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4/6

오늘, 새 변호사를 선임했다. 1심에서 승소한다 해도, 혹은 원고측이 취하한다 해도 6천만원 가까이 들어가는 소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2심이나 3심으로 이어지거나 혹 패소까지 하게 되면 비용이 더 추가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오늘이 내겐 진짜로 재판이 시작되는 날이 되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94686587224921&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4/3

어젯밤 귀갓길. 생일파티를 해 준다는 동료들과 개강모임겸 만나 식사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다. 앞차가 사고난 것도 모르고, 밀리는 건 줄 알고 한참을 얌전히 기다렸을만큼, 비가 퍼부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건지도 모른다. 누구나 앞을 보고 있지만 아무도, 정말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올해는 꽃을 봐도 여느 때처럼 설레지 않는다. 아무래도 감각기관의 어딘가가 상처입었나 싶기도 하다. 나를 향해 겨누어지는 적의와 다가오는 위로의 반복 속에서, 내 마음도 부침을 반복한다. 꼭 병행되는 건 아니지만. 가라앉는 나는 어린아이의 자아이고, 담담하고 당당한 나는 어른의 자아이다. 어린아이의 자아와 어른의 자아는 아직 내 안에서 행복하게 조우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때로 과잉된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지나치게 경박하거나 지나치게 냉철하게.
어린아이의 자아가 부끄러워질 때,문득 노인의 자아를 생각한다. 여러가지로, 아이와 노인에겐 공통점이 많다.

하나의 사태에 대해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마도 윤동주는 “쉽게 쓰여진 시”를 부끄러워 했을 것인데, 윤동주를 사랑하는 우리는 “쉽게 말하고 쉽게 단정하고 쉽게 규탄하는” 일에 대한 주저와 부끄러움이 없다. 온나라에 분노와 규탄과 고발이 넘치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터. 분노와 규탄, 그에 대한 무시와 조롱과 경멸이 넘치는 지금의 대한민국상황은, 뒤늦게 온 세기말적 상황처럼도 보인다.

본안재판을 향해,이제 수임료를 지급하고 진행하기로 했다. 최소 수천만원의 소송비용에, 패소할 경우 지급해야 할 수억원의 돈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나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도, 함께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납득가능한 답이 있다면, 내게 보내 주기를.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92172664142980

渦中日記 2015/3/27

생일 전후해서, 나에 대해 언급한 칼럼, 인터뷰가 실린 신문과 잡지등이, 마치 선물처럼 도착했다. 5쇄를 찍었다는 연락도 왔다. 일본의 한 지인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아마존의 독자평까지 보내 주었다. 일본어판이 나오고나서 이어졌던, 과분하리만큼의 호의적인 평가에 반발하는 비판들이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해 내가 우울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했던 건,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정말은 나의 적일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 이십여년의 운동과 연구를 부정당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지,우익의 비판보다 훨씬 집요하고 적극적이다. 타자에 대한 중상과 비방이 아니라도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능한데.

하지만, 그런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의도한대로, 있는 그대로 읽어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비판자들은 내 책이 일본의 우익을 기쁘게 한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모두 우익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다.

우파든 좌파든, 마음을 비우고 읽을 수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시민의 힘이 정부와 보수를 흔들 수 있도록.
————————————
(전략)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이지만 이와 관련해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일본에서도 발행된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씨가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미 저자에게 불리한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온 데 놀랐지만 이에 더해 오해와 곡해로 인한 심각한 비방 중상이 난무하고 있어 유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한일 양국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해왔다고 지적하며 과감한 문제 타개를 요구한 의욕적인 작품이다.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 것은 결코 우익이 기뻐해서가 아니라 해결을 바라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내용이어서 이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언론의 장에서 논의하면 좋지 않은가. 만에 하나 공권력이 그녀를 기소하면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선진 제국은 마침내 한국이 ‘언론을 억압하는 나라’라고 낙인을 찍을 것이다. 그래서 기뻐할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도 스스로 공통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도록 절실히 바라고 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2015/3/19,동아일보)

읽는쪽도 시험당한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그런 평이 있다.

위안부를 데리고 다닌 업자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지적을,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싶은 논객은 환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논지의 한 부분만을 멋대로 가져다 쓴 결과다.박교수는 위안부를 낳은 구조를 명확히 밝히려 한 것이고 누군가를 면죄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일본의 대응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속단이다. 기금의 존재는 위안부의 고통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지려던 생각이 국회(국민)의 다수생각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마세타츠야 홋카이도 신문 해설 위원, 2015/3/24, 홋카이도 신문)

아사히신문의 오보정정으로 인해 마치 2차대전때 위안부문제는 없었다는 식으로 외치면서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려는 이들이 있다.

남경사건에 관해서도 그렇다.(중략)
한국의 저자인만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다른나라 위안부와는 또다른 가혹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TKo, 아akwhs 아마존 독자평)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87635244596722

渦中日記 2015/3/7

삭제판을 위한 작업중. 내가 선택한 일이지만, 막상 마주하니 가슴이 좀 쓰라리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74229259270654

渦中日記 2015/2/27

압도적인 폭력아래 놓이면, 말을 잃게 된다. 마녀사냥식 비난과 추측성 의혹과 그럴듯해 보이는 비판들 속에서, 어느 쪽에 먼저 대답해야 할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웃고 있으면 짓밟아 울리고 싶다는 이들이 있었고 슬퍼하면 순교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이들이 있었다. 씩씩하려 하면 뻔뻔하다 했고, 침묵하고 있으면 반박을 못하는 거라고 했다.

검찰조사가 끝나자마자 지방국립대교수와 성남시장이 공격을 시작했고, 그리고 가처분 판결을 받았었다. 덕분에 주변지인들까지 설연휴를 반납하다시피 했고 나 역시도 견뎌내기만도 버거운 며칠이었다. 진작부터 약속한 두개의 일정을 위한 준비도 해야 했다.
귀국하고 보니 이번엔 그 행사마저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었고, 나는 “그 와중에 책을 팔러” 일본까지 다녀온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비난에 대해 “자신은 뒤로 숨고 지지자들을 내보낸” 비겁자가 되어 있었다.

작년 6월에는 했던 해명과 설명을 이번에는 일일이 하지 않았던 건 우선은 경황이 없어서기도 했지만, 두번째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게 “나를 설명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다 나에 대해 말하는 날은 그런 나자신을 넘어서야 할 만한 어떤 계기가 주어진 날이다.

나를 일으켜 세워, 몇가지에 대해선 해명을 해야겠다고 비로소 생각했던 어제, 와다 하루키 교수의 인터뷰가 나왔다. 이 역시도 비판적인 부분에만 주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먼저 걸어둔다. 이 주말엔 페북을 하루종일 열어두어야 할 것 같다.

2월이 가고 있다.

http://www.hankookilbo.com/m/v/86fc1dfb784a4255a92a290849f7d32b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9593019734278

渦中日記 2015/2/26

비판/비난을 넘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이 있다.
그동안 나는 그들을 가능한 한 이해하려 해 왔지만 이제 그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9260639767516

渦中日記 2015/2/25

한 언론의 기자가 기사를 쓰겠다면서 질문을 했다. 일본특파원이라 일본사정에 대해서도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가나 일반인들과는 질문의 차원이 달라 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가 위안부문제해결과 한일화해를 위해 쓴 건지 혹은 일본에 “법적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던건지 알고 싶어했다. 나로서는 서글퍼지는 대답이었지만 말했다.
“결론부터 정하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뭔가 다른 의도를 담아 글을 쓰는 식으로 머리굴리는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쉽게 따를만큼 순종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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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논리적으로 정합적이지 않다. “보상”의 의미는?

이 책은 여러 “다른”오디엔스(독자/청중)를 대상으로 한 책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원래는 일본을 향한 글만 쓰여질 예정이었구요. 일본이라 해도 지원자/정부/부정자,이렇게 세 부류입니다.
앞에서 하던 얘기와 뒤에서 한 얘기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그 결과입니다. 예를 들면 한일협정에 관해서도 한국을 향해선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 버렸으니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으면서 일본을 향해선 “당신들은 보상 끝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관련 보상이었고 식민지배에 따른 억압과 고통에 대해선 보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고 어느쪽이 진짜냐! 라고 묻고 싶어지겠지만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된 건 결국 대립하는 문제의 해결방법은 각자 자신의 문제를 보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커다란 틀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썼습니다. 일본의 지배가 문제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대협등 지원단체는 보상과 배상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고 있어요. 위안부문제는 “법을 어긴 국가범죄이니 입법을 해서 배상하라”라는 의미에서 “배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학자들이 말하는 건
더이상 “강제연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민지에선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저에 대한 고발장에서조차 쓰고 있더군요.
“약취,사기”로 업자들이 데려 왔다 해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범죄이고 일본군이 알고도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은 알게 된 경우 업자에게 다른 곳에 취직하게 하도록 시키거나 돌려보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이전에 계약서를 확인해 업자의 사기나 납치를 방지하려 했구요. 그러니 전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일본의 공식방침은 위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해야 하구요. 알면서 묵인한 경우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 경우 업자가 이미 돈을 주고 사 왔다던가 하는, 일본군으로서도 관리영역 바깥의 경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수요를 만든 자체–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로 만든 지역의 사람들까지 전쟁터에 동원한 책임, (의도여부를 떠나) 묵인한 책임을 물은 겁니다. 위안소를 공식적으로 만든건 근대일본이 시스템화에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리고 모두 획일적인 위안소가 아니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하고요. 일본에서 강연할 때 유곽에 있었던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유곽을 군대용 위안소로 지정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지정업소가 아닌 곳에 있었던 사람(여기에도 비지정이지만 인가업소-유곽의 위생시설등 체크했던 업소와 인가조차 못받았던 이른바 사창도 있었다는 걸 “우리는”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피해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다른 부분을 소거시키고 싶은 욕망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걸 지적했던 거구요.
“보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국어판을 쓸 땐 기금과는 달리 “정부국고금”으로, 기금을 받지 못한 분들께 추가 보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입니다. 국회를 거치지 않는 정부보상금이지요. 다만, 이후 국회결의를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어판에선 그렇게 썼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다시 기회되면 말씀드리지요.

2. 와다교수의 의견(국고금으로 보상금지급)과 같나?

한국어판 내고 나서 다른 자료들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와다선생님과 달리 국회결의를 주장하는 겁니다. 오히려 보상금을 어떻게 할 건지는 더 첨예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장(국민동원의 한 형태다)이 받아들여진다면 입법이나 국고금 지급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강제동원을 했으니 배상하라”는 현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 일본한테 보상금을 대신 받은 한국정부가, 할머니들에게 4천만원 이상 지급했고 매달 이런저런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할머니의 체험은 다 다른데 해결은 “하나의 방안”으로 정해야 하는 정치/국가 문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머니들의 다른 목소리에 각각 귀를 기울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현실적 타협론인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옳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명분에 무게가 실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년이 걸리더라도” 라는 말로 주장을 관철하는 건 첫째 당사자를 무시(얼마전에 만난 할머니는 사죄조차 요구하지 않고 보상만 해 주면 된다고 해서 오히려 제가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는 일이고, 할머니의 의견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인식될 필요가 있습니다. 들리지 않을 뿐이지요. 부산정대협회장님을 만나 보세요. 지방에 계셔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문제 해결에 사비털어가며 20년이상 애써 오신 분인데 그분 말씀이 “나도 내 돈 내가며 신문광고를 통해 기금을 반대했다. 하지만 할머니들 돌아가시는 거 보면서 받게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우리 여성지도자들(이 분은 이화전문여고출신의 할머님)이 못 받게 했다”고 하시더군요.

4. 제가 받는 인신공격적 비난이 안타깝다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심층취재와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외부의 비난과 우려 속에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를 외부가 아니라 우리스스로 들여다보고 아프더라도 직시하는 일로 치유해나가기 위해서도요. 저는 제 사태를, 2009년의 서경식교수의 한겨레 칼럼이후에 저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면서 5년후에 지원단체에 의한,아마도 쌍방이 의식못할 “대리고발”을 당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오해의 종류도 다양하고 지식의 폭도 달라서 더 어려운데, 정치나 개인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사람들, 단순오해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행태가 가장 한탄스럽군요. 저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
언론에 대해서도 깊이 실망해 왔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려하는 분들이 계신 걸 잘 압니다. 기대를 놓지 않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8639513162962

渦中日記 2015/2/17

8개월만에, 판매금지에 관한 가처분결정이 나왔다.
원고측의 두가지 신청중 출판판매금지는 원고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위안부할머니 접근금지신청은 기각되었다.
이렇게 나의 책은 오늘、”진실이 아니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하여” 본안이 이루어지기 전에 판매금지되게 되었다.

이시점에서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재판의 원고는 나눔의 집에 계시는 할머니 아홉분 뿐이다.

그 중 다섯 분의 할머니의 진술이 결정문에 있었다. 그런데 속아서 가거나 한 경우를 인용하면서도, 결정문은 전부 “일본군의 강제연행”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런 식의, 너무나 거친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은, 아마도 , “강제연행”이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결과일 것이다. 책에 없는, 원고측이 멋대로 요약한 얘기를 내가 쓴 것처럼 정리해 둔 이 글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명예훼손이 될 수 없고 해결을 위한 방안제시”임을 인정한 부분도 있었다. 사실 그래서 이 결정문이 아직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결론
2014년6월, 100여곳을 허위라며 고발했다가 10월에 53곳으로 줄였던 원고측 삭제요구는 재판부에 의해 34곳으로 줄었다. 삭제하면 출판해도 좋다고 하지만, 물론 나는 단 한곳도 삭제 생각이 없다. 조금씩, 이들의 요구에 어떻게 답변했었는지 자료를 올릴 생각이다. 결정문에도 있는 것처럼, <시민사회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3957406964506

渦中日記 2015/2/10

어제 저녁엔 오래된 지인들을 만나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대부분 한국문학자. 내가 아는 한, 한국인문학에서 학문적으로 열려 있고 앞선 이들은 역사학자가 아니라 국문학자들이다.
그들 중 한사람이 그랬다. “평상시 같으면 그런 소리는 안 할 사람들이 박선생 책에 대해선 이상하게 편협하고 적대적이더라구. 심지어는 고발당한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박선생 책이 뭔가를 건드려서 그런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재판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각각의 의견을 말한다. 그 중에 와 닿았던 건 “법적책임은 분명 없다. 그러나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그 생각을 법적책임문제로 지우려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라는 말이다. 말이 안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을 바꿔 어떤 각오를 하게 된 건 그 때부터다.

꼭 그런 대화의 여파는 아니었지만, 오늘은 왠지 우울해서 예정했던 일을 접고 다른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우울할 땐 집중력이 필요한 일은 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운동>이라는 일본잡지와 했던 인터뷰원고를 체크했고, 찌그러진 채로 놔 두었던 자동차를 수리했고, 번역상후보로 올라온 원고들을 읽었다. 최근 한국문학을 열심히 읽지 않았는데, 김미월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오늘의 수확. 네 편의 소설중 가장 흥미로웠다.

이제부터 설겆이를 하고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음악을 들어야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59823527377894

渦中日記 2015/1/29

세번째로 검찰에 다녀왔다. 이번엔 수사과가 아닌 형사과.

내용은, 지난번에 다 대답했고 서류까지 작성된 50여개 항목에 대한 반복질문과 약간의 추가질문. 나는 문간에 있는 나이든 계장에게 조사를 받았고 아직 젊은 검사는 안쪽 책상에 앉은채로 간간이 말을 섞었다. 책을 읽었다는데도 모멸감을 느낄만큼 적대적이어서 오랫만에 화들짝 “바깥세상”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사람좋게 생긴 계장도 검사에 맞춰 내 답변에 대한 반박과 부정. 원고들의 질문 이상으로 왜곡된 질문을 잇달아 날렸다. 그들은, 원고측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그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검사는 심지어 “전쟁을 수행했다”는 표현은 “자발적”이었다는 뜻이냐고 추궁했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림을 출력해서 보여 주면서, 이런데도 일본군이 위안부를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냐고 추궁했다. 올리기는 끔찍한 그림이라 안 올리지만, <… 가 (위안부를) 목을 잘라 국 끓여 먹으라”고 말했다>고 북한출신 위안부할머니가 말한 증언을, 실제로 국끓여 먹은 것처럼 그렸던 그림이다. 원고측자료가 아니니, 검사 자신이 그런 자료의 영향을 받았던 듯 하다.

그들에게 난 “강제로 끌려간 조선소녀”를 “자발적으로 간 일본인위안부”와 똑같이 취급하는 불온한 사람이었다. 가부장제나 업자의 책임을 거론하는 일로 일본의 책임을 희석시켜 보려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일제시대때의 “비국민” 취급.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52365901456990

渦中日記 2015/1/26

고발직후부터,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소송을 부당하다고 생각하시고, 저를 음으로 양으로 도와 주셨던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판매금지가처분판결을 앞두고, 이 책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운동을 시작합니다. 함께 해 주시고, 많이 공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게는 판결이 나오는 날 이상으로, 오늘이 의미깊은 날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www.facebook.com/radicalthird/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50311181662462

渦中日記 2015/1/21

비교문학자 니시마사히코 (西成彦)선생이, 2월에 교토에 있는 리츠메이칸대학에서 내 책을 대상으로 심포지엄을 연다. 마침 어제 일본신문에 다른 책과 함께 책에 대해 다루어준 우에노치즈코 선생도 토론자로 나서 주기로. 나리타류이치선생(成田龍一)이나 이와사키미노루선생(岩崎稔)등, 가까운 지인학자들도 동경에서 일부러 와 준다고 하니 깊은 논의가 가능할 것 같다.
전체 테마는 <한일경계를 넘어서–제국을 대하는 방식>. 최근에 <제국의 어둠>이라는 책을 낸 김항선생의 책도 같은 테마로 묶어 논의한다고 한다.

우에노선생은 9년 전에 쓴 책<화해를 위해서>일본판해설을 써 주었던 분이다. 그 때는 내 책이 <뜨거운 불 속의 밤을 줍는 행위>(일본어로는 이렇게 표현한다. 직역)이라 했는데, 이번엔 <불 속에 직접 뛰어 들었다>고 표현했다. 고발당한 건 그 결과일 수 있겠지만, 나로선 고발이후 비로소 나를 덮쳐오는 <뜨거운 불>을 만났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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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裕河さんの『帝国の慰安婦』日本語版(朝日新聞出版)が刊行されて3か月余りがたち、多くの読者がこの本を手に取り、さまざまな反応を見せ始めている。
戦後70年の年にもあたる今年、私たちは「帝国日本」への向き合いを新たな形で求められており、その点では、東アジアの私たちすべてが、この課題の前で平等だ。
「慰安婦問題」ひとつをとってみても、それは「帝国日本」が招き寄せた問題であった。日韓で平行線をたどっているかに見えるこの問題に対して「共通の視点」をさぐりあてるための意見交換の場としたい。

立命館大学・公開ワークショップ
《日韓の境界を越えて~帝国日本への対し方~》
2015年2月22日(日)14:00-17:30
〈「帝国の慰安婦」という問いの射程〉
場所:朱雀キャンパス2階203教室
司会:西成彦(立命館大学)
パネラー:朴裕河(世宗大学校)、平井和子(一橋大学)、森岡正博(大阪府立大学)、上野千鶴子(立命館大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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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お、同企画は、下記企画と対をなすものであり、合わせて皆様の来場・参加をお待ちしている。
《日韓の境界を越えて~帝国日本への対し方~》第1回「帝国の擬人法」
2015年2月12日(木)15:00-17:30
場所:衣笠キャンパス末川記念会館第3会議室
司会:西成彦(立命館大学)
パネラー:金杭(延世大学校)、 沈煕燦(立命館大学専門研究員)、原佑介(日本学術振興会特別研究員)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46280138732233&set=a.578003518893233.14637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1/5

연말에 했던 최종 답변서에 대해서 원고측도 답변서를 제출했다. 여전히, 문서가
제출되었다는 문자가 법원에서 오면 약간 긴장한다.
23쪽 분량. 하지만 내용은 지금까지 주장과대동소이했다.

다시 읽으면서 확인한 것은 이들이 나를 “일본의 나팔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일본인 위안부와 다른 방식으로 모집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일본군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

책이란 한번 저자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것이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이렇게 읽도록 만드는 건 무엇일까.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33792889980958

渦中日記 2014/12/30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을 11월초에 출간했었다. 두 달이 안되는 사이, 예상 이상으로 주목해 주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일본인 페친들이 태그해 주거나 내가 올린 적도 있지만 오늘 마침 아사히신문의 <2014년 논단회고>에서 다시 다루어져서, 정리겸 이 두 달 사이에 나온 서평/인터뷰를 같이 올려 둔다.

이 중 두개를 한국일보가 번역소개해 주어 많이 고마웠다. 금년의 베스트3에 올려 준 이가 두사람이나 있는 것도 예상밖의 일. 아무튼 나의 문제제기를— <전후70년>이 아니라 <제국후 70년>이라는 발상이 필요하다는–일본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준 것 같아 기쁘다.

가처분심리용최종답변서에도 썼지만 한 학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일본이 어떻게 대답해 나갈것인지의 물음이 일존을 향하고 있다>고 했고, 한 논설위원은 <만약 일본이 `위안부 문제는 어디에나 다 있었다`라고 주장하지 않고 제국주의적 팽창을 넘어서는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세계사적 의의는 크지 않은가?>라고 나의 말을 정리하면서 <반대할 이유가 나로서는 생각나지 않는다>라고 응답해 주었다.

한국어판의 수난때문에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금년은 괜찮은 해였다고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이 호응이 내년에는 좀 더 구체화 되어 문제해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28422677184646

渦中日記 2014/12/26

정정/반론보도 신청을 했던 네 군데 언론사중 세 곳과는 합의하고 취하했었다. 그런데 연합뉴스가 처음 태도를 바꾸어 합의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오늘 다시 언중위에 와야 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소송으로 가는 시스템이어서 다소 고민스러웠는데, 다행히 중재위 위원들의 권고에 따라 본부와 여러번 통화하더니 짧은 반론보도를 내 주기로. 이로써 언론중재위원회 일은 끝났다. 다행히 해가 가기 전에.

7시 약속이 있어서 근처카페에서 레몬티 마시며 시간 보내는 중. 낮부터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는데(마치 연애할 때처럼) 컨디션이 좀 안 좋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25248354168745

渦中日記 2014/12/2

“…..단 거 좋아하실지 모르지만 이거 드시고 좀 편안해지시라고 저의 아침겸 점심을 ㅋㅋ저의 양식을 응원과 함께 드립니다.
교수님, 정신적으로 무너지시 마시고 굳건히 서 주세요!! 뒤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교수님 화이팅!!
저는 교수님 생각을 지지하고 맞다고 생각하고 있고 교수님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필사하듯(내 생전 처음이다) 학생의 글을 옮겨 적는다. 이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내일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간다고 강의때 말했더니, 한 학생이 연구실로 찾아와 과자와 편지를 건네 주었다.
50년 이상 살았지만 자신의 양식을 선물로 받은 건 처음이다. 이 싸움에서 질 수 없는 이유.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09709099056004&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1/30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요구했던 반론기사가 나왔다. 고발에서 꼭 5개월 반. 페북상에서 공개적으로 지지목소리를 내 주신
노혜경 선생님,김규항 선생님, 대책논의팀을 만들라고 조언해 주셨던 Miyong Kim-To선생님, 다시 감사드립니다. 김도언 선생님께도.
박삼헌 선생님, Jongyil Ra 대사님, 김관기 변호사님,그리고 지지해 주셨던 모든 페북친구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고 드립니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4113000439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8427309184183

渦中日記 2014/11/29

어젯밤엔 멀리서 날아와 일부러 서울에 들려주신 Miyong Kim-To 샘을 만났다. 이 분은, 고발직후에 나에게 “대책팀”을 꾸리라고 조언하신 분이다. 그래서 엄청난 비난의 집중포화 속에서 나를 지켜 주려 애써 주셨던 분들과 이 몇달동안 긴밀한 대화를 나누어 왔다.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를 위한 제3의 목소리>라는 페북그룹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오늘 오프모임을 한다.

사실, 비슷한 시도를 한일학자들과 십년 전에도 했었고 그들과 함께 심포지엄을 하고 책을 만들어 냈었다. 금년 4월에는 일본관련학자들, 언론인들과 함께 <위안부문제, 제3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열었었다.

지난 밤, 김미영선생님 덕분에,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좀 더 명료하게 보였다.
그런 아침에 열어본 페북에서 잠시 놀아본 결과. 우연이겠지만 우연의 결과가 반가운 아침. 아무래도 나 이런 놀이 좋아하는 것 같다. ㅎ

http://ko.what-character-are-you.com/m/ko/601/index/3131.html?utm_source=Facebook&utm_medium=desktop&utm_campaign=trafficcheck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7422509284663

渦中日記 2014/11・27ー2

아침엔 많이 외로웠다. 가처분심리가 종결되면서 심란했던 여파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지인들이 아사히신문에 서평이 났다면서 여기저기서 보내 주었다.

서평을 쓴 다카하시 겐이치로씨를 처음 만난 건, 1995년에 시마네에서 했던 한일문학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다. 나는 그 무렵 웅진출판과 <21세기 일문학의 발견>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편집해서 내는 작업을 했었고 그 시리즈에 그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책을 넣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더 반갑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3년 여름, 정말 오랫만에 이번에는 그가 재직하는 일본의 대학에서 만났다. 나는 위안부문제를 테마로 강연을 했고 그는 토론자로서 코멘트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와 따로 만날만큼 교류가 깊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나는 이토록 고독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고 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과분한 서평. 하지만 아마도 이 한마디때문에, 나는 이 서평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쓴 이가 일본인이어서 서글프기도 했던 하루.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06431722717075&set=a.1006431706050410.1073741834.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1/24 – 모럴의 상실

모레, 26일에 제3차 공판이 있다.

지난 주에 시작한 <위안부문제 미니강좌>에서는 “위안부=소녀”라는 인식이 왜 생겼는지를 썼었다. 이번주엔 “강제성”에 대해 쓸 생각인데 원고측이 제출한 서면을 읽다 보니 이런 구절이 보인다.

“일제하 조선에서의 징집형태는, 식민지배와 불가분 관계를 갖고 있는데, 필리핀이나 중국등 점령지에서는 군인이 전면에 나섰지만, 식민지에서는 군인이 대대적으로 총검을 앞세우고 나물캐는 조선처녀를 트럭에 강제로 실어서 끌고 가는 것과 같은 형태의 징집보다는, 취업사기나 인신매매와 같은 이미 조선에 이식되어 있던 공창제도의 매커니즘이 이용되었습니다.
즉, 식민지 동원 체제를 통해 조선인 여성의 성을 용이하게 착취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구비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굳이 조선인여성에게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점령지와 식민지의 차이는, 바로 내가 한 이야기다. 그리고 사실, 내가 한 이야기를, 인용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면서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근거로 쓰는 경우는 이미 여러번 겪었다. 이럴 때 나는, 그들의 “모럴”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원고측이 더이상 “군에 의한 강제연행”설을 택하지 않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앙굴렘만화제에 출품한 만화가들이 그런 인식을 갖도록 유도하고, 한국과 세계에 유통시켜 왔다는 점이다.

일본의 반한감정은, 사실 과장/왜곡된 기억이상으로, 이런 식의 “모럴의 상실”에도 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4172146276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