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지난 두번의 공판에서는 <제국의 위안부> 자체를 검증했다. 말하자면 양측이 책만을 놓고, 명예훼손이라고 지적된 34개 항목을 순서대로 짚어가며 검사와 변호인이 각자의 주장을 펼친 자리였다. 이미 쓴 것처럼 검사가 책에 대한 주장을 말할 때 근거로 가져온 자료는 대부분은 학자 혹은 지원단체 등 관계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고발 이후 자료가 많았다.
하지만 검찰이 낸 자료중에는 UN보고서를 비롯한 과거의 자료들도 있었다. 그 자료들은 대부분 민사재판에 제출된 자료들이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원용하면서 가처분재판부도 손해배상재판부도 ‘세계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박유하만 위안부문제에 대해 딴 소리를 한다’는 원고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물론 나는 한 사람의 학자로서 내가 본 위안부문제인식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 인식이 옳은지 여부는, 당연히 학계에서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의 책에 대한 검증은 학계가 아니라 법정에 맡겨지고 말았고 이 날은 검사에 의해 그런 자료들의 주장이 다시 대변되는 날이기도 했다.
세번째 공판에서는 그런 ‘범죄증거자료’와 함께, 검찰의 주장을 반박하는 나의 ‘증거자료’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주장과 우리측 반박에 시간이 많이 걸려, 우리쪽 증거자료에 대한 설명은 다음번 공판으로 미루어졌다.
검사의 자료는 60여개였다. 크게는 고소장과 고소보충서, 고소인의 의견서, 나의 책을 검토한 로스쿨 학생들의 보고서등 주변인들의 생각을 담은 자료.
그리고, 나눔의집 거주 위안부 할머니 5인의 구술, 다른 위안부할머니들의 구술기록집 <들리나요>, 증언다큐영상, ’55인의 할미꽃 소녀들’이라는 제목의 위안부의 체험자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자료 등 다른 위안부 할머니 구술, 그리고 나눔의 집 거주 위안부 중 한분인 유희남 할머니의 수사관진술조서가 원고측 자료로 제출되었다. 거기에 신문조서, 수사보고서, 범죄경력 등 조회회보서 등 나에 대한 검찰의 자료와 그 외 자료들이, 말하자면 당사자들의 자료였다.
주변 자료중 검찰이 독자적으로 제출한 자료는 ‘수사보고’라는 이름으로 제출된, 일반인 블로그에 있던 책에 대한 감상(여기에 문학평론가 손종업 씨의 페이스북 글 첨부, 그는 나를 아이히만에 빗대면서 비난한 사람이다) 뿐이었다.
보다 공적인 문서로는,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해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문, 고노담화문, 쿠마라스와미 96년 보고서, 맥두걸보고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 국제법률가회의, ILO 등 국제기구의 위안부문제 관련 자료집, 미국연방하원결의안 등의 위안부문제에 관한 제3자의 기존인식등, 위안부문제해결 운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과거 20여 년의 자료, 그리고 고발 이후 나의 책에 대해 나온 판단인 가처분 결정서와 손해배상 판결문이 있었다. 여기에 <제국의 위안부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젊은’ 역사연구자들의 좌담회 자료, 김부자 교수 논문, 나에 대한 비판서 <제국의 변호인-박유하에게 묻는다>에 실린 몇몇 글 (학자 중엔 이재승, 김창록, 김부자, 이나영 교수 등. 평론가 김요섭, 역사평설가 김수지 등의 글과 일본인 마에다 아키라의 글도 포함)들이 추가되었다.
나는 여전히, 이들이 자신의 글이 제출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른다. 아무튼 나에 대한 고발과 처벌 요구에 힘을 보태게 된 자료들은 이런 자료들이었다.
그 이외엔 모두, 고발 이후에 나온 나에 대한 비난 신문칼럼이나 기사들이었다.
신문기사 중에 ‘위안부강제동원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맥아더가 작성한 기밀문서에 들어 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이 국제법률가회의의 권고문에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오히려 좁은 의미에서의 강제동원과는 다른 정황이었다. 아마도 검사는 수많은 보고서들을 내용까지 일일이 검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국제사회도 위안부문제를 강제연행으로 인정’했다고 자주 말해 왔지만, 기존 재판부나 관계자들 역시, 대부분은 그 내용까지 읽은 적이 없지 않을까.
이하에 이 날 공판에서의 검찰의 주장, 그리고 나와 변호인의 답변을 써둔다. 양쪽 다 파워포인트나 OHP를 사용하며 진행했기 때문에, 나와 변호인은 증인석에 함께 앉아 검사가 제시하는 자료를 보면서 발언했다. 판사는 이 재판에 충분히 시간을 들여 판단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 주었고, 이번 공판에서는 나도 충분히 발언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날 공판도 아침 10시에 시작해, 점심시간을 사이에 두고 저녁 7시 가까이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번 공판기 역시 오고 간 내용의 전부는 아니다. 메모 가능했던 것만, 또한 메모에서 내용을 충분히 유추/기억 가능한 것만 쓰기로 한다.
<오전>
검사
지난 손해배상민사판결은 박유하의 주장을 ‘사실적시’로 판단했다. 따라서 박의 주장은 의견표명이 아닌 ‘사실적시’로 보아야 한다. 위안부할머니를 매춘부로 쓴 일에 비난하려는 ‘고의’가 있었음을 입증하겠다. 일본의 책임을 무화하기 위해 한일합방을 법적으로 유효하다고까지 말한다. 자신의 해결방법을 관철하기 위해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비난하려는 고의를 담아) 이 책을 썼다.
판사
오늘의 공판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가지 확인하기로 한다.
1) 검찰의 의견서에 따르면 피고는 ‘위안부의 본질은 매춘’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의'(의도)가 있어서 매춘을 강조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매춘’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매춘’ 사실에 관해서는 쌍방에 의견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제하겠다. 그리고 그렇다고 한다면 책의 앞뒤 부분—맥락을 잘 살펴야 한다.
2) ‘동지적관계’에 대해서도 맥락을 살펴야 하며, 검찰은 동지적 관계가 아니었다고 하는 사실을 논증으로 밝혀야 한다. 말하자면 매춘이 사실이 아니고, 동지적관계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3) 강제성 부정을 두고 검찰은 피고가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재판에서는 일본에 책임이 있는지 여부는 다루지 않는다.
답변
일본의 책임을 무화시키는 ‘고의’를 주장하는 것은 사상검증이다.
본서는 일본에 의한 이른바 물리적 강제성이 없었다 해도 일본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펼친 책이다. 그동안 지원단체 등은 물리적 강제성, 즉 좁은 의미에서의 강제성만을 주장했고, 그에 따라 일본에서 반발이 일어났기 때문에 피고는 넓은 의미의 강제성을 주장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한 것이다. 더구나 피고가 일본에 법적책임을 지우기는 어렵다고 한 것을 두고 일본에 책임이 없다고 했다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더구나 일본의 책임에 관한 논의는 판사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명예훼손과 상관없는 이야기다.
검사
박선아 한양대 교수가 학생들과 이 책을 검토한 보고서를 두고 피고는 ‘학생의 리포트’로 폄훼하지만, 학생들의 감상은 일반인들이 이 책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명예훼손이 된다.
답변
박선아 교수는 나눔의집의 고문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나눔의집의 의뢰를 받아 학생들을 시켜 분석한 내용이 객관적일 수 있겠는가. 그들은 ‘일반인’적 감성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책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검토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지원단체가 유포한 지식 외엔 위안부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다. 똑같은 책을 두고 익숙하지 않았던 인식제기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이 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할머니의 아픔’을 더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한 일반인은 적지 않다. 발간직후 신문등의 서평, 인터뷰 기사들은 대부분 호의적이었고, 언론 반응이야 말로 ‘일반인’의 대표적 반응으로 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오마이뉴스는 이 책이 ‘군대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구조’를 ‘보편적인 여성문제로 제기’한 책이며 ‘제국의 가장 무서운 점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다는 점’을 제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제자리 걸음인 위안부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책수다]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피해자’ 구도 거부한 도발적 문제제기
검찰 (이 부분은 주로 원고측이 민사재판에 제출한 고소장을 중심으로 발언)
이 책은 자신의 해결방법을 위해 위안부에 관해 허위를 쓴 책이다. 그런데 국제사회도 위안부제도는 성노예제도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피고는 일본의 책임을 면죄하기 위해 일부 사실을 가져와 전체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식민지화했는데 합방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의 주장에 비추어 봐도 피고는 공동선과 정의를 배반했다. 다른 학자들도 피고를 비판한다. 홀로코스트를 부인한 외국작가는 처벌당했다.
답변
피고는 이 책에서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주장하지 않았고, 법적해결에 고집하지 말고 당사자도 포함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다시 논의하자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일본어판에서는 국회결의를 하면 좋겠다고 썼다. 결론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증언집 등과 각종 자료, 그리고 위안부문제에 관한 연구와 운동을 검토한 결과로서 한 말이다. 국제사회의 결론에도 의문을 가졌다. 일부를 가져와서 주장한다고 말하지만, 지난 번에 답한 것처럼 적지도 않으며 적다고 해도, 기록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결과일 수 있다.
운동이 오래되었음에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정황이 안타까워 10년 전에 책을 썼지만 지원단체 등 관계자들은 무시했다. 최근 몇년 한일관계가 경색되고 국민간 오해와 반목상태가 커지는 상황이 안타까워 다시 한 번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식민지책임과 기억의 투쟁’이다. 한일합방이 불평등한 종주국/식민지관계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제목이 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다른 사안에 빗대 호소하는 것은 좋지만 홀로코스트와 위안부문제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홀로코스트는 민족말살을 시도한 것이지만, 제국은 식민지인을 자원으로 이용한다.
이 책은 위안부가 아니라 지원단체를 비판한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고발된 이유다. 실제로 100곳 이상 지적된 곳 중 반 가까이가 정대협을 비판한 부분이다. 실제로, 가처분 재판에서 지적된 곳 중 3분의 1만 받아들여졌다는 것도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들은 자신들의 해결방식을 20년 이상 주장해왔고 다른 방식도 있지 않을까라고 문제제기한 책을 고발한 것이다.
검사
피고는 위안부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으니 일본인군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피고가 말하는 보상이란 그런 것이다.
답변
위안부가 일본군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여 한다고 한 것이 아니라 전쟁터에 동원되면서 남성들에게는 법으로 보상이 보장되었는데 여성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 징병과 같은 범주의 피해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피고의 주장이다. 보상에 관해 일본군과 비교한 것이 아니라 조선인 일본군과 비교했다. 조선인 일본군조차 법적인 보장이 있었고 그것은 그들이 남성이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다. 패전으로 인해 일본군 조선인은 보상을 곧바로 받지는 못했지만, 한일조약이후 적은 금액이나마 보상받았고, 2006년 이후 다시 한번 받았다. (사망한 경우 2000만원)
위안부 할머니 중에는 ‘나라를 위해서 나가라 했으니 우리도 보상해 주어야 한다’고 발언한 할머니도 계시다. 피고가 말한 동지적 관계란 그러한 맥락에서의 이야기다.
판사
변호인측은 집단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지에 관해 보완해 주기 바란다.
<오후>
답변
검사는 피고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맥두걸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맥두걸 보고서는 위안부문제에 대해 ‘강요된 매춘’이라고 언급하고 있고 그에 대해 일본이 보상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이 보고서는 업자에 언급하면서 관련된 민간인도 처벌 받아야 한다고 쓰고 있다는 점이다.
검사
맥두걸보고서에서는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있고 피고는 일본의 법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도서에서 피고가 강제연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답변
맥두걸은 일본군이 직접 유괴해 와서 강요된 매춘을 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피고는 유괴/납치를 한 주체의 대부분은 업자라는 사실을 말한 것이고, 강제연행주체가 일본군이라는 소수 증언마저 부정한 것은 아니다. 쿠마라스와미보고서 등 유엔보고서도 위안소가 매춘시설이었음을 말한다. 점령지에서는 군이 직접 납치강간을 했지만 있었어도 식민지 여성에 대해서는 달랐다. 보고서들도 점령지와 식민지를 구별하고 있다. 네덜란드 위안부의 경우는 점령지의 경우다.
검사
유희남 할머니의 진술서에 따르면 박유하가 일본 정부로부터 20억을 받아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답변
피고가 20억을 받아주겠다거나 고발을 취하하면 20억을 주겠다는 등, 악의적인 허위가 보도되어 피고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검찰이 이런 자료까지 사용하지 않았다면 언급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미 고인이 된 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안타깝다. 안타깝지만 유희남할머니는 민사재판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위증이다.
피고가 20억 발언을 처음 들은 것은 책을 낸 이후 알게 된 배춘희 할머니와의 대화에서였고 그 금액을 말한 것은 유희남 할머니 자신이다. 미국에서 일본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일으킨 소송에서 1인당 청구금액으로 제기한 금액이라고 들었는데 그 얘기를 들은 피고는 일본이 보상한다 해도 그런 금액은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이 대화에서 말하고 있다. 배춘희 할머니 역시 그런 생각이었고 그래선지 그 얘기를 여러번 언급했다. 해당 대화가 들어 있는 녹취록을 전부 제출하도록 하겠다.
검사
피고는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을 다르게 쓰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어판에서는 일본이 사죄를 하지 않았다고 쓰고 일본을 향해서는 사죄를 했다고 썼다.
답변
그 얘기는 재일교포연구자 정영환씨가 자신의 책에서 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인 대부분이 원문을 확인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서 한 거짓말이다. 정영환의 그 지적이 실은 의도적인 ‘오독 혹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작가 장정일씨가 일본어 가능한 이의 도움을 받아가며 확인 후 지적한 글이 있다. 검사의 지적 역시 근거 없는 중상일 뿐이다.
박유하 죽이기 | 정영환·이명원의 오독
검사
피고는 한국어판 발간 후 행한 인터뷰에서 ‘욕먹을 각오로 쓴 책’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피고가 위안부를 매춘부라 칭한 사실에 대해 욕먹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기에 쓴 말이다. 즉 피고에게 위안부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고의’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답변
그 말은 피고의 말이 아니라 인터뷰 제목이다. 인터뷰 제목은 인터뷰이가 정하지 않는다. 기자가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고 그 기사도 이 책이 위안부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서 욕먹을 각오를 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피고가 책 서문에 쓴 두려움이란 할머니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지원단체 비판에 대한 지원단체의 반발, 그리고 오랜 세월 지원단체의 인식을 공유해 온 언론과 일반인들의 반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정신대연구소 링크
검사(박유하가 제출한 배춘희 할머니 영상을 보여주고 녹취록을 읽고 나서 배할머니가 정신대로 갔었다는 기사를 보여주며)
박유하는 자발적으로 간 사람도 있다고 말하지만 배춘희 할머니의 경우는 정신대로 간 분이다.
답변
배 할머니는 스스로 직업소개소에 가셨다고 말씀하셨다. 사후에 나온 기자의 기사와 생전에 직접 말씀하신 본인의 목소리 중 어느 쪽을 신뢰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녹취록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검사
김부자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미성년자가 대부분인데 피고는 그 사실을 부정한다
답변
피고는 ‘미성년자가 적다’고 하지 않았다. 영화 귀향에 나오는 14,5세 소녀, 대사관 앞 소녀상이 대표하게 된 ‘어린 소녀’가 위안부의 중심은 아니었다고 말했을 뿐이다.
검사
젊은 역사학자들의 지적에 따르면 소설을 사용하는등 문제가 많다
답변
그 좌담회야 말로 문제가 많다. 예를 들면 ‘해방 70년’에 대해 자성적인 부분을 쓴 부분을 가져와 위안부할머니를 비판한것으로 오인하고 비난하는 식이다.
기초적인 오류와 곡해가 너무 많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을 썼으니 참고바란다: “젊은 역사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
역사연구자이다 보니 이른 바 소설을 허구로만 생각하는 것이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소설이란 오랫동안, 말로 하지 못하는 ‘진실’을 담은, 고백의 매체이기도 했다.
위안부들이 ‘수천번의 성교’를 해야 했다고 쓴 것도 군인으로서 위안부를 옆에서 지켜본 일본인의 소설이었다. 검사는 일본인의 소설이면 무조건 일본중심주의일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다. 피고가 굳이 일본인의 소설을 사용한 것은, 위안부의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외치는 일본인을 향해 당신들의 선조도 이렇게 쓰고 있다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검사
고노 전 관방장관이 피고를 위한 성명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가 한국어판을 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사죄했다고 일본어판에 쓴 부분이 마음에 들어서일 것이다.
고노담화는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다.
답변
피고는 책에서 고노담화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했다. 고노 전 관방장관이, 피고의 책에 대해 잘 모르는 채로 피고에 대한 기소반대성명에 참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노 전 관방장관은 같은 자민당이지만 아베 수상의 발언도 비판해 온 사람이다.
검사
피고는 웃는 얼굴이 찍힌 위안부의 사진을 사용했다. 이 사진이 조선인이라는 증거는 없다.
답변
피고가 이 사진을 사용한 이유는 웃는 얼굴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얼굴을 찍은 기자의 심중이 사진에 붙은 설명에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위안부들의 웃는 얼굴에서 ‘망향의 념’을 읽어내고 있었다. 피고는 한일양국국민들의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기자의 그런 감정 역시 당시의 일본인 역시 악마같은 일본인만 있었던 것을 보여 주기 위한 사용이었다. 또한 여러 정황상 조선인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