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연구집회를 끝내고 – 니시 마사히코(리츠메이칸 교수)

『제국의 위안부』가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으로 상징되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나 ‘미성년 여자에 대한 지속적인 성적 능욕’이라는 ‘위안부상’의 ‘정형’을 재심에 부치려고 한 책이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명확한데, 그 책이 ‘일본의 면죄’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선입관을 빼고 전체를 읽어 보기만 한다면 오해가 생길 리가 없다. 그것을 ‘일본의 면죄’에 길을 트는 타협적인 책이라고 이해하는 일부의 독해는 명백히 ‘오독’이며, 이 책을 ‘악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3월 28일 집회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은, 극히 일부의 우파적인 ‘오독=악용’을 과잉 의식하여 이 책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분들이 좌파 안에 적지 않다는 현실이었다. 『제국의 위안부』의 평가를 둘러싸고 일부의 우파와 일부의 좌파 사이에 ‘적대적 공존관계’가 성립되어 버린 듯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서, 3월 28일 집회에서는 적어도 ‘일본의 면죄’를 부르짖으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집회 중반에 내가 확인한 바다. ‘우리들’이 꼭 ‘적대’해야 할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본 집회는 일단 성공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책임’을 물을 때, 설령 운동을 국제적으로 전개한다는 대의명분이 있다고는 해도, ‘소녀상’으로 상징되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이나 ‘미성년 여자에 대한 지속적인 성적 능욕’이라는 ‘위안부상’에 구애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문제시되고 있었다.

애초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실태는 그러한 ‘물리적인 폭력성’이나 ‘위법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피식민자들 안에서 다종다양한 ‘협력자’를 동원한 데다가, 그들과 그녀들에게 ‘자발성’마저 심어 놓는 교묘한 지배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위안부 문제’란 ‘협력자성’이나 ‘자발성’까지를 포함하여 ‘식민지 지배’의 ‘폭력’을 ‘구조적’인 것으로 파악할 단서를 제공해 주는, 어떤 의미로는 상징적인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3월 28일, ‘지정토론자’로서 발언한 센다 유키씨는 가부장제적인 ‘지배’ 구조를 생각함에 있어서 물리적인 폭력(가정 폭력 등)에만 주목해서는 보이지 않는 구조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신체적인 폭력은 ‘저항’을 낳을 뿐이며 ‘지배’를 견고한 것으로 만들어 주지 못한다. 오히려 피해자에 대해 ‘협력자성’이나 ‘자발성’을 심는 것이 ‘가부장제’라는 것의 지배 형태다. 그렇다면 바로 그러한 ‘구조’ 그 자체를 비판 대상으로 설정하는 『제국의 위안부』는 ‘제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정면으로 마주한 ‘위안부론’으로서 읽혀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요시미 요시아키씨는 박유하씨가 《오노다 히로오씨의 증언을 근거로 여성이 장사를 열심히 하기 위해 군인에게 ‘교태를 부리’거나 ‘밝게’ 보이고 ‘즐거운 듯’ 행동했다면 ‘그것은 여성들 나름대로 ‘국가를 위해 애쓰려고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제국 육군의 장교와 같은 시선으로 논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당일 배포 자료, p.71)라고 박유하씨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렇다면 요시미씨는 이 인용에 이어지는 다음 문장을 어떻게 읽었을까?–《업자들의 엄격한 구속과 감시 속에서, 자신의 의지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 그녀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처음의 당혹감과 분노, 슬픔을 억누르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래하는 위안부가 비참한 위안부와 대치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교태를 부리’는 웃음도 위안부들의 비참함과 대치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아사히신문출판, p.231)

위안부의 양면성은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의 그것과 연결지어도 생각할 수 있다는 사고법을 시도한 것이 박유하씨였다고 한다면, 《여성들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 남으려고 악전고투했는지 하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하며 박유하씨의 작업을 내쳐버려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박유하씨와 요시미씨는 같은 것을 다른 입장에서 말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두 사람이 대립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위안부 문제’의 배경에 있는 ‘구조적인 문제’ 전체를 바라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일차원적인 피해’에 초점을 맞춰 문제의 해결을 서두르고자 하는 역사 연구나 지원 운동의 전술에야말로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야말로 ‘노래하는 위안부’ 등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위안부’에 대한 이해를 어느샌가 일면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지원 운동 속에조차 뿌리 깊을지도 모르는 ‘매춘부’ 차별이 그러한 것처럼.

어찌 됐든 앞으로의 ‘위안부 연구’는 박유하씨가 끈질기게 파헤친 ‘양면성’을 균형감 있게 시야에 넣고, ‘가해자/피해자’의 전체상을 확인하는 일이 주류가 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땐 『제국의 위안부』를 그냥 폄하하기만 하는 ‘위안부 연구’ 따위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등 짚고 넘기’를 비유로 든 것은 바로 그러한 미래를 전망해서이고, 멀리 내다보면 ‘등 짚고 넘기’는 이미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예를 들어, Fight for Justice(편)의 『Q&A 조선인 ‘위안부’와 식민지 지배 책임』(오차노미즈쇼보, 2015)은 『제국의 위안부』 비판을 여러 곳에 집어넣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병사와의 연애나 심정적 교류가 있었을 수 있다고 해도 트라우마 연구에 의하면 가혹한 현실을 살아남기 위한 반사적 행동,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판단됩니다》(p.55)라는 김부자씨의 서술 하나만 봐도 『제국의 위안부』의 문제 제기와 함께 읽음으로써 한층 더 생생해지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단, 김부자씨는 《일부분을 전체화해서 ‘같은 일본인으로서의 <동지적 관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라고 못을 박아 모처럼 열린 회로를 닫아 버린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란 지금 와서 보면 지극히 취약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동지적 관계>를 광범위에 펼침으로써 견고한 실효 지배를 가능케 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박유하씨가 조선 반도나 대만의 위안부를 생각할 때에 중시한 ‘동지’적 관계성은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효과’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러한 측면의 강조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의 길은 열어 줘도, ‘일본의 면죄’를 도출하거나 하는 이야기는 되지 않는다. 이 책에 대한 ‘오독’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애초에 ‘일본의 면죄’를 꾀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만 어울리는 일이고, ‘일본의 책임’을 깊이 숙고하려는 마음을 함께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조심성 없이 추종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식민지 지배’란 안팎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협력자’를 생산하는 시스템이었다고 생각한다(‘글로벌화’도 그러하다). ‘식민지 지배’를 억지로 추진한 ‘제국 일본’의 폭력성을 빠짐없이 들추어내는 것은 필수다. 그러나 ‘식민자=가해자’, ‘피식민자=피해자’라는 단순한 ‘도식’은 역사의 세세한 부분을 잘 안 보이게 만든다. 이 사실을 재차 강조해 두고 싶다.


지면에 다소 여유가 있어서 마지막으로 나카노 도시오씨가 ‘총정리’에서 발언한 《일본 군인과 ‘위안부’를 공통으로 ‘피해자’로 묶는 인식》에 대해서 약간만 보충을 해 두고자 한다.

나는 ‘제국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전쟁 수행에 있어서의 ‘가해성’, 특히 그 ‘가학성’에 대해서 눈을 감고자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위안부 제도’는 전장에서의 보다 광범한 ‘전시 폭력’의 일부로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반도에서의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서는 3.1 독립운동의 ‘진압’이나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등, ‘민족 정화’와 연결된 폭력의 기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이냐 하는 커다란 문제가 눈앞에 있다(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의견 교환의 장이 조직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설령 그런 문제들과 ‘이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는 ‘가해의 중층성’이 더해져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이 문제에서는 ‘피해자’측에서 할 수 있었던 대응에도 개별 사례마다 차이가 있다. 『제국의 위안부』는 이 복잡한 구조를 가진 과거에 마주할 때, ‘식민자=가해자’, ‘피식민자=피해자’라는 단순한 ‘도식’에 의거해서만은 진상 규명조차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 복잡한 문제를,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식민지주의’, 또는 ‘인종주의’ 문제와 연결지어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서두른 나머지, 해당 문제가 안고 있는 고유의 어려움을 외면해야만 한다는 딜레마에 직면했다. 바로 이 사태를 따져 묻고 있는 것이 『제국의 위안부』인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인과 한국인은 각각 ‘가해자성’과 ‘피해자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정도나 양태는 다르며, 그 차이는 위에서 말한 ‘민족 정화’적인 사고(=인종주의)가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제국의 위안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일 양국민이 서로 짊어지게 된 ‘가해자성’을 외면하지 않고, 전 위안부 분들 앞에서 함께 자세를 바로 하는 일. 타자의 ‘가해자성’을 고발함으로써 자신의 ‘가해자성’을 탕감하려고 하는 심성에서 자유로워지는 일. ‘자기 면책’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지자는 요청에 한일 양국민이 각각의 입장에서 응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둘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그리고 ‘가해자성’만을 떠맡는 일이 고통스럽다면, ‘피해자’였을지도 모르는 우리들 자신의 다른 한 측면과 묶는 형태로라도 그 부담을 견뎌낼 것. ‘피해자 의식’을 통한 ‘연대’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나 나름의 주장에 담긴 속뜻이란 그런 것이다.

니시 마사히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