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금요일> 편집위원 특별 대담: 박유하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 특별 대담, 2016. 6. 17 (1092호) 37쪽~39쪽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세종대 교수) X 나카지마 다케시 (도쿄공업대학 교수, 본지 편집위원)

서발턴의 목소리는 전달되었나?

“이 책은 매우 날카로운 일본 제국주의 비판서입니다.” – 나카지마다케시

“’국가이야기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 박유하

한국의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저술한 <제국의 위안부>가 한일 학자들 사이에서 장기적인 논쟁을 부르고 있다. 전 ‘위안부’ 9명에 의한 명예훼손 형사 고소로 작년 11월에 박교수는 불구속 기소되었는데, 이에 미국과 일본의 학자들 54명이 항의성명을 냈다. 한편, 성명에 대한 반론도 일어났다. 성명에 참여한 나카지마 다케시본지편집위원의 요청으로 올해 2월 일본을 방문한 박교수와 대담을 했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싸고 문제시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카지마: 저는 <화해를 위해서>의 일본어판이 2006년에 나왔을 때, 선생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본어판이 나왔을 때 곧바로 읽어 봤습니다.

이 책의 중요한 틀의 배경에는 서발턴 연구가 제기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서발턴연구란 1980년대에 인도를 중심으로 나온 문제인데,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주체성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의 다원적인 주체성을 다루면서,  그녀들을 여러 고통스러운 정황 속으로 내몬 제국의 폭력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매우 날카로운 일본 제국주의 비판서입니다.

박: 저도 바로 그 문제를 생각했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표현도 비판을 받는데, ‘제국에 동원되었다’라는 것이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  ‘협력을 강요당했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국의 일원으로서의 협력도 말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중심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런 질문을 만드는 것은, 기존에 존재해온 개념으로만 이해하려 하는  사고입니다. ‘위안부’라는 다면적인 주체를 한가지 모습으로 규정하는 일을 유보하고 애매한 상태로 놔 두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일로 느끼는 것은 그러한 사고때문이 아닐까요?

‘애국’은 과잉 적응의 결과

나카지마: 박유하선생이  쓰신 중요한 문제중 하나는 ‘위안부’를 알선한 조선인 업자 문제입니다. 그들은 여성을 데려가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생활이 있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본의 뜻에 따를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편, 일부 ‘위안부’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내몰리면서도 제국 육군을 지탱하고 있다는 긍지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과잉 적응입니다. 일본의 우파 쪽 사람들이 말하는, ‘거 봐라. 잘 지내고 있지 않았는가’라는 식의 주장과는 정반대 이야기지요. 그런데 잘못 이해되어 우파논의와 같은 레벨로 취급 받고 말았습니다.

저는 인류학을 공부한 후 역사를 연구했습니다만, 우파와 좌파의 담론 사이에서 모두가 잘라내버린 사람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나카무라야의 보오스>를 쓰게 된 커다란 계기입니다. 보오스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비판적이면서도 일본의 군사력을 사용하여 아시아, 인도를 해방시키는 수단으로 쓰자고 주장했습니다. 우파, 좌파 각개의 역사이야기만으로는 파악해 내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똑같은 문제가 한국에서 친일파로 불리는 사람들의 평가에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이광수가 그렇습니다. 그는 그저 일본에 아부하지 않았고 일본에 대해 매우 엄중한 비판론자였습니다. 그러다가 30년대에 들어와서 바뀌었습니다.  ‘일군만민’ 등의 일본의 국체론을 전용해서  “황국신민은 천황폐하 아래에서 평등하다. ‘내선일체’라고 할 거면 평등하게 대해 달라”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반격을 하기 위해서 일본의 국체를 (자기 방식으로) 전용해 나갑니다. 이런 식의 주체성을 주의 깊게 읽어내는 작업이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동시에,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라는 책이 한국에서 2013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관리인 남성은 ‘황국신민’이라고 할 만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책 후반에 나오는 1944년 설날일기에는 ‘천황의 위광을 온 천하에 떨쳐야 한다’, ‘황군의 무운장구(武運長久)를 기원했다’(321쪽)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는 1905년생이니 정확히 일본에 의한 병합시대를 산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의 내면에 ‘애국’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마음이 생겨난 정황은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총력전 체제 이후에는 위안부도 그런 틀 안에서 동원되었다는 것을 제 책에서는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우파의 사고나 논의가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도 썼습니다.

우파에 대한 서포트작업이 아니다.

나카지마: ‘위안부’가 된 여성들과 병사의 이른바 의사(擬似)가족화라는 문제를 우파 사람들은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해석해 버립니다. 하지만 이런상황이 보여주는 슬픔만큼 가혹한 일은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에 쓰여 있는 것은 고향에 가족을 두고 온 일본인 병사가 ‘위안부’에게 의사가족이 되기를 요구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전선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습니다.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유일하게 약한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상대가 ‘위안부’였습니다. ‘위안부’들은 그 슬픔과 고통을 받아주려고 합니다. 일부 병사는 ‘위안부’처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징병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의 행위는 ‘제국’에 의해 구성된 가해구조 바깥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박: 시기와 공간에 따라 다른 체험을 했으니,  한 사람의 ‘위안부’ 안에 복합적인 감정이 있다는 사실, 같은 시기와 공간 안에 있었어도 연령이나 일본어 능력 등에 따라 경험이나 감정이 달랐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 속에서 제가 쓰고 싶었던 것은 ‘국가 이야기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입니다. 진심에서건 표면적에서건, 인간은 국가 이야기에 자신을 아이덴티파이(동일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바람직한) ‘이야기’와 맞지 않는 체험이나 감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이 표면화됐을 때, 국가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은폐하거나 반대로 징벌하거나 합니다. 그런 일에 젠더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지요.

나카지마: 이를 두고 일본의 우파를 서포트하는 논의라고 말하거나, 일본에 대한 면죄론이라고 인식해 버리는 것은 정말로 말이 안 됩니다. 일본의 특공대에서 죽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만, 그들의 ‘이야기’는 우파가 일원화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와 부합하지 않는 특공대원은 많이 있습니다. 너무 싫어서 도망친 사람 등,,여러 주체성이 있지요. 특공대를 하나의 이야기로 환원하는 것은 주체의 다양성이나 복잡성을 말살시키는 일입니다. 똑같은 방식의 ‘이야기의 폭력’을 좌파가 행해서는 안 됩니다.

박: ‘위안부’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온 사람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위안부’ 문제에 강하게 공감하면서 국민을 개입시켜 논의가 두 쪽으로 갈려 있습니다. 이 분열은 한일 문제처럼 보이지만 저는 좌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어떤 사태를 곧잘 정치적 입장에 입각해서 바라보기 쉬운데, 그런 입장과 상관없이 사태에 대해 생각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설 공간은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들려오지 않았던 목소리를 듣고, 제3의 공간을 넓히는 시도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제국’이라는 말에 담은 것은 민족뿐만 아니라 성이나 계급의 지배, 배제/차별의 문제입니다. 즉, ‘위안부’ 문제는 지금까지 일본이라는 국가 주체의 문제로 여겨져 정치 문제로만 이해되어 왔지만, ‘이동’을 유발하는 경제 문제가 주목되지 않았습니다. 국가의 경제적 욕망을 내면화하는 형태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해 갔습니다만, 그런 문제에의 주목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을 착취하는 일로 경제적 이익을 얻은 것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의식과, 거기에 적지 않은 조선인들이 관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기반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업자 중에는 일본인도 있었고, 그 사실도 썼습니다.

이분법 바깥의 사태를 그려냈다

나카지마: 일본인 병사와 협조한 ‘위안부’라는 것은 지원단체가 그리는 피해자상과는 다릅니다. 한편으로 일본의 우파가 그려내는 ‘매춘부’라는 상과도 다릅니다. 그런 식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존재를 드러내는 일로  ‘제국’의 폭력구조를 밝혀내려고 한 것이 박유하선생의 저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저를 비난한 사람은 한국의 경우 남성학자가 많았습니다. 일본을 면죄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요. 하지만 그러한 비판이 무엇을 면죄하고 억압하며 은폐하고 있는지 거꾸로 묻고 싶었습니다.

일본인, 일본 국가에 의해 조선 민족이 지배 당하고, 피해자가 되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보는 동안) 민족 레벨 이외의 구조적 문제가 사라져 버렸지요.

나카지마: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논의되었던 서발턴의 목소리의 대변/ 표상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스피박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비판해 온 것은 특정 서발턴을 만들어 대변/표상하는 일의 권력성과 폭력성입니다.

박: 맞습니다. 저는 ‘전문가도 아니면서’라든지 ‘운동가도 아니면서’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화해를 말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는데, 오늘날까지도 뿌리 깊은, 당사자를 일원화하는 사고가 또다른 당사자를 배제하는 권력으로서 기능해 왔습니다. 동시에 ‘대변자(후예)의 당사자성’이 빠진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들을 돌아 보지 않아서 생긴 권력성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카지마: 저도 작년에 박유하선생님의 불구속 기소에 항의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후, ‘전문가가 아니다’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저는 사상사와 쇼와(昭和)사도 연구하고 있고 넓은 의미에서 역사학자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조선어 문헌을 읽을 수 있을 것, ‘위안부’ 연구자일 것 등이 ‘위안부’ 문제를 논하는  ‘전문가’의 요건이 된다면 대부분의 논자들은 의논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전문가가 아니다’라는 말의 억압 때문에 문제를 다각적으로 논할 수 없게 되지요.

지워져 버린 ‘주체성’

나카지마: ‘나눔의 집’의 방침에 거리감을 느끼던 전 ‘위안부’분의 존재가 책에 쓰여 있습니다. 특정 ‘위안부’상이 확립되어 버리면 그 자신의 생각은 그 공간에서는 지워져 버리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나눔의 집에 거주하면서 일본고발에 참여하는존재도 중요합니다. 어느 쪽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면이 있으면서도 정치에 휩쓸려 온 전 ‘위안부’의 전체상을 보지 않으면 문제는 한 발짝도 진전되지 않을 것입니다.

박: 그 분은  운동의 방식과 ‘위안부’를 둘러싼 이해에 관해 (지원단체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가족이 없기도 해서 자주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일본을 비판하지 않으면 주변으로부터 ‘일본을 좋아하는 거지?’라든가, ‘가짜 위안부’라고 비판 받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먼저 이쪽이 ‘용서하겠다’고 하면 일본이 그에 맞는 대응을 하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저는 고소 당하기 직전, 14년 4월 한국에서 개최했던심포지엄을 통해 알렸습니다. 지원 단체를 거치지 않고 보상금을 직접 받고 싶다는 또다른 목소리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반 후에 고소를 당했습니다.

나카지마: 그런 식의 차이나 (어느 한쪽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불규정성이 중요시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서는 그런 부분이 완전히 도외시 되어 버립니다. 박유하선생님은 여기에 메스를 가해 논의를 환기시켰습니다. 서발턴 연구의 성과에 바탕한 중요한 문제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2016년 2월 5일, 오사카 시내에서

원문: 対談原文 – 『週刊金曜日』2016年 6月 17日号よ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