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철학자라는 이진경교수까지 나를 이런 식으로비난하는 걸 보니, 대한민국의 지성계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듣보잡 여자로 보이도록 하면서 위안부할머니에 대한 효심을 앞다투어 드러내려는 이 심리는, 분명 연구대상이다.
사실, 일찍부터 이유 있어 그에 대한 관심을 끊었던 터라, 더더구나 이런 식으로 그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타자의 생각을 읽는 일에서 출발하는 “철학”을 하는 그의 비판이, 다름아닌 독해력의 빈곤이 만든 것이라는 것, 이렇게도 가벼운 그의 글이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비싸게 소비되고 있는 곳이 다름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이 아침에 다시, 슬프다.
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에는 “제국에 동원당한 위안부”라는 뜻도 있다. 표지에 있는 위안부의 기모노 모습이 반으로 쪼개져 있는 것도, 그런 뜻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으로서 동원당했지만 그 “일본인”이란 허울 뿐이었다는.
무려 “철학”을 하는 이가, 최소한의 독해력만 있어도 알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하고 타인의 책을 “정신없는 책” 으로 단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어 회화와 일본남자”에 관한 성과만 있을 거라는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걸 보면, 이 사태는 어쩌면 지성의 문제조차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의 책은 그렇게 양식부재사태마저 드러내고 말 만큼, 어떤 부류의 남성지식인들의 자존심을 단단히 건드리고 만 것 같다.
그는 “위안부강의”까지 했다는데, 그의 말을 그대로 돌려 주자면 “논평할 가치”는 없을 것 같다.(그 강의를 들은 이에 의하면 너무나 감상적인 강의였다고 하니) 그가 “분노의 칼질”을 한다 해도 마찬가지. 나는 그런 글들에 반론하느라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았다.
이틀 전에 여성학회를 탈퇴했다. 나를 향한 여성혐오적 공격에 대한, 주류페미니스트들의 침묵이 3년이나 되는 긴세월동안 변함없이 이어진 이상, 더이상 그들에게 기대를 걸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의 책이 옳아서라기보다 그들이 옳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떠난다.
다음 재판이 이제 일주일 남았다.
(내 얼굴 사진을 자꾸 올리게 되어 많이 민망하다. 심지어 대개는 악마화된 사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