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대립과 일본

예전엔 일본에 대한 ‘다른’시각을 말하면 호응해 주는 사람들은 대개 보수였다. 그래서 아마도 나의 페친들 중엔 보수쪽 분들도 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성격적으로도 어릴 때부터 반체제파였고 (심지어 반장을 하면서도 선생님께 저항했다),일본에서 공부할 무렵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대부분 좌파지식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진보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당시 일본의 아카데미즘에서 각분야를 선도하는 들은 모두 진보지식인이었으니(일본에서는 혁신,혹은 좌익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이다)탐욕적으로 공부하던 무렵의 당연한 수순이었다. 고백하지만 마르크스도 일본어로 읽었고 그 해석도 일본인의 영향을 받았다. 주변의 친구/연구자들도 대부분 전체주의적 제국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전후교육’을 받은 이들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사상이 특별히 좌파적이라기보다는 삶의 방식과 사고가 자연스럽게 좌파적이 된 이들이었다.

그러다가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라는 책을 내면서 내 주변의 진보지식인들은 분열했다. 실제로 내 책의 서평회를 했던 날,반대파들은 참석하지 않았고 그 때 토론을 맡아 주었던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 선생은 참석하지 않은 이들을 ‘적앞에서의 도망자’라고 비판했다. 이 때 또 한사람의 토론자로 나서 주었던 정대협관계자는 다른 정대협멤버들에 의한 ‘나가지 말라’는 억압을 무릅쓰고 나왔다고 말했다.벌써 7년전 일이다.
이후 나에 대한 격한 비판이 주로 재일교포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언젠가부터 한국에까지 그런 비판이 전해지게 되었다. 내가 책에서 위안부문제에 관여해 온 진보지식인과 운동의 문제점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팔리지도 않았고 따라서 영향력도 없었던 책에 대한 비판을 굳이 한국에서 해야 하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일부 진보지식인들의 문제점을 이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생각은 무조건 ‘우익’적인 것으로 몰고 적대시했는데 거기서 나는 ‘사고정지’라는 빈곤과 그 결과를 보았다.
아무튼 이 때부터 나는 일부 ‘진보’의 경직성과 폭력성을 알게 되었고,대화를 거부하는 ‘진보’보다는 비폭력적인 보수가 궁극의 순간에는 세상에 더 이로울 수 있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정의의 전쟁’이 존재할 수 없듯이 어떤 정의도 인권이나 생명보다 소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본을 우경화시킨 건 그런 사고정지자세를 유지한 급진좌파적 사상이기도 하다. 그러니 90년대 이후의 ‘일본사회를 개혁’하겠다던 일본의 좌파 운동은 적어도 현재의 일본사회를 볼 때 단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방법에서 미숙했기 때문이다.우파를 설득하기는 커녕 가까이 있던 이들조차 ‘다르’면 처내고 가능한 한 ‘순수’를 유지하려 했던 탓이다.그런 의미에선 행여 유가족을 선동하는 좌파가 끼어있을까 ‘순수유가족’만 상대하려 했던 우파 정부대변인과 닮은 꼴이다.90년대,아직 일본국민들이 대부분 ‘진보적 생활자’들이었을 때조차 일본의 좌파 지식인들은 소수의 우파들만 바라보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말했다.

한일화해에 대한 나의 관심은 실은 남북화해,우리안의 화해와 이어져 있다.지배와 폭력에 대한 첫관심을 키워준 것이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들이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후에, 냉전적 갈등이 식민지시대에 시작된 것임을 알고 나서 더 확고해졌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안의 갈등–제국과 냉전이 야기한 갈등을 언젠가 넘어서야 한다는 입장이고 분열과 폭력을 조장하는 담론은 진보건 보수건 믿지 않는다. 윤리적이고 합리적인지,평화주의적인지,그것만이 담론과 사람을 판단하는 나의 기준이다.

내가 진보쪽 사고를 갖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고 실망하셨을 보수 페친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나 역시 여러분들의 사고와 감정에 실망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을 이어가자고. 그리고 필요할 때 대화를 해 나가자고. 나의 가족에도 보수가 있으니 그건 필연이기도 하다. 그러나 메마르고 이기적인 보수들은 물론,정의의 이름으로 세력정치에만 관심있는 진보들도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전을 통해 죽고 죽임을 당한 과거를 가진 우리안의 좌우대립은 깊고도 깊다. 아마도 분단이 지속되는 한,이 대립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최소한 감정적 대립에서만큼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그 대립은,최근 20여년동안의 갈등을 거치면서 진보와 보수가 모두 미워하게 된 일본의 지배에 의해 생긴 것이니까. 그런만큼 그 갈등을 넘어서는 날이 우리의 진정한 ‘독립과 해방’의 날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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