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포스트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 한겨레가 그 책을 까는 기사는 언제쯤 나오나 했다. 역시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질 않네.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난 늘 한겨레와 상반된 입장인 게 신기할 정도다. 샤를리 엡도, 정명훈 고액 연봉,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까지.
정명훈 고액 연봉만해도 한겨레 칼럼에 가난한 예술가들을 빌미삼아 까기 시작했을때, 난 그게 한국 음악계의 오랜 권력관계와 일부 음악가들의 타락으로 인한 내부갈등이 아무 관계없는 정명훈 선생에게로 덧씌운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다. 실제 서울시 의원이 줄기차게 이것을 거론하며 문제 삼았을때, 무지를 넘어 악의가 엿보이기도 했다. 그뒤로 한겨레를 줄곧 비판하고, 페친 몇명과도 소통관계를 끊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명절 연휴에는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 약 50여 명의 페친을 끊기도 했다. 어차피 소통하려고 페북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한겨레 길윤형 도쿄 특파원은 제국의 위안부를 어떻게 읽은 걸까. 오늘 토요판 기사는 책 내용의 일부분, 특히 중요한 대목은 왜곡하다시피 하면서 자신의, 그리고 박유하 교수 비판자들의 시각과 거의 중첩되는 논지의 기사를 쓰는 이유는 뭘까. 마지막에 ‘심장’ 어쩌구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너무 민감한지라 되도록 자극적이며 논쟁적인 의견 피력을 삼가해 왔다만, 앞으론 내가 느낀 점을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와 절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조선 500년이라는 시간동안, 피지배 계층에서 ‘정치적 공론의 장’을 요구하는 최초의 정치 투쟁은 ‘동학 농민 전쟁/혁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지배계층은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에 대한 인식에 너무 안일했고, 민중들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공론의 장’에서의 사실 왜곡은 이미 공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다수일 때에는 심리적 폭력에 다가서는 길이다. 토론은 이성적이며 비평/해석학의 관점에서 정확해야 한다. 심리/감정의 세계와 관심법은 毒이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는 이미 맛이 살짝 간 것 같다.
역사 논쟁은 대개 ‘현재화한 과거’와 ‘현재화한 미래’가 부딪히는 지점이고, 위안부 문제는 고통이라는 본질이 더해져 ‘현재’를 더 난해하게 만든다는 점. 박유하 교수의 집필 방향/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제국의 위안부를 읽는 독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할 거리가 많고, 섣불리 의견 피력을 삼가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