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몇가지 생각

오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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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포스트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몇 가지 생각

  1. ‘제국의 위안부’는 ‘회색지대’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다양한 회색지대를 제시하고 있다. 본국과 적국(교전상대국) 사이의 회색지대인 식민지, 연애와 강간 사이의 회색지대인 매매춘, 정부차원의 사과와 민간차원 사과의 회색지대에 위치했던 고노담화와 아시아여성기금,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는 우파와 철저한 국가차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좌파 사이에서 중간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지식인들 등이다.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흑과 백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진실은 보통 흑색이나 백색이 아닌 회색이다.

  1. ‘제국의 위안부’는 한일간의 화해를 위한 책이다.

원래 일본문학 연구자였던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독도 등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게 된 것은 한일간의 화해를 위해서였다. 화해를 위해서는 회색지대를 인정해야 한다. (‘철저한 과거 청산과 사죄 후의 화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화해를 하지 말자는 것이며, 그런 측면에서 과거 청산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루게 된다. 남북한 관계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화해를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일본인, 그 중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회색지대에 서 있는 여러 사람들(와다 하루키, 가라타니 고진 등 잘 알려진 지식인들을 포함하는)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박유하 교수는 친일파가 맞다. 한일간의 화해를 위해서는 일본 내 친한파 뿐 아니라 한국 안에도 친일파가 필요하다. (나 자신도 한일간의 화해를 원한다.)

  1. ‘제국의 위안부’는 한일기본협약의 불완전성을 상기시켰다.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협약은 식민지 해소의 조약도, 전쟁 후의 강화 조약도 아니다. 일본이 한국에 ‘청구권 자금’을 제공한 것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연장선상이었으며, 이는 결국 ‘징용 징병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었을 뿐 식민지배 전체에 대한 보상은 아니었다. 한일조약 어디를 봐도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는 없다. 그리고 한일간의 모든 청구권이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규정하여, 이후 일본정부가 위안부에 대한 보상을 거부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박유하 교수는 고노 담화와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회색지대’를 긍정하면서 이를 계승,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한일기본협약을 대체하는,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포함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1. 적대적 대상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그 대상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 모두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천안함이나 연평해전 전사자, 아니면 대한항공 858기 폭파 희생자나 아웅산 폭탄테러 희생자 가족 모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진심어린 설득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아래는 제가 작년 여름에 쓴 서평입니다.)
http://blog.naver.com/neolone/220123355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