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소설가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지음/뿌리와이파리 펴냄(2013)
지난 2월17일,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가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그러자 이재명 성남 시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트위터에 “어쩌다 이런 사람과 하나의 하늘 아래서 숨 쉬게 되었을까”라면서, 지은이를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로 몰아 세웠다. 그러면서 책을 읽어 보았느냐는 누리꾼에게 “똥은 안 먹고 냄새만으로 압니다”라고 일갈한다. 여러 우익 단체들이 아무 근거 없이, 단지 ‘냄새’가 난다는 직감만으로 그를 ‘빨갱이’라고 확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더 슬픈 것은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학과 교수가 <한겨레> 2월26일치에 쓴 칼럼이다. 그는 그 글에서 박유하가 “조선인 위안부가 군수품이었다면, 강간당한 네덜란드 여성이나 중국 여성은 전리품”이었다는 논지를 폈다고 주장하는데, 이 책 219쪽에 있는 저 대목은 위안부 제도를 운영했던 일본군의 기본적인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지 지은이의 것이 아니다. 또 조한욱은 지은이가 위안부 형성 과정을 기술하면서 전적으로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사료”에 의지했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위안부 형성 과정을 다루고 있는 대목에서는 제국주의 일본 정부의 사료가 단 한건도 나오지 않는다.
지은이가 <제국의 위안부>를 쓰면서 기본으로 삼은 사료는 1993~2001년 사이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출간한 군위안부들의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다섯권이다. 현재 강제납치와 매춘 여부를 둘러싸고 지은이가 ‘나눔의 집’ 할머니들에게 명예훼손으로 피소된 사항들은 모두 이 책을 근거로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나보고 배급을 타가라던 이장 아들이 계집애가 있는 집을 다 가르쳐 준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람이 주인이 돼갖구는 얼마나 나를 뚜들겨패는지 몰라. 손님을 안 받을라 한다구.”, “주인은 한국 사람이었어.”, “한국 사람들이 더 나뻤어요. 우리를 팔어묵었으니께.” 등등.
<증언집>에서 출몰하는 이런 증언은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금지 조처가, 강제납치 되어 성노예가 되었던 ‘나눔의 집’ 할머니들과는 다른 무수한 할머니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빼앗는 일이라고 말해준다. 지은이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강제납치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이 군위안부의 “평균적인 모습이 아니”라고 할 뿐이며, 이 주장은 딱히 지은이의 것만이 아닌 이 분야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2003년, 일본에서 출간되고 이제야 번역된 윤명숙의 <조선인 군위안부와 일본군 위안소제도>(이학사, 2015)는 “조선인 군위안부의 징모(국가에서 특별한 일에 필요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일) 형태는 군인·헌병·경찰의 납치로 이루어지는 형태보다 징모업자의 취업 사기로 이루어지는 형태가 압도적”이었다고 말한다. 군인에 의한 강제납치가 일반적이 아니었다는 사정은 그만큼 많은 한국인들이 징모에 협조했다는 뜻이며, 윤명숙의 말에 따르면 그 일을 직시하는 것은 “친일 세력(도지나사 경찰 등)”에 대한 책임 추궁과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제국의 위안부>는 우리가 외면하려고 하는 일제 36년의 성격을 마주보게 한다. 위안부 논쟁에서 일본을 이기는 방법은 그들보다 우리가 더 많이 아는 것이고, 백전백패하는 방법은 일본이 아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