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6/10

1년전에, 가깝게 지내던 위안부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무렵에 올렸던 글과 할머니의 영상들이 나눔의집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이 아침, 배춘희 할머니의 명복을 다시 빈다..

어제 젊은 연구자들의(대부분 남성으로 보이는데 이 점이 내겐 흥미롭다. 위안부문제 연구자 빼면 내게 비판적인 학자들은 대부분 남성인데, 그 이유를 조만간 쓸 생각이다)내게 대한 비판이 포스팅된 걸 보았다.
지금 좀 바쁘고, 아직 더 올린다니 필요하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한가지만 우선 말해 둔다.

내가 한 것으로 전하는 이들의 요약에는 내가 하지 않은 말(글)들이 있다. 내가 실망하는 건 이 부분이다. 얼마전에 윤명숙 선생도 일본신문에서 내가 “일본 국가책임보다 업자 책임을 더 강조”했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조선인 업자가 더 많다”고 쓰지 않았고 일본인업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강제연행은 없었다”고도 쓰지 않았다.
내나름으로 신중하게 접근한 기술을 거칠게 정리하면서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려 하는 이들의 눈과 심리가, 나는 진심으로 걱정된다. 패기는 때로 세상을 바꾸지만, 만용은 해악일 뿐이다.

정영환교수의 비판에 대답할 시간을 여전히 갖지 못했지만(일본어 비판의 경우, 지원자들은 다수고 나는 혼자 대답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하지 않은 말로 나를 비판하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 나를 위축시킨다)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하니 반론을 조만간 간단하게라도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왜곡을 단순한 오독으로 치부하거나 웃고 넘길 수 없는 건, 다들 알다시피 나는 지금 고소당한 몸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 나를 “형무소에 넣고 막대한 돈을 지불케 하라!”는 요구와 싸워야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유하의 책은 나쁜 책”이라는 이들의 말들은 우선은

1.재판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 대한 고발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그럼 하고 싶은 비판도 못하느냐”고 말하겠지만 그런 구조를 만든 건 지원단체와 일부할머니들이다. 비판을 하고 싶다면 먼저 고발을 취하하라고 말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2. 내가 책에 쓰지 않은 말,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하고 쓴 것처럼 말하는 건 “허위배포”다. “학자의 말”이면 그에 해당되지 않는 건지 여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오늘이후에도 올리겠다고 한 내용, 지금이라도 재확인하고 내보내 주기 바란다. 내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훗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삭제판도 일본어판도 판매하지 말라”고 나를 옥죄는 이들의 선두에 명색이 학자인 이들이 서 있다는 것이, 내겐 작금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또하나의 풍경으로 보인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31391193554460

渦中日記 2015/6/5

정규재TV에 나갔다.
지난 2월 가처분판결 이후, 내 책을 이해해 주는 이들의 부름은 누가 되었건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정했었다.
책이 나온 직후에 했던 조선일보 인터뷰도, 고발이후에 했던 월간조선 인터뷰도 결국 나오지 않았던 것처럼, 내게 대한 적대가 보수/진보구분과 상관없는 이상, 보수/진보매체를 구분해 응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게 상처를 준 건 진보쪽이다..)

우리사회에 지금 필요한 건, 정치적입장과 상관없이, 필요한 사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접점을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그런 시도이긴 한데..잘 했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과이언맨의 김남훈샘이 응원 와 주시고 두시간내내 지켜봐 주셔서 든든했다는. 고맙습니다.

http://m.hankyung.com/apps/jkjtv.board.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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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8272527199660

渦中日記 2015/6/3

햇볕 따갑고 바람 많았던 오후에, 형사고소에 관한 조정위원회가 열렸었다. 새로 담당하게 된 검사가 권고하기에 수락했던 조정이다. 두 변호사님과 출판사의 정종주대표님, 이렇게 넷이 같이 출석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두시간 가까이 걸렸다.

전에 나온 어떤 기사에 의하면 원고측은 삭제판도 내지 말라고 요구중이다. 5명의 조정위원들이 제안한 내용은 “사과”와 “삭제요구된 부분은 국내외 출판에서 영구히 복구하지 말라”였으니 그나마 “조정”된 거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는 “국내외”라는 단어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일본어판도 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니까. 이미 아는 얘기여도 공식석상에서 들으면 비현실감이 강해진다.

아직도 가끔,내가 당하고 있는 일이 현실인가 싶을 때가 있다. 하긴, 메르스 2차 3차 감염자들이 맛볼 절망감과 분노에 비하면 내가 당하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 가능한 한 희생자들이 적기를 기도한다. 나는 편견과 적의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야 하고, 그들은 공포와 죽음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야 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27464977280415&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5/27-2

재판은 20여분만에 끝났다. 양측이 낸 서류를 확인하고 양측 변호인들이 간단히 할 말을 하고 다음 공판 날짜를 정하고 종료.

오늘은 할머니들도, 나눔의 집 소장도,나눔의 집 고문 변호사인 박선아 변호사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직접관계자들 없이 혼자 나온 원고측 변호사는 좀 쓸쓸해 보였다. 내 책이 “전쟁을 찬양”했다고 쓴 그가, 지금이라도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한 언론이 감상을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에 답변문서를 다시 정리하면서 이 문답이 할머니들과 나 사이의 것이 아니라 연구자를 포함한 지원자들과의 논박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했다. 학문적인 견해를 법원에서 피력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서글프다.”
“내 사건은, 일본에 관한 얘기는 자유롭게 말하는 일조차 어려운 우리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일로 고통을 받았고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 이번 일이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그런 정황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가고 싶다.”

페친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돌발사태 없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611314332448

渦中日記 2015/5/27-1

오늘, 민사재판이 시작된다.
명예훼손소송이란 기본적으로 형사고발이라는 걸, 나의 일이 되고서야 처음 알았다.
그런데 곧 1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기소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민사재판이 이제야 시작된다는 것도 그나마 관계자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페친 정승원샘이 <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글을 다시 써주고 계셔서 링크해 둔다.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득 가슴에 품고, 오늘은 처음으로 법원에 나갈 예정이다.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0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4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67&thread=21r04

http://newsmin.co.kr/detail.php?number=4949&thread=21r0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448301015416

渦中日記 2015/4/17

사람이나 언론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앞으로는 진보든 보수든, 나의 논지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이들이면 기꺼이 소통할 생각이다. 나를 상처준 이들은 이른바 진보계열에 속하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보수 이상으로 보수적이었다. 오로지 기존주장이나 입장을 “지키려”고만 했다는 점에서.

물론 그들 안에도 지혜롭고 유연한 이들은 당연히 있었고, 그동안 견뎌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들 덕이다.

나에 대한 비판/지지여부를 나누는 건, 좌우이념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정보량과 사고의 유연성인 듯 하다. 그럼에도 가장 극심한 폭력이 좌우 양극단에서 나왔다는 건 지적 보수의 정서적 빈곤을 보여준 것일 터. 결정적인 순간에 폭력을 만드는 건 언제든, 이념도 이상도 아닌, 인간성이다.

그런 생각으로 응했던 첫번째 글이 나왔다. 일본어판도 영어판도 있는데 정작 한국어판은 못 만들었던 <제국의 위안부>요약이다. 나는 기지를 반대하기 때문에 보수적 입장에 있는 이들도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이 좌우 상관없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공유가능한 부분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기 때문에.

(제목은 내가 붙이지 않았다.ㅠ)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38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01385753221671

渦中日記 2015/3/27

생일 전후해서, 나에 대해 언급한 칼럼, 인터뷰가 실린 신문과 잡지등이, 마치 선물처럼 도착했다. 5쇄를 찍었다는 연락도 왔다. 일본의 한 지인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아마존의 독자평까지 보내 주었다. 일본어판이 나오고나서 이어졌던, 과분하리만큼의 호의적인 평가에 반발하는 비판들이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해 내가 우울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했던 건,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정말은 나의 적일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 이십여년의 운동과 연구를 부정당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지,우익의 비판보다 훨씬 집요하고 적극적이다. 타자에 대한 중상과 비방이 아니라도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능한데.

하지만, 그런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의도한대로, 있는 그대로 읽어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비판자들은 내 책이 일본의 우익을 기쁘게 한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모두 우익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다.

우파든 좌파든, 마음을 비우고 읽을 수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시민의 힘이 정부와 보수를 흔들 수 있도록.
————————————
(전략)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이지만 이와 관련해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일본에서도 발행된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씨가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미 저자에게 불리한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온 데 놀랐지만 이에 더해 오해와 곡해로 인한 심각한 비방 중상이 난무하고 있어 유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한일 양국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해왔다고 지적하며 과감한 문제 타개를 요구한 의욕적인 작품이다.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 것은 결코 우익이 기뻐해서가 아니라 해결을 바라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내용이어서 이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언론의 장에서 논의하면 좋지 않은가. 만에 하나 공권력이 그녀를 기소하면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선진 제국은 마침내 한국이 ‘언론을 억압하는 나라’라고 낙인을 찍을 것이다. 그래서 기뻐할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도 스스로 공통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도록 절실히 바라고 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2015/3/19,동아일보)

읽는쪽도 시험당한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그런 평이 있다.

위안부를 데리고 다닌 업자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지적을,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싶은 논객은 환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논지의 한 부분만을 멋대로 가져다 쓴 결과다.박교수는 위안부를 낳은 구조를 명확히 밝히려 한 것이고 누군가를 면죄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일본의 대응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속단이다. 기금의 존재는 위안부의 고통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지려던 생각이 국회(국민)의 다수생각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마세타츠야 홋카이도 신문 해설 위원, 2015/3/24, 홋카이도 신문)

아사히신문의 오보정정으로 인해 마치 2차대전때 위안부문제는 없었다는 식으로 외치면서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려는 이들이 있다.

남경사건에 관해서도 그렇다.(중략)
한국의 저자인만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다른나라 위안부와는 또다른 가혹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TKo, 아akwhs 아마존 독자평)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87635244596722

渦中日記 2015/3・9ー응답을 시작하면서

의혹과 소문이 세상을 떠돌며 한사람을 한치의 주저없이 베고 다닐 때, 그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침묵하거나 항변하거나. 그리고 그동안 나는 다른 이들이 나서준 덕분에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수가 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늘, 차라리 침묵하고 싶었다. 10가지 소문은 곧 100가지가 될 것이고, 그 때의 절망감과 도로감이 미리부터 내 기분을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잘` 항변하기 위해서는 저들의 행위를 컴퓨터와 마음에 저장하고 미움으로 논리의 칼날을 가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일에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는, 나는 그저 그 시간에 아름다운 멜로디에 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보다 아름다운 말들에 귀기울이고 싶었다. 사실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외에는 부지런한 사람이 못된다.

그럼에도 이제 최소한도로나마 해명에 나서려는 이유는, 함께 해 주는 이들, 대한민국에서 극소수일 친구들을 위해서기도 하다. 이제 싸움은 나만의 싸움이 아니게 되었다. 2014년 6월과 다른 것은, 이제 내게는 나 이외에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 모두가, 원고측의 허위섞인 주장과 그 주장을 그대로 믿은 재판부가 만든 일이다.

어차피 나는 법정에서 항변을 해야 하고 원고측 변호사와 학자들—이른바 `지식인`들이 함부로 난도질하며 <공공선에 반한다>고 결론내린 나의 논지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 원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 내게 요구되는 건 ,지치거나 지겨워하지 않고 `법정을 떠올리며 광장을 만들어 가는` 일일 터이다. 그것도 헛소문에서 지적담론까지를 한자리에서 상대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광장을.

우연히도 아침에 관련 뉴스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응답1.<박유하가 위안부할머니에게 일본정부로부터 20억원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2003년가을, 사죄와 보상에 관한 나눔의집의 생각을 듣기 위해 내가 방문했을 때, 여성사무국장은 내게 국가배상이 아니라 실질적보상금을 받는 소송을 준비중이라고 말했었다.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조정`에 이르는 재판이고, 우리는 정대협과 달리 당사자중심으로 간다면서 할머니들의 사인이 들어간 서류까지 보여 주었다. 그 이후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정대협과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는 이 기사를 보고 그간의 나눔의 집의 행보를 알 수 있었다.

한사람당 `20억원`이라는 보상요구금액은, 바로 유희남할머니가 내게 말한 숫자다. 일본이 어떤 사죄와 보상을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사죄고 뭐고)….20억원은 받아야지`라고 말했던 장본인이시다. 그 정황에 관한 증거자료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나눔의 집의 또다른 변호사에게 말했더니, `20억은 많은 금액은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아마도 그는 이미 이런 소송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나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도 해야 하는 것이 슬프다. 유희남할머니가 법정에서 위증을 했다는 걸 듣고도 나는 그에 대해 법정에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법정의 `상식적인 판단`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처분판결이 났을 때 나는, 어쩌면 그 판결은 책 때문이 아니라 나에 관한 부정적인 소문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쩌면 가처분 판결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으로 하지 않은, 나의 불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http://kr.christianitydaily.com/…/…/위안부-피해자-미국-법원에-소송-추진.htm

http://www.yonhapnews.co.kr/…/0200000000AKR2015022717480006…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82184/20150227/%EC%9C%84%EC%95%88%EB%B6%80-%ED%94%BC%ED%95%B4%EC%9E%90-%EB%AF%B8%EA%B5%AD-%EB%B2%95%EC%9B%90%EC%97%90-%EC%86%8C%EC%86%A1-%EC%B6%94%EC%A7%84.htm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75557982471115

김규항, 역사의 거울 앞에서 (경향신문)

‘제국의 위안부’ 토론과 논쟁 사이
맥락 생략된 텍스트 읽기 애석
상징체계가 주입한 습관 깼으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에서 ‘텍스트는 컨텍스트(맥락)와 함께 읽어야 한다’는 텍스트 읽기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건 애석한 일이다. 맥락이 생략된 텍스트 읽기는 오독이나 악의적 왜곡에 이용된다. 특히 이 책처럼 민감한 사회적 주제를 담은 텍스트인 경우, 논쟁은 주제와 관련하여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문화적 상징체계에 포획되어 버린다. 다들 진지하고 열띤 얼굴로 견해를 말하지만 실은 그 상징체계가 주입한 이런저런 주문을 암송할 뿐이다.

눈곱만큼이라도 유의미한 논쟁이 되려면 상징체계를 박차고 나가, 비로소 내 견해를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즉각적이고 단순명료한 반응과 판단을 의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가장 문제가 된 ‘매춘부’ ‘동지적 관계’ 등 텍스트 조각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책의 적확한 요약이 되기도 하고, 책에 없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보수 세력은 오랜 권위주의 독재 시절을 통해 반일 정책을 표방하며 일본 극우세력과 야합하는 이중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름을 개탄하는 데 그치는 건 그들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문제는 ‘반일’이라는 개념 자체의 기만성에 있다. 일제 식민지 경험은 한국 민족과 일본 민족이 아니라 일본 지배계급과 한국 민중 사이의 일이었다. 일본 민중 역시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고 착취당했으며, 한국의 지배계급은 일본 지배계급과 이해를 같이했다. 해방 후 지배계급으로 남은 그들은 모든 것을 민족 간의 문제로 은폐하고 기만했다.

그런 기만은 진보 세력에게도 답습된다. 한국 사회가 일본 제국주의에 이어 미 제국주의의 지배와 영향을 받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진보 세력 안에서 한국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중첩된 사회’라 해석되곤 했다. 진보 운동은 ‘민족주의+진보(계급)’라는 모순적 상태를 지속해왔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계급이라는 ‘체’로 제대로 걸러내지 못함으로써 진보(계급)의 괴멸도 지속되었다. 조직노동(민주노총)이 비정규 불안정 노동이라는 노동자 계급의 보편적 현실을 외면하고, 진보정당이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면서 지리멸렬해진 내적 원인도 결국 그것이다.

‘민족주의+진보’의 폐해가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가는 ‘디아스포라’에 천착하는 재일 지식인 서경식이 박유하 비판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과, 한국의 진보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단호한 계급적 관점을 고수해온 박노자가 이 논쟁에서만은 ‘탈계급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람은 박유하의 견해가 일본 우익에 봉사한다는 식의 비난과도 선을 긋지 않는다. 어떤 사회적 견해가 사회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우려하는 건 필요한 일이나, 반대와 금지의 근거로 삼는 건 파시스트의 방식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반공극우 세력의 주요한 탄압 논리는 ‘북한에 봉사한다’였다.

<제국의 위안부>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위안부 문제 활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정대협의 활동은 ‘위안부 소녀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소녀상이 담은 ‘순결한 소녀’라는 정체성은 사실관계와 문제의 본질을 동시에 거스른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동정녀든 창녀든 예수의 어머니이듯, 모든 생존 위안부는 ‘순결한 소녀’라는 정체성에 부합하든 안 하든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다. 일본의 보상금을 받은 위안부에 대한 정대협의 부당한 태도는 위안부 운동이 생존 위안부를 위해 존재하는지, 생존 위안부들이 위안부 운동을 위해 존재하는지 되묻게 한다.

‘민족주의+진보’의 수렁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의 진보적 인텔리들이 아우슈비츠의 학살자 아이히만 재판 당시, ‘민족 배신자’로 매도되면서도 ‘악의 평범성’을 설파하던 한나 아렌트를 상찬하는 건 인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상찬이 지적 허세가 아니려면 온전하게 당시 상황에서 유대인이 되어 봐야 한다. 아렌트는 일생의 벗들에게까지 절교당해야 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아렌트에 대한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게 바로 박유하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지난 역사, 남의 역사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역사에선 쉽지 않다.

우리는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성찰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친일 문제에 대해 단순명료한 태도를 보이는 나는, 독립이나 해방을 좇는 사람은 이미 ‘비현실적’이라 치부되던 일제강점기 후반부에 살았어도 같은 태도를 보였을까. 그것은 현재의 지배체제, 즉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내 태도로 추정될 수 있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아이를 밤늦도록 학원을 돌게 한다면, 신자유주의의 다른 분파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유일한 사회적 희망이라 생각한다면 그 태도는 허상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태도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문화적 상징체계가 만들어낸 습관일 뿐이다. 우리는 그 습관을 직시하고 해체해야만 한다. 만일 누군가가 처음으로 우리의 습관을 적확하게 비판하거나 해체하려 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진즉 해체했어야 한다며 고마워할까, 아니면 아렌트 앞의 유대인들처럼 격렬하고 집단적인 반감을 보일까. 박유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 답을 보여준다.

원문: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역사의 거울 앞에서 (경향신문)

渦中日記 2015/3/7

삭제판을 위한 작업중.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막상 마주하니 가슴이 좀 쓰라리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74229259270654

渦中日記 2015/2/27

압도적인 폭력아래 놓이면, 말을 잃게 된다. 마녀사냥식 비난과 추측성 의혹과 그럴듯해 보이는 비판들 속에서, 어느 쪽에 먼저 대답해야 할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웃고 있으면 짓밟아 울리고 싶다는 이들이 있었고 슬퍼하면 순교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이들이 있었다. 씩씩하려 하면 뻔뻔하다 했고, 침묵하고 있으면 반박을 못하는 거라고 했다.

검찰조사가 끝나자마자 지방국립대교수와 성남시장이 공격을 시작했고, 그리고 가처분 판결을 받았었다. 덕분에 주변지인들까지 설연휴를 반납하다시피 했고 나 역시도 견뎌내기만도 버거운 며칠이었다. 진작부터 약속한 두개의 일정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귀국하고 보니 이번엔 그 행사마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었고, 나는 “그 와중에 책을 팔러” 일본까지 다녀온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비난에 대해 “자신은 뒤로 숨고 지지자들을 내보낸” 비겁자가 되어 있었다.

작년 6월에는 했던 해명과 설명을 이번에는 일일이 하지 않았던 건 우선은 경황이 없어서기도 했지만, 두번째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나를 설명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나에 대해 말하는 날은 그런 나자신을 넘어서야 할 만한 어떤 계기가 주어진 날이다.

나를 일으켜 세워, 몇가지에 대해선 해명을 해야겠다고 비로소 생각했던 어제, 와다 하루키 교수의 인터뷰가 나왔다. 이 역시도 비판적인 부분에만 주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먼저 걸어둔다. 이 주말엔 페북을 하루종일 열어두어야 할 것 같다.

2월이 가고 있다.

http://www.hankookilbo.com/m/v/86fc1dfb784a4255a92a290849f7d32b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9593019734278

渦中日記 2015/2/25

한 언론의 기자가 기사를 쓰겠다면서 질문을 했다. 일본특파원이라 일본사정에 대해서도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가나 일반인들과는 질문의 차원이 달라 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가 위안부문제해결과 한일화해를 위해 쓴 건지 혹은 일본에 “법적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던건지 알고 싶어했다. 나로서는 서글퍼지는 대답이었지만 말했다.
“결론부터 정하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뭔가 다른 의도를 담아 글을 쓰는 식으로 머리굴리는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쉽게 따를만큼 순종적이지도 않다.

———–
1.논리적으로 정합적이지 않다. “보상”의 의미는?

이 책은 여러 “다른”오디엔스(독자/청중)를 대상으로 한 책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원래는 일본을 향한 글만 쓰여질 예정이었구요. 일본이라 해도 지원자/정부/부정자,이렇게 세 부류입니다.
앞에서 하던 얘기와 뒤에서 한 얘기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그 결과입니다. 예를 들면 한일협정에 관해서도 한국을 향해선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 버렸으니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으면서 일본을 향해선 “당신들은 보상 끝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관련 보상이었고 식민지배에 따른 억압과 고통에 대해선 보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고 어느쪽이 진짜냐! 라고 묻고 싶어지겠지만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된 건 결국 대립하는 문제의 해결방법은 각자 자신의 문제를 보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커다란 틀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썼습니다. 일본의 지배가 문제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대협등 지원단체는 보상과 배상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고 있어요. 위안부문제는 “법을 어긴 국가범죄이니 입법을 해서 배상하라”라는 의미에서 “배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학자들이 말하는 건
더이상 “강제연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민지에선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저에 대한 고발장에서조차 쓰고 있더군요.
“약취,사기”로 업자들이 데려 왔다 해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범죄이고 일본군이 알고도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은 알게 된 경우 업자에게 다른 곳에 취직하게 하도록 시키거나 돌려보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이전에 계약서를 확인해 업자의 사기나 납치를 방지하려 했구요. 그러니 전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일본의 공식방침은 위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해야 하구요. 알면서 묵인한 경우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 경우 업자가 이미 돈을 주고 사 왔다던가 하는, 일본군으로서도 관리영역 바깥의 경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수요를 만든 자체–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로 만든 지역의 사람들까지 전쟁터에 동원한 책임, (의도여부를 떠나) 묵인한 책임을 물은 겁니다. 위안소를 공식적으로 만든건 근대일본이 시스템화에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리고 모두 획일적인 위안소가 아니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하고요. 일본에서 강연할 때 유곽에 있었던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유곽을 군대용 위안소로 지정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지정업소가 아닌 곳에 있었던 사람(여기에도 비지정이지만 인가업소-유곽의 위생시설등 체크했던 업소와 인가조차 못받았던 이른바 사창도 있었다는 걸 “우리는”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피해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다른 부분을 소거시키고 싶은 욕망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걸 지적했던 거구요.
“보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국어판을 쓸 땐 기금과는 달리 “정부국고금”으로, 기금을 받지 못한 분들께 추가 보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입니다. 국회를 거치지 않는 정부보상금이지요. 다만, 이후 국회결의를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어판에선 그렇게 썼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다시 기회되면 말씀드리지요.

2. 와다교수의 의견(국고금으로 보상금지급)과 같나?

한국어판 내고 나서 다른 자료들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와다선생님과 달리 국회결의를 주장하는 겁니다. 오히려 보상금을 어떻게 할 건지는 더 첨예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장(국민동원의 한 형태다)이 받아들여진다면 입법이나 국고금 지급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강제동원을 했으니 배상하라”는 현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 일본한테 보상금을 대신 받은 한국정부가, 할머니들에게 4천만원 이상 지급했고 매달 이런저런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할머니의 체험은 다 다른데 해결은 “하나의 방안”으로 정해야 하는 정치/국가 문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머니들의 다른 목소리에 각각 귀를 기울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현실적 타협론인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옳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명분에 무게가 실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년이 걸리더라도” 라는 말로 주장을 관철하는 건 첫째 당사자를 무시(얼마전에 만난 할머니는 사죄조차 요구하지 않고 보상만 해 주면 된다고 해서 오히려 제가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는 일이고, 할머니의 의견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인식될 필요가 있습니다. 들리지 않을 뿐이지요. 부산정대협회장님을 만나 보세요. 지방에 계셔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문제 해결에 사비털어가며 20년이상 애써 오신 분인데 그분 말씀이 “나도 내 돈 내가며 신문광고를 통해 기금을 반대했다. 하지만 할머니들 돌아가시는 거 보면서 받게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우리 여성지도자들(이 분은 이화전문여고출신의 할머님)이 못 받게 했다”고 하시더군요.

4. 제가 받는 인신공격적 비난이 안타깝다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심층취재와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외부의 비난과 우려 속에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를 외부가 아니라 우리스스로 들여다보고 아프더라도 직시하는 일로 치유해나가기 위해서도요. 저는 제 사태를, 2009년의 서경식교수의 한겨레 칼럼이후에 저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면서 5년후에 지원단체에 의한,아마도 쌍방이 의식못할 “대리고발”을 당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오해의 종류도 다양하고 지식의 폭도 달라서 더 어려운데, 정치나 개인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사람들, 단순오해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행태가 가장 한탄스럽군요. 저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
언론에 대해서도 깊이 실망해 왔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려하는 분들이 계신 걸 잘 압니다. 기대를 놓지 않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8639513162962

정승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읽기 2

정승원
2015년 2월 22일 ·

‘제국의 위안부’ 읽기 2
– 서로 다른 일본에 대한 인식

‘제국의 위안부’ 책 내용은 지금까지와 다른 일본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일본에 대한 인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일본을 긍정하는 일부 내용을 가지고 교묘하게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긍정하는 사람이니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에 사실상 동조하는 내용이라고, 일본의 우익에 교묘하게 동조하는 사상이라고 봅니다. 뉴라이트 사상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의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 우리는 주로 식민지 시기의 일본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립니다. 그것은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지난 해방이후 70년동안 일본이 변해온 모습에 대해 눈을 사실상 감아왔습니다. (참고로 일본의 세계적인 이미지는 굉장히 좋습니다. 우리와 달리, 세계인들은 평화적인 국가로 인식합니다.)

2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지원활동, 그리고 일본식민주의를 청산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상만을 주입받았고, 여기에 반대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본을 이롭게 해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3. 우리는 위안부 지원 단체에 대해 맹신합니다. 하지만, 박교수가 책에서 여러 사례들을 들었듯이, 위안부 지원 단체의 한계와 문제점들은 공론화되지 못했을 뿐,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위안부 단체를 비판하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4. 기존의 좌우, 보수와 진보 대립 구도하에서 양자 어느 쪽에 속하지 않는, 속해보이자 않는 학문은 낙인을 찍습니다. ‘뉴라이트’니! 박유하 교수의 책은 좌우 틀을 모두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3156654931

박일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3

박일환
2015년 2월 22일

<잠시 쉬어가며>

다른 이의 담벼락에서 논전이 이어지는 걸 보고 있는 중에, 박유하 교수가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는 이가 있었다. 그래서 아래 글을 타이핑해서 댓글로 달았다.(비판자들은 박유하 교수의 책에 있는 이런 구절들은 왜 모르는 척하는 걸까? 차라리 책 전체를 타이핑해서 연재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에 앞서 ‘제국’ 구축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위안부를 필요시했던 나라로서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제국’의 욕망과 지배를 다른 제국 국가에 앞서서 반성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미 영국과 이탈리아가 그런 사죄를 한 적이 있지만, 서양의 제국주의를 의식하며 제국주의로 향하게 된 일본의 사죄는 아시아의 통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것이 가능해질 때, ‘전후 일본’은 비로소 ‘제국후 일본’(포스트 제국 일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일본 정부의 ‘기금’ 안이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사죄나 보상의 형태를 정하는 과정에서 ‘당사자’가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원단체와 ‘위안부’를 참여시켜 협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지원단체나 위안부들도 이제까지의 대표적인 주장 이외의 의견을 가진 이들 또한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와 당사자 간의 협의를 위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진 양국의 관계자/지식인들도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란 당사자와 운동가들만의 판단으로는 합의에 도달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20년 동안의 세월이 그것을 증명한다.

만약 해결안에 대한 합의에 도달해서 새로운 ‘사죄와 보상’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세계를 향해 일본의 생각을 밝히는 공식적인 형태를 취하는 편이 좋다.

그때 일본은, ‘조선인 위안부’ 문제가 ‘위안부’라는 존재를 통해 드러난 ‘식민지배’ 문제임을 말하고,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가 포함되지 않았기에 그런 한일협정을 보완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한일기본조약 자체를 흔드는 어려운 사태를 감수하지 않고도 한국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그때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지배하는 기간에 희생당했던 수많은 사람들 – 3·1 독립만세운동, 간토 대지진, 병사로 동원되어 참가한 전쟁, 고문 등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 – 에 대한 진심을 그 ‘사죄’ 속에 담아야 한다.” (271~272쪽)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9513320962

정승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읽기 1

정승원
2015년 2월 21일 ·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읽기 1
– 책을 읽는 몇 가지 방법

제가 오늘 페북에서 몇 차례 논쟁과 질문을 주고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기본적인 구조만 알면 논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음의 프레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1. 이 책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여진 것입니다,

→ 위안부를 모욕하는 책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어느 용감한 교수가 위안부 부정이 담긴 책을 쓸 수 있겠습니까? 미치지 않고.

2. 위안부를 부정하거나, ‘자발적 매춘’만을 강조하고 책임을 방기하는 일본 우익의 논리가 아닙니. 당시 드러난 위안부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냈지만, 일본의 구조적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 고로, ‘친일파’가 아닙니다. 친일파 교수라고 생각하고, 온갖 추측성 말을 그만 뱉어내시기
바랍니다.

3. 이 책은 제국/국가의 치하에서 억압받은 여성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 입니다. 식민지 치하의 위안부, 기지촌의 양공주 등으로 이어지면서, 지금도 제국의 체제 하 에서 계속되는 여성의 억압을 다루고 있습니다.

→ 피해자인 여성을 모욕하는 책이 아니라,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페미니즘적인 책입니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 읽고 너무 좋았다. 일제 해방 이후 어느 누가 이토록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고 위안부에 대해 기록하는 서술을 내놓았었단 말인가.”(어느 페미니스트)

4. 이 책에 나오는 정보는 ‘위안부’나 ‘위안부 운동’에 대해 언론 수준의 정보만 들어온 한국사람에게 굉장히 낳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정보와 다르다고 반발하지 마시고, 차분히 읽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많습니다. 그런 다음에 기존의
정보와 함께 검토해보면 됩니다.

5. 박유하 교수는 본인 스스로 밝힌 대로 뉴라이트가 아닙니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신빙성 있다고 생각하는 자료를 학자의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인용합니다. 이영훈 교수 인용했다고 해서 뉴라이트가 아닙니다.

6.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문제는 위안부 문제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류 지원단체(과 학자들)를 통한 하나의 목소리만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박유하 교수가 제시하는 해법은 약간 다릅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지원단체에서 반대해온 ‘국민기금’에 대해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것은 일본의 진보파 일부(와다 하루키,
우에노 지즈코) 도 국민기금에 찬성합니다.)

– 지금까지와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고, 뉴라이트, 친일로 몰아가서는 안됩니다. 이런 해법은 토론이나 논쟁의 대상입니다.

7. 많은 사람이 화해라는 단어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죄를 받지 않고, 무조건 용서해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박유하식 화해’를 꼼꼼히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비판하십시오.

8. 위안부 문제의 전체적인 상이나 연구 결과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위안부 연구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입니다. 위안부 숫자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 ‘제국의 위안부’가 기존의 위안부 연구보다 더 나아간 것은 확실합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런 연구의 한 지점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교수 한명이 위안부 문제를 모두 담아낼 수 없습니다. 이 책은 논의의 시작점입니다.

9. 탈민족, 탈국가의 이미지로 ‘제국의 위안부’를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작 ‘화 해를 위해서’는 탈민족, 탈국가의 관점에서 한일 양국 시민들의 협력을 통한 한일의 화해를 이야기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그 색채가 약간 다릅니다. 책임을 묻기 위해서 국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계급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탈민족’의 색채는 엷습니다.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가지고 와서, 이야기하는데, 헛다리 짚은 것입니다.

10. 이 책은 다차원적으로 읽힙니다. ‘탈민족주의적인 젠더’의 관점으로, ‘좌파의 역사관’으로, 탈민족주의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 교수는 동의하지 않을 실지 몰라도, 위안부 문제 해결 방식이 사민주의적이라고 봅니다. 기존의 좌우파 논리를 벗어나 있습니다. 제3의 길 같습니다. 저의 페친 최병천 샘과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특정한 이념으로 규정짓지 말고, 각자 자유롭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2076655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