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윤리

이미 페친이 아니지만 “젊은 학자”김헌주는 학술지<역사문제연구> 에서, 내가 웃는 얼굴의 조선인 위안부 이미지를 사용한 곳이 “위안부는 20만명이 아니고 상대한 일본군의 숫자도 적으며 연애도 했다”는 내용을 말한 곳이라면서 “명백”히 “의도적”이고 “비겁”하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33쪽은 물론 사진에 대해 언급한 31쪽에도, 32쪽과 34쪽에도 그런 내용은 적혀 있지 않다. 설사 내가 그런 의도로 사진을 사용했다 해도 사진을 어디에 넣을지 정한 건 출판사지 내가 아니다.

내가 이 사진을 사용한 건 “강제로 끌려간 소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진을 찍은 일본인 기자가 조선인 위안부의 웃음을 “망향의 념을 떨치버리기 위한” 모습으로 읽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십년전에 <화해를 위해서>를 쓸 때는 나는 이 사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강제로 끌려간 소녀”의 이미지에 균열을 만드는 자료로서 언급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를 쓸 때 사진이 실린 원본을 찾아보니 그동안 이 사진이 기자의 설명이 빠진 채 유통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내가 굳이 사진을 사용한 이유는 표면적인 것만 보지말고 빠진 설명까지 참고해서 보자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헌주는 이 설명은 빼고 게재할 뿐 아니라, 표면적인 내용에만 언급해 나에 대한 적대를 유도한다.

그의 “불편”함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여성”을 벗어나는 이미지를 벗어나는 여성들을, 바로 그자신이 부정하고 배제하고 혐오하기 때문에 생긴 불편함이다. 다시 말해 그 사진에서 오로지 표면적 “자발성”만을 읽어낸 건 내가 아니라 오히려 김헌주다. 일본인기자조차 갖고 있었던 대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우리의 “젊은 학자”들에겐 없다.
물론 나눔의집 관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내가 제시한 또다른 이미지를 오로지 부정해야 하는 무엇인가로 여겼다. “박유하는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라 했다”고 보도자료에 써서 배포했지만 그렇게 본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이미 수십번 쓴 얘기지만, 내가 “자발적 매춘부”라는 단어를 사용한 건 위안부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이 그렇게 사용했기에 인용하며 비판한 문맥에서였다. 서경식선생조차 “구조적강제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나를 비판했고 이후 같은 비판을 반복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 개념은 바로 내가 십년전에 제시한 개념이다. 이들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명백한 표절에 해당한다.

자신들이 기대하고 희망하는 여성상을 벗어난 여성에 대한 혐오는 여성자신도 공유한다. 지원단체관계자들이 내 책이 할머니들을 비난한 책인 것처럼 간주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매춘이라는 주장도, 아니라는 주장도, 매춘을 혐오하고 차별한다는 점에서는 닮은 꼴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만든 왜곡된 보도자료와 고발때문에 나는 일년 3개월동안 전국민적 비난에 시달려 왔다.

내가 제국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인 위안부와의 위계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들의 비난은 일본을 비판한 부분을 완전히 도외시한 비난이다. 다시한번 읽고 사과해 주기 바란다. 책을 편파적으로 읽고 비난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발이 당연하다고 말한 것을, 부끄러워 해 주길 바란다. 물론 다른 “젊은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김헌주의 발언이야말로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나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한 학자의 고민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하고 “아니면 말고”로 끝내기엔 내가 받은 고통이 너무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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