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5/27-2

재판은 20여분만에 끝났다. 양측이 낸 서류를 확인하고 양측 변호인들이 간단히 할 말을 하고 다음 공판 날짜를 정하고 종료.

오늘은 할머니들도, 나눔의 집 소장도,나눔의 집 고문 변호사인 박선아 변호사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직접관계자들 없이 혼자 나온 원고측 변호사는 좀 쓸쓸해 보였다. 내 책이 “전쟁을 찬양”했다고 쓴 그가, 지금이라도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한 언론이 감상을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번에 답변문서를 다시 정리하면서 이 문답이 할머니들과 나 사이의 것이 아니라 연구자를 포함한 지원자들과의 논박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절감했다. 학문적인 견해를 법원에서 피력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서글프다.”
“내 사건은, 일본에 관한 얘기는 자유롭게 말하는 일조차 어려운 우리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일로 고통을 받았고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 이번 일이 그런 문제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키고 그런 정황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가고 싶다.”

페친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돌발사태 없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611314332448

渦中日記 2015/5/27-1

오늘, 민사재판이 시작된다.
명예훼손소송이란 기본적으로 형사고발이라는 걸, 나의 일이 되고서야 처음 알았다.
그런데 곧 1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기소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민사재판이 이제야 시작된다는 것도 그나마 관계자들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침 페친 정승원샘이 <제국의 위안부>에 관한 글을 다시 써주고 계셔서 링크해 둔다. 수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로,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득 가슴에 품고, 오늘은 처음으로 법원에 나갈 예정이다.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0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41&thread=21r05

http://www.newsmin.co.kr/detail.php?number=4867&thread=21r04

http://newsmin.co.kr/detail.php?number=4949&thread=21r0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3448301015416

渦中日記 2015/5/23

5월의 두번째 연휴. 이틀째 변호사님과 함께 재판준비중이다.

새로 담당해 주게 된 변호사님은 책을 좋아하고 근대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한일관계관련 나의 책을 전부 읽었을 뿐 아니라 그런 책을 쓰도록 만든 이론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책까지 소개해 달라고 해서 나를 살짝 감동시킨.

이번 주 수요일에 민사재판이 시작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22041717822741

일본의 인터넷뉴스에 언급되었기에…

일본의 인터넷뉴스에 언급되었기에 이런 글을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유통시키는 매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본에도 혐한이 있지만 이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인식과 감성을 가진 이들이 한국에서는 결코 소수가 아니라는 점.

하지만 문제는 이사람보다도, 이런식의 인식을 확산시키고 만, 이 이십여년에 걸친, 위안부문제해결운동의 편향적인 정보제공에 있다.

“만약 기회가 오면, 우리도 일본왕실의 가코 공주를 위안부로 보낼 수밖에 없다.”

http://m.ggdaily.kr/a.html?uid=68784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19654438061469

渦中日記 2015/5/2

작년 겨울에 일본의 주간지와 인터뷰한 기사가 번역되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사실 「週刊文春」은 혐한기사에 앞장선 매체였고 이 잡지를 내는 문예춘추사와는 예전에 책을 내기로 했다가(번역자가 선택한 출판사였다), 편집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걸 알고 마지막교열단계에서 출판을 중지한, 악연도 있는 곳이어서 경계했었다.
하지만 기자는 고발이전부터 여러번 취재를 요청했고 결국 “매체로 판단하지 말아 달라”는 말에 수락한 경위가 있다. (그런데 여기 쓰인 사진은 프레시안의 사진이다. 프레시안 기자가 수십번 셔터를 누르기에 더 나은 사진을 올려주려 그러나 생각했었다. 나중에 기사제목을 보고 그게 내 오해였음을 알게 되었지만.ㅠ)

우려하면서도 보수매체의 의뢰를 굳이 받아들인 건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려면 굳게 닫혀 있는 보수층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규탄은 상대를 바꾸지 못한다. 국가관계건 개인관계건.

http://aristotelecom.tistory.com/m/post/194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10547522305494

진짜 자존심을 보고 싶다

아베수상이 미국에서 위안부문제에 대해 “인신매매”라고 말한 일을 두고 언론이 맹비난중이다. 하지만 그건 며칠전에 일본에서 지원단체가 “방침전환”을 발표하면서도 그에 대해 설명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최소한 한국인 위안부에 대해 말할 때 지원단체들은 더 이상 공식적으로는 “강제연행”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인식변화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언론과 국민들만 불필요한 분노와 혼란 속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나는 그런 부분을 책에서 “거대한 소모”라고 썼었다. (지원단체는 그 부분도 삭제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런 요구들은 기각되었다. )

지원단체가 일본에 대해 요구한 사항중,
“당시의 국내법 및 국제법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 침해였다는 사실”이란 실은 강제연행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인신매매와 이송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현재 지원단체와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하와 같다.

1.”인신매매임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불법”
2,”일본에서는 매춘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도 21세 이하는 도항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조선에서는 21세 이하도 가능하도록 해서 어린 소녀들을 위안부로 동원가능하도록 했다”
3,”일본에서는 취업사기나 인신매매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규제가 존재했는데 식민지에서는 그렇지 않아 사기나 인신매매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하지만, 이 주장들엔 전부 문제가 있다. (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으니 여기선 생략한다)

중요한 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지원단체들은 더이상 우리가 생각해온 것처럼 “강제연행”이 아니라 “인신매매”를 바탕으로 이런저런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그렇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아,국민의 다수는 군인이 강제연행한 것으로 생각하고 소수만 속임수나 인신매매가 많았다는 걸 아는, 그나마도 일본정부가 지시한 것으로 생각하는 식의 인식편차와 그에 따른 혼란을 낳고 말았다.

지원단체가 방침을 바꾸면서도 “일본이 들어주면 그것이 곧 배상”이라고 말하는 건, 일본이 보상을 했을 경우 그것을 그간의 주장이었던 “배상”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20년가까이 “강제연행”이라는 주장을 세계에 말해왔으니 한번쯤은 자신들의 인식이 잘못되었었다고 말해도 되는 것 아닐까.
이대로 가면 위안부 문제가 설사 해결된다 해도 한일간 앙금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너무 많이 감정을 상했다. 그 중심에는 일본 우익도 있었지만 지원단체도 있었다. 소수의 주장들이 다수의 감정을 상하게 해 국가간 대립으로 이어진 셈이다.

누구나 잘못된 주장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이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면 자신의 잘못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게 진짜 자존심이라고 믿는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08351789191734

渦中日記 2015/4/24

오전에 검찰에 다녀왔다. 지난 겨울 나를 범죄자 취급했던 검사는 결국, 판단을 보류한 채로 이동해 버렸었다. 그리고 새 담당검사는 지난번 검사보다 훨씬 젠틀했지만, 기소할 생각을 내비쳤었다.

그런데 그 검사가 이번에는 “형사조정”이라는 것을 권했다. 기소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쌍방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몇몇 위원들이 조정하는 것이라니, 지난 가을에 했던 언론중재위원회와 비슷한 거 아닐까 싶다.

우연히도, 아침에 나온 뉴스를 보니 지원단체가 일본의 사죄와 보상에 대한그 간의 주장을 바꾼 것 같다. 사실 내 책은 지원단체의 주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말하려 한 책이었다. 생각을 바꿨다면 이제 소취하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아무튼 5월엔 원고측을 만나게 될 것 같다. 이 좋은 봄날에 다시 검찰에서.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105758416117738&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4/17

사람이나 언론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앞으로는 진보든 보수든, 나의 논지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이들이면 기꺼이 소통할 생각이다. 나를 상처준 이들은 이른바 진보계열에 속하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보수 이상으로 보수적이었다. 오로지 기존주장이나 입장을 “지키려”고만 했다는 점에서.

물론 그들 안에도 지혜롭고 유연한 이들은 당연히 있었고, 그동안 견뎌올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그들 덕이다.

나에 대한 비판/지지여부를 나누는 건, 좌우이념이라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정보량과 사고의 유연성인 듯 하다. 그럼에도 가장 극심한 폭력이 좌우 양극단에서 나왔다는 건 지적 보수의 정서적 빈곤을 보여준 것일 터. 결정적인 순간에 폭력을 만드는 건 언제든, 이념도 이상도 아닌, 인간성이다.

그런 생각으로 응했던 첫번째 글이 나왔다. 일본어판도 영어판도 있는데 정작 한국어판은 못 만들었던 <제국의 위안부>요약이다. 나는 기지를 반대하기 때문에 보수적 입장에 있는 이들도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이 좌우 상관없이 읽혀졌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공유가능한 부분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기 때문에.

(제목은 내가 붙이지 않았다.ㅠ)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738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101385753221671

渦中日記 2015/4/6

오늘, 새 변호사를 선임했다. 1심에서 승소한다 해도, 혹은 원고측이 취하한다 해도 6천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소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2심이나 3심으로 이어지거나 혹 패소까지 하게 되면 비용이 더 추가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늘이 내겐 진짜로 재판이 시작되는 날이 되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9468658722492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4/3

어젯밤 귀갓길. 생일파티를 해 준다는 동료들과 개강모임겸 만나 식사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앞차가 사고난 것도 모르고, 밀리는 건 줄 알고 한참을 얌전히 기다렸을만큼, 비가 퍼부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건지도 모른다. 누구나 앞을 보고 있지만 아무도, 정말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올해는 꽃을 봐도 여느 때처럼 설레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각기관의 어딘가가 상처입었나 싶기도 하다. 나를 향해 겨누어지는 적의와 다가오는 위로의 반복 속에서, 내 마음도 부침을 반복한다. 꼭 병행되는 건 아니지만. 가라앉는 나는 어린아이의 자아이고, 담담하고 당당한 나는 어른의 자아이다. 어린아이의 자아와 어른의 자아는 아직 내 안에서 행복하게 조우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때로 과잉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지나치게 경박하거나 지나치게 냉철하게.
어린아이의 자아가 부끄러워질 때,문득 노인의 자아를 생각한다. 여러가지로, 아이와 노인에겐 공통점이 많다.

하나의 사태에 대해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마도 윤동주는 “쉽게 쓰여진 시”를 부끄러워 했을 것인데, 윤동주를 사랑하는 우리는 “쉽게 말하고 쉽게 단정하고 쉽게 규탄하는” 일에 대한 주저와 부끄러움이 없다. 온나라에 분노와 규탄과 고발이 넘치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터. 분노와 규탄, 그에 대한 무시와 조롱과 경멸이 넘치는 지금의 대한민국상황은, 뒤늦게 온 세기말적 상황처럼도 보인다.

본안재판을 향해,이제 수임료를 지급하고 진행하기로 했다. 최소 수천만원의 소송비용에, 패소할 경우 지급해야 할 수억원의 돈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나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도, 함께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납득가능한 답이 있다면, 내게 보내 주기를.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92172664142980

渦中日記 2015/3/27

생일 전후해서, 나에 대해 언급한 칼럼, 인터뷰가 실린 신문과 잡지등이, 마치 선물처럼 도착했다. 5쇄를 찍었다는 연락도 왔다. 일본의 한 지인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아마존의 독자평까지 보내 주었다. 일본어판이 나오고나서 이어졌던, 과분하리만큼의 호의적인 평가에 반발하는 비판들이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해 내가 우울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했던 건,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정말은 나의 적일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 이십여년의 운동과 연구를 부정당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지,우익의 비판보다 훨씬 집요하고 적극적이다. 타자에 대한 중상과 비방이 아니라도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능한데.

하지만, 그런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의도한대로, 있는 그대로 읽어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비판자들은 내 책이 일본의 우익을 기쁘게 한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모두 우익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다.

우파든 좌파든, 마음을 비우고 읽을 수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시민의 힘이 정부와 보수를 흔들 수 있도록.
————————————
(전략)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이지만 이와 관련해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일본에서도 발행된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씨가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미 저자에게 불리한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온 데 놀랐지만 이에 더해 오해와 곡해로 인한 심각한 비방 중상이 난무하고 있어 유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한일 양국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해왔다고 지적하며 과감한 문제 타개를 요구한 의욕적인 작품이다.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 것은 결코 우익이 기뻐해서가 아니라 해결을 바라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내용이어서 이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언론의 장에서 논의하면 좋지 않은가. 만에 하나 공권력이 그녀를 기소하면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선진 제국은 마침내 한국이 ‘언론을 억압하는 나라’라고 낙인을 찍을 것이다. 그래서 기뻐할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도 스스로 공통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도록 절실히 바라고 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2015/3/19,동아일보)

읽는쪽도 시험당한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그런 평이 있다.

위안부를 데리고 다닌 업자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지적을,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싶은 논객은 환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논지의 한 부분만을 멋대로 가져다 쓴 결과다.박교수는 위안부를 낳은 구조를 명확히 밝히려 한 것이고 누군가를 면죄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일본의 대응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속단이다. 기금의 존재는 위안부의 고통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지려던 생각이 국회(국민)의 다수생각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마세타츠야 홋카이도 신문 해설 위원, 2015/3/24, 홋카이도 신문)

아사히신문의 오보정정으로 인해 마치 2차대전때 위안부문제는 없었다는 식으로 외치면서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려는 이들이 있다.

남경사건에 관해서도 그렇다.(중략)
한국의 저자인만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다른나라 위안부와는 또다른 가혹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TKo, 아akwhs 아마존 독자평)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87635244596722

渦中日記 2015/3/14

며칠을 오에선생관련 일로 보냈다. 나로선, 나를 괴롭히는 문제들을 잠시 잊고 싶었던 며칠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문학이 정치나 역사와 무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하루하루가 정치(사회구조)와 무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에 선생 역시, 개인의 내면이 어떻게 사회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고, 때로 억압받게 되는지를 일관되게 써 왔다.
그리고 내게 오에선생의 작품은 초기의, 수재작가다운 명료하면서 건조한 작품들보다, 작가자신이 말하는 후기작품들을 통해 다가왔는데, <인생의 친척>,혹은 <새로운 사람아,눈을 떠라>등에서 받았던,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오래도록 선생의 작품을 읽게 만든 힘이기도 했다.

<인생의 친척>에서 선생은, 지적/신체적 장애아였던 두 아들이 자살한 후,슬픔과 절망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종말을 맞이하는 한 여성을 그려내면서 “슬픔”을 “친척”같은 것이라 표현한다.
실제로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란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일 터이고, 설사 순간순간의 기쁨이 있다 해도, 그 기조가 가라앉은 슬픔일 것만은 분명한 일이다. 물론 나쁜 일이라는 의미에서의 슬픔이 아니라, 어떤 부조리와 불균형과 파괴의 의미를 매일처럼 “생각해야 하는” 슬픔.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선생의 자택에 초청받아 간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아들 히카리(光. 빛)씨에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존 엘리엇 가디너가 연주한 바흐 마태수난곡을 선물했다. 2012년 봄의 일이다. 오에 선생님께도 그 전에 에스페리온 20이 연주한, 역시 바흐의 the art of fugue 를 선물한 적이 있다.
근처 프랑스식당으로 식사하러 나갈 때, 선생은 현관에서 몸을 굽혀 아들이 신발을 잘 신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 때 나는 선생의 슬픔을, 목도했다고 느꼈다. 그건 단지 어떤 불편함도 아니고 번거로움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움이나 시혜가 동반하기 쉬운 어떤 감정도 아니고, 그저 인생의 무게, 같은 것이었다. 삶에 대해 경건해질 수 있고 인생에 겸허해 질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그러나 자주 잊어버려 인생을 한없이 가볍게 만드는.

사진은 2008년 1월. 아사히신문사에서 주는 오사라기지로논단상시상식에 오에선생도 와 주셨었다. 함께 찍은 이는 아사히신먼사 와카미야 주필. 작년에 내가 일본우익을 대변한다는 기사에 항의해 “나도 우익의 대변자라 부르라”는 칼럼을 동아일보에 썼던 이다. 그는 일본수상 야스쿠니참배를 반대하고 독도를 한국에 양보하라고 써서 일본우익들의 맹렬한 반발을 샀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저 그가 “위안부강제연행에 대한 아사히의 과거기사가 군인의 말만 믿고 좀 많이 나갔다”고 말했다는 것만으로 아사히가 우경화했고 와카미야씨는 보수,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같은 편이 합리적이려고 하는 순간, 그들은 늘 윤리를 독점하려 한다.

실은 오에선생과 함께 보냈던 시공간에서조차 나에 대한 적의를 가진 이가 나타났었다. 그리고 오에선생과 나를 이간질하려 했다. 심지어 내게 오에선생초청을 의뢰했던 김대중도서관측 사람들과도. 그래서 사실은 여전히 편치만은 않았던 며칠이었다.

곳곳이 적의의 지뢰밭,이라고 느낀다. 이 한 달, 여러사람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견뎌왔지만, 다시 “인생의 친척”을 읽든지..해야 할 것 같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78948798798700&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3・9ー응답을 시작하면서

의혹과 소문이 세상을 떠돌며 한사람을 한치의 주저없이 베고 다닐 때, 그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두가지가 있을 것이다. 침묵하거나 항변하거나. 그리고 그동안 나는 다른 이들이 나서준 덕분에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수가 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늘, 차라리 침묵하고 싶었다. 10가지 소문은 곧 100가지가 될 것이고, 그 때의 절망감과 도로감이 미리부터 내 기분을 가라앉혔기 때문이다.

`잘` 항변하기 위해서는 저들의 행위를 컴퓨터와 마음에 저장하고 미움으로 논리의 칼날을 가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일에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는, 나는 그저 그 시간에 아름다운 멜로디에 몸을 내맡기고 싶었다. 보다 아름다운 말들에 귀기울이고 싶었다. 사실 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외에는 부지런한 사람이 못된다.

그럼에도 이제 최소한도로나마 해명에 나서려는 이유는, 함께 해 주는 이들, 대한민국에서 극소수일 친구들을 위해서기도 하다. 이제 싸움은 나만의 싸움이 아니게 되었다. 2014년 6월과 다른 것은, 이제 내게는 나 이외에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 모두가, 원고측의 허위섞인 주장과 그 주장을 그대로 믿은 재판부가 만든 일이다.

어차피 나는 법정에서 항변을 해야 하고 원고측 변호사와 학자들—이른바 `지식인`들이 함부로 난도질하며 <공공선에 반한다>고 결론내린 나의 논지를 다시 설명해야 한다. 원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지금 내게 요구되는 건 ,지치거나 지겨워하지 않고 `법정을 떠올리며 광장을 만들어 가는` 일일 터이다. 그것도 헛소문에서 지적담론까지를 한자리에서 상대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광장을.

우연히도 아침에 관련 뉴스가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것부터 시작한다.

응답1.<박유하가 위안부할머니에게 일본정부로부터 20억원을 받아주겠다고 말했다>

2003년가을, 사죄와 보상에 관한 나눔의집의 생각을 듣기 위해 내가 방문했을 때, 여성사무국장은 내게 국가배상이 아니라 실질적보상금을 받는 소송을 준비중이라고 말했었다.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조정`에 이르는 재판이고, 우리는 정대협과 달리 당사자중심으로 간다면서 할머니들의 사인이 들어간 서류까지 보여 주었다. 그 이후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정대협과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는 이 기사를 보고 그간의 나눔의 집의 행보를 알 수 있었다.

한사람당 `20억원`이라는 보상요구금액은, 바로 유희남할머니가 내게 말한 숫자다. 일본이 어떤 사죄와 보상을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사죄고 뭐고)….20억원은 받아야지`라고 말했던 장본인이시다. 그 정황에 관한 증거자료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나눔의 집의 또다른 변호사에게 말했더니, `20억은 많은 금액은 아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아마도 그는 이미 이런 소송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나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도 해야 하는 것이 슬프다. 유희남할머니가 법정에서 위증을 했다는 걸 듣고도 나는 그에 대해 법정에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법정의 `상식적인 판단`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처분판결이 났을 때 나는, 어쩌면 그 판결은 책 때문이 아니라 나에 관한 부정적인 소문이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쩌면 가처분 판결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으로 하지 않은, 나의 불찰의 결과이기도 하다.

http://kr.christianitydaily.com/…/…/위안부-피해자-미국-법원에-소송-추진.htm

http://www.yonhapnews.co.kr/…/0200000000AKR2015022717480006…

http://kr.christianitydaily.com/articles/82184/20150227/%EC%9C%84%EC%95%88%EB%B6%80-%ED%94%BC%ED%95%B4%EC%9E%90-%EB%AF%B8%EA%B5%AD-%EB%B2%95%EC%9B%90%EC%97%90-%EC%86%8C%EC%86%A1-%EC%B6%94%EC%A7%84.htm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75557982471115

渦中日記 2015/3/7

삭제판을 위한 작업중.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막상 마주하니 가슴이 좀 쓰라리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74229259270654

渦中日記 2015/2/28

결국 2월 마지막날은 나를 고발에 이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언론사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가 깨지는 날이 되었다. 한겨레에 오늘 기사를 실은 길윤형기자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했던 내용을 다시 올려둔다.

나는 이 대화에서 분명히 와다교수와도 의견이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같은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심지어 결국은 “일본우익의 주장을 수용”한다고 써 버렸다. 더구나 나는 한국이 요구하는 “법적”책임을 지우는 일이 왜 어려운지를 말했을 뿐인데 “책임”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뉴앙스의 기사가 되고 있다.

나는 분명히 일본의 책임을 물었고, 앞서 올린 와다교수의 말처럼, 일본에서 내 책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은 우익이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 애써 왔던 사람들이다. 아사히신문이나 마이니치등 진보언론이 여러번 관심을 표했고, 우익/보수 성향의 산케이나 요미우리에겐 아직 무시당하고 있다. 그런 상황을 가장 잘 알 “일본특파원”이 그걸 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전한 것이 다름아닌 한겨레 신문이다.

나는 우익도 아니고 협력자로서의 친일파도 아니다. 아무나 “우익””친일파”딱지를 붙이는 일로 자신들의 목소리와 자리를 유지하려는 이들이 정치적으로는 나와 먼 곳에 있는 이들이 아니어서 그동안은 본격적으로 싸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런 유보적 자세를 접으려 한다.

나의 목표는 일본우파까지 주목해 주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움직여야 아베정권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기에. 진보의 생각만으로 좌우가 공존하는 “일본공동체”를 움직일 수는 없다. 내가 90년대에 일본이 만든 아시아여성국민기금을 평가한 건, 그것이 불완전하나마 좌우합작형태의 “사죄와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문제는 끝난 문제라고 일축했던 일본의 보수세력을 내 책이 혹 움직이는 일이 있게 되면, 오로지 자신들과 해결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비난해 온 이들은, 내 논지가 그들을 움직였다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내가 말했다고, 나는 일본우익의 나팔수였다고, 또다시 앵무새처럼 말할 것이다.

나를 할머니의 이름으로 고발하도록 만든 것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국가를 동원해” 억누르려 한 한국지원단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행위를 뒷받침한 건, 일부 재일교포이고, 내 책이 일본우익의 상찬을 받았다는 거짓말을 쓴 한겨레신문이고, 고발이후에도 좌시했고 가처분판결이 나자 그 판결을 옹호했던 몇몇 지식인들이다. 학문을 국가의 힘을 빌어 단죄하는 일에 지식인마저 동참한 것이 2015년의 한국사회다.
한국사회의 위기와, 이들은 무관하지 않다.
할머니들을 죽이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오로지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

온갖 “해석”들이 나를 죽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데올로기와 편견을 넘어 나의 문제제기를 왜곡과 곡해 없이 읽어 준 건 소수의 “열린” 사람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건 “강한”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 열려있고 강한 또다른 이들이 책을 만날 수 있도록, 책을 역시 출판해야 할 것 같다.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8639513162962

渦中日記 2/25

한 언론의 기자가 기사를 쓰겠다면서 질문을 했다. 일본특파원이라 일본사정에 대해서도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가나 일반인들과는 질문의 차원이 달라 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가 위안부문제해결과 한일화해를 위해 쓴 건지 혹은 일본에 “법적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던건지 알고 싶어했다. 나로서는 서글퍼지는 대답이었지만 말했다.
“결론부터 정하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뭔가 다른 의도를 담아 글을 쓰는 식으로 머리굴리는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쉽게 따를만큼 순종적이지도 않다.

———–
1.논리적으로 정합적이지 않다. “보상”의 의미는?

이 책은 여러 “다른”오디엔스(독자/청중)를 대상으로 한 책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원래는 일본을 향한 글만 쓰여질 예정이었구요. 일본이라 해도 지원자/정부/부정자,이렇게 세 부류입니다.
앞에서 하던 얘기와 뒤에서 한 얘기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그 결과입니다. 예를 들면 한일협정에 관해서도 한국을 향해선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 버렸으니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으면서 일본을 향해선 “당신들은 보상 끝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관련 보상이었고 식민지배에 따른 억압과 고통에 대해선 보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고 어느쪽이 진짜냐! 라고 묻고 싶어지겠지만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된 건 결국 대립하는 문제의 해결방법은 각자 자신의 문제를 보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커다란 틀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썼습니다. 일본의 지배가 문제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대협등 지원단체는 보상과 배상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고 있어요. 위안부문제는 “법을 어긴 국가범죄이니 입법을 해서 배상하라”라는 의미에서 “배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학자들이 말하는 건
더이상 “강제연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민지에선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저에 대한 고발장에서조차 쓰고 있더군요.
“약취,사기”로 업자들이 데려 왔다 해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범죄이고 일본군이 알고도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은 알게 된 경우 업자에게 다른 곳에 취직하게 하도록 시키거나 돌려보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이전에 계약서를 확인해 업자의 사기나 납치를 방지하려 했구요. 그러니 전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일본의 공식방침은 위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해야 하구요. 알면서 묵인한 경우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 경우 업자가 이미 돈을 주고 사 왔다던가 하는, 일본군으로서도 관리영역 바깥의 경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수요를 만든 자체–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로 만든 지역의 사람들까지 전쟁터에 동원한 책임, (의도여부를 떠나) 묵인한 책임을 물은 겁니다. 위안소를 공식적으로 만든건 근대일본이 시스템화에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리고 모두 획일적인 위안소가 아니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하고요. 일본에서 강연할 때 유곽에 있었던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유곽을 군대용 위안소로 지정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지정업소가 아닌 곳에 있었던 사람(여기에도 비지정이지만 인가업소-유곽의 위생시설등 체크했던 업소와 인가조차 못받았던 이른바 사창도 있었다는 걸 “우리는”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피해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다른 부분을 소거시키고 싶은 욕망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걸 지적했던 거구요.
“보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국어판을 쓸 땐 기금과는 달리 “정부국고금”으로, 기금을 받지 못한 분들께 추가 보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입니다. 국회를 거치지 않는 정부보상금이지요. 다만, 이후 국회결의를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어판에선 그렇게 썼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다시 기회되면 말씀드리지요.

2. 와다교수의 의견(국고금으로 보상금지급)과 같나?

한국어판 내고 나서 다른 자료들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와다선생님과 달리 국회결의를 주장하는 겁니다. 오히려 보상금을 어떻게 할 건지는 더 첨예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장(국민동원의 한 형태다)이 받아들여진다면 입법이나 국고금 지급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강제동원을 했으니 배상하라”는 현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 일본한테 보상금을 대신 받은 한국정부가, 할머니들에게 4천만원 이상 지급했고 매달 이런저런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할머니의 체험은 다 다른데 해결은 “하나의 방안”으로 정해야 하는 정치/국가 문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머니들의 다른 목소리에 각각 귀를 기울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현실적 타협론인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옳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명분에 무게가 실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년이 걸리더라도” 라는 말로 주장을 관철하는 건 첫째 당사자를 무시(얼마전에 만난 할머니는 사죄조차 요구하지 않고 보상만 해 주면 된다고 해서 오히려 제가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는 일이고, 할머니의 의견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인식될 필요가 있습니다. 들리지않을 뿐이지요. 부산정대협회장님을 만나 보세요. 지방에 계셔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문제 해결에 사비털어가며 20년이상 애써 오신 분인데 그분 말씀이 “나도 내 돈 내가며 신문광고를 통해 기금을 반대했다 .하지만 할머니들 돌아가시는 거 보면서 받게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우리 여성지도자들(이 분은 이화전문여고출신의 할머님)이 못 받게 했다”고 하시더군요.

4. 제가 받는 인신공격적 비난이 안타깝다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심층취재와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외부의 비난과 우려 속에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를 외부가 아니라 우리스스로 들여다보고 아프더라도 직시하는 일로 치유해나가기 위해서도요. 저는 제 사태를, 2009년의 서경식교수의 한겨레 칼럼이후에 저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면서 5년후에 지원단체에 의한,아마도 쌍방이 의식못할 “대리고발”을 당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오해의 종류도 다양하고 지식의 폭도 달라서 더 어려운데, 정치나 개인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사람들, 단순오해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행태가 가장 한탄스럽군요. 저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
언론에 대해서도 깊이 실망해 왔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려하는 분들이 계신 걸 잘 압니다. 기대를 놓지 않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70165993010314

渦中日記 2015/2/27

압도적인 폭력아래 놓이면, 말을 잃게 된다. 마녀사냥식 비난과 추측성 의혹과 그럴듯해 보이는 비판들 속에서, 어느 쪽에 먼저 대답해야 할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웃고 있으면 짓밟아 울리고 싶다는 이들이 있었고 슬퍼하면 순교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이들이 있었다. 씩씩하려 하면 뻔뻔하다 했고, 침묵하고 있으면 반박을 못하는 거라고 했다.

검찰조사가 끝나자마자 지방국립대교수와 성남시장이 공격을 시작했고, 그리고 가처분 판결을 받았었다. 덕분에 주변지인들까지 설연휴를 반납하다시피 했고 나 역시도 견뎌내기만도 버거운 며칠이었다. 진작부터 약속한 두개의 일정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귀국하고 보니 이번엔 그 행사마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었고, 나는 “그 와중에 책을 팔러” 일본까지 다녀온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비난에 대해 “자신은 뒤로 숨고 지지자들을 내보낸” 비겁자가 되어 있었다.

작년 6월에는 했던 해명과 설명을 이번에는 일일이 하지 않았던 건 우선은 경황이 없어서기도 했지만, 두번째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나를 설명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나에 대해 말하는 날은 그런 나자신을 넘어서야 할 만한 어떤 계기가 주어진 날이다.

나를 일으켜 세워, 몇가지에 대해선 해명을 해야겠다고 비로소 생각했던 어제, 와다 하루키 교수의 인터뷰가 나왔다. 이 역시도 비판적인 부분에만 주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먼저 걸어둔다. 이 주말엔 페북을 하루종일 열어두어야 할 것 같다.

2월이 가고 있다.

http://www.hankookilbo.com/m/v/86fc1dfb784a4255a92a290849f7d32b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9593019734278

渦中日記 2015/2/26

비판/비난을 넘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이 있다.
그동안 나는 그들을 가능한 한 이해하려 해 왔지만 이제 그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9260639767516

渦中日記 2015/2/25

한 언론의 기자가 기사를 쓰겠다면서 질문을 했다. 일본특파원이라 일본사정에 대해서도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가나 일반인들과는 질문의 차원이 달라 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가 위안부문제해결과 한일화해를 위해 쓴 건지 혹은 일본에 “법적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던건지 알고 싶어했다. 나로서는 서글퍼지는 대답이었지만 말했다.
“결론부터 정하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뭔가 다른 의도를 담아 글을 쓰는 식으로 머리굴리는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쉽게 따를만큼 순종적이지도 않다.

———–
1.논리적으로 정합적이지 않다. “보상”의 의미는?

이 책은 여러 “다른”오디엔스(독자/청중)를 대상으로 한 책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원래는 일본을 향한 글만 쓰여질 예정이었구요. 일본이라 해도 지원자/정부/부정자,이렇게 세 부류입니다.
앞에서 하던 얘기와 뒤에서 한 얘기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그 결과입니다. 예를 들면 한일협정에 관해서도 한국을 향해선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 버렸으니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으면서 일본을 향해선 “당신들은 보상 끝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관련 보상이었고 식민지배에 따른 억압과 고통에 대해선 보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고 어느쪽이 진짜냐! 라고 묻고 싶어지겠지만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된 건 결국 대립하는 문제의 해결방법은 각자 자신의 문제를 보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커다란 틀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썼습니다. 일본의 지배가 문제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대협등 지원단체는 보상과 배상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고 있어요. 위안부문제는 “법을 어긴 국가범죄이니 입법을 해서 배상하라”라는 의미에서 “배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학자들이 말하는 건
더이상 “강제연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민지에선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저에 대한 고발장에서조차 쓰고 있더군요.
“약취,사기”로 업자들이 데려 왔다 해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범죄이고 일본군이 알고도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은 알게 된 경우 업자에게 다른 곳에 취직하게 하도록 시키거나 돌려보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이전에 계약서를 확인해 업자의 사기나 납치를 방지하려 했구요. 그러니 전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일본의 공식방침은 위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해야 하구요. 알면서 묵인한 경우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 경우 업자가 이미 돈을 주고 사 왔다던가 하는, 일본군으로서도 관리영역 바깥의 경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수요를 만든 자체–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로 만든 지역의 사람들까지 전쟁터에 동원한 책임, (의도여부를 떠나) 묵인한 책임을 물은 겁니다. 위안소를 공식적으로 만든건 근대일본이 시스템화에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리고 모두 획일적인 위안소가 아니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하고요. 일본에서 강연할 때 유곽에 있었던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유곽을 군대용 위안소로 지정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지정업소가 아닌 곳에 있었던 사람(여기에도 비지정이지만 인가업소-유곽의 위생시설등 체크했던 업소와 인가조차 못받았던 이른바 사창도 있었다는 걸 “우리는”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피해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다른 부분을 소거시키고 싶은 욕망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걸 지적했던 거구요.
“보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국어판을 쓸 땐 기금과는 달리 “정부국고금”으로, 기금을 받지 못한 분들께 추가 보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입니다. 국회를 거치지 않는 정부보상금이지요. 다만, 이후 국회결의를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어판에선 그렇게 썼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다시 기회되면 말씀드리지요.

2. 와다교수의 의견(국고금으로 보상금지급)과 같나?

한국어판 내고 나서 다른 자료들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와다선생님과 달리 국회결의를 주장하는 겁니다. 오히려 보상금을 어떻게 할 건지는 더 첨예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장(국민동원의 한 형태다)이 받아들여진다면 입법이나 국고금 지급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강제동원을 했으니 배상하라”는 현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 일본한테 보상금을 대신 받은 한국정부가, 할머니들에게 4천만원 이상 지급했고 매달 이런저런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할머니의 체험은 다 다른데 해결은 “하나의 방안”으로 정해야 하는 정치/국가 문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머니들의 다른 목소리에 각각 귀를 기울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현실적 타협론인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옳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명분에 무게가 실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년이 걸리더라도” 라는 말로 주장을 관철하는 건 첫째 당사자를 무시(얼마전에 만난 할머니는 사죄조차 요구하지 않고 보상만 해 주면 된다고 해서 오히려 제가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는 일이고, 할머니의 의견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인식될 필요가 있습니다. 들리지 않을 뿐이지요. 부산정대협회장님을 만나 보세요. 지방에 계셔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문제 해결에 사비털어가며 20년이상 애써 오신 분인데 그분 말씀이 “나도 내 돈 내가며 신문광고를 통해 기금을 반대했다. 하지만 할머니들 돌아가시는 거 보면서 받게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우리 여성지도자들(이 분은 이화전문여고출신의 할머님)이 못 받게 했다”고 하시더군요.

4. 제가 받는 인신공격적 비난이 안타깝다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심층취재와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외부의 비난과 우려 속에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를 외부가 아니라 우리스스로 들여다보고 아프더라도 직시하는 일로 치유해나가기 위해서도요. 저는 제 사태를, 2009년의 서경식교수의 한겨레 칼럼이후에 저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면서 5년후에 지원단체에 의한,아마도 쌍방이 의식못할 “대리고발”을 당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오해의 종류도 다양하고 지식의 폭도 달라서 더 어려운데, 정치나 개인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사람들, 단순오해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행태가 가장 한탄스럽군요. 저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
언론에 대해서도 깊이 실망해 왔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려하는 분들이 계신 걸 잘 압니다. 기대를 놓지 않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8639513162962

정승원,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읽기 2

정승원
2015년 2월 22일 ·

‘제국의 위안부’ 읽기 2
– 서로 다른 일본에 대한 인식

‘제국의 위안부’ 책 내용은 지금까지와 다른 일본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일본에 대한 인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일본을 긍정하는 일부 내용을 가지고 교묘하게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긍정하는 사람이니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에 사실상 동조하는 내용이라고, 일본의 우익에 교묘하게 동조하는 사상이라고 봅니다. 뉴라이트 사상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의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 우리는 주로 식민지 시기의 일본 이미지를 머리 속에 떠올립니다. 그것은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지난 해방이후 70년동안 일본이 변해온 모습에 대해 눈을 사실상 감아왔습니다. (참고로 일본의 세계적인 이미지는 굉장히 좋습니다. 우리와 달리, 세계인들은 평화적인 국가로 인식합니다.)

2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지원활동, 그리고 일본식민주의를 청산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상만을 주입받았고, 여기에 반대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본을 이롭게 해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3. 우리는 위안부 지원 단체에 대해 맹신합니다. 하지만, 박교수가 책에서 여러 사례들을 들었듯이, 위안부 지원 단체의 한계와 문제점들은 공론화되지 못했을 뿐,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위안부 단체를 비판하면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4. 기존의 좌우, 보수와 진보 대립 구도하에서 양자 어느 쪽에 속하지 않는, 속해보이자 않는 학문은 낙인을 찍습니다. ‘뉴라이트’니! 박유하 교수의 책은 좌우 틀을 모두 벗어나
있습니다. 그래서 오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7053156654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