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3/27

생일 전후해서, 나에 대해 언급한 칼럼, 인터뷰가 실린 신문과 잡지등이, 마치 선물처럼 도착했다. 5쇄를 찍었다는 연락도 왔다. 일본의 한 지인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아마존의 독자평까지 보내 주었다. 일본어판이 나오고나서 이어졌던, 과분하리만큼의 호의적인 평가에 반발하는 비판들이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해 내가 우울해 했기 때문이다.

내가 우울했던 건,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정말은 나의 적일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 이십여년의 운동과 연구를 부정당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지,우익의 비판보다 훨씬 집요하고 적극적이다. 타자에 대한 중상과 비방이 아니라도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능한데.

하지만, 그런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의도한대로, 있는 그대로 읽어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비판자들은 내 책이 일본의 우익을 기쁘게 한다고 말하지만, 이들은 모두 우익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다.

우파든 좌파든, 마음을 비우고 읽을 수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시민의 힘이 정부와 보수를 흔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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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이지만 이와 관련해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일본에서도 발행된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씨가 한국에서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당국의 조사를 받은 것이다. 이미 저자에게 불리한 출판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온 데 놀랐지만 이에 더해 오해와 곡해로 인한 심각한 비방 중상이 난무하고 있어 유감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한일 양국에 존재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해왔다고 지적하며 과감한 문제 타개를 요구한 의욕적인 작품이다. 일본에서 평가가 높은 것은 결코 우익이 기뻐해서가 아니라 해결을 바라는 양식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잡았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내용이어서 이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는 언론의 장에서 논의하면 좋지 않은가. 만에 하나 공권력이 그녀를 기소하면 문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선진 제국은 마침내 한국이 ‘언론을 억압하는 나라’라고 낙인을 찍을 것이다. 그래서 기뻐할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도 스스로 공통의 가치관을 버리지 않도록 절실히 바라고 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2015/3/19,동아일보)

읽는쪽도 시험당한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그런 평이 있다.

위안부를 데리고 다닌 업자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지적을,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싶은 논객은 환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논지의 한 부분만을 멋대로 가져다 쓴 결과다.박교수는 위안부를 낳은 구조를 명확히 밝히려 한 것이고 누군가를 면죄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아시아여성기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해서 이제까지의 일본의 대응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속단이다. 기금의 존재는 위안부의 고통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지려던 생각이 국회(국민)의 다수생각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마세타츠야 홋카이도 신문 해설 위원, 2015/3/24, 홋카이도 신문)

아사히신문의 오보정정으로 인해 마치 2차대전때 위안부문제는 없었다는 식으로 외치면서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려는 이들이 있다.

남경사건에 관해서도 그렇다.(중략)
한국의 저자인만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탓에 다른나라 위안부와는 또다른 가혹함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TKo, 아akwhs 아마존 독자평)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박유하님의 사진.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87635244596722

김규항, 역사의 거울 앞에서 (경향신문)

‘제국의 위안부’ 토론과 논쟁 사이
맥락 생략된 텍스트 읽기 애석
상징체계가 주입한 습관 깼으면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에서 ‘텍스트는 컨텍스트(맥락)와 함께 읽어야 한다’는 텍스트 읽기의 기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건 애석한 일이다. 맥락이 생략된 텍스트 읽기는 오독이나 악의적 왜곡에 이용된다. 특히 이 책처럼 민감한 사회적 주제를 담은 텍스트인 경우, 논쟁은 주제와 관련하여 이미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문화적 상징체계에 포획되어 버린다. 다들 진지하고 열띤 얼굴로 견해를 말하지만 실은 그 상징체계가 주입한 이런저런 주문을 암송할 뿐이다.

눈곱만큼이라도 유의미한 논쟁이 되려면 상징체계를 박차고 나가, 비로소 내 견해를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즉각적이고 단순명료한 반응과 판단을 의심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제국의 위안부>에서 가장 문제가 된 ‘매춘부’ ‘동지적 관계’ 등 텍스트 조각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책의 적확한 요약이 되기도 하고, 책에 없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보수 세력은 오랜 권위주의 독재 시절을 통해 반일 정책을 표방하며 일본 극우세력과 야합하는 이중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들의 겉 다르고 속 다름을 개탄하는 데 그치는 건 그들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문제는 ‘반일’이라는 개념 자체의 기만성에 있다. 일제 식민지 경험은 한국 민족과 일본 민족이 아니라 일본 지배계급과 한국 민중 사이의 일이었다. 일본 민중 역시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고 착취당했으며, 한국의 지배계급은 일본 지배계급과 이해를 같이했다. 해방 후 지배계급으로 남은 그들은 모든 것을 민족 간의 문제로 은폐하고 기만했다.

그런 기만은 진보 세력에게도 답습된다. 한국 사회가 일본 제국주의에 이어 미 제국주의의 지배와 영향을 받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진보 세력 안에서 한국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이 중첩된 사회’라 해석되곤 했다. 진보 운동은 ‘민족주의+진보(계급)’라는 모순적 상태를 지속해왔다. 그리고 민족주의를 계급이라는 ‘체’로 제대로 걸러내지 못함으로써 진보(계급)의 괴멸도 지속되었다. 조직노동(민주노총)이 비정규 불안정 노동이라는 노동자 계급의 보편적 현실을 외면하고, 진보정당이 분당과 합당을 반복하면서 지리멸렬해진 내적 원인도 결국 그것이다.

‘민족주의+진보’의 폐해가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가는 ‘디아스포라’에 천착하는 재일 지식인 서경식이 박유하 비판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과, 한국의 진보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단호한 계급적 관점을 고수해온 박노자가 이 논쟁에서만은 ‘탈계급적’ 태도로 일관한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람은 박유하의 견해가 일본 우익에 봉사한다는 식의 비난과도 선을 긋지 않는다. 어떤 사회적 견해가 사회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우려하는 건 필요한 일이나, 반대와 금지의 근거로 삼는 건 파시스트의 방식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반공극우 세력의 주요한 탄압 논리는 ‘북한에 봉사한다’였다.

<제국의 위안부>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위안부 문제 활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정대협의 활동은 ‘위안부 소녀상’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소녀상이 담은 ‘순결한 소녀’라는 정체성은 사실관계와 문제의 본질을 동시에 거스른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동정녀든 창녀든 예수의 어머니이듯, 모든 생존 위안부는 ‘순결한 소녀’라는 정체성에 부합하든 안 하든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다. 일본의 보상금을 받은 위안부에 대한 정대협의 부당한 태도는 위안부 운동이 생존 위안부를 위해 존재하는지, 생존 위안부들이 위안부 운동을 위해 존재하는지 되묻게 한다.

‘민족주의+진보’의 수렁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의 진보적 인텔리들이 아우슈비츠의 학살자 아이히만 재판 당시, ‘민족 배신자’로 매도되면서도 ‘악의 평범성’을 설파하던 한나 아렌트를 상찬하는 건 인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상찬이 지적 허세가 아니려면 온전하게 당시 상황에서 유대인이 되어 봐야 한다. 아렌트는 일생의 벗들에게까지 절교당해야 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아렌트에 대한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게 바로 박유하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지난 역사, 남의 역사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의 역사에선 쉽지 않다.

우리는 역사의 거울 앞에서 성찰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친일 문제에 대해 단순명료한 태도를 보이는 나는, 독립이나 해방을 좇는 사람은 이미 ‘비현실적’이라 치부되던 일제강점기 후반부에 살았어도 같은 태도를 보였을까. 그것은 현재의 지배체제, 즉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내 태도로 추정될 수 있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아이를 밤늦도록 학원을 돌게 한다면, 신자유주의의 다른 분파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유일한 사회적 희망이라 생각한다면 그 태도는 허상일 것이다.

그것은 나의 태도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문화적 상징체계가 만들어낸 습관일 뿐이다. 우리는 그 습관을 직시하고 해체해야만 한다. 만일 누군가가 처음으로 우리의 습관을 적확하게 비판하거나 해체하려 든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진즉 해체했어야 한다며 고마워할까, 아니면 아렌트 앞의 유대인들처럼 격렬하고 집단적인 반감을 보일까. 박유하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 답을 보여준다.

원문: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역사의 거울 앞에서 (경향신문)

渦中日記 2015/2/25

한 언론의 기자가 기사를 쓰겠다면서 질문을 했다. 일본특파원이라 일본사정에 대해서도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가나 일반인들과는 질문의 차원이 달라 성의껏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가 위안부문제해결과 한일화해를 위해 쓴 건지 혹은 일본에 “법적책임이 없다”는 걸 주장하고 싶었던건지 알고 싶어했다. 나로서는 서글퍼지는 대답이었지만 말했다.
“결론부터 정하고 덤비지는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요. ”
한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뭔가 다른 의도를 담아 글을 쓰는 식으로 머리굴리는 부류의 사람을 싫어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쉽게 따를만큼 순종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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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논리적으로 정합적이지 않다. “보상”의 의미는?

이 책은 여러 “다른”오디엔스(독자/청중)를 대상으로 한 책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원래는 일본을 향한 글만 쓰여질 예정이었구요. 일본이라 해도 지원자/정부/부정자,이렇게 세 부류입니다.
앞에서 하던 얘기와 뒤에서 한 얘기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건 그 결과입니다. 예를 들면 한일협정에 관해서도 한국을 향해선 “한국정부가 개인의 청구권을 없애 버렸으니 그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했으면서 일본을 향해선 “당신들은 보상 끝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관련 보상이었고 식민지배에 따른 억압과 고통에 대해선 보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고 어느쪽이 진짜냐! 라고 묻고 싶어지겠지만 이런 식의 논리전개가 된 건 결국 대립하는 문제의 해결방법은 각자 자신의 문제를 보는, 자기비판적인 시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커다란 틀에서 누가 잘못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썼습니다. 일본의 지배가 문제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정대협등 지원단체는 보상과 배상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고 있어요. 위안부문제는 “법을 어긴 국가범죄이니 입법을 해서 배상하라”라는 의미에서 “배상”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학자들이 말하는 건
더이상 “강제연행”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민지에선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저에 대한 고발장에서조차 쓰고 있더군요.
“약취,사기”로 업자들이 데려 왔다 해도 알고도 받아들였으면 범죄이고 일본군이 알고도 받아들였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실은 알게 된 경우 업자에게 다른 곳에 취직하게 하도록 시키거나 돌려보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이전에 계약서를 확인해 업자의 사기나 납치를 방지하려 했구요. 그러니 전부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일본의 공식방침은 위의 주장과는 다르다고 해야 하구요. 알면서 묵인한 경우도 없지 않았겠지만 그 경우 업자가 이미 돈을 주고 사 왔다던가 하는, 일본군으로서도 관리영역 바깥의 경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수요를 만든 자체–전쟁을 일으키고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로 만든 지역의 사람들까지 전쟁터에 동원한 책임, (의도여부를 떠나) 묵인한 책임을 물은 겁니다. 위안소를 공식적으로 만든건 근대일본이 시스템화에 능숙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요. 그리고 모두 획일적인 위안소가 아니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하고요. 일본에서 강연할 때 유곽에 있었던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에, 유곽을 군대용 위안소로 지정한 곳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지정업소가 아닌 곳에 있었던 사람(여기에도 비지정이지만 인가업소-유곽의 위생시설등 체크했던 업소와 인가조차 못받았던 이른바 사창도 있었다는 걸 “우리는”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화의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피해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다른 부분을 소거시키고 싶은 욕망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 그걸 지적했던 거구요.
“보상”이라는 단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한국어판을 쓸 땐 기금과는 달리 “정부국고금”으로, 기금을 받지 못한 분들께 추가 보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의미입니다. 국회를 거치지 않는 정부보상금이지요. 다만, 이후 국회결의를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어판에선 그렇게 썼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다시 기회되면 말씀드리지요.

2. 와다교수의 의견(국고금으로 보상금지급)과 같나?

한국어판 내고 나서 다른 자료들을 보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와다선생님과 달리 국회결의를 주장하는 겁니다. 오히려 보상금을 어떻게 할 건지는 더 첨예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장(국민동원의 한 형태다)이 받아들여진다면 입법이나 국고금 지급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강제동원을 했으니 배상하라”는 현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또 일본한테 보상금을 대신 받은 한국정부가, 할머니들에게 4천만원 이상 지급했고 매달 이런저런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할머니의 체험은 다 다른데 해결은 “하나의 방안”으로 정해야 하는 정치/국가 문제가 되었을 때 어떻게 할머니들의 다른 목소리에 각각 귀를 기울이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할 것인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현실적 타협론인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기본적으로는 아닙니다. 합리적이고 옳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명분에 무게가 실려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년이 걸리더라도” 라는 말로 주장을 관철하는 건 첫째 당사자를 무시(얼마전에 만난 할머니는 사죄조차 요구하지 않고 보상만 해 주면 된다고 해서 오히려 제가 당혹스러울 정도였습니다. )하는 일이고, 할머니의 의견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인식될 필요가 있습니다. 들리지 않을 뿐이지요. 부산정대협회장님을 만나 보세요. 지방에 계셔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문제 해결에 사비털어가며 20년이상 애써 오신 분인데 그분 말씀이 “나도 내 돈 내가며 신문광고를 통해 기금을 반대했다. 하지만 할머니들 돌아가시는 거 보면서 받게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우리 여성지도자들(이 분은 이화전문여고출신의 할머님)이 못 받게 했다”고 하시더군요.

4. 제가 받는 인신공격적 비난이 안타깝다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한 심층취재와 인터뷰가 필요합니다. 외부의 비난과 우려 속에 있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를 외부가 아니라 우리스스로 들여다보고 아프더라도 직시하는 일로 치유해나가기 위해서도요. 저는 제 사태를, 2009년의 서경식교수의 한겨레 칼럼이후에 저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면서 5년후에 지원단체에 의한,아마도 쌍방이 의식못할 “대리고발”을 당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오해의 종류도 다양하고 지식의 폭도 달라서 더 어려운데, 정치나 개인적인 이익에 이용하는 사람들, 단순오해로 비난하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행태가 가장 한탄스럽군요. 저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서.
언론에 대해서도 깊이 실망해 왔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려하는 분들이 계신 걸 잘 압니다. 기대를 놓지 않겠습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68639513162962

渦中日記 2014/12/30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을 11월초에 출간했었다. 두 달이 안되는 사이, 예상 이상으로 주목해 주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일본인 페친들이 태그해 주거나 내가 올린 적도 있지만 오늘 마침 아사히신문의 <2014년 논단회고>에서 다시 다루어져서, 정리겸 이 두 달 사이에 나온 서평/인터뷰를 같이 올려 둔다.

이 중 두개를 한국일보가 번역소개해 주어 많이 고마웠다. 금년의 베스트3에 올려 준 이가 두사람이나 있는 것도 예상밖의 일. 아무튼 나의 문제제기를— <전후70년>이 아니라 <제국후 70년>이라는 발상이 필요하다는–일본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 준 것 같아 기쁘다.

가처분심리용최종답변서에도 썼지만 한 학자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일본이 어떻게 대답해 나갈것인지의 물음이 일존을 향하고 있다>고 했고, 한 논설위원은 <만약 일본이 `위안부 문제는 어디에나 다 있었다`라고 주장하지 않고 제국주의적 팽창을 넘어서는 사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세계사적 의의는 크지 않은가?>라고 나의 말을 정리하면서 <반대할 이유가 나로서는 생각나지 않는다>라고 응답해 주었다.

한국어판의 수난때문에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금년은 괜찮은 해였다고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이 호응이 내년에는 좀 더 구체화 되어 문제해결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28422677184646

渦中日記 2014/12/26

정정/반론보도 신청을 했던 네 군데 언론사중 세 곳과는 합의하고 취하했었다. 그런데 연합뉴스가 처음 태도를 바꾸어 합의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오늘 다시 언중위에 와야 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소송으로 가는 시스템이어서 다소 고민스러웠는데, 다행히 중재위 위원들의 권고에 따라 본부와 여러번 통화하더니 짧은 반론보도를 내 주기로. 이로써 언론중재위원회 일은 끝났다. 다행히 해가 가기 전에.

7시 약속이 있어서 근처카페에서 레몬티 마시며 시간 보내는 중. 낮부터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는데(마치 연애할 때처럼) 컨디션이 좀 안 좋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25248354168745

渦中日記 2014/11/30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요구했던 반론기사가 나왔다. 고발에서 꼭 5개월 반. 페북상에서 공개적으로 지지목소리를 내 주신
노혜경 선생님,김규항 선생님, 대책논의팀을 만들라고 조언해 주셨던 Miyong Kim-To선생님, 다시 감사드립니다. 김도언 선생님께도.
박삼헌 선생님, Jongyil Ra 대사님, 김관기 변호사님,그리고 지지해 주셨던 모든 페북친구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고 드립니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4113000439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008427309184183

[조선일보 반론보도문]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 원고 측 주장에 대해 공식 반박

나눔의 집에 기거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이 위안부를 ‘매춘부’나 ‘일본군 협력자’로 매도했다며 관련 서적을 출판한 저자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선 데 대해 저자가 공식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생활하는 강일출 할머니 등 9명은 지난 6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57·여)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와 뿌리와이파리 출판사 정종주 대표(51)를 고소하고, 출판·광고 등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동부지법 민사 21부(부장판사 고충정)에서 7월 9일과 10월 2 일 2차례 가처분신청에 대한 심리가 이루어졌다.

원고들은 당초 “책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이나 일본군의 협력자로 매도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그런 모습을 잊고 스스로 피해자라고만 주장하면서 한일 간 역사 갈등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기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내가 비판한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아니라 지원단체이다. 매춘이라는 단어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단순히 매춘부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을 비판한 부분에서 쓴 것인데, 나눔의집 소장과 고문변호사 등 주변인들이 이런 문맥을 왜곡 전달해 사회적 지탄을 받도록 만들었다”면서, 원고 측 주장을 확인 없이 실은 언론사들에 대해 10월 20일자로 언론중재위윈회를 통한 정정보도와 반론보도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박유하 교수는 “이 고발은 나눔의집 고문변호사가 학생들을 데리고 한 초급수준의 분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며 “첫 고발장에서 원고 측은 내 책이 허위라고 비난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슬그머니 고발 취지를 바꾸어 인식문제로 들고 나왔고, 이 책이 일본의 위안부문제 ‘부정파’들을 비판한 책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무시하고 위안부 할머니를 비판한 책인 것처럼 호도했다. 도중에 고발 취지를 바꾼 것고발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이제까지 단순히 ‘전쟁범죄’로 취급되어온 위안부 문제를 ‘제국주의 통치기술의 일부’로 파악하고자 한 시도라고 말한다. 그러한 시도가 오히려 ‘배상은 끝났다’고 말하는 일본을 설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시 되었던 ‘동지’와 ‘매춘’이라는 단어는 위안부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그들이 ‘제국 일본의 통치 속에서 전쟁 수행에 동원된 집단’이라는 틀로 바라보기 위한 논리적 장치이고, 일본과 싸운 다른 나라의 위안부와는 처지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라고 말한다. 위안부들과 군인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임금노동이었으며,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한다고 해서 일본을 면죄하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박유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는 ‘강제연행’이나 ‘매춘’ 여부와 상관없이 일본에 책임이 있음을 일본에 말하고자 쓴 책인데, 이에 대한 지원 단체의 반발은 그들이 유포한 인식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데 대한 두려움 탓으로 이해한다”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은 할머니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행동했다가 지원 단체에게 비난받아 할머니들이 공개적으로 발언하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할머니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일”이라고 말했다.

고발 이후 ‘제국의 위안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서평들이 다수 나왔다. 가처분신청 직후에는 김철(연세대)·박삼헌(건국대) 교수 등이 주도한 기각 요청 탄원서에 라종일(전 주일 대사)-문정인(연세대) 교수, 김원우, 장정일씨 등의 작가, 김규항씨(‘고래가 그랬어’ 대표)를 비롯한 200여 명의 지식인과 시민이 서명했다. 특히 페이스북에서 일면식도 없었던 김관기 변호사가 무료변론을 자청하고 나섰고, 노혜경(시인) 등 문화인들과 시민들의 옹호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김미영(오스틴 대학) 교수의 제안으로 미국-호주-한국을 잇는 지원연대도 만들어졌다. 박유하 교수는 이에 대해 “SNS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본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한국사회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온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과 함께 한국사회의 문제적인 부분을 바꿔나가고 싶다” 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한 “유엔 산하 인권위원회나 미국 의회의 위안부 문제 인식에는 네덜란드나 중국의 경우가 조선에서도 똑같이 행해진 것처럼 오해한 부분이 있다. 지난 8월, 위안부 문제를 20년 넘게 가장 진지한 자세로 보도해왔던 아사히신문이 한반도에서의 강제연행설을 퍼뜨린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이 허위였음을 밝힌 이후, 일본정부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이 사실을 알리며 수정을 요구 중이다. 이러한 상황을 한국이 신속히 들여다보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이 문제를 지원 단체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원 단체는 내 책을 허위라고 말하더니 이번에는 내가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전쟁범죄를 찬양하고 있다며 또 다른 마녀사냥을 시작했다”면서 “이 책은 출간 직후 다수의 서평과 인터뷰를 받았던 책이다. 정작 관계자들은 10개월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고발한 것은 불통사회가 된 현대 한국사회를 상징한 사건으로 생각한다. 그들에 대한 비판을 입막음하려는 시도로 이해하고 있고 지원자들과 함께 잘 대처해 나가겠다”고 한다.

이어 이 책은 원래 일본을 향해 이 문제에 관한 일본인들의 생각을 비판하고 다시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매체에 연재하다가, 한국도 알아야 할 부분이 많다고 여겨 한국어판을 먼저 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최근에 나온 일본판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사죄 의식을 담은 일본 국회 결의가 필요하다고 썼다. 기존 지원 단체와는 내용도 논리도 말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나의 논지가 이 문제를 부정해온 일본인들을 움직여 꽉 막힌 위안부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게재일 2014년 11월 30일 조선일보 (원문보기)

渦中日記 2014/11・27ー2

아침엔 많이 외로웠다. 가처분심리가 종결되면서 심란했던 여파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지인들이 아사히신문에 서평이 났다면서 여기저기서 보내 주었다.

서평을 쓴 다카하시 겐이치로씨를 처음 만난 건, 1995년에 시마네에서 했던 한일문학심포지엄에 참석했을 때다. 나는 그 무렵 웅진출판과 <21세기 일문학의 발견>이라는 시리즈를 기획/편집해서 내는 작업을 했었고 그 시리즈에 그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책을 넣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더 반갑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13년 여름, 정말 오랫만에 이번에는 그가 재직하는 일본의 대학에서 만났다. 나는 위안부문제를 테마로 강연을 했고 그는 토론자로서 코멘트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와 따로 만날만큼 교류가 깊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나는 이토록 고독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고 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과분한 서평. 하지만 아마도 이 한마디때문에, 나는 이 서평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쓴 이가 일본인이어서 서글프기도 했던 하루.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06431722717075&set=a.1006431706050410.1073741834.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4/11/7

한겨레신문에 나를 비난하는 칼럼이 실린 걸 뒤늦게 알았다.
읽고 쓰는 (혹은 지적생산물을 만드는)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런 작업을 바탕으로 월급을 받으니, 대학교수란 읽고 쓰는 일에서 다른분야 사람들보다 탁월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분은 내 책을 심각하게 오독한 것 같다. 설마 안 읽고 이런 글을 쓸리는 없을 터이니.
아무튼 이 글은 이 문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지원단체의 말을 그저 대변한 것 같다. 그래서 내용자체보다도 그 만용과 역할이 서글프다. 페친 중에 한겨레독자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굳이 언급해 둔다.

고발사태 이후 위안부문제에 대해 많이는 쓰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 그런 일을 쓰는 건 우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원단체와 언론뿐 아니라 교수들조차 빠져 있는 지적태만과 제대로 싸우려면.

사실 나는 만약 가처분재판에 진다 해도 그건 이시대의 한국이 만든 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 중이다. 시대가 늘 올바르게 돌아가는 법은 아니니까.
그러니 내가 앞으로 쓰는 이런 문제 관련 글들은 꼭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얼마 전에 연락 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위해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변함없이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위한 것으로 생각해야겠다. 그러면 조금은 더 부지런해질 수 있겠지.

http://m.hani.co.kr/arti/opinion/because/663088.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92730687420512

渦中日記 2014/11/7-3 – 언론중재위원회 후기

언론중재위원회 후기

언중위 끝나고 곧바로 송현상&류근 콘서트에 갔다가 밤늦게 귀가했고 토요일에도 오전에 인터뷰, 오후에 회의와 모임이 이어져 언중위 결과를 쓸 틈이 없었다. 밀린 방학숙제 하는 기분.

심리실에 들어가 중재위원 다섯사람과 마주앉으니 네 곳의 언론사에서 나온 사람들이 내 옆으로 나란히 앉았다. 고발직후의 보도와 한달 후 쯤에 나온 <화해를 위해서>관련 보도에 대한 신청이었는데 결국 같은 문제로 중재부는 판단한 듯. 이미 합의가 된 연합뉴스는 합의사항을 확인 후 먼저 퇴장. 조선닷컴도 내 주장을 전면적으로 인정했다. 9개나 되는 반복기사를 삭제 후 연합뉴스가 작성할 반론기사를 실어주기로 하고 퇴장.

그런데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데스크가 180도 바꾸어 <화해를 위해서>가 “일편향”이었다고 실었던 한국일보는 의외로 강경했다. “기자가 책을 읽은 이후의 판단”이라는 것.
하지만 위원들은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의 본분을 벗어난 것이고 “일편향 논란”이라는 말은 이미 부정적가치판단이 들어간 것이라고 질책했다. 그리고 결국 한국일보도 본부와의 통화후 승복. 큰 틀에서 연합뉴스의 조치대로 하겠다고 했다. 한겨레는 해당뉴스가 연합뉴스를 전재한 것일 뿐이라며 연합뉴스의 조치에 따르겠다고 했다.

사실은 “일편향”이니 “일본우익대변”이라는 식으로 원고측 주장을 그대로 실었던 언론에 대해서는 공식사과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에 없는 사과를 강요할 수는 없다 해서 양보. 결국 반론기사 말미에 해당기사가 언중위의 중재를 거쳐 나오게 되는 것이라는 문구를 넣는 선에서 합의했고 합의내용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신청을 취하하기로 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중재부 위원들이 전면적으로 나의 항의에 귀기울이고 동의하고 나대신 언론들을 질책해 준 것만으로 언론중재신청은 의미가 있었다.
끝나고 나서 중재위 한분이 말했다
“언론사 네곳을 초토화시키셨군요.”
그랬다고 한다면 오로지 합리적인 판단으로 나를 응원해 준 중재위 덕분이다. 언중위 위원들은 판사,변호사,전 언론인,언론학교수등으로 구성. 이 나라의 상식과 양식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던 날.

http://www.hankookilbo.com/m/v/0b72c2b43ac04f47889767571fbd1930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93993710627543

渦中日記 2014/11/7-2

언론중재위원회 심리에 참석하러 다시 왔다. 그 전에 연합뉴스와 인터뷰.

이번에 신청한 곳은 네 군데다. 연합뉴스는 왜곡된 원고측 자료를 내게 확인 없이 처음으로 내보내 온갖 매체들이 받아쓰기 하도록 만든 곳이긴 하지만, 악의는 없어 보여 많이 양보했다. 원래의 6월 15일 기사에 내 의견을 추가하고 따로 반론보도성격의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합의.

기자와의 인터뷰가 끝나면 다시 연합뉴스, 조선닷컴, 한국일보,한겨레와 함께 심리를 받게 된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92766940750220

渦中日記 2014/10/31 – 언론중재

꼭 십년 전, <한일,연대 21>이라는 한일 지식인 모임을 조직해서 열었던 첫 심포지엄도, 금년에 <동아시아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멤버와 함께 열었던 모임도, 프레스센터에서 했었다. 이런저런 학술모임이 많아 가끔 가는 곳이지만, 이곳에 언론중재위원회가 있는 줄은 몰랐었다. 금년엔 여러가지로 첫 체험이 많다..

오늘 이곳에서 열렸던 1차 정정보도 중재는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첫번째로 의견을 말한 나이드신 분이 “책을 다 읽고 왔다” 해서 시작부터 감격.

대체적으로 합의를 본 건
1.  처음으로 내보내 다른 매체들이 인용하도록 만들었던 문제의 기사에, 나의 의견을 추가
2. 이와 별개로 반론보도 게재
3. 추후 재판보도때 내 쪽 의견도 공정하게 반영

정도의 내용. 반론 기사가 나간 후에 최종합의를 하기로 했다.
함께 참석해 방청했던 정종주대표님이 메모를 작성해 주셨다. 다음주엔 연합뉴스/조선닷컴과의 2차 중재와 다른 언론사와의 1차 중재 예정.

아직, 페북을 어떻게 자아아아아알 쓸 수 있는지 모른다. 오늘은 그냥, 난생(그렇다, 인간은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 같은 존재(이고싶)다)처음 가본 언론중재위에서 오고간 얘기를 남겨두고 싶다. 한때 3류기자였던 자의 최소한의 예의일지도 모른다.
(다만 뱀다리: 이거, 내가 방청석에서 한 메모의 정리다. 법적 효력 없고, 자의적 해석 환영하지 않는다. 그저 내 나름으로, 지금 가능한 선에서 남겨두는 기록이다.)
——————————————-

메모: <제국의 위안부> 판매금지등 가처분신청, 민형사소송 제기 관련 언론 기사에 대한 정정(반론)보도 등 조정신청 건

2010. 10. 31. 16:00 프레스센터 15층 언론중재위원회 심리실,
제3조정부 1차 조정기일

-디지털조선일보 불출석
-연합뉴스 전국부장 출석

중재부장: 아침까지는 합의가 됐다니 취하되나 생각했는데요…

신청인 박유하: 월요일에 통화를 하고, 어제도 통화를 했는데, 연합뉴스의 전화한 분은 윗선과 상의해서 연락한다고 한 상태….

중재위원-(1 *숫자는 그냥, 앉은 순서대로 왼쪽부터): 마침 주변에 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읽어봤는데… 학문적으로 컨퍼런스에서 디베이트할 성질의 것이지, 매도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연합뉴스) 기자가… 시각차가 있는 문제인데…
(*아무래도 신청인 쪽 인간의 메모인지라 소홀한 점, 양해 바람.
솔직히 말해 그리 건질 말씀도 없었지만.)

중재부장(중재위원-3): .. 명확하게 잘못했다는, 그러니까 정정보도에 그렇게
‘사과’를 넣으면 어떻겠어요..

신청인: 원고 쪽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긴 거고, 전혀 사실이 아닌 내용이…

중재위원-(2): 언론인은 ‘언론의 자유’를 아주 중요한 문제로 민감하게 생각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관해서는 콤플렉스(?.. *정확하지 않음)를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비슷한)
학문적 소견을 낼 수 있는데…
과장된 보도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를 막아버리는 행태는…

(신문사에 뉴스를 송신하는 통신사인) 연합뉴스는 특히, 객관적으로 팩트를
보도해야 하고,
소송 관련 보도라면 책도 읽고 저자 인터뷰도 하고 해서 써야지..
(항상 부풀려지더라…)

중재위원-(4): 그럴 목적, 의도는 아니었다고 믿지만,
기사라는 것이 어떤 아이템의 선정, 팩트의 선택-나열-순서, 어디에 강조를
두느냐 하는 액센트라는 측면에서…
오보라 나올 수 있다. 객관성과 공정성, …이 결여된…

뭘 근거로 기사를 이렇게 강하게 써서 분란을 일으킨 것이냐,
(소송 취지와 기사를 보면–*정리자 보충) 부분적으로 왜곡된 거고,
일부 팩트는 오류가 있는 것 같고…
(…)
명백하게 잘못한 건, 정정하는 게 맞고,
주장 차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의 의견을 실어주는 게 맞다.

중재부장: 연혁으로 보면, (헌법에-*정리자 보충) ‘언론의 자유’보다 ‘학문의 자유’가
먼저 규정되었다.(…)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학자의 주장을 매도하는 건(…)

(… *피신청인 쪽의 발언,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정-수정-반론보도를 할 것인지,
그리고 신청인의 요구들을 둘러싼 중재위원들과 신청인/피신청인들의 실무적인 논의…)

중재부장: 원래의 기사 밑에 ‘정정보도문’을 붙이는 게 전형적이지만,
피신청인이 원래 기사(6월 15일자, 소송 제기 보도기사)에서 신청인(저자)이
이의제기를 하는 부분을 삭제해 기사를 대체하고,
신청인의 반론 보도자료를 가지고 반론 기사를 싣는다고 하니,
양자가 문장을 포함해서 전체적으로 합의를 하도록 하라.
일단 다음 기일은 1주일 뒤, 인터넷한국일보 건 논의하는 시각으로 잡겠다.

신청인: 반론 기사가 분량도 취지도 아주 축소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중재부장: 양자가 구체적인 문안까지 합의하고
(*중재위에서? 중재위원들이?–명확하게 듣지 못함)
서명을 하면, 그대로 실어야 한다. 1주일 뒤로 기일을 잡아둘 테니,
두 분이 문안을 잘 만들어보라.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8422787851302

渦中日記 2014/10/30

원고측이 고발하면서 언론에 보냈던, 반은 거짓인 보도자료를 나에게 확인 없이 보도해 전국민의 분노를 사도록 만들었던 언론들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했었다.
어제, 그중 일부가 내 요구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합의안을 제시해 왔다.(언론 중재위라는 곳, 일처리가 신속하고 아주 친절했다. 신선한 발견.) 오늘 생각해 보고, 받아들일 것인지 여부를 알려 주어야 한다.

강의도 세과목이 있고 성적도 내야 하고 저녁엔 오랫만에 보고 싶은 얼굴 보러 방배동에도 가야 한다. 오늘도 몸과 마음이 바쁜 날.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7486677944913

渦中日記 2014/10/19

어제는 오래 미루어 왔던 일을 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기 위한 작업.
그런데 언론 중에도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문제가 심각했던 건, 양극단의 “적대적공존”이라는 우리사회의 현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만 것이 아니었을까.

과거에 쓴 내 책이 “일본우익을 대변”했다고 쓴 한겨레는 벌써 5년 전에 “일본우익의 찬사”를 받았다고 쓴 적이 있다. 그 때도 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요청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 때 하지 않았던 선택이 5년 후에 이런 사태를 불러왔는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를 일본우익의 대변자로 몰고 싶어하는 한겨레의 인식은 사실 재일교포학자가 퍼뜨린 인식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인식이, 고발장에도 차용되어 고발이라는 폭력을 뒷받침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사상은 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원고측 요청으로 미루어졌던 2차심리가 이번주 수요일로 다가왔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이제 중반.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80578661969048

渦中日記 2014/8/18

얼마전에 일본 아사히신문이 내놓은 위안부문제특집에 관한 전화인터뷰를, 일본의 한 월간지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결방책에 대해 묻기에, 일본의 “국회결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간의 지원자나 운동가가 말해온 것처럼 그렇게 해야 할 “법적의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국가에 의한 여성동원에 대한 “법적보호”를 방기한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이니, 일본이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1년 전에 한국에서 책을 낼 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생명의 헌납을 요구당한)남성에게는 보장되었던 “법의 보호”가, (성의 헌납을 요구당한 )여성에게는 보장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된 금년 봄 이후다. 그리고, 아사히가 강조한 “구조적강제”에 불만이 있는 듯 했던 기자는 내 말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제국의 위안부>일본어판에서도 사실 나는 그 점을 강조했었다. 문제는 한국에서 소송사태가 나는 바람에 일본측 출판사가 출간을 미루고 있다는 점.
그러니 이번 소송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해결을 위한 또하나의 노력을, 지원자들과 할머니들자신이 막고 있다는 점이다..

본문: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941628459197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