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동아일보 국제부장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알게 된 것은 본보에 칼럼을 연재 중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그는 2014년 7월 31일 자 본보 칼럼 ‘나도 우익의 대변자라고 부르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글에서 ‘제국의 위안부’가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고소되고 우수 도서로 지정됐던 박 교수의 또 다른 책 ‘화해를 위해서’의 지정을 취소하라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박 교수를 우익으로 부른다면 나도 우익으로 부르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2007년 아사히신문사가 박 교수에게 상(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줄 때 논설주간 자격으로 심사위원을 맡았었다며 “일본에서 상을 주면 박 교수가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하면서 심사숙고했다”고 했다.
와카미야 선생에 따르면 박 교수 책은 일류 지식인들로 통하는 심사위원 4명이 모두 호평을 했다고 한다. 일본인 출신으로 처음 미국 역사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일본의 과거사 침략을 질책해온 이리에 아키라 하버드대 명예교수 평은 이랬다고 한다.
‘학문적 수준도 높고 시사문제 해설서로도 균형이 잡혀 있다. 게다가 읽기 쉬운 문장으로 쓰인 보기 드문 수작이다. … 이런 책이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됐다는 것은 양국 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기뻐해야 할 것이다.’
평소 와카미야 선생 칼럼의 애독자로서, 또 그의 균형 잡힌 한일관에 신뢰를 갖고 있던 기자는 일본인의 글을 통해 한국인의 책과 존재를 알게 된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자랑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당장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바쁜 일상에서 곧 잊혀져 갔다.
그렇게 1년여가 흘렀고 박 교수를 다시 떠올린 것은 2일 “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폄훼할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서둘러 책을 구하러 교보문고에 갔지만 재고가 없었다. 관련 기사를 모두 검색하면서 책이 나왔을 당시 호평했던 국내 언론이 많았음에 우선 놀랐고 정작 박 교수와 책이 곤경에 처하자 변호하는 기사가 확 줄었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기자는 저자를 직접 만나 학자적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혹여 극단적 편향을 담고 있거나 인기(?)를 노린 욕심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오로지 남과 다른 생각 자체만을 강조하며 뜨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두 시간여에 걸친 대화를 통해 그의 학자적 양심과 진지함, 한일관계를 보는 진정성에 공감을 느끼게 됐고 그로부터 얻은 책 두 권도 꼼꼼하게 읽고 난 뒤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한일 양국의 지식인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도 많이 받았지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함께 ‘친일 기자’ ‘위안부 할머니에게 상처를 준 기자’에서부터 ‘고발하겠다’는 내용의 메일도 많이 받았다. 법과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면서까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공익과 선의의 관점에서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이성과 논리를 앞세우자는 목소리가 이렇게 매도되는가 싶어 착잡했다. 새삼 박 교수가 처한 상황이 이해되면서 연민의 감정까지 느껴졌다.
거듭 말하지만 박 교수 책 어디에도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려거나 폄훼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기자의 견해이다. 오히려 기자는 책을 읽으며 그동안 잊고 지내던 할머니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해결책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제국의 위안부’ 재판이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거듭 말하지만 학자의 양심에 법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