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우울>
87세의 일본인목사님이 만나자 하셔서, 종로YMCA에서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왔다.
오야마레이지 목사님. 제암리교회사건에 대한 사죄운동을 펼쳐 재건되도록 힘쓰신 분이다. 2012년여름, 와세다대학에서 강연했을 때 아드님 며느님을 대동하시고 와 주셔서 처음 만났는데, 이후 해마다 사진이 들어 있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 주신다.
이제 고작 두번째 만남인데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그 분이 자신이 겪었던 고충을 얘기하시면서 “당신이 옳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알게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단지 옳다는 것이 증명되기 위해서라면 너무 힘들다…고 순간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분이 나보다 삼십년이나 위이시고 목사님이라는 것이 나를 방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내겐 지금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의 배경과 구조가 명료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걸 전부 말하지는 못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고작 고발장에 대한 반박이나 그 고발장의 생각을 지지하고 실제로 지원하는 이들의 사고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일 뿐이다. 그나마도 충분하진 않고, 나머지 부분은 내 안에 쌓인다. 내 손과 체력이, 혹은 이런저런 배려들이 그걸 다 말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느긋한 내용의 포스팅을 했더니 한 페친이 가끔은 그런 글을 올리라 하셨다. 그러겠다고는 했지만 최소한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나는 근본적으로는 “총체적 우울”의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설사 변호사님 말씀대로 “즐겁게, 유쾌하게”싸운다 해도.
사태 이후 내가 페북에 쓴, 일상으로 돌아왔다던가하는 식의 글들, 다른 이의 포스팅에 다는 댓글을 포함해서, 밝다 못해 경박해 보일 수도 있는 글들은 어떤 의미에서 내겐 우울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인 부분도 있다.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내 몸을 그곳에 두고 싶은, 밝고 고요하고 깨끗한 영혼들에 대한 화답. 내가 변함없이,늘, 씩씩하기를 바라는 그들에게 전하는 안부.
그러나 나는 때로 씩씩하고 때로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건, 교보문고에 내 책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고 페친이 알려줘도, 기쁘기보다 그 책을 향한 적의를 동시에 느껴 버리는 식으로 내 영혼이 총체적 우울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정권, 세월호사태, 이웃과 사회의 이런저런 소식들. 2014년의 한국은 나에 대한 고발사태가 아니어도 우울할 수 밖에 없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러니 우울에 짓눌리지 않고 또다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건 거의 의무일 지경이다.
누군들 그런 우울에 빠져 보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학대, 이웃과 상사의 경멸, 선생님과 친구와 애인의 무관심등, 태어난 이후로 우리는 수많은 노골적이거나 눈에 띄지 않는 폭력을 견디며 살아왔고 살아간다. 언젠가 용서할 수 있기 위해서.
” 총체적우울” 속에서도 우울증에 빠지지는 않도록, 그럼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해 주는 건 사람이고 자연이고 문화-표현들이다. 과거와 현재의 또다른 삶들을 보여주는.
그 중에서도 사람들–생각하고 유보하고 사태를 밝은 눈으로 보려 하는 동시대의 그들을 나는 “지성”이라 부르고 싶다. 인류역사–폭력적인 사회에서 언제고 작지만 꺼지지 않는 빛이 되었던.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언제고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살아갈 힘을 주었던.
악의와 적의를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 재판에 이기는 것보다 그게 내겐 더 중요하다. 세상의 폭력은, 인간이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걸 모르는데서 일어난다.
오야마목사님이 당신이 30년 걸려 번역하셨다는 성경을 주셨다. 고발사태에 대해 모르고 오셨는데 이 시기에 성서를 받았다는 것이 우연같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오야마 목사님이 말을 잇지 못하는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해 주셨다. 신자는 아니지만 나도 눈을 감고 빌었다.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가장 올바른 방식으로.
(이 아름다운 가을날, 부끄러운 이야기를 고백하는 이유는, 내일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이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