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대화를 정리하면서 생략한 부분이 있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이 미국에서 소송을 일으킬 준비중이고, 그 재판에서 요구하게 될 금액은 20억이 될 거라는 대화내용이다. 배 할머니는 이 20억 문제에 대해 이 날만 두 번, 이후에도 몇 번 언급하셨다. 대부분 그 금액은 타당치 않다는 말씀이셨다. 당연한 일이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은 가치관도 생각도 같지 않다.
그런데 20년 이상, 한국사회에는 그 사실이 인식되지 않았다. 주변인들에게는 한사람 한사람 다른 “개인”으로서 존재했겠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위안부할머니”란 그저 “일제에게 수난을 당한 피해자”이외의 모습으로는 존재하기 힘들었다.
생각하면, 1997년에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속죄를 시도했고 (이 때 일본이 모은 국민모금에 붙인 이름은 “속죄금”이었다), 이후 받은 분들이 60명 이상 된다는 사실이 그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도, “위안부할머니”라는 존재가 그저 “위안부할머니”로서만 존재하도록 만드는 일에 일조했을 것이다. 하나의 사태에 대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감정과 생각이 결코 같지 않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우리 앞에 가시화 된 것은 고작 한일합의 이후, 그러니까 아직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한일합의 직후에 합의를 받아들이겠다고, 자신의 목소리로 말했던 한 분의 목소리는 곧바로 묻히고 말았다. (기사링크: [위안부 타결] 유희남 할머니 “만족은 못하지만 정부 뜻 따르겠다” 쿠키뉴스)
또, 2000년대에 심미자 할머니라는 분이 피맺힌 목소리로 정대협을 비판했음에도 우리는 아무도 그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위안부 목소리가 묻혔던 90년대 중반이후 10여년 동안, 운동의 목소리는 국내외적으로 한껏 커졌다.
배춘희할머니로 하여금, 처음 만난 나에게 갑자기 일본을 용서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도록 만든 것은 아마도 그런 세월일 것이다. 배할머니는 이미 90세였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이후에 이어질 긴긴 대화의 서두였지만, 어쩌면 그 이후 대화의 핵심은 바로 그 말씀에 있었다고, 나는 이제서야 생각한다. 일본을 용서하고 싶다는 건 법적책임은 물론 보상조차 필요없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배할머니는 위안부문제가 문제시 된 일조차 납득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배할머니는 하얼빈의 유곽에 있었던 분이다. 그러니 그런 생각은 최전방에서 군인들과 함께 이동해야 했던 위안부들의 체험을 몰랐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위안부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꽤 오랜 세월 관심을 가져왔던 나조차, 그렇게 늦게 알았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20억에 관한 배춘희 할머니의 이야기까지 쓰기로 한 이유는, 오로지, 제3회 형사공판기에 쓴 것처럼(https://parkyuha.org/archives/5548), 검사가 유희남 할머니의 거짓진술을, 나의 도덕성을 의심하는 자료로서 제출하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사실 최초의 증언에서 2년, 언론보도에서 1년 가까이 지나도록 내가 확실한 반박자료가 되어줄 이 얘기를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나를 위한 해명이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신뢰상실, 나아가 한국에 대한 신뢰상실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유희남 할머니의 이야기를 실었던 많은 언론 중 일부는 나의 반박도 실어 주었지만 대부분은 무시했다. 가장 악의적으로 보도한 매체중 하나였던 “서울의 소리”라는 인터넷매체는 직접 항의했음에도 이 기사를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사를 반복해 인용하며 나를 “친일매국녀”, “찢어죽일 여자”, “더러운 버러지년”, “왜놈들의 씨받이”라면서 비난하는 이들은 지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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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8일
(7:28)
그 사람들은 요구는 뭐.. 돈은 뭐 지금 정부는 130만원씩 주고 있잖아요, 갚아주고 있잖아요,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 다 주고 있는데 그것도 다 무시하고, 김대중씨 돈 준 것도 다 무시하고, 다 무시하고, 어디까지…
유희남이도, 유희남이도. 요번에 돈 달라고. (나한테) 온 것은 재판이 열리면 일본돈 20억 달라 하라고, 이칸다고(이런다고), 20억 요구하라고.
(저도 지난번에 들었어요. 지난번에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5천만원이었으니까 지금 받으려면 5억은 받아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던데.)
아니야 그거 20억. 넉달 전엔가 회의를 했거든. 내가 아플 때, 내가 병원에서 나와서 아플 때 날 보고, 와 가지고 한단 소리가, ‘너도 20억 달라 해라’. 나는 이유를 모르니까, 뭘 20억 달라고 하노, 하니까 ‘재판할때 한 사람 앞에 20억 달라고 대답해’ 라꼬 말하더라고. 아이고…
(넉달전이면 2013년 7·8월경이고 내가 아직 위안부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전 일이다.)
(저 그 서류 봤어요. 어떤 내용인지? 제가 처음 갔을 때, 김국장인가… 사무국장. 그 사람이 저한테 그 서류를 보여 줬는데. 할머니 말씀하시는 거 들으니까 그게 그거 같은데요. 저한테 설명하기로는, 지금 현 상태로는 해결이 안 되니까 재판을 다시 하는데, 그 재판 내용이, 일본을 이기자는 내용이 아니라 합의를 이끌어내는 재판이다, 조정을 하는 재판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할머니 열 분 정도 이름 다 있고 다 동의하신 것처럼 되어 있더라구요.)
어 나는 아파서 병원에서 나와서 둘러보는데, 자기들이 회의하더라고, 회의하고 나오는데 김양도 나한테 와가지고, “20억…” 막 그래서 깜짝 놀랐어. 그게, 20억이 무슨 소리냐고.
(아 그럼 김국장도 20억이라고 얘기했어요?)
뭐 그랬겠지. 마지막에, 가다가 우리 방에 들어와서, “할매, 돈 받을 때 20억 달라고, 할매도 그래야 되는데, 내가 이름 적어놓을게” 이러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유를 몰라서, ‘무슨 20억이라고 하노?’ 그렇게 물어보니까, 나중에 가만히 들어보니까, 유희남이가 한 얘기라. 유희남이 20억달라고 하라고 시켜 가지고, 20억 달라고 재판한다고. 전부 다가 요구한다고 하면서 이름을 다 적어놓은 모양이야. 나중에 알고 보니깐.
(아 네… 할머니 그게 한 사람당 20억인가요? 전부해서 20억이 아니고요?)
아니아니 한사람. 그러니까 내가 ????. ~~가 난줄 알고. 아이고 20억이라고? 2억도 아니고.. 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인데 어떻게 20억을 달라 하나, 하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닐텐데… 그거 혹시 김국장이나 안소장이 말한 금액은 아니구요? 할머님들이 생각하는 금액일까요?)
아니 저, 유희남이.
(아 그건 안 될.. 제가.. 여러 사람들, 일본쪽도 만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요,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예요.)
그렇지, 꿈에도 생각 못할 일들을 얘기하고 있는 거야.
(근데 왜 그렇게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할까요?)
그래서 내가 아까 둘러 봤거든, 내가 둘러보는데 나한테 와 가지고 “무슨 소리 하거들랑 20억 달라고 해”라고 이 소릴 하더라고. 나는 “20억이 남의 이름인 줄 알고? 근데 이유가 뭔데?”하니까 가 버리고 없어. 나중에 보니까 회담하던 사람들 다 가고 나중에 보니까, 유희남이가 그 의견을 낸 것 같아.
(아..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로 해결이 안될 거예요.)
유희남이는 원래 根性(근성, 곤죠)가, 통이 크잖아. 생각하는 게, 정말 とんでもない(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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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할머니와의 대화가 마지막으로 녹취된 날짜는 5월 18일이다. 첫 대화 이후에도 여러 번 20억에 대해 언급하셨지만 5월 3일 통화에서도 이 얘기를 하셨다. 이 무렵 배할머니는 이미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다. 그리고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유언처럼 하셨다. ‘알아두라’, ‘써 놔라’, ‘기억해 두라’는 말과 함께.
2014/5/3
아니 뭐 이 얘기는 알아두라 이거지. 자꾸 위안부.., 그.., 그 일본 사람들을, 일본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철저하게 장사를… 유희남이 말마따나 한 앞에 20억씩 받아낸다…, 그런 인간들이 있으니까는.
나도 돈 싫지는 않지만, 누구 말마따나 돈 주면 거절 안 해. 그런데 돈에 그런 욕구를 가지고. ..
(이하 생략)
배할머니가 몸이 아픈 와중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신 이유를 나는 이 얘기의 앞 부분에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뭐 이 얘기는 알아두라 이거지.” 할머니는 “(나만)알고 있으라”는 말을 많이 하셨다. 그리고 살아 생전에 그런 얘기가 공개될 경우 할머니께 미칠 영향이 두렵기도 해서 나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할머니가 두려워한 건 자신의 생각이 세상으로 나가는 일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언젠가는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자신이 있었던 유곽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달라며 받아 적으라고 하신 적도 있다.
20억 얘기를 반복해 하신 이유는, 꼭 유희남할머니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얘기는 오히려, 모두가 멋대로 상상하고 다 아는 것으로 생각하는 “위안부할머니”가, 정말은 결코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 일본 사람들을, 일본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술회가 그것을 말해 준다. 할머니는 분명 당신의 생각을 나뿐 아니라 세상에 전하고 싶어하셨다. 아마 일본에도.
배할머니는 나눔의집에 거주한 20여년 동안 많은 일본인들을 만나셨을 것이다. 그런데 직접 그런 속내를 들은 일본인은 있었을까. 너무나 늦었지만, 이제야 세상에 전한다.
물론 이 또한 한 분의 생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혹 단 한분이었다면 더더욱, 그 “목소리”는 소중히 여겨져야 했다. 그럼에도 직접 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 나 자신의 무력에 대해, 나는 앞으로도 오래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