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5-2

일본어판을 만든 편집자가 보내준 어제날짜 마이니치신문사설을 보면 일본인들이 내가 던진 공을 받아 주었다고 느낀다.
이런 자료들을 법원에 제출하면 다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원고측은 일본인들이 내 책에 호응하는 건 내가 일본의 나팔수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겠지. 재판이란 서로 소설을 쓰는 거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는 우울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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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담화에 필요한 것은,전후 50년 때 발표된 무라야마담화를 전후일본의 흔들림없는 기반으로 삼고,그에 입각해 미래를 전망하는 자세일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과거의 한 시기에 국가정책을 잘못 정하여><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아시아국가들에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끼쳤다>라는 인식이 핵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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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의 오보를 계기로 위안부문제 제기자체를 부당하다고 하는 논조가 생겨나고 있다. 사실관계를 수정하는 건 필수적이지만, 위안부를 필요로 했던 사회의 추악함은 어떤 반론으로도 변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박유하 세종대 교수는, 최근저서<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설을 비판하면서 <전쟁에 동원된 모든 이들의 비극 안에 위안부의 비참을 위치시켜야 성까지도 동원하는 “국가”의 기괴함이 드러나게 된다>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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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역사를 배타적인 민족주의로부터 차단할 때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야만 그 주장은 받아들여진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는 편협한 자기중심역사에 갇혀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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