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2/28

결국 2월 마지막날은 나를 고발에 이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언론사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가 깨지는 날이 되었다. 한겨레에 오늘 기사를 실은 길윤형기자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했던 내용을 다시 올려둔다.

나는 이 대화에서 분명히 와다교수와도 의견이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같은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심지어 결국은 “일본우익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써 버렸다. 더구나 나는 한국이 요구하는 “법적”책임을 지우는 일이 왜 어려운지를 말했을 뿐인데 “책임”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뉴앙스의 기사가 되고 있다.

나는 분명히 일본의 책임을 물었고, 앞서 올린 와다교수의 말처럼, 일본에서 내 책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은 우익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 애써 왔던 사람들이다. 아사히신문이나 마이니치등 진보언론이 여러번 관심을 표했고, 우익/보수 성향의 산케이나 요미우리에겐 아직 무시당하고 있다. 그런 상황을 가장 잘 알 “일본특파원”이 그걸 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전한 것이 다름아닌 한겨레 신문이다.

나는 우익도 아니고 협력자로서의 친일파도 아니다. 아무나 “우익””친일파”딱지를 붙이는 일로 자신들의 목소리와 자리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정치적으로는 나와 먼 곳에 있는 이들이 아니어서 그동안은 본격적으로 싸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유보적 자세를 접으려 한다.

나의 목표는 일본우파까지 주목해 주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움직여야 아베정권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기에. 진보의 생각만으로 좌우가 공존하는 “일본공동체”를 움직일 수는 없다. 내가 90년대에 일본이 만든 아시아여성국민기금을 평가한 건, 그것이 불완전하나마 좌우합작형태의 “사죄와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문제는 끝난 문제라고 일축했던 일본의 보수세력을 내 책이 혹 움직이는 일이 있게 되면, 오로지 자신들과 해결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비난해 온 이들은, 내 논지가 그들을 움직였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내가 말했다고, 나는 일본우익의 나팔수였다고, 또다시 앵무새처럼 말할 것이다.

나를 할머니의 이름으로 고발하도록 만든 것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국가를 동원해” 억누르려 한 한국지원단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위를 뒷받침한 건, 일부 재일교포이고, 내 책이 일본우익의 상찬을 받았다는 거짓말을 쓴 한겨레신문이고, 고발이후에도 좌시했고 가처분판결이 나자 그 판결을 옹호했던 몇몇 지식인들이다. 학문을 국가의 힘을 빌어 단죄하는 일에 지식인마저 동참한 것이 2015년의 한국사회다.
한국사회의 위기와, 이들은 무관하지 않다.
할머니들을 죽이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

온갖 “해석”들이 나를 죽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와 편견을 넘어 나의 문제제기를 왜곡과 곡해 없이 읽어 준 건 소수의 “열린” 사람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건 “강한”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 열려있고 강한 또다른 이들이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책을 역시 출판해야 할 것 같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8639513162962

渦中日記 2/25

한 언론의 기자가 기사를 쓰겠다면서 질문을 했다. 일본특파원이라 일본사정에 대해서도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가나 일반인들과는 질문의 차원이 달라 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가 위안부문제해결과 한일화해를 위해 쓴 건지 혹은 일본에 “법적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던건지 알고 싶어했다. 나로서는 서글퍼지는 대답이었지만 말했다.
“결론부터 정하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뭔가 다른 의도를 담아 글을 쓰는 식으로 머리굴리는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쉽게 따를만큼 순종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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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논리적으로 정합적이지 않다. “보상”의 의미는?

이 책은 여러 “다른”오디엔스(독자/청중)를 대상으로 한 책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원래는 일본을 향한 글만 쓰여질 예정이었구요. 일본이라 해도 지원자/정부/부정자,이렇게 세 부류입니다.
앞에서 하던 얘기와 뒤에서 한 얘기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그 결과입니다. 예를 들면 한일협정에 관해서도 한국을 향해선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 버렸으니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으면서 일본을 향해선 “당신들은 보상 끝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관련 보상이었고 식민지배에 따른 억압과 고통에 대해선 보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고 어느쪽이 진짜냐! 라고 묻고 싶어지겠지만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된 건 결국 대립하는 문제의 해결방법은 각자 자신의 문제를 보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커다란 틀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썼습니다. 일본의 지배가 문제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대협등 지원단체는 보상과 배상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고 있어요. 위안부문제는 “법을 어긴 국가범죄이니 입법을 해서 배상하라”라는 의미에서 “배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학자들이 말하는 건
더이상 “강제연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민지에선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저에 대한 고발장에서조차 쓰고 있더군요.
“약취,사기”로 업자들이 데려 왔다 해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범죄이고 일본군이 알고도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은 알게 된 경우 업자에게 다른 곳에 취직하게 하도록 시키거나 돌려보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이전에 계약서를 확인해 업자의 사기나 납치를 방지하려 했구요. 그러니 전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일본의 공식방침은 위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해야 하구요. 알면서 묵인한 경우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 경우 업자가 이미 돈을 주고 사 왔다던가 하는, 일본군으로서도 관리영역 바깥의 경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수요를 만든 자체–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로 만든 지역의 사람들까지 전쟁터에 동원한 책임, (의도여부를 떠나) 묵인한 책임을 물은 겁니다. 위안소를 공식적으로 만든건 근대일본이 시스템화에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리고 모두 획일적인 위안소가 아니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하고요. 일본에서 강연할 때 유곽에 있었던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유곽을 군대용 위안소로 지정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지정업소가 아닌 곳에 있었던 사람(여기에도 비지정이지만 인가업소-유곽의 위생시설등 체크했던 업소와 인가조차 못받았던 이른바 사창도 있었다는 걸 “우리는”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피해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다른 부분을 소거시키고 싶은 욕망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걸 지적했던 거구요.
“보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국어판을 쓸 땐 기금과는 달리 “정부국고금”으로, 기금을 받지 못한 분들께 추가 보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입니다. 국회를 거치지 않는 정부보상금이지요. 다만, 이후 국회결의를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어판에선 그렇게 썼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다시 기회되면 말씀드리지요.

2. 와다교수의 의견(국고금으로 보상금지급)과 같나?

한국어판 내고 나서 다른 자료들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와다선생님과 달리 국회결의를 주장하는 겁니다. 오히려 보상금을 어떻게 할 건지는 더 첨예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장(국민동원의 한 형태다)이 받아들여진다면 입법이나 국고금 지급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강제동원을 했으니 배상하라”는 현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 일본한테 보상금을 대신 받은 한국정부가, 할머니들에게 4천만원 이상 지급했고 매달 이런저런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할머니의 체험은 다 다른데 해결은 “하나의 방안”으로 정해야 하는 정치/국가 문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머니들의 다른 목소리에 각각 귀를 기울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현실적 타협론인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옳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명분에 무게가 실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년이 걸리더라도” 라는 말로 주장을 관철하는 건 첫째 당사자를 무시(얼마전에 만난 할머니는 사죄조차 요구하지 않고 보상만 해 주면 된다고 해서 오히려 제가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는 일이고, 할머니의 의견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인식될 필요가 있습니다. 들리지않을 뿐이지요. 부산정대협회장님을 만나 보세요. 지방에 계셔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문제 해결에 사비털어가며 20년이상 애써 오신 분인데 그분 말씀이 “나도 내 돈 내가며 신문광고를 통해 기금을 반대했다 .하지만 할머니들 돌아가시는 거 보면서 받게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우리 여성지도자들(이 분은 이화전문여고출신의 할머님)이 못 받게 했다”고 하시더군요.

4. 제가 받는 인신공격적 비난이 안타깝다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심층취재와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외부의 비난과 우려 속에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를 외부가 아니라 우리스스로 들여다보고 아프더라도 직시하는 일로 치유해나가기 위해서도요. 저는 제 사태를, 2009년의 서경식교수의 한겨레 칼럼이후에 저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면서 5년후에 지원단체에 의한,아마도 쌍방이 의식못할 “대리고발”을 당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오해의 종류도 다양하고 지식의 폭도 달라서 더 어려운데, 정치나 개인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사람들, 단순오해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행태가 가장 한탄스럽군요. 저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
언론에 대해서도 깊이 실망해 왔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려하는 분들이 계신 걸 잘 압니다. 기대를 놓지 않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701659930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