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두번째 만나러 갔을 때 나는 NHK 서울지국 기자들과 같이 갔다. NHK기자는, 책이 나온 이후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인터뷰에 응한 것이 인연이 되어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게,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한국언론이 긍정적인 것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 책이 어떤 식으로 한국사회에 받아들여지는지 기록해 두고 싶다고 하면서 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관련된 일에 관한 나의 행적을 가능한 한 기록하고 싶으니 관련된 행보를 알려 달라고 했었다. 나는 그에게 협조했다.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을 향해 쓴 책이기도 했고, 아시아여성기금 해산 이후 위안부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일본의 국영방송이 위안부문제에 관심을 갖는 일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 기자는 마침 내가 다닌 대학을 나온 후배이기도 해서 여러번 만나는 사이에 친밀감도 생겼다. 위안부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의 그런 마음을 신뢰했다. 그래서 어느날, 배춘희 할머니와 전화 후, 찾아가기로 약속이 잡혔을 때, 그에게 나의 일정을 알렸다.
그리고 전 날, 나눔의집 소장에게도 내일 방문하겠노라고 문자를 보냈다. 대답이 없어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그는 그 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NHK기자와 함께 찾아온 나를 노골적으로 경계했다. 그리고 영상촬영은 안된다고 못박았다. 그 날의 방문 목적은 식당에서 잠시 대화 나누었던 배춘희 할머니를 개인적으로 만나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는 일이어서 많이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배춘희 할머니 영상녹화를 단념하고 할머니 방에서 그냥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궁금했는지, 나눔의 집 직원이 여러 번 동정을 살피러 왔다. 할머니에게는 당신의 뜻대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자유가 없어 보였다.
고발 직후 나눔의 집 소장은 이 날의 방문에 대해 내가 마치 ‘봉사활동을 하는 장면’을 찍고 싶어 했다는 식의 악의적인 거짓말을 페이스북에 썼다. 이후에도 관계자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메일로 보냈다고 들었다. 2015년 12월, 내가 기소당하고 항의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퍼뜨렸다. 급기야는 더 나중에 일본인 지원자들을 상대로 한 모임에서까지 같은 말을 했다. 일본의 지원자들 중에는 그 말을 믿고 소장의 말을 SNS를 통해 확산시킨 이들도 있다.
그동안 소극적인 해명 밖에 하지 않았지만, 이제 다시 명확히 해명해 둔다. 이탤릭체는 나눔의 집 소장의 메일이 살포한 메일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박유하 씨 나눔의 집 OOO 소장에게 전화를 하여 정대협 반대 행동에 동참 강요
2014년 2월경 일면식도 없는 박유하 교수가 나눔의집 OOO 소장에게 전화를 하여, 소장님도 이제는 정대협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활동에 동참하자고 강요하였고, 전화를 끝내면서,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 주어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박유하씨가 한번 만나자고 이야기 하기에, OOO 소장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만 제외하고 주말에도 나눔의 집에서 근무를 하니, 나눔의 집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이에 박유하씨는 외교부에서 발표를 하는데, 시간상 나눔의 집을 갈수 없어, 세종대학교에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OOO 소장의 일정상 세종대학교에서 만나지는 않았다. (이상, 안신권. 2015년 12월 메일)
남아 있는 핸드폰 문자에 의거하자면 내가 나눔의 집 소장에게 처음 전화한 건 2013년 11월 15일이었다. 나는 위안부관련 외교부 회의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고(나는 한 학자로서 의견을 말했을 뿐 `발표`하지 않았다), 참석자 명단에 소장의 이름이 보이기에 서울에 올 때 만날 수 있으면 만나서 사죄와 보상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그것이 그에게 전화한 이유다. 그리고 회의 이전에 서울에 올 일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나는 세종대에서 만나자고 한 적도, 정대협에 반대하자는 말도 한 적이 없다. 당연히 `강요`한 적도 없다.
11월30일, 첫 방문 날에도 미리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사무국장을 만나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말, 12월 7일에 ‘오후에 방문하겠다’고 보낸 문자가 내겐 아직 남아있다. 이 날이, 위에 적은 나눔의 집 두 번째 방문이자 배춘희 할머니와의 두 번째 만남 날이기도 했다. 그 이외 이야기는 일체 한 적이 없다.
다음날 나는, 불편하게 만든 데 대한 사과 말과, ‘나도 해결방법을 모색중이니 가능하면 책을 읽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나서 다시 만나자, 필요하면 책을 보내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는 내게 ‘바쁘신데도 나눔의 집을 방문해 주어 감사하다, 책은 직접 구입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니 그가 나에게 적대적으로 변한 원인이 꼭 이 방문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미 여러 번 쓴 적이 있지만 그가 나를 고발한 이유는 배춘희할머니와 긴밀하게 교류하게 된 일, 그리고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심포지엄을 통해 세상에 내보낸 일에 있다. 나눔의 집 소장은 이후 NHK기자의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박유하 씨 나눔의 집 방문 신청이나 할머님들 허락도 없이 NHK-TV 촬영 시도
박유하씨 나눔의 집을 방문하여 OOO 소장을 처음 만났을 때, 사전에 <나눔의 집 >이나 할머님들에게 통보나 허락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 NHK-TV 방송을 대동했습니다. 그리고, NHK-TV 기자는 할머님들과 박유하씨가 만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OOO 소장이 할머님들한테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라고 했더니. 박유하씨가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나눔의 집 >은 누구나 촬영하는 곳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후 NHK-TV 기자가 OOO 소장에게 박유하씨 자원봉사활동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OOO 소장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 위해 박유하씨가 봉사를 한 적이 없는데, 뭐를 촬영하죠. 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래서 촬영은 불허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배춘희 할머니와 약속을 하고 갔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NHK기자가 있으니 함께 갈 거라는 이야기도 할머니께 미리 말씀 드렸다. 촬영대상은 내가 아니라 할머니였고, 내가 ‘자원봉사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NHK기자가 말했다는 것은 소장의 거짓말이다.
우리는 그날 한시간 여 동안 배춘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