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www.facebook.com/poem.river/posts/677484008990769
어제 오늘에 걸쳐 <제국의 위안부>를 다 읽었다.
그동안 우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들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피상적이었는지를 알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위안부에 대해 하나의 기억(어린 조선 소녀들에 대한 강제연행, 일본 군인들에 의한 집단 강간과 잔인한 폭력, 민족의 자존심을 대신해서 싸우고 있는 투사 할머니들 등)만 강요함으로써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던 위안부의 실체와 그런 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기억과 의식을 소거시켰고, 그로 인해 문제 해결마저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학문적 비판이 아니라 고발의 대상이 된 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즉 정대협에 대한 비판이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유하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결코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쓴 책이 아닌데도 사태가 이렇게 이른 데는 정대협이라는 존재가 자리잡고 있다.
일단 내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사실 몇 가지부터 얘기해 보자.
조선인 위안부의 평균 나이가 25세라는 것(소녀 이미지가 아니라는 것).
1965년 한일협정 당시 일본은 개인 보상의 여지를 남겨 두려고 했는데 오히려 한국이 거부하고 국가 간에 전체적으로 일괄타결을 요청해서 개인 몫까지 국가가 대신해서 받았으며, 이러한 사실이 나중에 개인들이 일본 법정에 제소한 재판에서 계속 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몇 차례에 걸쳐(197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5년) 대신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것.
1994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국가 책임을 인정한 고노담화에 이어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을 조성하여 각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지급하였으며, 이때 수상의 편지를 함께 전달했다는 것.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자들도 60여명이 이 기금을 수령했으며, 필리핀과 네덜란드는 이 기금으로 위안부 문제를 종결지었다는 것 등이다.
고발의 증거로 제시된 내용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는 말이다. 앞뒤 자르고 이 말만 떼어 와서 들이밀면 박유하 교수가 민족의 배반자이자 죽일 년이 되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박교수는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책에서 밝힌 내용들을 간추리면 몇 가지 층위가 있다.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병사들도 제국의 강요에 의해 끌려왔으며 그런 점에서 서로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일본인 병사들이 전투에 나갈 때 환송회를 열어주기도 했으며 살아서 돌아오라고 당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우에 따라 간호원처럼 일본인 부상병들을 치료해 주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일본에게 침략을 당한 아시아의 제3국이 보았을 때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였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하지 않았다, 자신의 희생이 국가(일본)를 위한 것이라는 의식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그나마 비참한 처지를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와 같은 근거들을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근거들은 강요된 동지적 관계임에 분명하고, 친일파들처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자발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식민지의 내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으며, 그러한 점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지적 관계라는 말 대신에 협력적 관계와 같은 말을 썼으면 오해를 피해갈 수 있었을까? 어감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비난은 똑같이 쏟아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표현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서술한 것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멸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며, 그로 인해 일본의 죄악상이 감춰지는 것도 아니다.
두 번째로 강제 연행과 매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정신대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국가가 동원령을 내려 끌고 간 것이며, 위안부는 그와 별개로 진행된 사안이라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기구 이름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위안부는 드물게 강제로 연행하거나 자발적으로 지원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업자들이 중간에서 감언이설로 꼬여서 데려갔다. 일본 사람들이 위안부는 강제성이 없었으며, 돈을 받고 매춘에 종사한 여성일 뿐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이기도 하다. 형식상으로는 업자들이 데려간 것이 맞으며, 일본 군인들이 돈을 내고 위안부의 성을 산 것도 맞다. 이에 대해 박교수는 국가와 군대가 위안부 여성을 필요로 해서 업자들에게 요청을 했으며, 위안소의 관리 및 위안부들의 이동에 직접 관여를 했으므로 일본이 국가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으며 마땅히 보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고노 담화에서 일본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박교수는 위안부가 강간과 (강요된)매춘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강간적 매춘 혹은 매춘적 강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박교수는 아시아여성기금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하며, 이 기금을 격렬하게 반대한 정대협과 결정적으로 대립지점을 형성한다. 박교수가 보기에 이 기금의 성격은 국가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며(국가가 운영하고 90% 정도를 국가재정에서 부담했으므로), 보상금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반해 정대협은 민간 주도의 위로금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어로 ‘償ぃ金’이라고 된 표기를 해석함에 이어 박교수는 분명히 보상금이고, 영어로는 속죄의 의미를 갖는 atonement로 표기되는데도 정대협이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일부러 위로금이라고 의미를 깎아내렸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대협은 일본 의회의 법률 제정에 의한 배상을 주장하고 있으며, 박교수는 법률 제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계속 이러한 주장에 매달릴 경우 위안부 문제는 영영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박교수의 주장은 입법을 대신해 일본 정부가 추가 보상을 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 단체와 위안부 당사자 특히 다른 의견을 가진 위안부들도 참여시켜 합의를 끌어낸 후 전 세계인이 보는 데서 사죄와 보상을 실시할 것, 그리고 사죄의 내용에는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식민지배로 일어난 모든 문제(3.1운동 피해자, 관동대진재 피해자, 징병 피해자, 고문 피해자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이 책에서 쉽게 동의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하지만, 그것을 ‘국가범죄’로 정의하기는 힘들다는 부분에서였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기획하고 관여한 것은 맞지만, 공식적으로는 모집 과정에서 사기나 협박을 금지하고 위안소에서의 폭행이나 강간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국가범죄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논리에 갇힌 듯하다.
마무리를 하자. 박교수는 정대협 등 위안부 지원자 단체들의 ‘정의의 독점’에 대해 우려한다.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목소리만 남기고 다른 목소리는 소거시키는 것-그래서 나눔의 집에서 나와 사는 할머니가 있는 것처럼-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선택적으로만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해결을 어렵게 하고, 할머니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권위를 다지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지금도 미군을 위해 존재하는 기지촌이 위안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 고민해야 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다. 더 이상은 힘들어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