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2/15-2

내일 오전 10시에 민사재판 결심이 있다. 연기된 형사재판은 1월20일로 정해졌다.

며칠 전엔 일본 아사히 신문 전주필이 나의 책을 위안부할머니를 명예훼손하는 책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칼럼을 써 주었었다.
오늘 읽게 된 SBS기자의 글은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함에 호감이 갔다. 정리에 일부 오류는 있지만, 시간을 두고 마주해 준 마음이 고맙다.

고발된 건 2014년 6월 16일이었다. 그동안 고발자체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는 극소수였다. 그리고 그들은 원래 나의 책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던 이들이었다.
이제, 그렇지 않았던 이들이 새롭게, 나의 책을 진지하게 읽어주기 시작한 것 같다. 꼭 1년 반만의 일이다.

최종심의 판결은 1월에 내려지게 된다. 어떤 새해가 될 지 알 수 없지만, 내일은 고요한 마음으로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http://news.donga.com/…/3/70040100000103/20151210/75282476/1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5&aid=000035862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7149198645325

渦中日記 2015/10/19

어제 유달리 건조하다고 느꼈던 건 감기가 오는 전조였던 것 같다. 바쁜 일정들 대충 끝내고 좀 여유롭게 지낼 수 있겠다 생각했던 첫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결정해야 하는 몇가지 일이 있어서 머리를 아주 쉬어 주지는 못한다.

2주일 전엔 오랫만에 검찰에 갔었다. 이제 곧 결정해야 할 “조정”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여름부터 3회의 가처분재판, 5회의 검찰조사, 3회의 민사재판을 받으며 느낀 것은,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의 책에 관해 논하는 일의 무의미함이다. “법”의 틀 안에서 사고하는 일이란 “이미 존재” 하는 규범에 근거해 사고하는 일이어서, 나와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자체가 다르다는 걸 나는 법학자들의 사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위안부문제가 학계에서는 어떻게 이해되어 왔고 운동은 어떠했으며 나의 주장은 이러한 것이라는 주장을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말해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동안 원고측 주장에 최대한 답변해 왔지만, 검찰은 “정말 나쁜”일을 한 수많은 사람들을 조사하고 구속하는 일만으로도 바쁠테니 국력을 소모하는 일에 나역시 가담해 온 셈이다.

최근 등장한 “고소사회”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소모가 많은 사회에 살고 있다. 결코 그럴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하긴 늘 그랬는데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만큼 에너지가 넘쳐난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에 대한 고발은, 할머니가 아니라 내가 비판했던 주변인들이 제기했고 주변인들의 의사만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최근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재판에 대한 나의 회의의 첫번째 이유였다.
법의 억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답변을 해 왔지만 그런 의미에선 나역시 나를 엉뚱한 방식으로 소모해 온 건지도 모른다. 1년하고도 4개월동안.

날이 흐리다. 비가 온다면 어젯밤 포스팅은 “기우제 포스팅”이 되는 걸텐데. 그랬으면 좋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1641782171846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7/28

우연히도, 어제와 오늘,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에서 나에 대해 언급한 기사가 났다. 어제 칼럼은 정우성대표님이 태그해 주셨으니 오늘기사만 우선 번역해서 올려 둔다.
마이니치신문은 얼마전부터 90년대에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실시했던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심층취재한 기사를 연재중이다. 그 공과(功罪)를 마주하려는 기사인데, 이렇게 말하는 기금에 대해 사죄의식이 없는 “꼼수”였다고 말한 것이 지원단체들이었다. 나는 책에서 그 부분을 비판했는데, 할머니들을 비판한 것처럼 왜곡유포된 것이 고발이라는 사태였다.

이달말로 닥친 형사고발조정과 다음달에 있는 민사재판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 변호사사무실로 향하는 오후.
——

못다한 식민지책임

<전후일본의 반전사상이 국민들에게 뿌리내린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식민지지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오지 않았던 거 아닐까요>

금년 6월, 동경의 호세이대학에서 열린 일본사회문학회 30주년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한국/세종대 박유하교수는 그렇게 물었다.

부부이야기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 나츠메소세키 <명암>에는 가난 때문에 조선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근대소설을 바탕으로 박교수는 제국이 국민의 이동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 이주가 전쟁을 염두에 둔 국책이었다는 점,일본에서의 기민(棄民) 들이 식민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적했다.

그리고 위안부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요한 건 누구나가 기피하는 일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강제인지 매춘인지 하는 논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하고 말했다.
그의 전문인 일본근대문학에 그려진 식민지의문제는, 역사문제논의에도 반영되었다.

2006년,아시아여성기금이 연 국제심포지엄에 패널로 참석했던 박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 발언했었다.
금년 5월에 서울에서 식민지에 대한 관심에 대해 다시 물었을 때도 <개인적으로 차별당한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인여성이라는 사실은 관계가 있습니다. 좋아해서 시작한 소세키연구가 진보지식인으로 불리는 것에도 의문을 가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저술한 것이 화제작 <제국의 위안부>이다. 교토의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금년 2월에 열린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워크샵에서는 왜 썼느지,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햇다.
<위안부가 목소리를 낸 1991년, 누구나가 식민지지배문제로 이해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 위안부문제논의에서 제국의 문제가 빠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본남성의 문제로만 축소되었습니다 >

<조선의 여성은 “애국”을 당했고 일본인이 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조선인 위안부상을 통해 식민지지배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 겁니다. 일본이외의 다른 제국국가의 문제도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서구일본학자들에 의한 금년 5월성명에는 <제국에 관련된 인종차별, 식민지주의와 전쟁,그리고 그것이 (중략)시민들에게 끼친 고통과 충분히 마주해 온 나라는 아직 어디도 없습니다> 라는 말이 이오진다. 그리고 일본정부에 대해 <과거의 식민지배와 전쟁당시 침략문제와 마주하라>고 요구했다.

박교수의 화해방안은 책임을 무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한국판을 둘러싼 형사/민사쟁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책임은 과거의 제국 전체를 향한 난제가 아닐까.(기시도시미츠. 岸俊光)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6491844686840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6/16

작년 오늘, 6월16일에 고발을 당했다.
아침에 지인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오늘은 율리시즈에 나오는 Bloom이 더블린을 산책한 날인 “Bloom’s Day”라고 했다. 1904년, 111년 전 6월16일.

토요일에 발표해야 할 원고를 아직 쓰지 못해 여유가 없지만, 좀 편해지면 오랫만에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그래서 문득 들었다. 이 1년, 전쟁처럼 보내느라 “타인의 시간” 을 게으르게 따라가는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대신,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만나기 전에 헤어진 사람도 많았다.

이 365일, 모욕과 적대를 온전히 받아내야 했던 , 슬픔과 우울의 시간을 견뎌 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늘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었던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과의 만남과, 주신 마음에 새삼 깊은 감사 전합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멋진 분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렵니다.
인생은 결국 그런 것인 듯 합니다.

1년이나 지났으니 정말로 일상의 리듬을 찾고, 아직 만나지 못했던, 만나고 싶은 분들과, 만날 궁리를 이제 좀 해야겠습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37331336293779

渦中日記 2015/6/10

1년전에, 가깝게 지내던 위안부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무렵에 올렸던 글과 할머니의 영상들이 나눔의집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이 아침, 배춘희 할머니의 명복을 다시 빈다..

어제 젊은 연구자들의(대부분 남성으로 보이는데 이 점이 내겐 흥미롭다. 위안부문제 연구자 빼면 내게 비판적인 학자들은 대부분 남성인데, 그 이유를 조만간 쓸 생각이다)내게 대한 비판이 포스팅된 걸 보았다.
지금 좀 바쁘고, 아직 더 올린다니 필요하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한가지만 우선 말해 둔다.

내가 한 것으로 전하는 이들의 요약에는 내가 하지 않은 말(글)들이 있다. 내가 실망하는 건 이 부분이다. 얼마전에 윤명숙 선생도 일본신문에서 내가 “일본 국가책임보다 업자 책임을 더 강조”했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조선인 업자가 더 많다”고 쓰지 않았고 일본인업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강제연행은 없었다”고도 쓰지 않았다.
내나름으로 신중하게 접근한 기술을 거칠게 정리하면서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려 하는 이들의 눈과 심리가, 나는 진심으로 걱정된다. 패기는 때로 세상을 바꾸지만, 만용은 해악일 뿐이다.

정영환교수의 비판에 대답할 시간을 여전히 갖지 못했지만(일본어 비판의 경우, 지원자들은 다수고 나는 혼자 대답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하지 않은 말로 나를 비판하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 나를 위축시킨다)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하니 반론을 조만간 간단하게라도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왜곡을 단순한 오독으로 치부하거나 웃고 넘길 수 없는 건, 다들 알다시피 나는 지금 고소당한 몸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 나를 “형무소에 넣고 막대한 돈을 지불케 하라!”는 요구와 싸워야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유하의 책은 나쁜 책”이라는 이들의 말들은 우선은

1.재판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 대한 고발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그럼 하고 싶은 비판도 못하느냐”고 말하겠지만 그런 구조를 만든 건 지원단체와 일부할머니들이다. 비판을 하고 싶다면 먼저 고발을 취하하라고 말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2. 내가 책에 쓰지 않은 말,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하고 쓴 것처럼 말하는 건 “허위배포”다. “학자의 말”이면 그에 해당되지 않는 건지 여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오늘이후에도 올리겠다고 한 내용, 지금이라도 재확인하고 내보내 주기 바란다. 내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훗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삭제판도 일본어판도 판매하지 말라”고 나를 옥죄는 이들의 선두에 명색이 학자인 이들이 서 있다는 것이, 내겐 작금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또하나의 풍경으로 보인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31391193554460

渦中日記 2014/12/16

<노골적불평>을 포스팅하는 건 위로받고 싶어서인 게 내가 봐도 뻔하다. 그런데 실제로 위로를 받으면 많이 민망하다. “나 힘들어요!”를 한정된 관계가 아닌 만천하를 향해 외치는 일이란 옷벗고 거리에 나선 거나 마찬가지일 터. 페북에는 수많은 거리관계가 공존하기 때문에 드는 감정일 것이다.

그럼에도 명색이 <渦中日記>이니 재판의 <과정>뿐 아니라 심경과 상태도 남겨 두어야 맞다는 생각은 한다. 씩씩한 모습, 의연한 모습만 남긴다면 좋은 모습만 남기려는 의도가 노골적인 “역사교과서”와 뭐가 다를까. 역사도 좋아하지만 문학을 좋아하는 건, 문학이 모든 악을 포함한 인간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이기 위한 일기가 아닌 바에야, 역사 아닌 문학을 지향하고 싶다. 해피엔딩이 될런지 <옥중일기>로 이어질런지 알 수 없지만.

“인권”–“나의 본연의 삶을 누릴 권리가 필요해!”라고 외쳤더니 일본인친구가 아마존의 사진을 보내 주었다. 며칠 전부터 내 책이 <일중/태평양전쟁>분야에서 베스트셀러1위를 오르내리고 있다고. 음.책 팔리면 평화운동에 쓰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우선은 나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 주셨던 김관기변호사님과 친구들에게 한턱 쏘아야겠다.

고발당한 날짜, 그 소식을 듣고 “목이 탄다 “는 것이 무언지 처음 알았던 그 날짜에서 꼭 6개월이 지났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842609485097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0/19

어제는 오래 미루어 왔던 일을 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기 위한 작업.
그런데 언론 중에도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문제가 심각했던 건, 양극단의 “적대적공존”이라는 우리사회의 현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만 것이 아니었을까.

과거에 쓴 내 책이 “일본우익을 대변”했다고 쓴 한겨레는 벌써 5년 전에 “일본우익의 찬사”를 받았다고 쓴 적이 있다. 그 때도 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요청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 때 하지 않았던 선택이 5년 후에 이런 사태를 불러왔는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를 일본우익의 대변자로 몰고 싶어하는 한겨레의 인식은 사실 재일교포학자가 퍼뜨린 인식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인식이, 고발장에도 차용되어 고발이라는 폭력을 뒷받침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사상은 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원고측 요청으로 미루어졌던 2차심리가 이번주 수요일로 다가왔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이제 중반.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0578661969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