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9/23

<머니투데이>의 김사무엘기자와 오래 얘기했는데,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음성입력을 했더니 핸드폰이 뭐니(!)투데이라고 받아적기에 잠깐 웃었다.)
그래서 오늘은 <머니투데이>의 다른관계자와 통화하고 “동지적관계”라는 단어가 사용된 전후맥락을 참고해 달라고 했다.

이하는 책 몇쪽을 사진찍어 보내면서 덧붙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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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적 관계”라는 개념이 사용된 부분을 보냅니다.
보시다시피 우선은 다른 나라의 위안부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다는 점, 일종의 국민동원이었다는 점, 그리고 중국등, “적”이 아닌 “동일한 일본인”으로서 나가게 된 건 우리가 식민지 지배를 당했기 때문이고 그러나 그 안에 차별과 폭행이 존재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다시 말해 식민지배의 본질은 눈에 띄는 폭력보다 눈에 띄지 않는 통치기술에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입니다. 군인과의 의외의 관계도 그런 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그것을 말하는 이유도, 일본에 책임을 묻기 위한 것입니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02735206420058&set=pcb.1202736589753253&type=3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02736589753253

渦中日記 2015/9/22

오늘 또다른 기사를 봤다. 제3차 공격이 시작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검찰이 1년 이상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이 부담되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면 내가 검찰조사도 안 받았고 내 쪽에서 조정을 신청한 것처럼 되어 있다. 또다른 오해를 유발시킬 수 있는 기사다.

나눔의 집은 삭제판도 내지 말라고 한다. 조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했더니, 김향훈변호사님이 “해설”을 써 주셨다.

https://www.facebook.com/kimhh.lawyer/posts/960997897275385

http://www.diodeo.com/news/view/1197123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01869916506587

이 다큐영화에 저도 나옵니다

이 다큐영화에 저도 나옵니다. 제 생애 첫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영화출연입니다. ^^
책이 나온 직후부터 찍기 시작했는데 고발을 당하는 바람에 저로서도 예기치 않았던 장면들이 담기게 되었습니다..

감독과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다른 생각”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성노동자에게 관심이 많은 감독이시라 위안부 문제 비중이 어떨지, 어떻게 엮일지 궁금했는데, 살짝 구경한 결론은 위안부 문제 비중이 크다고 느꼈습니다. 위안부문제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한 일본분들도 총출연한,귀중한 기록이더군요.
성매매 문제에 관심 많은 분은 꼭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저는 20일 일요일에 가서 볼 생각입니다. 혹 오실 분은 아는 척 해 주세요.

http://www.dmzdocs.com/program/program_view_2015.asp?p_idx=7&menu=2&category=2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97116093648636

渦中日記 2015/9/13

문예춘추사에 보낼 짧은 원고를 쓰는 중.
해마다 그해의 중요문제에 관한 해설과 해법을 정리해서 발간한다고 하는데, 참고용으로 보내 온 작년도 목차를 보니 작년에 위안부문제를 담당한 건 산케이신문기자다.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부정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대체적으로 보수인사들이 많아 보이지만, 국가의 여성정책에 대한 우에노치즈코선생의 비판글을 게재한 걸 보니 균형을 잡으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지난번에 <월간문예춘추>인터뷰에 응한 건 강제연행이라는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중인 아사히신문의 우에무라기자의 글을 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튼 우파일본인기자가 아니라 한국인인 나에게 의뢰했으니 조금은 일본보수층이 변한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다른 글도 완성해야 해서, 오늘은 아름다운 가을날을 집안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가학적 하루가 될 예정. ㅠ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94277560599156&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9/11

김곰치작가님이 재판에 대해 궁금해 해주셔서 간단히 씁니다.(관심,고맙습니다.😊)

1.가처분 소송
지난 2월에 원고가 지적한 53곳 중 34곳을 “삭제하지 아니하고는 출판, 판매 등등을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났고 이에 따라 지난 6월말에 지적된 부분을 000 처리한 삭제판을 발간했습니다. 현재 서점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출판사와 함께, 판매수익은 전부 동아시아 평화운동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판결에 대한 이의신청을 준비중입니다.

2.민사소송
지난 5월과 8월에 서울 동부지원에서 두 번 재판이 진행되었습니다. 세번째 재판이 10월7일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3.형사소송
검찰이 조정을 권해 조정위원회가 작성한 두번째 조정안을 받은 참입니다. 고발날짜에서 벌써 1년 3개월이나 지난 상태라 조만간 결정해야 하고,만약 성립되지 않으면 기소여부가 결정됩니다.

문안 중에는 “(가처분)결정 주문 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및 제 3국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구절이 있어 원고측이 의미하는 바를 확인 중입니다.
결정주문 1항이란 “(인용목록의)밑줄친 부분을 삭제하지 아니하고서는 위 도서를 출판, 발행,인쇄,복제,판매,배포및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입니다.
최종 확인이 필요하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원고측의 요구는 “일본어판등 해외판과 함께 한국어삭제판도 판매금지” 인 듯 합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93119434048302&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9/6

한 달 전에 나온 책을 이제야 읽을 수 있었다. 꽤 오래 전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에 관해 학계의 첨단을 가는 학자들이 출간해 온 시리즈중의 한권. 이 책에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이 4반세기의 연구와 운동의 궤적에 대해 정리한 논문이 실려 있었다.

일본역사학계의 주류는 아직 진보학자들인데, 이 글은 자신들을 향한 내부비판적 글이기도 했다.
시기별로 오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이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로 국민기금, 강제연행기사 취소후의 아사히신문에 대한 공격과 함께 나의 문제제기까지 포함한 세가지를 들고 있었다.

작년 11월에 일본어판을 낸 이후 예상밖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위안부문제전체 흐름 속에서 나의 문제제기를 분석하고 또 정확히 읽어낸 글은 이 논문이 처음이다. 저자는 현대사상학자와 일본역사학자.
10개월만에,아니 한국어판을 내고 2년만에, 나의 문제제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여준 학자들의 글을 만나 기쁘다.

일부를 우선 번역해 둔다. 이 책을 편집한 역사학자는 내게 “앞으로 위안부문제를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이 논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겁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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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기금을 둘러싼 시도가 <적>의 공격으로 단순화된 방식으로 이해된 것은 이 시기의 하나의 불행이었다.(234)

비판자들 안에서 박유하의 텍스트는 제대로 읽혀오지 않았다.(중략)

어떤 소녀상을 사용해 피해자의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버리는 일이 갖는 복잡한 정치학에 관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젠더문제를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간과해선 안되는 문제일 터였다.(237)

(90년대초에는)피해자의 아픔에 반응하는 자세나 내용도 결코 아사히신문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예를들면 산케이신문의 오사카판이나 요미우리신문에서도…(238)

산케이신문의 1993/8/31 기사는 <인권고찰>특집에서 <인생을 걸고 실명재판>이라는 제목으로 김학순할머니 의 증언을 게재했었다(239)

1991년 이후 언론이 일본군성폭력피해자문제를 얼마나 열심히 사회에 전달하려 했었는지는 TV보도나 다큐멘타리까지 포함하면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다.(239)

위안부문제가 이렇게까지 혼돈에 빠져버린 것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국내에 존재하는 역사수정주의적인 조류의 현실부정에 대해, 그것을 극복할 만큼의 여론형성도 정치적 결단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40)

박유하가 문제제기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 역사인식의 정체에 대한 책임이 일본 정부와 역사수정주의적인 우파 정치가에게 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동시에 사태경직에 대한 책임의 일단이 정대협에게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박유하는 그러한 정대협의 문제가 불문에 붙여지고 오히려 권위가 주어진 것에는 일본에서의 지원운동의 자세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244).

문제는 박유하의 논의에 그대로 찬동하는지 아닌지가 아니다. 비판의 논점을 변경하거나, 명확히 언어화하지 않고 박유하의 논지를 추측만으로 규정하고 는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있다.(244)

박유하의 문제제기는 식민지주의 피해자가 안고있는 집합적기억에 관한 어려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244).

박유하의 지적이 옳다고 일본인인 본고의 저자가 말하는 이 배치자체가, 일찍이 식민지 지배를 받은 사람들한테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정치적으로 문제를 움직여 나가는 일이 가능한 국면을 스스로 포기하는 정황으로 이어질 것이고, 대립은 점점 더 심화될 것이다.(246)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시도나 주장을 운동을 분단하는 <적>으로서만 상정하고 그 주장과의 차별화나 결연한 거부자세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그것으로 안심을 얻는 내적회로가 (운동가와 연구자들에게)생긴다.(249)

….한국의 운동은 그러한 오해와 (문제의)왜소화를 한편으로는 인식하면서도 운동의 역동성속에서 그러한 정황을 바로잡거나 (문제를)심화시켜 나가는 일에는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25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89922024368043

渦中日記 2015/7/29

정우성대표님이 올려 주신 마이니치 신문 칼럼을 번역해 보았다.
군인과 위안부관계를 강조하는 부분등 한두군데 불편한 곳이 있지만( 그리고 검찰에선 “사정을 들은”것이 아니다. “범죄리스트 53개항목”에 대해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조사”를 받았다.) 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던 “제국”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만큼이나 제대로 읽어내고 또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준 이는 많지 않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 두자면 책의 인세는 변호사비용 착수금도 되지 않는다. 물론 세금을 내고 나면 한참 미치지 못할 것이다. 조정이 성립하거나 이길 경우엔 성공보수를, 질 경우엔 2억7천만원을 또 지불해야 한다. 2심,3심 갈 지도 모른다.
아무튼 착잡한 건, 일부나마, 일본에서 책 판 돈으로 한국의 재판비용을 대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팔리는 책은 앞으로 공적비용으로 쓰기로 한지라 더욱 그렇다.

나는 위안부할머니와 한일갈등해소를 위해 책을 썼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나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 건 결국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나를 비난하는 이들이 곧잘 하는 소리인 “일본이 듣고 싶어하는 소리”가 아니라 별로 듣고 싶지 않았을 소리에 귀기울이는 일로. 그리고 그 상황이야말로 재판을 일으키고 지지하는 이들이 원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지독한 아이러니를 알까.

아무튼, 기존 운동이나 연구와 별 관계없는 사람들은 이 편집위원처럼 허심탄회하게 읽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주었다는 걸 이 9개월동안 느껴왔다. 물론 소수지만 관계자들 중에도 감동했다고 말해 준 이들이 있어 고마웠다.

야마다위원은 아베수상의 70년 담화를 위한 지식인모임의 멤버라고 한다. 영향이 있을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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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위안부> 다시 읽기 야마다 다카오

박유하 세종대 일문과교수가 고군분투를 이어가는 중이다.<일본군의 위안부-성노예>설을 부정한 노작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이 한국에서 판매금지처분을 당했기 때문이다. 나는 본 칼럼에서 전에도 한번 이 책에 대해 언급했는데, 제2차대전종료후 70년, 한일국교정상화 50년이 되는 지금이야말로 <제국의 전쟁>을 분석한 이 저서의 깊은 통찰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키워드는 <위안부>지만,그 이상으로 <제국>이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나라가 강대해지면서 다른 여라나라들을 합쳐 더 큰 나라가 된 것>( 신명해국어사전)이다. 제국주의란 <다른 소국의 권익/존립을 희생시키더라도, 자국의 영토/권익의 확대나 신장을 꾀하려는 침력적경향>(앞의 사전)이다

제국의 역사는 길지만, 근대사의 제국은 19세기의 유럽열강이다. 일본은 열강의 아시아 진출에 대항해서 제국이 되었다. 제국은 새로운 영토나 자원을 찾아 먼나라로 군인이나 상인을 보냈다. 그 지점에 위안부의 수요가 있었다. 가난한 집 딸들이 돈으로 팔려갔고 알선업자가 있었다. 인권같은 건 돌아보지 않았던 시대였다.
위안부는 그런 경제사회구조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이해는 과격하기는커녕, 국제사회가 본다 해도 이견은 적을 것이다.

저자는 위안부 증언집이나 일본의 전쟁문학을 꼼꼼하게 읽고 위안부와 일본군사이에는 사랑도 우정도 있었다고 썼다. 그것이 본질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노예적인 지배/복종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논했다.
이 책은 한국어판이 4000부, 일본어판이 15000부 팔렸다.

작년 6월, 전 위안부 9인이 한사람당 3000만원의 손해배상에 더해 출판/광고를 금지하는 가처분을 청구. 금년 2월에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34곳을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도 광고도 할 수 없다는 가처분이 나왔다.
박교수는 지난 달말에, 복자를 많이 사용한 삭제판을 1000부 간행하는한편, 본소 준비에 들어갔다.
그 동안, 도합 5회 검찰이 사정을 들었고 명예훼손죄에 의한 기소는 불가피한 정세인 듯 하다.
제소 배경에는 <일본은 천황제와 사무라이전통에 근거한 툭수한 군국주의국가다>라고 하는 위안부지원단체의 생각이 존재한다.

박유하는 일본의 선의를 논증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과거를 제국주의 세계사를 기반으로 분석하려 하고 있다.
자본과 군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여성의 상품화>를 초래한다. 지금도 전세계군사기지 주변에 <위안부>가 보인다. 박교수의 문제의식은 그 지점에 있다.

박교수는이렇게 썼다.

< 위안부지원운동은 비판대상을 일본이라는 고유명으로 한정시킨 결과,위안부문제를 “남성과 국가와 제국”의 보편적 문제로 취급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이나 미국을 비롯한 일본이외의 나라도 이 문제에서 무죄일 수 없다는 점을 오래도록 못 보게 만든 것도 그 결과일 것이다..>

한일의 불화는 양국에 고유한 의심과 미성숙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역사가 만든 것이다. 일찌기 서구에 추종하며 강자로서 아시아를 지배한 일본은 타자를 지배하는 서양기원의 사상을 넘어 국제사회를 평화공존으로 이끄는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의 이해를 얻어 가며 도전하고 싶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65405096819736

渦中日記 2015/7/28

우연히도, 어제와 오늘,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에서 나에 대해 언급한 기사가 났다. 어제 칼럼은 정우성대표님이 태그해 주셨으니 오늘기사만 우선 번역해서 올려 둔다.
마이니치신문은 얼마전부터 90년대에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실시했던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해 심층취재한 기사를 연재중이다. 그 공과(功罪)를 마주하려는 기사인데, 이렇게 말하는 기금에 대해 사죄의식이 없는 “꼼수”였다고 말한 것이 지원단체들이었다. 나는 책에서 그 부분을 비판했는데, 할머니들을 비판한 것처럼 왜곡유포된 것이 고발이라는 사태였다.

이달말로 닥친 형사고발조정과 다음달에 있는 민사재판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 변호사사무실로 향하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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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한 식민지책임

<전후일본의 반전사상이 국민들에게 뿌리내린 것을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식민지지배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오지 않았던 거 아닐까요>

금년 6월, 동경의 호세이대학에서 열린 일본사회문학회 30주년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한국/세종대 박유하교수는 그렇게 물었다.

부부이야기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 나츠메소세키 <명암>에는 가난 때문에 조선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근대소설을 바탕으로 박교수는 제국이 국민의 이동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점, 이주가 전쟁을 염두에 둔 국책이었다는 점,일본에서의 기민(棄民) 들이 식민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적했다.

그리고 위안부에 대해 언급하면서 <중요한 건 누구나가 기피하는 일을 가장 가난한 이들이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강제인지 매춘인지 하는 논의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하고 말했다.
그의 전문인 일본근대문학에 그려진 식민지의문제는, 역사문제논의에도 반영되었다.

2006년,아시아여성기금이 연 국제심포지엄에 패널로 참석했던 박교수는, <한국의 민족주의가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더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 발언했었다.
금년 5월에 서울에서 식민지에 대한 관심에 대해 다시 물었을 때도 <개인적으로 차별당한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인여성이라는 사실은 관계가 있습니다. 좋아해서 시작한 소세키연구가 진보지식인으로 불리는 것에도 의문을 가졌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저술한 것이 화제작 <제국의 위안부>이다. 교토의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금년 2월에 열린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워크샵에서는 왜 썼느지,무엇을 강조하고 싶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햇다.
<위안부가 목소리를 낸 1991년, 누구나가 식민지지배문제로 이해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 위안부문제논의에서 제국의 문제가 빠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본남성의 문제로만 축소되었습니다 >

<조선의 여성은 “애국”을 당했고 일본인이 되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조선인 위안부상을 통해 식민지지배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 겁니다. 일본이외의 다른 제국국가의 문제도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서구일본학자들에 의한 금년 5월성명에는 <제국에 관련된 인종차별, 식민지주의와 전쟁,그리고 그것이 (중략)시민들에게 끼친 고통과 충분히 마주해 온 나라는 아직 어디도 없습니다> 라는 말이 이오진다. 그리고 일본정부에 대해 <과거의 식민지배와 전쟁당시 침략문제와 마주하라>고 요구했다.

박교수의 화해방안은 책임을 무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그리고 <제국의 위안부>한국판을 둘러싼 형사/민사쟁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식민지책임은 과거의 제국 전체를 향한 난제가 아닐까.(기시도시미츠. 岸俊光)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6491844686840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일본단상

일본에 관해 쓴다 해 놓고 한동안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얘기만 올렸다. 이제 가끔 본론을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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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각된 “전후일본”

아베정권의 집단자위권에 반대하는 일본인이 60퍼센트가 넘는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중 어디도, 놀랍다는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늘 생각해왔던 “군국주의국가”라면 국민들이 나서서 찬성해야 하는데, 그런 국민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편”이 되어 준 듯한 일본을 어여삐 여기는 보도들만 넘쳐날 뿐이다.

하지만 정말은 그런 일본이, 일반적인 일본인 다수의 모습이다. (집단적자위권 문제에 관해선 더 섬세하게 논해야 할 부분이 있으니 다시 쓸 생각이다.)
심지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무라야마수상의 여러정책도, 그저 악의 화신인 것처럼 얘기되는 자민당의 국제정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아사노토요미). 그리고 내가, 십년전에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에서 중점적으로 쓴 건, 그런, 전후일본과 그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였다.

물론 전후일본의 한계나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다. 하지만 한계를 말하려면 우선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충분히 알아야 한계를, 그리고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전에 쓴 적이 있지만 한일협정을 맺고 국교정상화를 했어도, 우리가 일본의 맨얼굴(문화/일반인)을 보기 시작한 건 아직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썼던 얘기는, 일본전후는 기본적으로 이전과의 단절을 결심하며 시작된 시대였고, 그러다 보니 국민들에게 반전사상/평화주의가 정착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애국심이 없어진 국민들을 우려하거나 미국으로부터의 자립등을 생각하는 우파들의 목소리가 그에 반발해 커진 시기가 가끔 있었고, 그걸 일본의 “본질”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의(주로 일본좌파가 견인. 기본적으로는 정치적위기의식과 자성에서 비롯된) 목소리만 보도되면서 그것이 “전후일본”인 것처럼 간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전후일본”에 대해 아직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전후사상”의 핵심에 있었던 지식인으로 꼽히는 가토슈이치가 제대로 소개되지 않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물론 그렇게 된 건 나를 비롯한 일본학연구자들의 책임이다. 나역시도,가라타니고진등 현대지식인은 소개했지만( 일본에 이른바 “양심적지식인”이 있다는 것도 알려지지 않았을 때 얘기다), 마루야마마사오, 가토슈이치, 요시모토다카아키등의 존재를 소개하는 일엔 태만했다(마루야마는 많이 번역되었지만).
문학조차도, 우리 앞에 놓인 건 소세키니 미시마등 근대작가에서 갑자기 현대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중심이고, 그 사이에 놓인 노마히로시나 오오카쇼헤이(그에 관해선 문학시리즈에 넣었지만)에 대해선 알려지지도 읽히지도 않는 것이 현황이다.

물론 타국의 문학과 사상을 꼭 체계적으로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대일본을 알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전후일본”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은 우리의 일본이해를 결정적으로 왜곡시켰다. 그러는 사이에 “전전일본=전후일본”이라는 지극히 단선적인 이해만 팽배하게 되었다.
일본과 다시 마주하려면,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건 아주 적거나 왜곡되었었다는 자각부터 필요하다.

지난 주말심포지엄은, 일본에서조차 포스트모던이후 비판에 급급해 그런 전후사상을 잊거나 폐기하려하는 현대일본정치에 대한 위기의식을 강하게 갖고 있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다시한번 “전후일본”의 근간을 만든 “전후사상”을 재검토해 보자는 취지의 심포였다. “빛과 그림자”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고 11살때 패전을 맞은 81세 노학자와 “영속패전론”을 쓴 37세 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선배들의 “지의 양상”에 대해 검토하고 고민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조차 했다.

깊이 알아야, 폐기든 망각이든 계승이든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과거를 마주하는 방식”은, 잘 알지 못하는 채로 그저 폐기하려 하거나 옹호할 뿐이다.
하지만 후대가 할 일은 전부 버리거나 전부 취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죽은자를 둘러싸고 그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빛과 그림자”를 냉철히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건 후대이기에 가능한, 특권이기도 하다.

주말심포에서 만난 역사학자 나리타 류이치 선생은
1919년에 태어나 7년전에 작고한,”9조의 모임”의 발기인이기도 했던 가토슈이치에 대해 쓴 책<
가토슈이치를 기억한다–일본의 대표적 지식인은 일본의 “패전후”에 어떤 물음을 던져왔는가>는 제목의 책을 건네 주었다.
이 모임을 주최한 70세 불문학자 미우라선생은, 가토의 생일인 9월19일에 가토에 관한 강연회를 연다고 했다. 금년 강연자는 우에노치즈코선생이라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60243804002532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반복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 이런 일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일본이 꼼수를 부리려는 것으로만 보도하지만, 이번 대상은 어디까지나 “메이지시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다. 1868-1912,즉 메이지 천황이 통치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시설들이다. 말하자면 정확히는 일제시대 이전의 설비들이니 한국이 꼭 직접적인 관계를 주장해야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리고, 1925년에 나온 “女工哀史”라는 책이 말하는 것처럼, 당시의 노동자 착취는,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곳에 조선인노동자의 땀과 피와 눈물이 존재했다면 , 비록 시기가 다르더라도 기억되고 보존되는 일의 의미는 크다. 그랬기에, 시설들 어딘가에 그런 설명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나도 생각했다. 그래서 6월말 한일 외교당국자들이 “주석”을 다는 형태에 합의했다기에 안심했었다. (최근 기사들을 보면 설비가 아니라 등재 신청서에 적는다는 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직전에 한국당국자들이 생각을 바꾼듯 하다.
민족문제연구소등이 본까지 가서 반대시위를 했으니 그런 영향을 받은 걸까. 민디코틀러씨가 등장한 걸 보면 위안부문제 관련자들도 가세한 듯 하다.
코틀러씨는, 2007 년미하원에서 위안부문제 결의안이 통과되도록 힘쓴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사안사안에 따라서 신중하게 달리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역사문제도 아니고 정치문제도 아닌 “신뢰문제”가 되고 말았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간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중 하나는, 뭔가 조치를 취해도 최종적인 해결이 되지 않고 또다시 사죄요구를 해오지 않을까 하는 불신에 있다. 이번 일로, 한국과는 어떤 약속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일본 사회에 더 확산될 것이다. 8월 이전에 어떤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한걸음 더 멀어졌다.

물론 옳기만 하다면 한번 정해진 일이라도 번복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일본에 관한 한국의 생각은, 충분치 않은 정보와 인식과 적대의식이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점.

몇 년 전에 미국에 있었을 때 느꼈던 일 중 하나는 한국도 일본도 아주 작은 나라라는 거였다. 중국만 약간 존재감이 있었을 뿐.
불행한 일이다.

http://m.mk.co.kr/news/headline/2015/638250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

http://sp.mainichi.jp/select/news/20150705k0000m040048000c.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50534851640094

渦中日記 2015/6/30

6월 마지막날, 오늘은 검찰에서 두번째 조정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담당변호사가 혼자 가겠다 해서 나는 집에서 오늘이 마감인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늦은 오후. 받아든 조정안을 보니 짓누르듯 내려오던 하늘처럼, 가슴이 막혀 온다.

도처에 폭력과 불합리와 거짓과 무책임이 만연해 있다.
오늘은 고작 10살짜리 아이들이 친구에게 성적인 폭력을 가했고, 피해자임에도 피해가 묻혀지려 한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봤다. 그 아이들을 만든 어른들,사회와 나의 사건은 무관하지 않다.

비를 좋아하지만, 오늘은 파란 하늘을 보고 싶다.
맑은 하늘은, 언제 볼 수 있을까.

작성일: 2015.06.30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47597528600493

渦中日記 2015/6/25

삭제판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다.
가처분 결정이 난 지 4개월 만의 일이다.

참담한 심경이지만, 어쩌면 그저,
전염병, 가뭄, 자살, 빈곤사, 부패, 유명작가의 표절…등등으로 혼란스러운, “표류하는 대한민국”의 또하나의 얼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국가의 얼굴”로 삿대질했던 목소리들의 결과물.

이 책의 수익도 평화를 만드는 담론의 생산과 확산에 사용될 예정입니다. 불행한 책이지만, 내용을 이해하시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읽어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43896005637312

渦中日記 2015/6/22

작년 7월, <제국의 위안부>를 고발한 나눔의 집 관계자들은 내가 10년전에 낸 책까지 공격을 시작했고 한겨레를 비롯한 몇몇 신문이 곧바로 “일본우익을 대변한 책”이라고 보도했었다.

그 시점에선 전자책밖에 없었는데 그저께 심포지엄날짜에 맞춰 종이책이 다시 나왔다. 표지는 최규승 시인의 사진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여러 페이스북 친구들이 이 책을 함께 만들어 주셨다.

전자책에는 없는 “독도보론”과 “해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출판사와 함께, 이 책의 수익은 모두, 동아시아 평화 운동에 쓰기로 했으니, 많이많이 사 주시고 읽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분들이 “일본우익을 대변”하는 일에 가담했는지 확인해 봐 주시기를.
함께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예전책보다 더 아름답고 더 지적인 책이 되었습니다. ㅎ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41455249214721

渦中日記 2015/6/21

1. 폭우와 메르스를 뚫고 모여주신 분들, 그리고 헌신적으로 애써 주신 분들 덕분에 무사히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작년 4월엔 전문가들끼리의 심포지엄을 주최했었다. 금년엔 한일문제전문가가 아니라도 “나의 문제” 로 생각하고 고민한 분들의 목소리와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게 이 1년 동안의 소중한, 가치있는 변화라고 믿는다.

2. 오늘은 오랫만에 늦게 일어났고. 멀리서 와 주신 Naran Jung 님과 이태원에서 브런치를 먹었고, 쇼팽과 코페르니쿠스의 흔적을 보러 국립박물관에 갔었다. 1543년에 발표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담긴 자필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적하고 느긋하고 폭우가 지나간 후의 산들바람이 기분좋았던 오후.

3. 그동안 페북에선 신경숙작가에 대한 고발과 데이트폭력 이야기가 화제인 듯.
넘치는 고발과 폭력이, 더이상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 2010년대의 한국인들을 상징하는 걸로 보인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40725702621009

길고 긴 <안내>

어제 발표된 <국가평화지수>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42위라고 합니다. 일본은 8위라고 하네요. 북한은 하위에서 10위 이내라고 합니다.

사실 저의 관심은 일찍부터어떤 담론(사고)이 사람에 대한 지배와 폭력을 당연시해 자타를 불행하게 만드는지에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평화>라고 하면 <국가>단위로 떠 올리지만 한사람한사람의 평화(로운 일상)가 유지되는 일 없는 국가평화란그저 중심체제의 평화일뿐입니다.

국가가 화해와 평화를 만들지 못하니 시민이 나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얼굴을 한 시민단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더니 센 돌을 맞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무수한, 국가를 대변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그런 내외부의 정황을 넘어서지 못하면 동아시아의 평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외침에 귀기울여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보도자료 올립니다. 기자친구분들께서 더널리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페북친구여러분들이 함께 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내일 마련된 공간이 텅텅 빌까봐 오늘은 비장하지만..어깨에 힘을 빼고 즐겁게 유쾌하게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요즘 회자되는 미시마유키오<우국>같은 극단의 사고야말로 폭력을 만드는 법이니까요.)
————————-

< 2015년 6월 19일 보도자료 >
(문의 : 김석희 010-9147-8485)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 128-4 2층 이메일 [email protected]

‘동아시아화해와평화의목소리’ 창립총회 및 기념 심포지엄
주제 _역사를 마주하는 방식 –해방 70년, 한일협정 50년, 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일시 : 2015. 6. 20(토) 오전 11시~오후 6시
장소 :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세미나실 (수하동 67 ‘미래에셋센터원빌딩’ 서관 19층)

동아시아 평화는 화해를 통해서, 민족과 국가를 넘는 상상력으로

『제국의 위안부』 소송사태(2014년 6월 16일)로부터 정확하게 369일이 되는 2015년 6월 20일에 ‘동아시아화해와평화의목소리’ 창립과 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지난 1년 동안 이어져 온, 소송에 반대하고 한일 간, 나아가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단체 출범과 이를 기념하는 심포지엄으로 가시화된다. 이날 창립총회에서는 단체의 취지문에 걸맞은 정관을 확정하고, 대표와 운영위원을 선출해 『제국의 위안부』 소송사태를 넘어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목소리를 낼 것임을 밝힌다. 오후 1시에 이어지는 기념 심포지엄 1부에서는 동아시아 교류와 평화와 관련해 강남순 교수(텍사스크리스천대), 아사노 토요미 교수(와세다대) 등이 발표를 한다. 또, 2부에서는 단체에 참가하는 시민들을 대신해 정우성 특허사무소김앤정 공동대표와 요시다 베키 교수(인덕대)가 심포지엄 주제와 관련된 시민사회의 담론을 발표한다. 이어 3부에서는 이날 발표자와 장박진 교수(국민대), 김용운 교수(한양대), 세미나에 참가한 시민들이 종합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한편, 이날 소송사태와 관련해서 법원의 판결에 따라 삭제 부분을 〇〇〇〇〇으로 처리한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과 『화해를 위해서』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어 참가자들에게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은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의 중재 요청 등으로 제작이 지연되어 일주일 뒤, 30일경에 출간된다. 『화해를 위해서』 개정증보판은 예정대로 이날 출간된다.

창립취지문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로 대표되는 오랜 한일 갈등의 배경에는 이 지역이 겪었던 근대—20세기의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가 존재합니다.
제국주의의 상흔의 극복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민족주의뿐 아니라 냉전 시대가 만든 좌우 이념 대립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지역에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뿐 아니라 이념 차이에 따른 갈등도 넘어서야 합니다. 국적과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대화와 우애의 공간을 만드는 일은 가능합니다. 각기의 내부 분열과 적대가 이제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가가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는 개인들의 사고가 만날 때, 공동체 내외부의 평화가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국가·민족·이념에 진지하면서도 그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우리의 이웃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바랍니다. 반목과 불화를 넘어선 우애와 평화를 만듭시다. 국민 간의 불신은, 국가의 폭주를 막을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민족이나 좌우 이념의 차이를 넘어, 체념과 혐오를 넘어서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제국주의와 냉전주의의 상흔을 극복한 평화로운 미래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시도를 시작합니다. 공간의 제약을 넘어 함께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지구촌 모든 분들이 함께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초청의 말씀
동아시아 화해과 평화의 목소리가 발족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이 모임은 2014년 6월, 박유하 교수에 대한 나눔의 집의 고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주로 페이스북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만든 모임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두드러진 것은 학자 이상으로 작가, 예술가, 그리고 직접 관련이 없는 시민들이 냉철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주었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이른바 ‘민주사회’의 폭력적인 단면도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해방 70년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일본’이라는 이름의 주술적 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사회(일본 사회)의 제반 문제점, 그리고 가능성을 진단하게 될 것입니다. 구호가 아니라 실제로 평화와 화해의 구축이 가능한, 또 다른 ‘시민의 목소리’를 모색하려 합니다. 50주년을 맞은 한일협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려 합니다.
오전에 창립총회를 열게 됩니다. 창립취지문을 보시고 함께해주실 분들은 오전부터 하게 될 창립총회에도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연고 없이도 만나고 소통할 수 있었던 저희들이, 이제 다시 여러분들과의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발기인
김남현((주)미리온 대표), 김미영(텍사스주립대 교수), 김석희(경희대 연구교수), 김철(연세대 교수), 민김종훈(성공회 사제), 박삼헌(건국대 교수), 박세진(애들레이드대학 교수), 박유하(세종대 교수), 서윤(대중예술인), 신인섭(건국대 교수), 신형기(연세대 교수), 심준섭(교육가), 이권희(단국대 연구교수), 이우연(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 이희경(프리랜서 통역가), 정나란(현대무용가), 정승원(기호학자), 정우성(변리사, 특허사무소 임앤정 공동대표), 정종주(뿌리와이파리 대표), 정찬용((주)정찬용교육 대표), 최규승(시인), 황종연(동국대 교수),
나일경(추쿄대 교수), 고모리 요이치(도쿄대 교수), 김두철(오카야마대 교수), 니시 마사히코(리츠메이칸대 교수), 나카자와 케이(호세이대 교수,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메이지가쿠인대, 작가), 아사노 토요미(와세다대), 오구라 키조(교토대)

함께해주시는 분들
곡인무영(예우학당), 김도언(소설가, 시인), 김문숙(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회장),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 김영규(인하대 명예교수), 김향훈(종합법률사무소 센트로 대표), 박일환(시인), 박정란(오이타현립예술문화단기대학 교수), 배승주(프리랜서 통역가, 릿쿄대학 겸임강사), 윤성호(동서대 교수), 손이상(문화운동가), 이민석(변호사, 이민석 법률사무소 대표), 이춘경(프리랜서 통번역가), 장현우(사진가), 최돈선(시인), 최범(디자인 평론가), 최순애(건국대 강사), 후루카와 아야코(古川綾子, 번역가)
_가나다순 2015. 6. 19 현재

발표문 속으로
하나의 고유명에 의거해 민족/국가 대립을 강조하는 일로 여성들에 대한 착취를 덮고 ‘민족’의 딸이 되기를 요구하는 가부장적 담론—지배와 공포의 담론은 폭력을 막지 못합니다. 혼혈과 변방의 사고를 억압하고 모두가 똑같은 ‘일본인’, 혹은 ‘한국인’이 되어 대립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틀에서 벗어나는 시도에 대해서는 마녀사냥적인 배제를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총체적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예외/단편/파편’등의 단어로 존재한 기억을 소수화하고 억압하지 않아야 합니다. 차별과 억압이 중심인 공간에서의 ‘다른’ 기억은 대세에 저항했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기억해야 하고 이어받아야 할 하나의 ‘정신’입니다.
동시에, 중심적인 다수의 체험도 기억되어야 합니다. ‘아시아여성기금의 기금의 망각’은 기억의 소거입니다. 한국인에게 사죄했던 이들을, 그들이 ‘국가’를 대변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들의 마음을 역사에서 배제한 폭력입니다. 그 결과로 일본인의 다수의 선한 마음은한국인의 기억에서 무시되고 소거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전쟁을 기억하던 이들이 많았던 시대의 중심기억’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전후일본’을 대표하는 이들이었고 그것이 바로, 그들이 기억되어야할 이유입니다. 최근 십여 년의 혐한은 더 젊은 층이 중심입니다.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기억보다 전쟁과 지배를 기억하는 이들의 기억이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피소 1년 _박유하(세종대) 중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강제연행’과 마찬가지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성노예’였는지, 아니면 ‘매춘부’였는지에 대한 논의를 좌우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위안부의 존재이다. 위안부로서의 징수·이송·관리에 일본정부의 관여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일본인위안부도 예를 들면 버마에서 마찬가지로 미군에 수용되었었다는 것과, 위안부제도가 게이샤(芸者)의 미우케 제도(돈을 지불하고 기적에서 빼 주는 제도)를 가원으로 해서 부모의 전차금(前借金)를 갚는 기간 동안에는 자유를 빼앗기는 상태에 있었음을 이유로 ‘매춘부’ 논이 전개되고 있는 것에 반해 조선인위안부가 특히 젊은 연령층의 여성이 많았다고 여겨져 왔던 점과, 일본 본토와는 달리 보다 강압적이었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징수(徴収)가 이루어졌다는 점, 조선인위안부와 일본인위안부 사이에 위안소관리에 있어서도 다른 가격과 대우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가지고 조선인위안부의 ‘성노예’논이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여담이긴 하지만, 조선에서의 징수 문제를 놓고는 조선통치의 지방 말단(末端)을 책임지고 있던 조선인 면장이나 이장이 위안부 징수 동의를 총독부의 의향과 함께 얼마나 불가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에 대한 문제도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한일정상화와 위안부 문제/역사에 의거해 생각한다: 국민감정에 이용되어온 역사로부터의 탈피를 향해 _아사노 토요미(와세다대학) 중에서

프로그램

총회 11:00~12:00

휴식 12:00~13:00

1부 13:00~14:40 _사회 | 이권희(단국대)
개회사 _사회자
축사 _라종일(전 주일한국대사)
환영사 _김철(연세대)
『제국의 위안부』 피소 1년 _박유하(세종대)
일곱 가지 ‘정치학들’의 교차
—‘위안부 논쟁’ 에 대한 비판적 소고 _강남순(Taxas Christian Univ.)
한일정상화와 위안부 문제/역사에 의거해 생각한다
—국민감정에 이용되어온 역사로부터의 탈피를 향해 _아사노 토요미(와세다대학)

휴식 14:40~15:00

2부 15:00~16:00 _사회 | 정우성
왜 이따위 책을 냈냐구요?
—어느 출판인의 소박한 반문 _정종주(뿌리와이파리 대표)
위안소와 조선인 _이우연(낙성대경제연구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 국민감정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_요시카타 베키(인덕대)
전승되는 증오에 관하여 _정우성(특허사무소임앤정 공동대표)

휴식 16:00~16:10

3부 16:10~18:00 종합토론 _사회 | 김철
장박진(국민대), 김용운(한양대), 박유하, 강남순, 아사노 토요미
폐회사 _김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39035016123411

渦中日記 2015/6/16

작년 오늘, 6월16일에 고발을 당했다.
아침에 지인에게 그렇게 말했더니 오늘은 율리시즈에 나오는 Bloom이 더블린을 산책한 날인 “Bloom’s Day”라고 했다. 1904년, 111년 전 6월16일.

토요일에 발표해야 할 원고를 아직 쓰지 못해 여유가 없지만, 좀 편해지면 오랫만에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그래서 문득 들었다. 이 1년, 전쟁처럼 보내느라 “타인의 시간” 을 게으르게 따라가는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대신,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다. 만나기 전에 헤어진 사람도 많았다.

이 365일, 모욕과 적대를 온전히 받아내야 했던 , 슬픔과 우울의 시간을 견뎌 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늘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었던 페이스북 친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과의 만남과, 주신 마음에 새삼 깊은 감사 전합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멋진 분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렵니다.
인생은 결국 그런 것인 듯 합니다.

1년이나 지났으니 정말로 일상의 리듬을 찾고, 아직 만나지 못했던, 만나고 싶은 분들과, 만날 궁리를 이제 좀 해야겠습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37331336293779

渦中日記 2015/6/10

1년전에, 가깝게 지내던 위안부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무렵에 올렸던 글과 할머니의 영상들이 나눔의집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을 다시 보니 명확히 알겠다. 이 아침, 배춘희 할머니의 명복을 다시 빈다..

어제 젊은 연구자들의(대부분 남성으로 보이는데 이 점이 내겐 흥미롭다. 위안부문제 연구자 빼면 내게 비판적인 학자들은 대부분 남성인데, 그 이유를 조만간 쓸 생각이다)내게 대한 비판이 포스팅된 걸 보았다.
지금 좀 바쁘고, 아직 더 올린다니 필요하면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한가지만 우선 말해 둔다.

내가 한 것으로 전하는 이들의 요약에는 내가 하지 않은 말(글)들이 있다. 내가 실망하는 건 이 부분이다. 얼마전에 윤명숙 선생도 일본신문에서 내가 “일본 국가책임보다 업자 책임을 더 강조”했다고 썼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렇게 쓰지 않았다. “조선인 업자가 더 많다”고 쓰지 않았고 일본인업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물론 “강제연행은 없었다”고도 쓰지 않았다.
내나름으로 신중하게 접근한 기술을 거칠게 정리하면서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려 하는 이들의 눈과 심리가, 나는 진심으로 걱정된다. 패기는 때로 세상을 바꾸지만, 만용은 해악일 뿐이다.

정영환교수의 비판에 대답할 시간을 여전히 갖지 못했지만(일본어 비판의 경우, 지원자들은 다수고 나는 혼자 대답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하지 않은 말로 나를 비판하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이 나를 위축시킨다)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하니 반론을 조만간 간단하게라도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의 왜곡을 단순한 오독으로 치부하거나 웃고 넘길 수 없는 건, 다들 알다시피 나는 지금 고소당한 몸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 나를 “형무소에 넣고 막대한 돈을 지불케 하라!”는 요구와 싸워야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유하의 책은 나쁜 책”이라는 이들의 말들은 우선은

1.재판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 대한 고발에 참여하는 일이 된다. “그럼 하고 싶은 비판도 못하느냐”고 말하겠지만 그런 구조를 만든 건 지원단체와 일부할머니들이다. 비판을 하고 싶다면 먼저 고발을 취하하라고 말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2. 내가 책에 쓰지 않은 말,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하고 쓴 것처럼 말하는 건 “허위배포”다. “학자의 말”이면 그에 해당되지 않는 건지 여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오늘이후에도 올리겠다고 한 내용, 지금이라도 재확인하고 내보내 주기 바란다. 내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훗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삭제판도 일본어판도 판매하지 말라”고 나를 옥죄는 이들의 선두에 명색이 학자인 이들이 서 있다는 것이, 내겐 작금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또하나의 풍경으로 보인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31391193554460

渦中日記 2015/6/5

정규재TV에 나갔다.
지난 2월 가처분판결 이후, 내 책을 이해해 주는 이들의 부름은 누가 되었건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정했었다.
책이 나온 직후에 했던 조선일보 인터뷰도, 고발이후에 했던 월간조선 인터뷰도 결국 나오지 않았던 것처럼, 내게 대한 적대가 보수/진보구분과 상관없는 이상, 보수/진보매체를 구분해 응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게 상처를 준 건 진보쪽이다..)

우리사회에 지금 필요한 건, 정치적입장과 상관없이, 필요한 사안에서 대화를 나누고 접점을 찾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름의 그런 시도이긴 한데..잘 했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과이언맨의 김남훈샘이 응원 와 주시고 두시간내내 지켜봐 주셔서 든든했다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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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8272527199660

渦中日記 2015/6/3

햇볕 따갑고 바람 많았던 오후에, 형사고소에 관한 조정위원회가 열렸었다. 새로 담당하게 된 검사가 권고하기에 수락했던 조정이다. 두 변호사님과 출판사의 정종주대표님, 이렇게 넷이 같이 출석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두시간 가까이 걸렸다.

전에 나온 어떤 기사에 의하면 원고측은 삭제판도 내지 말라고 요구중이다. 5명의 조정위원들이 제안한 내용은 “사과”와 “삭제요구된 부분은 국내외 출판에서 영구히 복구하지 말라”였으니 그나마 “조정”된 거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나는 “국내외”라는 단어를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일본어판도 내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니까. 이미 아는 얘기여도 공식석상에서 들으면 비현실감이 강해진다.

아직도 가끔,내가 당하고 있는 일이 현실인가 싶을 때가 있다. 하긴, 메르스 2차 3차 감염자들이 맛볼 절망감과 분노에 비하면 내가 당하고 있는 일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다. 가능한 한 희생자들이 적기를 기도한다. 나는 편견과 적의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야 하고, 그들은 공포와 죽음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야 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27464977280415&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70퍼센트 이상이 일본을 싫어하고, 그 이유는 “역사를 반성하지 않아서”이고 일본을 “군국주의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총체적/평균적으로 본다면 이런 일본관은 결코 정확하지 않다. 이런 일본관을 정착시킨 건 불과 이 이십여년이고, 위안부문제, 혹은 독도문제 주변인들의 선입견과 편견이다. 또 그런 편견을 확산 시키는데 앞장서 온 언론과 지식인들이다.

내가 정대협을 비판한 건 그런 편견확산에 가장 먼저, 열정적으로 앞장서 온 곳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대협은 위안부문제에 대해 발언할 때마다 “군국주의 일본”을 강조해 왔다. 반크,서경덕,김장훈등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군사대국이 꼭 군국주의가 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십여년의 그런 외침이 작금의 불안정한 동아시아정세에 일조했다는 점. 국가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건 시민들인데 지금의 동아시아 시민들은 불신과 경계심(담론)에 휩싸여 그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불화와 전쟁은 불신과 경계심이 만든다. 근거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런 불신의 밭에서 희생되는 건 꽃같은 젊은이들. 오늘도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그렇게 불신과 경계심의 덫에 사로잡혀 가고 있는 중이다. 정말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채로.

http://www.genron-npo.net/world/genre/cat212/post-358.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5636477463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