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2/9

<제국의 위안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오늘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답변–“토론을 요청하기 전에 고소를 취하하도록 노력하는 게 수순일 것”이라고 한 얘기에는 긍정적인 대답을 얻지 못했다. 정대협 전 회장이 두 사람이나 있는데도, 그들에겐 그런 노력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들이 “할머니의 아픔”에는 더할 수 없이 민감하면서, 같은 학자인 나의 정황에는 둔감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요즘, 끊임없이, 새롭게, 할머니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어제 퇴근길에 어떤 할머니가 전화하셨기에, 대화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할머니를 아프게 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할머니는 “서울대교수가 다섯 명이나 당신 책이 나쁜 책이라고 했다더라.”는, 고발직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누가시켰다고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강조하는 이들이 가장 “피해자를 배제”하고 있는 구조가 점점 더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모순적 구조.

교수신문이 그나마 사태를 제대로 보려고 해서 다행스럽다. 언론때문에 피해 본 것도 많지만, 부정적인 부분만을 보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보는 편이 인생에는 도움이 된다.

일본의 한 언론인이 “이 사태에 대해서 해설해야 하는데 나쁘게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나쁜 부분만 보는 것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려는 노력을 같이 하는 것만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길일테니까요.”

나역시 아직은 그런 심경을 버리지 않고 있고, 생각해보면 그게 이제까지의 나의 방식이었다.

http://m.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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