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하시 데쓰야
3.28연구 집회 실행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집회의 마무리 발언으로 당일 대강 다음과 같은 감상을 말했다–
“일단 첫 번째 감상은 ‘서발턴’에 대해서입니다. 이번 문제를 생각하면서 알게 된 것은 왜 가야트리 스피박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형으로 제의하고,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고도 ‘서발턴은 말할 수 있다’고도 말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서발턴에게 말하지 못 하게 하는’ 것도, ‘서발턴에게 말하게 하는’ 것도 둘 다 똑같이 폭력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더 생각해 보면,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말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 알 수 있는 것일까요? ‘발화된 말’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나, 발화되어 버림으로 인해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는 듣는 사람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말하는 사람 본인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건 ‘없었던 것’으로 치부되어 버리지만, 그 ‘알 수는 없지만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헤아림이나 조심스러움이 없으면, 서발턴의 목소리는 더욱더 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 대변표상(代弁表象)이라는 문제는 말을 통해 살아가는 우리들 인간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아포리아이고, 그것에 대해 계속 자각적이고자 하는 것이 이번 문제에서 무언가 결실을 맺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전 양징자씨가 소개해 주신 김복동 할머니의 ‘미소’(역자주 : 개중에는 좋은 군인들도 있어서 기다려졌다고 증언하며 띄운 미소)가 마음에 와 꽂혔습니다. 그것을 들은 것만으로도 오늘 여기에 온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감상은 ‘후미에(역자주 : 그림 밟기. 에도시대 때, 기독교 신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예수나 마리아의 그림을 밟게 한 것. 또는 그 그림.)’에 대해서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른바 ‘후미에적인 상황’을 만든 것이 박유하씨의 저서 출판인지, 그것에 대한 고소인지, 박유하씨의 저서에 대한 비판인지, 몇 개의 성명인지, 그것을 물어봐야 별 의미는 없겠지요. 오히려 여기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후미에’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처럼 넓은 의미로 ‘인문학’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텍스트를 읽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자신의 말로 생각하는 것은 매일 ‘후미에’를 밟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말을 재료로 하여 생각하는 행위인 이상, 그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즉 ‘인문학’이란 ‘후미에’에 다름 아니다라고 해도 좋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그렇게 ‘후미에’를 밟아야만 하는 사람들을 어떠한 동기로 한 쪽 진영에 속해 있다고 공격하거나 자신의 권위를 확장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더 좋지 않은 일은 ‘후미에’를 앞에 두고 사고정지에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후미에’란 사고를 유도하는 것이므로 ‘후미에’는 계속 만들어야 할 것이며, 때로는 용기 있게 밟아야 할 테지만, 그걸 가지고 타자를 판단하는 데에는 한없이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 번째는 ‘항의 성명’에 대해서입니다. 어떤 형태이건 간에, 피해자/생존자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형태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그분들의 힘을 키우는 일에 이번 집회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를 각각의 현장에서 이제부터 우리들 각자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건 서로의 입장을 비판하는 일, 서로의 의견에서 배우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논의를 듣다가 마지막에 개인적으로 저도 이 곳에서 실제로 ‘후미에’를 밟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저는 ‘박유하씨의 기소에 대한 항의 성명’에 서명한 한 사람입니다만, 그 안에 ‘무엇보다도, 이 책으로 인해 전 위안부 분들의 명예가 손상됐다고 생각되지 않고’라는 한 문장이 들어가 있다는 것에 대해 여기에서 반성하고자 합니다. 반성의 이유는 무엇보다 나눔의 집의 생존자 분들이 대체 어떤 상황에서, 재판에 의한 고소라는 수단을 단행했는지 저 자신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도 그 모든 행동이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건에 대해서 생존자 분들이 그러한 수단을 취하신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적어도 저처럼 그 곳에 없었던 사람이 ‘손상됐다고 생각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망설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내 발언의 주안점은 서발턴의 생각은 어떻게 표상 가능할까라는 물음에 있으며, 그 답은 어떤 사람에게도(본인이나 당사자도 포함해서)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당일 집회에 나오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 발언을 통해 내가 던진 공은 완전히 목표를 빗나갔고, 결국 내가 말한 이 ‘마무리 발언’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것이 되었다. 그 일과 관련하여 여기에서 집회를 끝낸 후의 나 나름대로의 반성과 감상을 기록해 두고 싶다.
먼저, 위와 같은 ‘마무리 발언’을 함에 있어서, 내 쪽에서 몇 가지 큰 전망의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실행위원의 한 사람으로 『제국의 위안부』 라는 저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집회에서 나온 논의로부터 무언가 결실을 평가하면서 그 성과를 토대로 이후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임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발턴’과 ‘후미에’에 주목하는 것이 이론적인 핵심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인문학 연구자로서 이러한 ‘연구 집회’의 마무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해, 그런 문맥에서 ‘항의 성명’에 대한 자신의 반성도 표명했다. 나 한 사람의 행동이나 결의 자체는 문제의 크기에 비추어 볼 때, 전혀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만, 적어도 그러한 집회의 의의를 재확인하고, 앞으로의 운동이나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 나름의 ‘연구 집회’에 대한 생각은 참가자 전원에 의해 공유되는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름을 말해 죄송하지만 내 발언 다음에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측에서 ‘마무리’로 발언한 나카노 시게오씨는, ‘마무리’란 어떤 ‘접근’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인식이 완전히 달랐고, 그 점에서 나의 마무리는 ‘헛스윙’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의 두 번째 ‘오해’는 ‘미디어’ 참가자들의 취급과 속내에 대해서다. 나는 이번 ‘연구 집회’라는 성격과 의의를 생각해서, 설령 미디어나 저널리즘에 적을 둔 사람들이 참가하더라도 각자가 『제국의 위안부』라는 저서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듣고 개인적으로 새로운 지식과 인식을 심화시키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점에 관해 내가 한 상정이 안이했던 듯 하다. 이미 집회에 대해 신문이나 잡지 등에 투고된 기사 중 몇 개가(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보여주는 것처럼 기자나 저널리스트 중에는 집회에서 무언가를 겸허히 배우겠다는 자세보다는, 자기나 자기가 소속된 미디어를 통해 이미 나온 이 문제에 관한 판단을 추인하고 강화할 방편으로 이번 집회를 이용했을 뿐이라고 여겨지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그런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서발턴’이나 ‘후미에’를 둘러싼 원리적 고찰 같은 ‘귀찮은’ 부분을 무시하고, ‘항의 성명’의 서명인 중 한 명의 ‘반성’에 달려들어 ‘지식인의 양심’이라는 안이한 말로 결론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는 나의 ‘마무리 발언’에 대한 견해가, 대립을 부추기는 일이 보도의 책무인 양 기사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별 상관없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상정하지 못한 나의 판단 미스에 기인한 것이고, 나는 이를 있는 그대로 반성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구 집회의 목적은 『제국의 위안부』라는 저서에 관해서 의견이나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말을 나눔으로써 타협이나 경계의 확인을 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피해자의 의향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목표로,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각자가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있었다. 과연 집회는 그러한 목적에 조금이라도 다가갔을까? 만약 이 집회가 자신의 의견이나 입장의 ‘옳음’을 확인하는 데에만 그쳤다고 한다면, 그것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무슨 공헌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진지하게 임하는 한, ‘종군위안부’로 삼아진 사람들 같은 피해자의 마음은 그 누구도 대변할 수 없다. 이 냉엄한 사실은 ‘연구자’, ‘운동가’, ‘지원자’, 나아가 ‘당사자’와 ‘비당사자’라는 구별 조차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를 토대로 생각하면, 『제국의 위안부』관련 문제 중 하나인 ‘할머니들 자신에 의한 고소’라는 사태의 재고가 필요해진다. 구체적으로는 집회 중에도 나온 ‘할머니들 자신이 고소한 것이니까……’라는 변명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바로 이 ‘할머니들 자신에 의한 고소’라는 ‘사실’을 ‘후미에’ 삼아 사고정지돼서 ‘서발턴의 목소리’에 관한 신중한 고찰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사태는 다른 견해를 가진 자들의 ‘대립’이라는 저널리스틱한 이슈가 되기만 할 것이며, 그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미디어의 ‘유통기한’이 지나면 폐기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서발턴’을 눈앞에 두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러나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사고정지’나 ‘복화술’도 이에 포함된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정답이 없는 물음을 쉼 없이 던지며 ‘후미에’라는 사고의 유도에 응답하기 위한 길은 한없이 어렵지만, 길은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만들어지는 법이다. 이번 집회에 참가한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 앞으로도 그런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