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출구를 위해서

일본의 수출규제(관리)문제가 시작된지 벌써 한달이 되어 갑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진단과 대안을 내놓았고 정부 역시 일본에 협의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전환될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은 도대체 왜 이런 조치에 나섰을까요. 효과적인 대응을 하려면 먼저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도 언론도 국민 대다수도 이번 사태의 근원적인 원인을 보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제도 일본은 한국의 거듭된 협의요청을 거부했다는데, 제가 보기에 일본의 거부원인은 거기에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아베정부의 갑작스런 조치는 비판받을 만 합니다.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었으니 일본을 우방국으로 생각했던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놀라고 당혹스러워 했던 건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군사동맹까지는 아니어도 한일군사협정을 맺고 있는 한국에 대해 `안보`를 이유로 관련물자수출수속우대국가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노골적인 적대시포즈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국민들이 분노하고 일본제품불매운동에 나서 온 것도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분노를 넘어 증오와 혐오까지 유발중이라는 점에서는 문제지만, 그 이유가 정당하기만 하다면 분노와 그에 따른 대응을 문제시할 이유는 없겠지요. 저역시 민족주의의 문제를 일찌기 지적한 바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작금의 사태를 그저 민족주의의 문제로 보는 시각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민족주의나 반일감정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악감정을 우리에게 일으키는 여러 정보들이 과연 전부 올바른지에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많은 부분 잘못된 정보들이 우리 안에 필요한 만큼 이상의 악감정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문제시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정황입니다. 잘못된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악감정이 다시 잘못된 정보를 생산하고 또다시 전파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지금 한국사회에서 일본이나 일본관련문제에 대해 회자되고 있는 ‘상식`들은 많은 경우 올바른 정보가 아닙니다. 불매운동을 하려면 더욱, 한번쯤 멈추어 서서 그 점을 확인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 발언과 행동을 선택하도록 만든 나의 생각, 나의 인식은 과연  올바른지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일본이 `부당한 행위`를 했고 불매운동은 그에 대한 `정당한 항의`라고 생각합니다. 마침, 1919년  독립만세운동으로부터 꼭 100년 지난 해이기도 해서, 불매운동이 일본에 대한  `저항`행위로 인식되고 있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단지 현재 눈 앞에 있는 수출규제만이 아니라 과거사 전부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 셈입니다.   `과거에 우리를 식민지화하고 지배했던 나라가 또다시 우리를 침략하고 지배하려 한다.`는 생각이, 그렇게 불매운동의 추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또하나 중요한 점은 우리의 분노가 많은 경우,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나라가 심지어 `사죄하지 않았다`는 인식에 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그저 수출규제 문제뿐 아니라,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 그에 더해 그런 과거와 눈앞에 있는 현재를 둘러싼 일본의 ‘태도’(로 인식되는)가 우리의 분노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에는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간단히 그 오해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1)’경제적’ 견제이자 침략인가?

일본이 `견제`상대로 명확히 의식하고 있는 건 한국이 아니라 중국입니다. 작금의 사태는 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에 대한 군사안보적 배제시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건, 아베수상이 말한대로 오랜기간 누적된 한국에 대한 불신입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적대시를 통해 한미일 공조체제를 (형식은 유지하되 심정적으로) 먼저 깬 건  한국이었습니다.  대통령께서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2년전에 일본을 향해 말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에 아베수상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면서 불신을 드러냈는데 그런 불신을 만든 건 한국쪽의 불신이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치를 그저 ‘경제’ 전쟁`이나 `침략`으로 받아들이는 건 잘못된 판단일 뿐 아니라 잘못된 대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장기대응을 통해 대일무역역조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당장의 공격적 대응은 관계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지금 한일양쪽에 필요한 건, 훼손된 상호신뢰를 어떻게 회복시킬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행동입니다.

일본이 한국을 경제노예로 만들 의도를 갖고 있다는 말까지 세간에는 나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적에 대한 공포심과 자존심을 자극해 자폭테러까지 시키며 항전케 했던 제국일본이 사용했던 레토릭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사태는 향후(특히 이번주)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전환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체념이나 맞공격이 아니라,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신중하고도 유연한 대응입니다.

 

2)불신의 근본원인

수출규제를 만든  배경에는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징용문제가 있습니다. 징용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쓴 글도 있고, 오랜 세월 연구해 온 훌륭한 연구자들이 계시니 더이상 첨언하지 않습니다.

다만, 징용판결자체 이상으로, 일본의 협의요청을 한국정부가 여러달 묵살해 온 것이 이번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확인해 둡니다. 개인이건 국가건 모든 신뢰관계의 기본은 상호존중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만든 위원회에서 오래 활동해 ‘피해자’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들이, 소송으로 주목받고 한국의 징용관련 ‘상식’을 만든 이들에 대해 비판적이라는것도 덧붙여 둡니다.

중요한 건, 징용판결관련문제 뿐 아니라 위안부문제에서의 한일합의(2015)를 재검증하고, 합의에 따라 만든 화해치유재단을 정부가 해산조치에 들어간 사태가 일본의 한국불신의 출발점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잘못된 역사는 가능하다면 수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일합의와 위안부문제에 관한 정부와 국민 대다수의 ‘상식’을 만든 것은 20년 이상 위안부문제를 주관해 온 일부학자와 지원단체입니다. 언론이 오랫동안 그들의 주장만 보도한 결과, 우리사회는 학자는 물론 ‘위안부`당사자들의 목소리에조차, 기존상식과 ‘다른’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배척하게 되었습니다. 화해치유재단해산은 한국정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 한국정부의 징용관련 ’재단설치’ 제안에 일본이 소극적인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른바 `양심적시민`을 대표하는 일본의 위안부지원단체대표는, 금년초에 “위안부문제에 관한 한국의 인식은 20년전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이 시점에서  다시 되새겨져야 하고, 무겁고 무겁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이대로 가면 징용문제 역시 하나의 인식만이 주류가 되어 한일간 괴리를 심화시킬 것입니다. 결국 징용문제는 또하나의 위안부문제가 되어 한일양국은 수십년 갈등을 또다시 이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혐한과 위안부문제

90년대 이후 발생해 곧 30년이 되어가는 위안부문제는 일본인들 안에 혐한감정을 심은 첫 계기가 되었습니다. 90년대 이후 이 문제가 불거지자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일본정부와 국민이 마음을 다해 사과하고 보상했는데도 전혀 인정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위안부지원단체에 의해 “일본은 전범국가!”일본은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은 뻔뻔한 국가!”라는 비난과 함께  그들자신은 사실과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태의 주인공으로 일본은 전세계에서 지목되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위안부지원운동의 일본비난은 더욱더 힘이 세졌고, 이에 따라 한국에 호의적이던 보통 사람들까지, 한국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 몰라 당황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경에 한 일본인 고위급외교인사가 “나는 한국을 특별히 좋아했다, 그런데 한국은 언제까지고 일본을 비난만 한다. 이제는 그냥 보통 국가로 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 쓸쓸한 표정을 지었던 것을 아직 기억합니다.

저는 그 사태를 심각하게 여겨 책을 썼습니다. 한일양국국민을 향한, 역사인식에서의 접점을 찾기 위한 제 나름의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책은 무력했고, 이후 7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려했던 사태들이 하나둘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혐한의 배경을 정확히 들여다 보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개중에는 제국주의적 무시나 경멸이 만든 혐한도 있지만 많은 경우 혐한은 마음의 상처가 만든 것입니다. 그런 차이를 직시하고 구별해야 하는 이유는, 후자가 전자보다 많아지는 일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먄, 일본정부의 나쁜 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이 더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일본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 이유

한국정부가 뒤늦게나마 협상을 하자고 제안했는데도 일본정부가 응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정부의 이번 조치는, 정치이용이라기보다 상처입은 국민들을(혹은 정치인 자신을) 대변한 행위로 봐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문제의 근원은 수출이니 경제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과거사를 둘러싼 오랜 갈등의 세월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태를 개선하기 위해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는 명료합니다. 산업경제성과의 무역회담이 아니라, 정부핵심인사와의 대화입니다. 과거를 둘러싼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인사를 찾고,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하는 일입니다.

 

5)자존심에 대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불매운동이 왜 답이 아닌지는 이미 명약관화합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과 회의의 표현일 뿐 경제때리기자체가 아니라면, 불매운동이며 교류중단을 떠받치고 있는 자존심,역사정신,시대정신등등의 생각이 오해에서 비롯된 지나친 과잉반응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정부는 일본을 향해 협의에 나서야만 특사를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협의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특사를 먼저 보내야 합니다.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건, 굴복도 굴종도 아닙니다. 타자와 진정으로 마주할 기회를  만들어 끊겼던 ‘대화`를 회복시키기 위한 주체적인 ‘외교’노력입니다.

 

 

6)책임에 대해

한국사회의 의식은 징용판결 이후 최근 몇달과  70년전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의식은 한일합의를 검증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발표된 최근 몇년과  그런 결과를 만든 90년대 이후 근과거를 향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의 한일간 상호이해부족의 원인은, ‘일본은 사죄를 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게 된, 오랜 세월 진행된 ‘엇갈린 커뮤니케이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숨을 가다듬고 냉전 종식 이후 한일관계를 다시 돌아 보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면서 접점을 찾는 일입니다. 그건, ‘위안부`가 쇠사슬에 묶여 감금된 상태에서 끔찍한 몰골로 일본군의 담력시험대상이 되었다는 내용의 만화가 높은 평가를 받고 유통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원인을 고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의 이미지가 다시 우리 안에 혐일을 만들고, 더이상 언론과 지식인들이 앞장서지 않아도 청소년들이 스스로 혐일을 공유하고 행동에 나서게 된 현 정황에 대해 고찰하는 일입니다.

이는 물론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차세대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차세대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7)인식의 전환을 위해

위안부도 징용도 현재의 혼란은 일제시대에 대한 인식부족 혹은 인식과잉이 만들었습니다.  그 이전에 일제시대 전반에 대해 `왜`를 묻지 않았던  단순한 교육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해를 물으려면 먼저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보다 적확한 논리로 일본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가부에서 배포한 위안부문제 교재에는 오류가 적지 않고, 일본이 사죄를 하지 않았다고 적어 두고 있습니다. `이견’ 을 허용하지 않고 주류연구자들의 주장만 반영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도 지원자도 이제 조금씩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 목소리는 실은 그동안 묻혀 온 `위안부`들을 대변한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수십년 같은 민간단체를 지원하고, 국가가 그저 기존연구와 운동을 강화시키는위안부문제연구소나 교재를 만드는 방식으로 징용문제에 임하는 일은 더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우리의 인식이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여러가지 시대적 상황이 만든 기묘한 착시현상입니다. 언젠가 세계가 그 사실을 인식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인식하고 수정해야 합니다.

 

8) 사죄하지 않았다?

잘못된 인식 중 가장 커다란 것이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사죄한 적이 없다’ 는 인식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앞서의 위안부운동이 퍼뜨리고 정착시킨 인식입니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도 말하는 것처럼 일본은 90년대 이후 식민지지배에 대한 사죄의식을 갖게 되었고 또 그 마음을 나름대로 표해 왔습니다.

그저 `법적`책임을 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두고  `사죄를 하지 않았다`고 가르치는 건 엄연한 호도입니다. 올바른 비판을 위해서는 오히려 일본이 한 일과 한계를 정확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이 불필요한 오해와 소모없이 건전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사태는, 뒤늦게나마 성실히 책임과 마주하고 성의껏 시도해 온 사죄를 인정받기는 커녕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부정당하고,  해외에서도 같은 비난을 받게 된 일본이 참을성을 버린 사태로 보아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런 근과거를 돌아 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한일파트너십선언을 이루어내고 멋진 연설로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김대중대통령의 소중한 유산을 다시 계승할 수 있을 것입니다.

 

9)외교의 역할

‘개인의 권리’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일본법원과 한국법원이 의견이 다르다면 그 때 나서야 하는 것이 정부이자 외교입니다. 양국국민에게 열려 있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양국 협의체제가 필요합니다. 장기대응으로, 과거에 시도된 한일역사공동위원회의 실패를 참고해 사안별로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개인청구권을 일본이 인정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일본이 인정한 건 `한일`양국의  개인 청구권입니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없애 버린 건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의 대법원판결이 옳다면 일본의 개인들에게도 한반도에 남기고 온 재산을 찾을 권리가 생깁니다. 그 때 어떤 혼란이 생길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일본기업이 중국인노동자들에게 배상을 한 건 중국은 중일수교 당시 배상금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혼란을 만든 건 역사를 오로지 기존 ‘법’을 범한 범죄인지 여부로 판가름 해야 하는 ‘역사의 사법화’현상입니다.  이제 다시 역사를 법정에서 광장으로 해방하고, ‘국민의 역사’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로서 마주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개인의 권리’의 진정한 의미도 보일 것입니다.

 

10) 역사와 마주 하는 방식

1965년 협정이 불충분한 것이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틀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에 앞서 어떤 각오가 필요한 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지금의 담론들은 본격적인 검토도 아무런 각오도 없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도 관동대지진희생자등 새로운 피해자가  새롭게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오늘과 같은 혼란을 겪거나  재협정을 맺을 수는 없습니다.

시대적 한계를 인정 한다는 것은 과거를 깨부수고 새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시대에 모자랐던 생각을 재인식하고 이해하고 미래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당시에 협상의 현장에서 나름 온힘을 다 해 애썼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부정적인 역사라면 더더욱 껴안을 각오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자존심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일본을 향해 늘 요구해 오던 것이기도 합니다.

 

11)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부돕기란, 무조건적인 지지가 아니라 충심어린 비판과 조언입니다.

한국은 분명 100년전의 한국이 아닙니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싸워야 하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이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원점으로 돌아가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으면 이기기는 커녕 해답도 보이지 않고, 결과적으로 문제는 장기화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화되는 그날이야말로 한일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하는  날일 것입니다.

전쟁은 이기든 지든 양쪽을 상처입힙니다. 이대로 가면 부정의 연쇄가 이어질 뿐입니다. 식민지배와 내전과 독재를 겪은 한국에는,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자 힘입니다. 과거에 피해입은 개인을 지킬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힘입니다.

지금은 결사항전보다 결자해지가 필요합니다. 일본의 혐한파에 대한 분노보다, 양식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침략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우리의 식민지트라우마가 만든 반응입니다.  진정한 자존심을 만드는 건, 상대를 두려움도 편견도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여유입니다.

자성과 책임의식은 비판과 규탄보다 때로 힘이 더 셉니다. 그런 강인함이야말로, 우리를 일본으로부터 진정으로 해방 시켜줄 것입니다.

독립운동 100년인 금년이, 모두 함께 그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 획기적인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래는 늘 오늘의 선택이 만듭니다.

 

<제언>

김대중대통령은 “외교란 상대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다시 그런 외교가 시작 되기를 바라면서 제언합니다.

1) 정부는 시급히, 일본이 신뢰하는 인사를 선택해 특사를 보내기 바랍니다.

비록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지만 아직 합의를 파기한 건 아니라는 설명을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합의를 이끈 야치쇼타로안보국장과의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치국장과 신뢰관계 속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적임자가 필요합니다.

2)징용문제에 관해서는

1, 신일철등 일본기업의 자산매각을 막아야 합니다. 중국인 노무자에 대한 화해때와 달리 일본정부가 나선 건 해외국민에 대한 외교권발동의 차원으로 보아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2,정부는 30개 가까이 된다는 노무/징용단체들의 목소리를 먼저 수렴하기 바랍니다. ‘일본기업의 배상’판결을 받아낸 소송의 원고들은 노무징용자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판결문제의 해결이 곧 징용문제의 해결이 되지는 않습니다. 노무/징용자들 중에는 한국정부의 보상을 원하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대리인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수렴해야 합니다.

3, 징용문제에 관해서는 연구가 꽤 축적되어 있습니다. 법조인 뿐 아니라 당사자와 학자의 다양한 의견이 전부 참조되어 그 안에서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3)

‘위안부’할머니들께 지급하고 남은 일본의 돈 50여억원과 한국정부가 마련한 100억을 합쳐  <한일 과거사문제 협의체>를 만들것을 제안합니다. 그 협의체가 독도문제, 위안부문제, 징용문제등 각 분야별로 접점을 찾기 위한 대화를 통해 갈등을 슬기롭게 넘어설 방안을 강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폭피해자문제, 관동대지진피해자문제등 우리에겐 그 실태가 아직 충분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더 알려져야 하지만, 또다시‘소송`이라는 방식에만 의존할 경우, 현재와 같은 갈등은 앞으로도 수십년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이 협의체가 그런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대처하는 기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분과별로 논의하되 가능한  한 다양한 의견을 모아 논의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거기에서의 경험 축적은 언젠가 북한과의 교류가 더 자유로워졌을 때 제기될 문제에도 유효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한일역사공동위원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기주장뿐 아니라 상대의 말에도 귀기울일 줄 아는 인선이 필요합니다.

분야별로 논점과 찾아진 접점을 공개하는 작업을 통해 양국민들의 상호이해를 촉진시킨다면, 언젠가 한일평화의 날은 올 것입니다.

IMF총재가 한국을 “집단자살사회”라고 말했다는 것

IMF총재가 한국을 “집단자살사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의미가 다소 애매하고 어감도 좋지 않지만, 이화여대생들과의 대화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나온 소회인 듯 하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다.
저출산고령화가 문제시 되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중국교포를 비롯한 이주민들이 들어오니 인구문제는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얼마전 어떤 기사를 보니 유입되는 이주민조차 줄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은 자국민에게도 그렇지만 이주민들에겐 그 이상으로 따뜻한 나라가 아니니. 더구나 가난한 이주민들을 그저 자국의 “경제이익”이나 “재생산(출산)” 목적을 충족시켜줄 도구로만 대하고 있으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재생산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타박하지만, 그 문제 역시 입양으로 해결될 수 있다. 사실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제도로 바뀐 근대가 둥그런 앉은뱅이 식탁에서 4인용 식탁으로 바뀐 시대였다면, 그리고 그 시대가 여전히 “혈연”을 중심으로 한 親가족주의시대였다면, 홀로 사는 가구가 가구전체의 4분의1을 넘었다는 이시대야말로 “함께 혹은 홀로” 의 식탁의 면면이 바뀌는 게 당연한 시대가 아닐까. 물론 혈연중심 대가족제도로의 회귀도 포함한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동네살리기/지역살리기의 천편일률적인 발상과 정책에 대한 이의제기다. 대부분이 그저 역사나 자연에 의존하거나( 그러느라 남의 역사를 뺏어오고 보잘것 없는 자연을 과대포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사실 관광지로서의 일회성 만족을 충족시키는데에 그친다) 관공서/기업유치와 거대건물로 눈길을 사로잡아 보려 하지만, 오히려 “오늘”과 “일상”과 미래”에 초점을 맞추어 봤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마을, 장애인이 살기 좋은 마을, 노인이 살기좋은 마을, 취직못한 젊은이들의 자활을 돕는 마을, 개나 고양이가 살기 좋은 마을..
이런 것들을 만들다 보면 자치단체도 집중할 수 있으니 마음다해 꾸려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특징이 자신에게 보다 소중한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그러다보면 아이와 노인과 동물을 위한 삶에서 새로운 철학과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 대상과 자신의 쾌적한 삶을 위한 상품아이디어/기업도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다른 지역과 세계가 벤치마킹을 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모든 지역이 그만그만하게 모두에게 쾌적한 (최소한 가혹하지 않은) 공간으로의 탈바꿈을 할 수 있지 않을까…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발상은 거꾸로여서(그나마 모두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모두가 주목하는 곳을 만들려는 현시욕이 앞선 탓에) 결국 모두에게 각박하고 결국 모두가 고독한 사회/국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살고 싶지 않은 사회로 느끼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많아져 가는 한 “집단자살”까진 아니더라도 “집단자폭” 사회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사실, 사람을 문 개사건을 보면서 든 생각이기도 하다.
말 나온 김에 말하자면 저녁마다 걸어서 작은 음악회에 갈 수 있는 곳, 작고 아름다운 영화관이 있는 곳, 동네사람이 셰프이자 음식점 주인이어서 반가운 인사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내 책도 받아줄 작은 도서관이 있는 곳, 개와 고양이를 좋아해 개와 고양이 판이지만 남에 대한 배려와 자치체의 관리가 충분해서 기분좋은 산책을 가능케 해 주는 곳, 산책 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미술관/갤러리들이 박혀 있는 곳, 그런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동네에 많아 언제고 같이 밥먹고 차마실 수 있는, 배려와 미소가 넘치는 그런 동네/도시에, 나는 살고 싶다.

관념사회

2년전에 이렇게 쓸 때는 보수에겐 윤리성이, 진보에겐 합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건데, 그동안 우리사회 “윤리”는 그저 더 도구화 되고 만 것 같다.
모두가 “정의”를 장착하고 안심하는 사회. “개념녀”라는 단어로만 개념(본질)이 소비되는 사회. 민족주의가 강하지만 기회만 되면 모두가 떠나고 싶어하는 사회.
본질과 진실에 가 닿지 못하면서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 그렇게 만드는 얄팍한 피상성이, 우리사회를 좀먹고 있다는 생각.

Park Yuha
September 25, 2015 ·
보수인지 진보인지 구별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윤리적인지 합리적인지가 중요할 뿐.

광부/계급/이동

1908년, 그러니까 109년전에 일본의 문호 나츠메소세키가 남긴 <광부>라는 작품이 있다. 자신의 체험을 써 달라는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소세키가 이 작품을 쓰게 된 이유는 오로지 그 체험이 말하는 절망성에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애문제로 고민하다 자살하고 싶어 했던, 유복한 집아들 열아홉살 청년이, 우연히 광부가 되었다가 (병을 발견했다는 핑계) 곧바로 그만두게 되지만, 소설 속에서 강조되는 건 글자그대로의 땅밑, 깊은 암흑의 세계다. 자살하고 싶은 생각도 사라질 정도의 죽음의 세계. 혹은 죽을 수 있는 사고 위험이 언제나 함께 하는 세계.
세상에 힘든 노동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광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끔찍한 노동중 하나가 아닐까. 소세키는 지극히 관념적으로(지식인의 시각으로 ) 그 세계를 쓰고 있어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 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10 년전 지식인에게 탄광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낯선 공간이었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기는 하다.
소세키의 이 작품은 프롤레타리아 문학조차 못되지만, 일본 작가들은 이후 그런 노동자/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이른바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많이 썼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 <게공선>으로 한국에서도 꽤 알려지게 된 고바야시 다키지는, 이 작품으로 판매금지, 불경죄 기소, 수감당한 끝에 당시 공산주의를 불법화했던 이른바 치안유지법 단속 대상으로서 특고경찰에게 벌거벗겨져 몽둥이로 맞은 끝에 사망했다. 1933년 일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근대란, 사회주의자를 사형시키고 노동자문제를 고발한 지식인을 때려 죽이기도 한 시대였다. 자국의 지식인조차 그런 정황에 놓여 있었을 때, 언어마저 미숙했을 “조선인 광부”에 대한 대접이 어땠을지는 체험담을 (보고도 알 수 있지만), 읽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시마에서 일한 사람들의 고통을 오로지 “강제연행당한 조선인”이었기 때문만으로 보는 건, 수십년전엔 다들 알고 있던, 참혹한 노동에 수반되는 계급성을 소거시키는 일이고, 결국 사태를 제대로 보지 않겠다는 얘기 밖에 되지 않는다.
오래전에 “이동”에 대해 공부하면서, 1960년대 독일로 간 광부들이 살아야 했던 것은 일본인 광부들이 살았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적이 있다. 그리고 한국인 광부들이 돌아오고 난 이후 그곳에 살게 된건 베트남인들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본은 국경을 넘어 싼,혹은 힘들고 위험한 일도 해 줄 노동력을 찾는다.
현재 우리가 동남아시아계 외국인노동자를 차별하는 건 그가 동남아시아 출신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힘든 노동이라도 절실한, 가난하고 언어소통조차 매끄럽지 못한, 그래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이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인가? 혹은 그 두가지가 합쳐진 건가?
성급하게 대답을 결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늘 잠시 멈춰서서 생각하는 자세 쪽이다. 반복을 막는데 도움이 되는 건 그 쪽이기 때문에.

혐한을 생각하기

어제 지원단체장의 일갈에 언론들이 나서서 비난한데 대한 비판을 썼지만, 그 내용이 옳기만 하다면 당연히 문제될 것이 없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그들의 발언에 곧잘 무/의식적 과장과 독단, 때로 왜곡이 섞이곤 한다는 점에 대해서였다.
2주일 전 학회에서는, 미국거주 일본인학자–최남선을 연구해 왔다는 여성학자가 “솔직히 말해 이제 더이상 한국을 연구하기 싫다”고 말하는 걸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 일본인의 혐한이 학계에까지 확산된다는 건,
차세대 한국연구자들이 줄어드는 걸 의미한다.
얼마전엔 전주한일본대사가 한국비판 책으로 비난받은 사건이 있었지만(물론 그 자체야 결코 칭찬할 일이 못 되지만), 사실은 비난만 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학자나 외교관—상호이해를 위해 노력해 온 이들조차 혐한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좀더 심각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모든 감정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최근엔 百田尚樹라는 작가가 낸 <이제 한국에 사과하자>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데, 작가 자신이 쓴 글을 보니, “우리가 당신들의 생각을 물어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지배했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있지만, 정말은 ” (문명을 받아들일 능력조차 없는) 당신들을 바꾸려 해서 미안해”하는, 조롱으로 가득한 책으로 보였다.
물론 그런 그들을 비판하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우리는 그런 정황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그저 그들한테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에 있다. 그리고 그런 한 현상황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데에 있다.
여전히 잘못된 기사들이 넘치는 (강제연행 증거! 라면서 나오는 보도들이 보여주는 자료는 대부분 일본이거나 중국이거나 혹은 인도네시아등 동남아에서의 일이다) 언론현실과,그런 언론에 기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국민현실을 이시점에서 한번쯤 생각하고 개선하지 않는 한, 사태는 분명 더 심각해진다.
아마도 정부는 당분간 청년들의 일본 기업취직이니 한미동맹이니 한일스와프 협정등 때문에 어느정도 눈치를 볼 것이다. 하지만 불신을 안은 채 그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도대체 뭐가 잘못 되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청년들과 차세대를 위해서라도.
이전에 쓴 글들을 정리하다가, 이하의 글을 만났다. 2년 전 글이지만 상황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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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친일”이라는 딱지는, 익숙하지 않은 생각에 대해서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는 지적태만을 드러내는 사고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복잡하고 섬세한 문제들을 단순하고 거칠게 뭉뚱그려 결과적으로 폭력을 만드는 사고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그런 딱지를 두려워해 침묵하거나 딱지를 붙이는 쪽으로 돌아서고 마는, 전체주의에 가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대세와 다른 말은 하지 못하는 자폐적 공간이 확장되고 있고, 자유로운 사고의 주인공이어야 할 젊은 학생들조차 자기검열에 급급한상황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입니다.
그런 지적태만은, 일본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까지 허용했고, 결과적으로 한국사회에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특히 피해자관련 혹은 영토문제 관련단체들은 위안부문제에 관해 언급할 때마다 일본을 군국주의국가라고 비난해왔고 그 결과, 2015년 현재, 한국인의 70퍼센트 이상이 일본을 군국주의국가로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나도록 사죄와 반성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전히 타국의 영토를 호시탐탐 노리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갖도록 만든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인식이 불식되지 않는 한 한일간의 화해는 어려울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2015년 현재의 언론과 외교와 지원운동이 지극히 자폐적이 되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일본에서는 이제, 위안부를 위한 <아시아여성기금> 의 모금에 참여하는 이들의 존재를 더 이상 상상하기힘들만큼 국민감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언론과 외교와 운동은, 그런 현황을 직시하기보다 일본의혐한파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사고와 주장만을 반복중입니다. 위안부문제를 생각하는 일은, 늦었지만 이러한 현상황을 파악하고 일본을 총체적으로 아는 일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기억의 정치학을 넘어서>)

フェイスブックから、2017年5月11日

今回の大統領選挙で安哲秀候補を支持した私に対して、フェイスブックの友人の多くが失望あるいは憤慨したようです。私のことが革新的に見えていたのは、表面的なものに過ぎなかったと思われたようですね。
日本について意見を述べるというだけで、私のことを、日本との「妥協」支持者あるいは担当者だと考えたがっていた人々の「念願」あるいは「呪文」が表面化したと言え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私にはその現象が、安哲秀は洪準杓と連帯するはずだとしてきた、間違っているだけでなく、悪意に満ちた期待と、とても似ているように見えます。
実際、どこに焦点を置くかによって、革新の基準は異らざるを得ません。私は、私たちの社会の革新、保守という区分が、もはや意味のないものになっていると考えており(最も革新的な男性が最も家父長的でもありますから)、あえて言うなら、私の価値観はむしろ急進(という表現も実は適当ではありませんが)に近いということを長い間の付き合いのフェイスブックの友人たちはご存知でしょう。
それでも、私の志向が、資本と国家の問題をわかっていないことに由来する無邪気なものだという人もいました。疎通が十分でなかったせいでしょうが、そのような断定から、私はフェミニズム論争の頃から考えていた「概念の浅薄化」とでもいうべき状況がもたらした現場を再度発見しました(これについては、いつかまた書きます。今は詳しく書く気力がありません)。
私が葛藤の治癒に関心が高い理由は、憎悪と差別と敵対が、不和と戦争をもたらし、他者の生命を奪う根源にあるものだからです。そして多くの場合反知性主義的な態度が作る偏見と敵対が、いかなる暴力を生み出すのかは、私をめぐって起こったことが十分に説明しています。
私が今回の選挙で悩んだ末に、保守/進歩の既存の構図を打ち破るという安哲秀候補の試みを誰よりも進歩的な試みだと考えた理由も、そこにあります。それは政策ではなく、方向性への支持でした。
そして、失敗はしましたが、その試み自体は、韓国社会に未だ訪れていない、それゆえに「革新的」な価値であると考えます。その到達点は、恐らく統一であり、東アジアの平和でしょう。私の志向性を、単に分裂を「無化」させるものだとか、国家間の政経癒着的な和解とみなそうとする理解は、学問と政治の違いを無化させる大変単純な理解だと言えます。私はいわゆる「政治」に大きな期待はしていないけれど、それでも時に全ての学問を超える価値の実現が可能となるものとして、なおその役割に期待しています。それは、学問的には厳しい批判が可能でも、政治的にはその曖昧さを許すことに繋がります。
今回の選挙では、どんなに革新的な候補であっても、彼らの支持者たちが、口にするのもおぞましい悪態を私に浴びせかけたり、よく知りもせず嘲笑した人々でもあるというアイロニーが、私には存在しました。そのため、私には、代議民主主義を具体化させられる候補自体が存在しませんでした。そのようなアイロニーを抱きながらロウソクデモに参加し、投票に参加したのは、ただ、その多数の隙間のどこかにいたはずの「彼らの中の別の存在」と連帯したかったからです。フェイスブックが私に教えてくれた存在、つまり皆さんです。

選挙は終わりましたが、文在寅大統領を誕生させるための自らの運動を、書きたい小説を書くことに集中したかったからだと述べた作家の言葉を遅ればせながら見つけました。また、新たに始まる文在寅大統領時代を「詩だけを書いて研究にだけ専念できる太平聖代」の始まりだと見做す詩人もいました。
しかし、私にはそのような時間はまだ来ていません。長い苦痛の果てに無罪判決が下されたにもかかわらず、むしろより陰湿な石が私に飛んで来ます。何よりも、私をそのような苦難に陥れ、積極的に加担した人々が保守ではなく、「革新」層だということが、私のジレンマです。彼らと最も近い場所にいた候補が、文在寅候補でありましたが、社会構造に対する問題意識を彼から見出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に、私は彼を支持できませんでした。
私の本は、革新の中の欺瞞について問題提起しているだけです。しかし、待っていたのは公開討論ではなく、長い沈黙と、口封じでした。また、同じような欺瞞と暴力を今回の選挙でも、見せ付けられました。
私にとって、文在寅政権が新しい時代になる日は、<革新>層の中に存在する欺瞞と暴力を、革新層みずからが認識する日です。私への嫌悪や抑圧に対する「主流革新層」の沈黙が破れる日です。その日が来ない限り、私にとって文在寅時代も朴槿恵時代と変わりません。
参考までに申し上げれば、私を非難していた人々も、慰安婦問題をもっと知るようになれば、考えが変わると確信しています。もちろん、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ものがある人には期待していません。
3年近く、裁判の反論のために止むを得ず多くの資料を見ましたが、私の考えを修正する必要を感じませんでした。さらに大きなアイロニーは、私の苦難が、実は本の問題でさえ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す。排斥は、知識人の偏見と排斥主義が、告訴は、ロースクールの学生と弁護士の蛮勇さと運動家の策略が作り出したものでした。
このことについてもっと詳しく書かなくてはなりませんが、まだできずにいます。判決後、3ヶ月以上経ちましたが、緊張が解けたのか、気力と体力が回復していないためです。彼らの中からもこの問題を提起する人が出てくることを期待しています。

少しフェイスブックをお休みします。その間、フェイスブックの友達を削除したい方はどうぞなさってください。無罪判決の出た日、「いいね」を押してくださった方が2千数百名いました。その方たちだけが残ってくださったとしても、とても多いのです。
選挙結果について、「パルゲンイ(赤)国家」云々する方については、私から削除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フェイスブックの友人の整理をする余裕がないため、これまで承認を待ってくださった多くの方には、心から申し訳ないと思っています。もう少しで友達承認できるようになると思います。

17年前に最初の日韓関係論を出した時から、私は綱渡りをする心境で書いて来ました。
17年が過ぎた現在、私が立っている空間は、ようやく足がつける程度の面積です。あえてこのような空間に立っているのは、稚気や周りに逆らおうとする情熱があり余っているからではありません。その面積がいつかはもっと広くなるという確信を持っているからであり、その空間が必要な人々がいると思うためです。
狭くて危なっかしく見えるその空間に、共に立ってくださったり、支持してくださる方だけが残ってくだされば嬉しいです。可能なら、私が会いたいと思っていた方々とまた会えると嬉しいです。
(1月に行った「無罪判決を記念する毎月の会合」も継続できず、個人的に会いたい方にも連絡できませんでした。心身の状態があまり良くなかったためです。しかしまたすぐに連絡できるでしょう)
近頃私を非難したツイートを添付しておきます。このすさんだ「言葉」に、改めてやるせない気持ちになります。「和解は加害者が先(許しを請うことから)」だと説教した方が多くいましたが、この言葉もやはり、私の本を理解できていないだけでなく、先に述べた「概念の浅薄化」が生み出した言葉です。

2017・5・11

翻訳: 金良淑

축약도

백옥주사니 태반 주사니에 이어 나온 비아그라 얘기는 실소할 수 밖에 없지만, 웃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기들면 가는 동네의원에도 무슨무슨 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안티에이징 치료”가 나붙은 지 이미 오래고, 그건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우리사회의 축약도이고,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번 사태는 잘 된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입가경인 이 사태를 두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결코 자랑이 되지 않는 우리의 자화상을 상징해 주는, 청와대의 수치를 외면하지 말고 잘 보자. 중심에 있는 이들의 외모와 젊음과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학대와 가난으로 죽어가는 약자들의 존재와 대비되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의 양극화와도 결코 같지 않은.
오늘은 법무장관등이 사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그나마 기쁘다. 대통령도 수치를 모르는 나라에서, 수치감의 표명으로 보이는 첫 행보.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551686404858268

대통령의 근무

연구자들은 연구실에서만 연구하지 않는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도, 나도 “사저집무실”(서재)에서 재택근무하는 거 좋아한다.
하지만 그건 혼자 해야만 하는 일(읽고 쓰기/연구와 집필)이 교수의 직무중 하나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주보며 해야 하는 일– 회의나 강의까지 서재에 앉아 이메일(서면보고란 종이였을까)이나 전화로 하진 않는다.
대통령은 그 시간에 왜 회의를 하지 않았을까. 왜 다른 이들의 지혜를 모으려 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이 모든 판단에서 우월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우수한 인재들을 주변에 둘 수 있는 사람보는 눈과 인덕이 있어서, 그 브레인들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대통령은 “출퇴근 개념이 없고 모든 시간이 근무시간”이라는데, 정말이지 그러길 바랐다. 구하지 못한 생명들과, 하다못해 구해야 할 생명들 생각으로라도, 잠못드는 대통령이기를 바랐다.
관저건 본관이건, 집무실을 그저 지킨다고 “근무”가 되는 건 아니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549562481737327

올랜도 총기난사

미움과 경멸(차별)은 폭력을 만든다. 끔찍한 살인자가 된 29세 ‘보통’ 청년의 미움과 경멸의 대상이 미국인이었는지 게이였는지,그가 없는 이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미국에서 자라면서도 미국인의 생명을 경시하고, 게이들의 행복을 경멸하고,빨래를 잘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휘두르도록 만든 것이, 그가 받은 교육임은 분명하다. 애국심과 인종주의와 여성차별은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한 총기단속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타자의 일상과 생명을 한순간에 엉망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생각을 누가 정당화하는가. 함부로 “그들”로 규정짓고, 그들이 더이상 세상에 없어도 된다고 누가 ‘함부로, 쉽게’ 생각하도록 만드는가.

‘보통’ 청년의 집단살인사건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안에도 내 안에도 폭력범은 있다. 늘, 언제나. 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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