교도라고 들었는데, 무엇을 지키려 하는 것일까.
그의 말을 요약해 페북에서 공개질문장을 쓴 이도 있다고 들었다. 거짓과 비방을 퍼뜨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누군가가 얼마전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를 번역해 주었다. 번역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올려 둔다.
이 안에는, 대중들에게 읽히기 전에 “논문으로 써야 했다”고 비난했던 이에 대한 대답부분이 있는데 “나는 내 분야에서 충분히 학자로 인정 받고 있으므로 굳이 ‘학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학술서형식으로 써야 할 이유는 없었다”는 의미였다.

http://dbzlanfk.blogspot.kr/2015/12/blog-post_13.html?spref=tw&m=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5723022121276

渦中日記 2015/12/7-2

기소이후, 한국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다른 곳의 의뢰도 받았고 일부는 이미 인터뷰를 했지만 동아일보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호의적인 내용이지만 “매듭지어야”한다던가 “한일 양심적 지식인들이”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책은 해결을 위해 힌트가 되었으면 해서 쓴 책이지만 해결에만 방점이 찍힌 책은 아니다.

또 위안부문제는 해결을 두고 늘 누군가를 배제해 온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틀 자체가 수정되어야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51207/75216867/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962239164021

渦中日記 2015/12/1 – 기자회견 전야

그저께는 마이니치신문 인터뷰를 했고, 어제는 뉴욕타임즈 인터뷰를 했다. 한 일본인기자는 나에게 전화해서 한국언론의 반응을 물었다. 한국언론에서는 아직 인터뷰신청이 없고 기소를 직접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은 내가 아는 한 아직 없다고 했더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응원을 보내 주는 분들은 계시다.

내일 기자회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1년반 동안 재판소와 세상을 향해 “내 책은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하는 책이 아니다” 라고 외쳐왔지만 그 외침은 철저하게 묵살당했다. 읽은 이든 안 읽은 이든 나를 비판하는 이들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피해를 호소하는 할머니”라는 두가지 대비되는 이미지인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그들에게 내 책은 그러한 “정황”에 대한 인식이 없는, 그러한 “정황과 싸우고 있는 할머니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 읽은 이들조차 “똥을 먹어봐야 아느냐”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제”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문하지 않는다. 조금 사려깊은 이들은 “책이 설사 그런 의도를 담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상처입었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검사는 내게 책의 문맥을 보면 의도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 “구절”이 문제제기되는 한 그건 “법적”으로는 문제삼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1년 반동안 알게 된 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검찰과 법정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사태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방면으로 생각하려 한 인문서적에 대해 “판단”이 맡겨져서는 안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법학자의 발상이 인문학자의 발상과 얼마나 다른지도 알았다.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이 나의 책을 성실하게 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의 답변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자발적 매춘부”라고 말했다고 쓴 원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데서 드러난다. 그럼에도 검사는 “내가 한국에서 이 문제를 세번째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아마도 검사는 원고측이 제출한 방대한 자료들–유엔보고서니 그외 자료들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출한 또다른 자료,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료는 나의 견해와 아주 비슷하다.

그들은 나의 책을 판단할 때 단순히 “할머니의 명예”침해 여부로만 묻지 않는다. 그들이 갖고 있는 현대일본에 대한 이해,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책에 대해 말한다. 나눔의집 측이 내 답변서를 읽고 “허위!”라고 주장했던 처음 주장을 바꾸어 나의 “역사인식”이 “공공선”에 반한다고 말하면서 내가 “전쟁범죄를 찬양”하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그런 그들의 전략은 유효했고 “삭제하라”는 명령과 “기소”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내 책은 바로 그런 그들의 “전제”와 “사고”에 대해 물으려 한 책이었다. 그러니 나는 어쩌면 그동안 접점자체가 없는 싸움을 해 온 셈이다.
수십번 한 이야기지만 이 싸움은 할머니와의 싸움이 아니다. 지원단체와의 싸움조차 아니다. 그저, 20년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했이들, 그들이 이 사회에 심어놓은 “인식”과의 싸움일 뿐이다. 그 인식의 뒤에는 때로 이런저런 권력도 보이지만.
나를 지지해 준 이들 중에 외국등 “바깥”에 있는 이들이 많았던 건, 이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과 힘에서 자유로운 이들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안”에 있을지라도 우연한 인연이나 통념을 존재와 생각과 행동의 근거로 삼지 않고, 그래서 생각이 자유로운.

나를 위한 “지식인성명”에 서명을 받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내일 나의 기자회견에 이어 발표된다. 주로 학계, 문인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출판계, 언론계, 그리고 법조계 분들이 참여해 주었다.
오래 교류해 온 학문적동지이기도 한 분과, 고발이후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셨던 명망가가 나서주고 계신데 나는 늘 교류하는 페이스북 친구들에게조차 미처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유명진보논객들이 동참해 주었지만, 발표되는 첫성명에 늘 지지해 주었던 페북친구들의 이름이 없으면 그간의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성명서라는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었습니다.

혹 이제부터라도 참여해 주실 “해당분야” 분들은 아래 댓글에 있는 백승환군에게(이미 저에게 보내신 분은 괜찮습니다) 페이스북메시지로 이메일주소와 함께 성함(신분)을 적어 알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예:박유하(연구자), 홍길동(언론인)등. )
오늘밤 10시까지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8473506179561

渦中日記 2015/11/25 강의가 없었던 날.

강의가 없었던 날.

하루종일, 제 시간에 식사조차 못할 정도로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중인 성명작업을 지켜보는 일과, 전화와 메일과 이런 저런 연락에 시달렸다.
일본에서의 성명은 내일 오후에 동경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다고 한다. 회견에 나서 줄 이들은 와카미야 아사히신문 전 주필, 여성학자 우에노치즈코 교수, 일본근대문학자이자 “헌법9조를 지키는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아온 고모리요이치 교수가 될 듯 하다.

처음으로, 일본언론 중 아사히신문의 인터뷰에 응했다. 다른 언론들에는 다음주 기자회견(12월 2일 오전 10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을 기다려 달라 했지만, 아사히신문은 책을 낸 곳이기도 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발 후 받았던 형사조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때 느꼈던 수모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고통스러웠다.

뉴욕타임즈 한국인기자에게서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내 사태가 “인권문제”로 보이고 그래서 관심이 있다 해서 응할 생각이 들었다.
고발 이후 짓밟히고 실제로 명예를 훼손당한 건 위안부할머니가 아니라 나다. 내 책을 읽고 할머니들한테 “매춘부!”라고 손가락질했을 이는 아무도 없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말해온 이들과 그런 차별의식에 동조한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언급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다 해서.

저녁 무렵에, 비로소 기소장을 받았다. 내용을 읽고 그만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고측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위안부문제 연구자가 아닌 그들이 어떻게 내 책이 거짓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일까.
결국 그들은 누군가의 주장을 믿고 대리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박유하라는 개인보다는, 지원단체라는 오랜 권력, 힘을 가진 “기존”연구, 여론과 국가라는, “다수의 주장”을 선택한 셈이다.

기소장에 대해 썼던 메일 일부를 옮겨 둔다.
이제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다행히 구토증세는 없어졌다..(걱정해 주신 분들,감사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한 과거의 이해를 그냥 적고, <박유하의 책은 그런 기존인식을 부정하고 있으니 범죄>,라는 논리입니다.
그런 논리가 성립한다면 학자는 누구나 기존인식만을 말해야 하고 국가를 대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저로서는 물리적강제연행을 부정했으나 구조적 강제성을 강조했고 실제로는 위안부연구자들도 그점에서 일치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고
제가 업자의 책임을 강조한 것을 두고 <국가책임 없다>(이것을 법적책임주장을 비판한 것과 연계시켜 <박유하는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는 거지요)
고 말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왜곡하고 있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지적된 내용 대부분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처럼 이중삼중의 비틀림들에 의한 억압이 제가 처한 상황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5603783133200

渦中日記 2015/5/2

작년 겨울에 일본의 주간지와 인터뷰한 기사가 번역되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사실 「週刊文春」은 혐한기사에 앞장선 매체였고 이 잡지를 내는 문예춘추사와는 예전에 책을 내기로 했다가(번역자가 선택한 출판사였다), 편집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걸 알고 마지막교열단계에서 출판을 중지한, 악연도 있는 곳이어서 경계했었다.
하지만 기자는 고발이전부터 여러번 취재를 요청했고 결국 “매체로 판단하지 말아 달라”는 말에 수락한 경위가 있다. (그런데 여기 쓰인 사진은 프레시안의 사진이다. 프레시안 기자가 수십번 셔터를 누르기에 더 나은 사진을 올려주려 그러나 생각했었다. 나중에 기사제목을 보고 그게 내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지만.ㅠ)

우려하면서도 보수매체의 의뢰를 굳이 받아들인 건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려면 굳게 닫혀 있는 보수층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규탄은 상대를 바꾸지 못한다. 국가관계건 개인관계건.

http://aristotelecom.tistory.com/m/post/194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10547522305494

渦中日記 2015/3/27

생일 전후해서, 나에 대해 언급한 칼럼, 인터뷰가 실린 신문과 잡지등이, 마치 선물처럼 도착했다. 5쇄를 찍었다는 연락도 왔다. 일본의 한 지인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아마존의 독자평까지 보내 주었다. 일본어판이 나오고나서 이어졌던, 과분하리만큼의 호의적인 평가에 반발하는 비판들이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해 내가 우울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했던 건,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정말은 나의 적일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 이십여년의 운동과 연구를 부정당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지,우익의 비판보다 훨씬 집요하고 적극적이다. 타자에 대한 중상과 비방이 아니라도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능한데.

하지만, 그런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의도한대로, 있는 그대로 읽어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비판자들은 내 책이 일본의 우익을 기쁘게 한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모두 우익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다.

우파든 좌파든, 마음을 비우고 읽을 수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시민의 힘이 정부와 보수를 흔들 수 있도록.
————————————
(전략)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이지만 이와 관련해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일본에서도 발행된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씨가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미 저자에게 불리한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온 데 놀랐지만 이에 더해 오해와 곡해로 인한 심각한 비방 중상이 난무하고 있어 유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한일 양국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해왔다고 지적하며 과감한 문제 타개를 요구한 의욕적인 작품이다.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 것은 결코 우익이 기뻐해서가 아니라 해결을 바라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내용이어서 이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언론의 장에서 논의하면 좋지 않은가. 만에 하나 공권력이 그녀를 기소하면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선진 제국은 마침내 한국이 ‘언론을 억압하는 나라’라고 낙인을 찍을 것이다. 그래서 기뻐할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도 스스로 공통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도록 절실히 바라고 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2015/3/19,동아일보)

읽는쪽도 시험당한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그런 평이 있다.

위안부를 데리고 다닌 업자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지적을,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싶은 논객은 환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논지의 한 부분만을 멋대로 가져다 쓴 결과다.박교수는 위안부를 낳은 구조를 명확히 밝히려 한 것이고 누군가를 면죄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일본의 대응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속단이다. 기금의 존재는 위안부의 고통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지려던 생각이 국회(국민)의 다수생각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마세타츠야 홋카이도 신문 해설 위원, 2015/3/24, 홋카이도 신문)

아사히신문의 오보정정으로 인해 마치 2차대전때 위안부문제는 없었다는 식으로 외치면서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려는 이들이 있다.

남경사건에 관해서도 그렇다.(중략)
한국의 저자인만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다른나라 위안부와는 또다른 가혹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TKo, 아akwhs 아마존 독자평)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87635244596722

渦中日記 2015/2/25

한 언론의 기자가 기사를 쓰겠다면서 질문을 했다. 일본특파원이라 일본사정에 대해서도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가나 일반인들과는 질문의 차원이 달라 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가 위안부문제해결과 한일화해를 위해 쓴 건지 혹은 일본에 “법적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던건지 알고 싶어했다. 나로서는 서글퍼지는 대답이었지만 말했다.
“결론부터 정하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뭔가 다른 의도를 담아 글을 쓰는 식으로 머리굴리는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쉽게 따를만큼 순종적이지도 않다.

———–
1.논리적으로 정합적이지 않다. “보상”의 의미는?

이 책은 여러 “다른”오디엔스(독자/청중)를 대상으로 한 책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원래는 일본을 향한 글만 쓰여질 예정이었구요. 일본이라 해도 지원자/정부/부정자,이렇게 세 부류입니다.
앞에서 하던 얘기와 뒤에서 한 얘기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그 결과입니다. 예를 들면 한일협정에 관해서도 한국을 향해선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 버렸으니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으면서 일본을 향해선 “당신들은 보상 끝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관련 보상이었고 식민지배에 따른 억압과 고통에 대해선 보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고 어느쪽이 진짜냐! 라고 묻고 싶어지겠지만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된 건 결국 대립하는 문제의 해결방법은 각자 자신의 문제를 보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커다란 틀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썼습니다. 일본의 지배가 문제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대협등 지원단체는 보상과 배상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고 있어요. 위안부문제는 “법을 어긴 국가범죄이니 입법을 해서 배상하라”라는 의미에서 “배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학자들이 말하는 건
더이상 “강제연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민지에선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저에 대한 고발장에서조차 쓰고 있더군요.
“약취,사기”로 업자들이 데려 왔다 해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범죄이고 일본군이 알고도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은 알게 된 경우 업자에게 다른 곳에 취직하게 하도록 시키거나 돌려보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이전에 계약서를 확인해 업자의 사기나 납치를 방지하려 했구요. 그러니 전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일본의 공식방침은 위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해야 하구요. 알면서 묵인한 경우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 경우 업자가 이미 돈을 주고 사 왔다던가 하는, 일본군으로서도 관리영역 바깥의 경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수요를 만든 자체–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로 만든 지역의 사람들까지 전쟁터에 동원한 책임, (의도여부를 떠나) 묵인한 책임을 물은 겁니다. 위안소를 공식적으로 만든건 근대일본이 시스템화에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리고 모두 획일적인 위안소가 아니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하고요. 일본에서 강연할 때 유곽에 있었던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유곽을 군대용 위안소로 지정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지정업소가 아닌 곳에 있었던 사람(여기에도 비지정이지만 인가업소-유곽의 위생시설등 체크했던 업소와 인가조차 못받았던 이른바 사창도 있었다는 걸 “우리는”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피해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다른 부분을 소거시키고 싶은 욕망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걸 지적했던 거구요.
“보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국어판을 쓸 땐 기금과는 달리 “정부국고금”으로, 기금을 받지 못한 분들께 추가 보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입니다. 국회를 거치지 않는 정부보상금이지요. 다만, 이후 국회결의를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어판에선 그렇게 썼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다시 기회되면 말씀드리지요.

2. 와다교수의 의견(국고금으로 보상금지급)과 같나?

한국어판 내고 나서 다른 자료들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와다선생님과 달리 국회결의를 주장하는 겁니다. 오히려 보상금을 어떻게 할 건지는 더 첨예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장(국민동원의 한 형태다)이 받아들여진다면 입법이나 국고금 지급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강제동원을 했으니 배상하라”는 현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 일본한테 보상금을 대신 받은 한국정부가, 할머니들에게 4천만원 이상 지급했고 매달 이런저런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할머니의 체험은 다 다른데 해결은 “하나의 방안”으로 정해야 하는 정치/국가 문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머니들의 다른 목소리에 각각 귀를 기울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현실적 타협론인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옳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명분에 무게가 실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년이 걸리더라도” 라는 말로 주장을 관철하는 건 첫째 당사자를 무시(얼마전에 만난 할머니는 사죄조차 요구하지 않고 보상만 해 주면 된다고 해서 오히려 제가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는 일이고, 할머니의 의견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인식될 필요가 있습니다. 들리지 않을 뿐이지요. 부산정대협회장님을 만나 보세요. 지방에 계셔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문제 해결에 사비털어가며 20년이상 애써 오신 분인데 그분 말씀이 “나도 내 돈 내가며 신문광고를 통해 기금을 반대했다. 하지만 할머니들 돌아가시는 거 보면서 받게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우리 여성지도자들(이 분은 이화전문여고출신의 할머님)이 못 받게 했다”고 하시더군요.

4. 제가 받는 인신공격적 비난이 안타깝다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심층취재와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외부의 비난과 우려 속에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를 외부가 아니라 우리스스로 들여다보고 아프더라도 직시하는 일로 치유해나가기 위해서도요. 저는 제 사태를, 2009년의 서경식교수의 한겨레 칼럼이후에 저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면서 5년후에 지원단체에 의한,아마도 쌍방이 의식못할 “대리고발”을 당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오해의 종류도 다양하고 지식의 폭도 달라서 더 어려운데, 정치나 개인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사람들, 단순오해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행태가 가장 한탄스럽군요. 저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
언론에 대해서도 깊이 실망해 왔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려하는 분들이 계신 걸 잘 압니다. 기대를 놓지 않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8639513162962

渦中日記 2014/11/7-2

언론중재위원회 심리에 참석하러 다시 왔다. 그 전에 연합뉴스와 인터뷰.

이번에 신청한 곳은 네 군데다. 연합뉴스는 왜곡된 원고측 자료를 내게 확인 없이 처음으로 내보내 온갖 매체들이 받아쓰기 하도록 만든 곳이긴 하지만, 악의는 없어 보여 많이 양보했다. 원래의 6월 15일 기사에 내 의견을 추가하고 따로 반론보도성격의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합의.

기자와의 인터뷰가 끝나면 다시 연합뉴스, 조선닷컴, 한국일보,한겨레와 함께 심리를 받게 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92766940750220

渦中日記 2014/8/18

얼마전에 일본 아사히신문이 내놓은 위안부문제특집에 관한 전화인터뷰를, 일본의 한 월간지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결방책에 대해 묻기에, 일본의 “국회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간의 지원자나 운동가가 말해온 것처럼 그렇게 해야 할 “법적의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국가에 의한 여성동원에 대한 “법적보호”를 방기한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이니, 일본이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1년 전에 한국에서 책을 낼 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생명의 헌납을 요구당한)남성에게는 보장되었던 “법의 보호”가, (성의 헌납을 요구당한 )여성에게는 보장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 금년 봄 이후다. 그리고, 아사히가 강조한 “구조적강제”에 불만이 있는 듯 했던 기자는 내 말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제국의 위안부>일본어판에서도 사실 나는 그 점을 강조했었다. 문제는 한국에서 소송사태가 나는 바람에 일본측 출판사가 출간을 미루고 있다는 점.
그러니 이번 소송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해결을 위한 또하나의 노력을, 지원자들과 할머니들자신이 막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41628459197402

渦中日記 2014/8/12-2

며칠전에 했던 모월간지 인터뷰가 결국 게재되지 않게 되었다고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건 데스크가 아니었다고. 기자는 죄송하다 말했지만 그의 선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섭섭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언론왜곡”을 문제시한 그의 노력을 짓밟은 해당언론이 안타까울 뿐.

나에 대한 고발사태가 안타까운 건, 혐한주의자들이 “한국엔 언론의 자유조차 없다”면서 한국때리기의 또하나의 근거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이 개인적인 일을 넘어서 한국의 위상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관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38207342872847

渦中日記 2014/8/13

낮에 잠깐 올렸던 <실리지 못한 인터뷰>를 몇시간 후에 내렸다. 한번 수락했던 기자가 그래 주기를 다시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진지함과 선의로 기사를 만든 그가 불이익을 당하는 건 원치 않았기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다른 곳과 인터뷰. 마지막에 말했다.
“내가 한일관계에 대해 말하는 건 냉전을 넘어서고 싶어서입니다. 우리는 제국과 냉전을 경험했고 유일한 분단국이기도 합니다. 강대국의 세력다툼에 말려들어 제국과 냉전을 경험한 우리에겐, 그런 역사성을 극복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만드는 주체가 될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 책을 써야 했던 이유입니다.”

며칠전에 70세 넘으신 지인이 후원하고 싶으니 계좌번호 알려달라 해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는데, 오늘은 새로 페친이 된 16세 중학생이 느닷없이 후원하고 싶다고 했다. 우선은 마음만 받겠다 했지만, 살아오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을 또하나 했던 날.

본문: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93840404951984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제국의 위안부』 – 발간 직후 신문사 서평 및 인터뷰 모음

서평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