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4/10/21

일제시대때, 나카노시게하루라는 일본작가가 쓴 <비오는 시나가와 역>이라는 시는, 활자화되면서 일부가 ***** 로 지워져 발표되었었다. 천황에 관한 표현이 당국의 검열에 걸렸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난 2014년 가을, 비슷한 일이 내게도 일어나려 하고 있다.

오늘, 원고측이 “고발취지”를 바꾸어 다시 신청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새로운 고발취지는, 나의 책이 “공동선”에 반하므로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칠 것이라는 내용. 그러므로 판금해야 하지만, 안된다면 책의 일부를 삭제하도록 해 달라고 쓰여 있었다.
원래는 9월이었던 재판날짜를 원고측이 연기한 이유는 바로 그런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결국, 여름내내 준비했던 나의 반박자료는 무효화되었다.
“전쟁범죄를 찬양”했다고까지 쓰인, 법무법인 세곳의 8명의 변호사이름이 열거된 소장을 보면서 오늘 나는 다시한번 4개월전의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비판했던 내용과 각종자료까지 나열된 수십장의 준비서면은 분명 학자들이 깊숙이, 본격적으로 개입한 내용이었다.

이제 이 싸움은 위안부지원단체와의 싸움을 넘어 “국민정서””국민감정””국민상식”을 등에 업고 나를 친일파/매국노로 몰아 처벌하려는 사람들과의 싸움이 될 것 같다. 싸움은 두렵지 않지만, 역사를 획일화하고 전유하려는 그들의 투지가 두렵다.

2014년 대한민국은, 자신과 다른 생각은 “불온” “불경”으로 간주하고 검열해 처벌하려 한다. 대통령은 국가체제를, 대통령을 비판하는 이들은 국민을 앞세우면서.
그러나 양쪽 다 국가권력에 기대고 있으니 분명 대한민국은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오늘, 비오는 가을저녁이 슬픈 이유.

작성일: 2014.10.2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178283518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