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를 깊게 하고 싶은 일 – 와카미야 요시부미(전 아사히 신문 주필)

연구 집회에서 다양한 주장을 듣고 큰 공부가 되었으나, 동시에 논의가 상당히 어긋나는 안타까움이 쌓였다. 네 가지 관점에서 감상을 적어 두고 싶다.

 

(1) 왜 어긋났을까?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는 쪽은 오로지 박유하 씨가 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사실과 인용의 ‘잘못’을 집어냈다. 지지자들은 그러한 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저서의 ‘전체적인 의의’를 강조했다. 반대로 비판하는 쪽은 박유하 씨가 던진 근본적인 문제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공격으로 일관한 감이 있었다. 이렇게 엇갈림이 이어졌다.

우선 집회는 말하자면 박유하 씨가 없는 ‘결석재판’으로 개개의 사항까지 그녀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비판에 반론하든, 혹은 해당하는 부분이 있다면 정정하든지 해서 박유하 씨의 솔직한 변을 듣고 싶다.

반대로 ‘모두 잘못된 날조본이다’라는 비판은 아무리 그래도 너무 극단적이며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유하 씨가 던진 근본적인 의문은 왜 위안부 문제가 여기까지 장기화하고, 해결이 막혀 왔는가에 있다. 일본 정부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상당수의 위안부가 받은 아시아 여성기금을 지원단체가 일방적으로 단죄하고, 수령을 막는 것 만으로 된 것일까? 또 박유하 씨가 일본이라는 국가에 ‘법적 책임’은 없다고 한 점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어서 좋은데, 그럼 일을 직접 착수한 업체는 국가에 의해 조종됐다는 것만으로 책임은 없는가. 박유하 씨의 문제제기를 ‘일본을 면책하는 논리’라고 단정하지 말고 연구 집회에 어울리는 토론을 하길 바랬다.

 

(2) ‘동지적 관계’였나?

비판 중 하나는 병사와 위안부 사이에서 한정적이든 간에 ‘동지적 관계’였다고 한 박유하 씨의 담론에 집중됐다. 이것은 주디스 허만이 『트라우마』에서 지적한 ‘피감금자가 고립됨에 따라 감금자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심해져 간다’는 현상으로, ‘동지적 관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반론도 있었다. 이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현상으로 논의의 출발점으로서 귀중한 지적이었다고 본다.

다만, 모처럼이었으니 좀 더 깊은 논의가 있기를 바랬다. 병사들은 단순한 ‘감금자’였을까? 그들도 국가의 명령으로 전쟁에 동원된 피해자(피감금자)의 측면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더구나 거기는 전쟁터다. 잘못하면 부대가 모두 적의 공격에 처하기 쉽고, 병사도 위안부도 생사를 같이 하는 운명이다. 위안부에게 있어서도 결정적인 적은 외부에 있었다. 그런 열악한 처지에 있는 병사들에게 여성들이 민족의 벽을 넘어 인간으로서 약간의 동정이나 공감을 느끼지 않았던 것도 아닐 것이다.

애당초 일본군 병사 중에는 조선 출신도 있었는데, 아무리 차별이 있든 그들이 전쟁터에서 일본인 병사와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위안부와 병사의 관계도 그와 닮은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위안부가 상대를 한 병사 중에는 조선인도 있었다. 이러한 구조야말로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커다란 죄악, 그리고 여성의 비애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박유하 씨가 ‘동지적 관계’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그렇게 해석했는데, 틀린 것일까? 다음 기회에 논의를 깊게 하고 싶다.

 

(3) ‘자발적’이었나?

부끄러운 일인데, 70-80년대 한국에는 ‘기생 관광’이 성행하여, 일본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방문했다. 일찍이 서울에서 유학한 나는 젊은 여성을 뻔뻔하게 호텔로 데리고 들어가는 남자들을 보면 외면하고 싶어졌다. 여성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러나 그녀들은 업자에게 지배당하고 임금을 빼앗기는 존재였지만, 공권력에 강요당한 것은 아니었다. 심각한 가난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음에 틀림없고, 본래의 의미의 자유의지는 결코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물리적인 강제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자발적’이었다. 이것도 슬픈 현실이다.

식민지 시대에 이와 같은 처지의 여성들이 있었다 것은 틀림없다. 가난도 남존여비의 풍조도 보다 심한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희망을 가지지 못한 그녀들은 ‘어차피 해야하면’이라고 모집에 응해서 전쟁터로 간 예도 있었다. 박유하 씨는 그러한 현실에 눈을 돌리고, 모든 ‘소녀를 강제로 데려 갔다’는 것처럼 보는 시선이 부자연스럽다고 지적. 더욱이 그녀들이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 구조에 분노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해석도 틀린 것일까?

 

(4) 명예를 훼손했는가?

박유하 씨 기소에 대해서 ‘이 책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항의 성명을 한 점에 대해 ‘소송한 위안부들의 마음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항의글이 오해를 주었다면 유감이지만, 명예 훼손은 당사자의 ‘기분’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박유하 씨의 책으로 그녀들의 마음이 다쳤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킨 저작의 역량 부족을 물어도 좋다. 그러나 정말로 ‘명예’가 훼손되었는지의 여부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항의 성명에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오히려 ‘위안부 분들의 슬픔의 깊이와 복잡함’을 느낀 사람이 많고 일본에서 자유주의로 불리는 사람들이 큰 공감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붙여 말하자면, 박유하 씨의 책은 위안부에 다양한 케이스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 원고인 각각의 여성들에 대해 ‘이렇다’라고 쓴 것이 아니다. 명예훼손으로 재판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을 둘러싼 논의는 많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언론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며 재판을 하고, 특히 형사 처벌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사리에 어긋나며,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비판하는 파가 그 논의를 피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형사 처벌을 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