渦中日記 2015/12/26-2

한 여성이 내 책을 두고 “무능한 학자의 부실한 연구가 아니라 대단히 조직적이고 기획된 움직임”인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봤다. 타인의 고민의 결실에 대해 함부로 이런 단정을 내리는 만용과 근거없는 의구심이야말로, 우리사회를 혼돈에 빠뜨리고 있는 주범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트라우마를 벗어나려면, 트라우마에 대한 자각부터 필요하다.

나를 비난하는 이들의 심리의 저변에는 대개 일본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있다.
하지만 불신과 공포를 이기는 건 적대나 공격이 아니다.
불신은 대개는 무지가 만든다. 따라서 불신을 이기는 건 자신과 상대에 대한 공부 뿐이다. 물론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수십가지 종류의 비난과 비판과 오해와 오독, 심지어는 내가 위안부할머니를 “공동변소”라고 쓴 것처럼 쓰는 악의적 인용(동아일보/황호택)과 곡해의 바다에서 아직 익사하지 않고 있는 건, 그래도 가끔, 마음이 정화되는 글과 마음들이 헤엄쳐 갈 근력을 주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보려고 해야 보인다. 분명한 건 강아지를 본 사람이 안 본 사람보다 더 행복할 확률이 높다는 점. 물론 그 행복은 강아지가 만든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것이다.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5122400003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54596154567296

渦中日記 2015/12/22

원거리 민족주의(long distance nationalism)라는
개념이 있다. 몸은 바깥에 있지만,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민족주의적 감성에 빠지기 쉽다는 개념이다.

뉴욕의 한국인 학부모들이 뉴욕타임즈 기사에 자극을 받은 것 같다. 내 책의 반은 일본비판이라는 걸 이 기사가 썼었는지 잊어 버렸다. 2007년에 보스톤의 학부모들은 반전(反戦)수기인 “요코이야기”를 결국 출판사가 자체회수하도록 만든 적이 있다.

“제국의 위안부”는 전자책도 있다. 우선은 읽고 나서 행동에 나서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http://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151222_0010492092&cID=10100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51256344901277

渦中日記 2015/12/21 – 왜곡욕망

왜곡욕망

내일 나를 규탄하는 모임이 “학술토론”의 이름으로 열린다고 한다. 이들은 장문의 보도자료를 써서 이 모임을 알렸는데 보도된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들은 얼마전에 일본에서 나온 성명에 대해 반대하는 성명조차 양비론이라며 비난한다. 기소사태를 우려하는 그 성명이 불만이라는 건, 고발과 기소에 찬성한다는 뜻일 것이다.
나아가 이들의 포스터와 메일은 내가 구속 당한 것처럼 쓰고 있다. 구속을 원하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잘못 기술한 것인지 의도적 왜곡인지 모르겠지만, “구속”당할 만큼 박유하는 악인이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고 싶은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런 왜곡욕망은 나를 비난하는 모든 이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일이다. 고발한 나눔의집은 물론이고, 논문이니 집담회라는 이름의 아카데미즘공간에서조차 그런 일은 수없이 많이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어제 아침에 나온 뉴욕타임즈 기사를 처음 소개한 뉴시스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원기사에도 약간의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댓글이 비판 일색”이라는 헤드라인과 오역섞인 번역은 읽는 사람이 나에게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뉴시스는 이전부터 일관되게 나에게 비판적이었던 매체다.
내가 본 세 종류 보도 중에는 뉴스원 기자의 보도가 가장 정확했다.

누가 봐도 나쁜 사람들과 싸우는 일은 우울하지 않다.
그런데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의 도덕적타락을 마주하는 일은 정말이지 우울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우울하다.

http://m.news1.kr/news/category/?detail&2521252&96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5069028495788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장정일, ‘표현의 자유’ 함부로 차지 마라 (시사IN 라이브)

장정일 소설가

표현의 자유는 악용마저 포용하는 면죄부나 방어막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진실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나라는 OECD 가운데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앞으로 화두는 명예훼손죄여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무조건 옹호해야 하는 절대 가치인가? ①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②마호메트를 풍자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 ③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④아이유의 <챗셔> 앨범 표지와 ‘제제’의 가사 ⑤광주민주화항쟁을 북한 특수군이 사주한 것이라는 넷 우익의 발언은 모두 보호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일까? ①~④는 보호받아야 하는 표현의 자유라면서 ⑤에 대해서는 돌연 태도를 바꾸어 범죄로 규탄한다면, 그것은 절대 가치(표현의 자유)의 변덕을 폭로하는 것일까?

열거한 다섯 가지 가운데 옹호할 표현의 자유를 고른다고 해서, 이 가치가 원천적인 모순이나 한계를 지녔다고 말하면 안 된다. 예컨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①~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법정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나섰던 자유주의자는 나머지 네 가지 사안에 대해서도 똑같은 대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조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원칙(여기서는 ‘표현의 자유’)이 모든 사례에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람은 원칙을 물신화한 교조주의자이지 결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자유주의자는 하나의 원칙에 모든 사례를 복속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개별 사례마다 자신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아이러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교조주의자들만이 ‘세트 메뉴’를 받아먹는다.

<즐거운 사라>(청하, 1992)의 지은이가 기소되었을 때, 나는 이 사안에 표현의 자유가 요청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한국 문학은 성을 이야기할 때조차 죄의식을 버리지 못하며, 죄의식을 한 자락 깔고 있어야만 문학성 있는 작품으로 대접받는다. 반면 마광수의 성문학은 한 점의 죄의식도 찾기 어려울 만큼 낙천적이고 유토피아적이다. 그의 성적 유토피아가 철저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나는 그의 소설이 음란으로 처벌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땅콩을 애인의 질 속에 넣어두었다가 꺼내 먹고 싶다는 기행은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던 방중술을 베낀 것이다. 전래의 비기(秘技)에서는 땅콩이 아니라 대추였지만 말이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나는 <샤를리 에브도>를 표현의 자유로 옹호했다. 중학교 때까지 여호와의 증인이었던 나는, 현재도 여호와의 증인이 어떤 기독교보다 나은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괜찮은 종교는 괜찮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종교보다 인간을 더욱 억압한다. 그런 경험을 했던 나는 모든 종교에서 크고 작은 억압을 본다. 인류 역사는 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로 이주한 무슬림이 약자인 것은 맞지만, 마호메트는 약자가 아니다. 내가 옹호한 것은 약한 무슬림을 조롱하는 <샤를리 에브도>가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풍자하는 <샤를리 에브도>였다.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3)가 출간되었을 때부터 검찰에 기소된 지금까지 나는 이 책과 지은이에 대한 일관된 지지자다. 이 책은 지은이를 기소한 검찰이나 비판자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위안부를 ‘자발적인 매춘부’로 규정한 적이 없다. 이 책은 일제의 총칼에 ‘강제 납치된 어린 소녀’라는 고정된 위안부 상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위안부 문제의 실체를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 성격’과 연관하여 설명한다. 자발적 매춘은커녕, 이 책은 시종일관 조선인 위안부가 인신매매에 넘어간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제시하고 있다.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제 딴에는 ‘정치적 올바름’의 화신인 양하는 어느 진보적 문학평론가가 지은이를 향해 “제국의 편인가? 위안부의 편인가?”라고 묻는 것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천안함 폭침’의 진실을 밝히려는 과학자들을 향해 “북한 편이냐? 전사한 애국자 편이냐?”라고 윽박지르는 보수 언론과 저 문학평론가의 포악은 같다. 박유하의 책을 비난하면서 자칭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원한다는 사람들의 뇌세포는 어떠할까? 학문의 윤리는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틈’을 고민하는 것이며, 진실이 생겨나는 자리도 거기다.

<챗셔> 앨범 표지와 그 앨범에 실린 ‘제제’의 노랫말도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지 못할 게 없다. 앨범 표지는 그동안 ‘롤리타’로 소비되었던 아이유가 관음증적 삼촌·오빠들에게 보내는 반격(당신들 이런 것 좋아하잖아?)이자, 여태까지 그 역할을 즐겨 맡았던 아이유의 자기 자신에 대한 풍자(내가 이러면서 인기를 얻어왔지!)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낸 출판사는 ‘우리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며 펄쩍 뛰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달아준 마르셀 뒤샹의 는 루브르 박물관의 항의를 받은 바 없다. <제제>의 노랫말이 소아성애와 연관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상상하는 것도 자유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배후에 북한 특수군이 있다고 주장하는 우익 칼럼니스트와 넷 우익은 처벌받아야 한다. 우선 이런 주장은 아무런 증거 없는 날조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체였던 광주 시민의 평판을 고의적으로 해치려는 이런 날조는 당사자들을 북한군의 선동에 놀아난 폭도로 만든다. 또 이런 날조는 5·18을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제정하고 그 가치를 기려온 민주 사회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는 이처럼 개별적으로 검토되고 추인되어야 하는 것이지 악용마저 포용하는 면죄부나 방어막이 아니다.

박유하가 기소된 것은 현 정권의 국정교과서 사업이나, 국가의 탄압과 별 연관이 없다. 그가 기소된 것은 이 책으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었다는 생존 위안부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법은 공적 관심사와 공적 토론을 제공하는 학술 연구를 폭넓게 보호하려고 하지만, 학술 연구 가운데 특히 역사 연구는 사건이나 인물 해석을 놓고 당사자(혹은 후손)의 이익이나 명예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지은이가 법정으로 불려가야 한다면, 학자는 안전한 연구만 하려 할 것이고, 그들이 낸 책은 암호문이 될 것이다. 게다가 법학자 박경신이 <진실유포죄>(다산초당, 2012)에서 강도 높게 비판했듯이, 한국에 엄존하는 여러 종류의 명예훼손죄는 진실과 허위를 따지지 않고 처벌한다. 이 법에 따르면 학자들은 진실을 말하고도, 타인이 듣기 싫은 말을 했다는 명목으로 유죄를 받을 수 있다. 진실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고 통탄하는 이 책을 보면, 앞으로의 화두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명예훼손죄여야 한다.

원문: ‘표현의 자유’ 함부로 차지 마라 (장정일, 시사IN 라이브)

渦中日記 2015/12/16 – 민사재판 1심 변론

민사재판 1심이 오늘로 끝났다. 처음으로 재판장 앞에서 변론을 했다. 시간이 없다며 재촉해서 준비했던 말을 다 하지는 못했다. 오늘은 이 원고에서 언급한 할머니의 음성파일과 영상 파일도 제출했다. 조심스러워 이제까지 제출하지 않았던 자료다.
그 자리에서 판사가 음성 파일을 재생시켰다. 참석했던 할머니나 나눔의 집 관계자들도 놀란 듯 했지만 나도 놀랐다. 그 자리에서 공개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형사재판이 시작되면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자료들을 내놓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건 내가 원했던 국면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도 이 재판이 취하되거나 기각 되기를 바란다.
재판이 끝나고 참석하신 위안부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 오해를 푸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이하는 준비했던 변론. 이로써 민사재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나머지 2주일은 심신을 이완시키고 싶다.

—————
재판장님.

<제국의 위안부>내용중 34곳을 삭제하라는 가처분 판결이 끝나고 민사재판이 시작된 지 벌써 반년 이상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러한 판결이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었음을 말씀드려 왔습니다. 가처분 판결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신청해 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2015년 11월18일에는 그동안 이 사건을 조사해온 검찰이 저를 기소하는 사태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월에 첫 공판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 민사재판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재판장님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원고측은, 2014년6월에 저의 책 내용이 ‘허위’이자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한 책이라면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매춘’‘동지적관계’라는 두 단어를 강조하였고 제가 위안부할머니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는 저의 책이 그저 ‘한일간 화해’를 위한 책이며, ‘일본극우의 주장과 다르지 않’고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는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전국민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은 오독 혹은 곡해에 근거한 허위입니다. 그 사실을 저는 그동안 수많은 자료와 반론을 통해 항변해 왔습니다.

1.
저의 책은 위안부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책이긴 커녕 한국과 일본의 식자들이 “오히려 할머니의 아픔을 더 잘 알 수 있었다”고 말해 준 책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가 책을 낸 목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저는 이제까지 이른바 양심적 일본인은 물론, 이 문제를 부정하거나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다시 환기시키고 일본정부관계자들에게 해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입니다.

대립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대편의 주장도 잘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20여년동안 지원단체는 이 문제에 부정적인 이들의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이 지원단체의 주장과 다른 점은 부정론자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는 점, 그리고 그에 입각해 그들의 사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비판하려 한 점입니다.
그러나 지원단체를 비롯, 저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런 부분을 묵살하고 조선인위안부에 관한 서술과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만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리고 재판부와 검찰 역시 그들의 이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책이 정말로 그런 책이라면 한국에서 처음 발간했을 때 이미 문제시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발간 이후 10개월동안 그런 식의 비난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몇 언론은 호의적인 서평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의 지식인들과 한국의 지식인들마저 목소리를 내 주기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측 항의 성명에 일본의 양심을 대표하는 고노전관방장관, 무라야먀 전 수상,그리고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동참한 것은, 저의 책이 원고측이 생각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또, 성명에 참여한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저의 지인이기도 합니다. 저의 인식이 위안부할머니들을 폄훼하는 것이었다면 이들과 지인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을 내는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2.
고발은, 아직 학생신분인 젊은이들의 거칠고 조악한 독해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해방후 70년되는 한국의 문제를 말한 부분을 할머니를 비난한 것으로 읽고, 제가 할머니를 비난했다고 말했습니다. 원고측의 그런 비난이 확산되면서 저는 ‘위안부할머니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책을 올바르게 이해받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따라서 이른 바 “표현의 자유”를 말한 적도 없습니다.
저는 지난 1년 반동안 오로지, 법원과 여론을 향해,고발에 이르게 한 것은 “오독”이라고만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원고측은 처음에는 “허위”에 중점을 두었던 고발취지를 중간에 바꾸어, 저의 책이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면서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님.
오독이든 곡해이든, 거짓을 말한 것은 원고측 대변인들입니다. 결과적으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저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동안 고발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일은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가처분판결과 형사기소는, 저의 방식이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동안 하지 않았던 말을 일부 하려 합니다. 물론 증빙자료도 제출하겠습니다.

원고측이 문제시했던 저의 인식은,실은 생존 위안부할머니의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위안부문제 발생 직후의 한국정부의 인식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저의 책이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 할머니 중에도 저와 같은 인식을 가진 분이 계셨다는 사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런 분들의 목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어서입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런 말만이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러한 생각을 말하지 못했던 할머니가 계시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구조가 우리 안에 자리잡은 지 20년 이상이 지났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위안부문제가 발생하자, 우리사회는 위안부할머니들을 50년동안이나 침묵하게 만들었다는 반성을 했었고 이제 할머님들은 당당하게 생각을 말씀하십니다.그러나 어떤 이야기들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4.
저는 위안부를 징병과 같은 틀에서 생각해야 위안부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인위안부란, 제국이 세력확장을 위해 식민지치하의 개인을 동원해 신체와 성을 훼손시킨 존재입니다. 그러나 조선인군인과 달리 여성들을 보호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책은 그 점을 근대국가시스템의 문제로, 그리고 남성중심주의적 제국의 지배와 여성차별의 문제로서 일본에 대해 책임을 물은 책입니다.
저는 강제동원인지 아닌지, 소녀인지 아닌지 여부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그 점에만 주목해 20년 이상 대립해 왔고 이제 차세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안부문제 운동방식에 의문을 제기했을 뿐입니다.
제가 제시한 개념을 위안부할머니들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들 안에 자리한 차별의식과 그 밖의 요소들입니다.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조차, 위안부에 관한 인식은 저와 비슷합니다.

5.
재판장님, 그래서 이제 저는 그동안 제출했던 죽은 자료들 대신,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이 사회에서 들으려 하지 않았던 목소리를 제출합니다. 저는 죽은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책을 쓰고 나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들려지지 않았고 결국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죽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향해 말해진 그 목소리를, 세상이 들을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사와 마주하는 저의 방식입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은 저와 위안부할머니의 싸움이 아닙니다. 위안부문제 해결방식을 둘러싼, 기존의 관계자들과 저의, “생각의 싸움”입니다. 조선인위안부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다른 생각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저의 모든 생각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이 소송을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정의감에 입각해 저를 비난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저를 고발한 이들을, 세상이, 혹은 그들 자신이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서, 정의로운 이들과, 식민지시대와 냉전시대를 겪어온 우리의 불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그로써 위안부문제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2015년12월16일
박유하 드림

작성일: 2015.12.16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7615505265361

渦中日記 2015/12/15

기소 이후 한달이 되어가는데 아직 원래의 일상을 못 찾고 있다. 원래의 일상이란, 재판과 그에 관련된 일들이 생활과 감정의 중심이 되지 않는 상태다.
재판이 이어지는 동안은 기본적으로 내게 “비일상”일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난 탓에 기소 이전에는 조금은 평정심을 찾았었다. 그런데 기소 이후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일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아직 살아나지 않는다. 그저, 필요 최소한도의 말과 글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한일 양쪽 성명을 비롯해 이런 글들, 그리고 페북에서 여러 글들을 써 주는 분들을 위해서 기운을 차려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장정일 작가의 말은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나는 이 1년동안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저 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해왔을 뿐이다.
얼마 전에 인터뷰를 해 주었던 기자가 이번에는 칼럼을 써 주었다. 욕 먹을 걸 알면서도 이렇게 쓴 기자가 여성이라서 더 기쁘다.

http://www.hankookilbo.com/m/v.aspx…

http://news.donga.com/3/00/20151215/75364063/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6940285332883

渦中日記 2015/12/9

<제국의 위안부>에 비판적인 학자들이 오늘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의 답변–“토론을 요청하기 전에 고소를 취하하도록 노력하는 게 수순일 것”이라고 한 얘기에는 긍정적인 대답을 얻지 못했다. 정대협 전 회장이 두 사람이나 있는데도, 그들에겐 그런 노력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들이 “할머니의 아픔”에는 더할 수 없이 민감하면서, 같은 학자인 나의 정황에는 둔감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는 요즘, 끊임없이, 새롭게, 할머니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어제 퇴근길에 어떤 할머니가 전화하셨기에, 대화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할머니를 아프게 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할머니는 “서울대교수가 다섯 명이나 당신 책이 나쁜 책이라고 했다더라.”는, 고발직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누가시켰다고 쓰기 위해서가 아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강조하는 이들이 가장 “피해자를 배제”하고 있는 구조가 점점 더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모순적 구조.

교수신문이 그나마 사태를 제대로 보려고 해서 다행스럽다. 언론때문에 피해 본 것도 많지만, 부정적인 부분만을 보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보는 편이 인생에는 도움이 된다.

일본의 한 언론인이 “이 사태에 대해서 해설해야 하는데 나쁘게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 주세요. 나쁜 부분만 보는 것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려는 노력을 같이 하는 것만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길일테니까요.”

나역시 아직은 그런 심경을 버리지 않고 있고, 생각해보면 그게 이제까지의 나의 방식이었다.

http://m.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845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3408772352701

渦中日記 2015/12/7-2

기소이후, 한국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다른 곳의 의뢰도 받았고 일부는 이미 인터뷰를 했지만 동아일보가 먼저 나오게 되었다.

호의적인 내용이지만 “매듭지어야”한다던가 “한일 양심적 지식인들이”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 책은 해결을 위해 힌트가 되었으면 해서 쓴 책이지만 해결에만 방점이 찍힌 책은 아니다.

또 위안부문제는 해결을 두고 늘 누군가를 배제해 온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 틀 자체가 수정되어야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http://news.donga.com/3/all/20151207/75216867/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962239164021

渦中日記 2015/12/7 – 반론, 나눔의 집 입장에 대하여

고발직후, 나눔의 집과 여러 응수를 했다. 나를 “일제의 창녀”라고 쓴 트윗을 소장이 리트윗했기에 이후 차단까지 했다.

그들과 진실공방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거짓을 말하면 우리는 그에 대해 반론을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일인지, 누구를 위한 일인지 잘 모르는 채로. 소송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허무하다.
(아까 이 글을 공유한다는 게 잘못 올렸습니다. 좋아요와 댓글 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엊그제, ‘나눔의집’ 쪽에서 최근 한국-일본에서 나온 <제국의 위안부> 형사기소에 대한 항의성명과 관련하여 ‘입장’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박유하 교수가 따로 얘기를 하시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제 짧은 소견으로나마 사실관계를 포함한 몇 가지 점만 말씀드려두겠습니다.

1.
벌써 1년 반이 되었습니다만, 저는 줄곧 이 책이 담고 있는 ‘사실’과 ‘의견, 주장’ 모두 법정에서 다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드려왔습니다. ‘사실’은 확인하면 될 일이고, ‘의견과 주장’은 공론장에서 비판하고 토론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2.
나눔의집 쪽은 입장 표명에서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라고 말씀하셨고, 작년 6월의 출판금지 가처분신청과 민.형사 고소 시점부터 이 책이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해오셨습니다.(가처분신청 심리 중간쯤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 답변서 제출 이후 ‘신청 취지’를 ‘변경’하실 때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아니라 저자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전쟁범죄를 찬양’했다는 식으로 바뀌어 정말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박유하 교수가 여러 차례 밝혔고 법원 및 검찰 답변서에서도 상세히 기술했듯이, 이 책에 언급된 어떤 내용도 근거 없는 ‘허위의 사실’이 아닙니다. 이와 관련하여, 박 교수는 어느 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결국 이 기사는 실리지 못한/않은 것으로 압니다).

-문:위안부 강제연행은 포주나 업자들의 취업 사기와 인신매매가 더 많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답: 제가 책에 인용한 증언집은 기존 위안부 지원단체나 연구자들이 낸 것입니다. 이걸 거짓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동안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은 모두 허위를 바탕으로 이뤄져 온 것이라고 인정하는 게 됩니다.

또한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도 목적도 없었습니다.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라고 썼다는 ‘거짓말’을 비롯한 ‘허위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서는, 원고 측과 검찰이 들고 있는 이른바 ‘범죄일람표’와 거기에 대한 반박을 곧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3.
2015년 봄부터 몇 달 동안 진행된 검찰의 형사조정 과정과 관련해서도, 나눔의집 쪽에서 내놓은 입장은 저희가 아는 바와 다릅니다.

나눔의집 쪽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

형사조정위원회에서 나온 조정안들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만, ‘조정 불성립’으로 끝나게 된 가장 결정적인 문구는 “가처분사건의 결정주문 제1항에서 금지한 행위를 한국 내외에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하지 아니한다”였습니다. ‘한국 내외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아니한다는 것은, 곧 한국에서 ‘삭제판’도 출판하지 말고, 비슷한 표현을 앞으로 나라 안팎에서 직/간접적으로 하지 말 것이며, 결정적으로 한국어판과는 구성도 문장도 다른 ‘일본어판’마저 절판시키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예 입을 다물라는 요구였지만, 박유하 교수는 ‘일본어판’과 관련된 요구 말고는 모두 수용하려고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조정안의 전문과 1항, 2항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사건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위안부할머니들이 겪었던 형언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고, 20년이 넘도록 갈등을 거듭해온 위안부 문제가 고령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속하게 해결되어야 한다는 데에 뜻을 함께하고 이를 위해 일본정부의 명백한 사죄와 보상의 행동을 촉구한다.

한편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한일양국간의 위안부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동시에 양국 시민들의 상호 이해와 우호협력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데 공감한다.

이에 고소인들과 피고소인들은 다음과 같이 조정하여 이 사건을 원만히 해결한다.

1) 피고소인들은 피고소인 박유하가 저작하고 피고소인 정종주가 출판ㆍ배포한 책인 ‘제국의 위안부’(이하 ‘이 책’ 이라 한다.)로 인하여 고소인들을 포함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하였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것에 대하여 고소인 및 위안부할머니들께 진심으로 사과하고 아울러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2) 고소인들은 피고소인들이 이 책을 저작ㆍ출판ㆍ배포한 목적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내놓는데 있었고, 위안부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할 적극적 의도나 목적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아니한다.”

4.
박유하 교수도 저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모진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눈 감고 있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아흔 살이 넘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한시라도 일찍 한일 간에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어제 새벽에 돌아가신 최갑순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제국의 위안부>가 법정에서 단죄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토론되고 비판받고 논박하는 ‘공개토론’을 통해서 진정한 해결책을 함께 찾고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위안부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연구자와 활동가 일동’의 여러 선생님들도 “원칙적으로 연구자의 저작에 대해 법정에서 형사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단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공개토론을 제안하셨으니, 모쪼록 이 사안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래는, 나눔의집 쪽에서 낸 ‘입장’ 전문입니다.
——————————————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항의 성명서(2015년11월26일)와 국내학자들의 기자회견(2015년12월2일)에 대한 <나눔의 집> 입장

금번 박유하에 대한 기소에 대하여 학문적 잣대로 기소를 반대 하는 것은, 한국의 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무엇보다 할머니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것으로 과연 그 동안 성명인들이 성의를 보여왔던,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 해결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합니다.

소위 연구서라는 것은 사실 묘사와 의견으로 구성되어 있고 박유하의 책 ‘제국의 위안부’ 역시 그러합니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서문에서 그럴듯한 집필의도를 밝히고 있지만 박유하의 책 역시 다른 책들이 갖는 한계처럼 정확한 의견과 사실묘사 외에 부정확한 의견과 사실묘사가 존재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호하지만 일정한 한계를 두어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타인의 기본권까지 무제한으로 침해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금번 성명서가 우려하고 있듯이 대한민국 검찰의 박유하에 대한 기소는 학문과 언론의 활발한 장을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검찰은 <제국의 위안부>에서 표현되고 있는 부정확한 의견에 대하여기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 역시 박유하의 틀린 의견을 문제 삼아 형사 고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성명서에 밝힌 것처럼 박유하의 책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를 심도 깊게 연구한 대한민국의 학자들이나 직접적인 피해자 할머니들은 박유하가 자신의 책에서 피력하는 의견이나 역사관 등에 대하여 비록 동의를 하지는 않을 지라도 이를 문제 삼지는 않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존재하니까요

2013년 8월에 박유하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출간의도를 밝히며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자 박유하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에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었던 ‘위안부’ 삶을 객관적으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거나 심하게 왜곡한 부분이 존재하였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박유하의 책에서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이 잘못 왜곡되어 표현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를 표하였고 이로 인하여 자신들의 명예가 심하게 훼손되는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금번 성명서에서 한국 검찰과 박유하라는 두 주체를 중심으로 이분법적 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완전히 간과한 것입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과연 박유하가 사실과 다른 표현을 하여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입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은 사람을 도둑이라고 규정짓는 책이 발간된 경우 피해자가 이를 참아야만하고 이는 학문의 자유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억울한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는 더 이상 학문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표현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자신들을 “자발적인 매춘부”, “일본의 승전을 위하여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하는 여러 표현들이 사실이 아니고 자신들의 명예를 심하게 훼손하였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2014년 6월 17일 박유하를 상대로 출판금지가처분, 민사소송, 형사고소를 하였습니다.

2015. 2. 17. 가처분 사건과 관련하여 법원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라고 하거나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였다.’는 등의 몇몇 표현이 객관적인 연구 결과나 사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표현으로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이러한 문제되는 표현을 삭제하라고 하였습니다.

한국검찰은 2014. 10.월 이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조사하고 박유하도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차례에 걸쳐 형사조정 절차를 거쳤습니다. 일본에는 생소하겠지만 형사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을 도모하는 제도입니다.

위 조정절차에서 피해자 할머니 측은 ① 박유하의 진심어린 사과 ② 왜곡된 표현을 한국이나 제3국에서 사용하지 마라는 2가지 요구만을 하였고 박유하가 이를 수용한다면 진행하고 있는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모두 취하 하겠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박유하는 형사조정절차에서 여러 이유를 대며 법원이 삭제를 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용한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검찰은 수차례 더 조정을 주선하였지만 결국 조정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검찰은 박유하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한국 형법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와 일반 명예훼손죄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금번 한국 검찰은 박유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일반 명예훼손죄 중 허위사실 공표로 기소를 한 것입니다. 즉 박유하의 연구 결과에 대하여 공소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박유하의 책 중에서 일부 표현이 할머니들이 겪은 경험을 왜곡하였고 이러한 행위가 할머니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금번 학자들이 발표한 성명은 한국법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검찰이 어떤 것을 기소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표현에 분노하고 고통 받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박유하를 고소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자발적 매춘’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안부’ 생활을 견딘 것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견뎠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은 형사조정절차에서 위와 같은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지만 박유하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이후 프랑스나 독일 등 몇몇 국가는 법제정을 통해 반유대주의를 표명하거나 나치의 대량 학살 등을 부정하는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하였습니다. 의견표명에 대한 처벌이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법까지 제정하여 처벌을 하는 것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금번 기소는 박유하의 책에서 문제삼을 수 있는 여러 의견을 대상으로 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제국의 위안부> 책에서 표현되고 있는 여러 견해의 부적절함에 대한 논의는 학문의 영역에 속하지만 사실이 아님에도 사실인 것처럼 표현을 하여 할머니들에게 고통을 준 부분은 시정되어야하고 그러한 사실과 다른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합니다.

발표된 성명서는 금번 형사처분이 왜 이루어졌고 어떤 죄명으로 기소가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이 어떤 표현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표현이 사실인지 여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금번 성명이 단순히 한국 검찰이 기소를 한 것이 박유하의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비난을 하는 것이라면 이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피상적인 비난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닙니다. 반복하지만 성명서 어디에도 고소를 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박유하의 표현으로 인한 고통을 보듬는 내용이 없습니다.

향후에도 위안부 해결을 위한 건강한 토론의 장은 늘 열려 있어야하고 학문의 자유 역시 완벽히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학문의 자유를 빙자하여 사실과 다른 표현으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에게 계속 고통을 주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번 형사사건의 본질에 대하여 정확한 이해를 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691312524447

渦中日記 2015/12/5

기자회견이 끝나고 사흘. 기소 이후 이주일 여, 내내 경황이 없어 답하지 못했던 전화, 문자, 메일, 메시지등에 답하기 시작했다.
이 주말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원고도 써야 한다.

경향신문 기자가 이번사태에 대해 정리한 기사를 써 주었다. 생각해보면 <제국의 위안부>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전면기사로 서평을 써주었던 매체다. 그럼에도 얼마전엔 나를 “친일교수”로 모는 기사를 쓰기도 했던.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의 매체가 결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나는 이 책을 간행한 이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이 내 이름과 함께 돌아 다닌다. 어떤 이는 “설사 직접 쓰지 않았어도 그렇다고 알 수 있는 내용을 쓰지 않았느냐”고 한다.
위안부문제 해결은 어쩌면, 뿌리깊은 매춘차별의식에서 벗어날 때에야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당사자든 주변인이든.

“논박”이란 때로 필요하지만, 때로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논지도 아니고, 지식도 아닐 수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건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태도, 그리고 타자와 마주하는 자세일 뿐이다.

http://h2.khan.co.kr/20151203163105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41018259258419

渦中日記 2015/12/2-2

며칠간 경황이 없어 어젯밤 늦게야 오늘 기자회견에서 발표할 글을 썼다. 허핑톤포스트가 게재해 주었는데, 다시 보니 중요한 말을 빠뜨렸다.

나를 비판하는 이들은, 내가 “당사자/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책에서 의도했던 건, 또다른 “당사자”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문제발생 초기에는 자연스럽게 공존했던,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정부보고서에조차 등장할 수 있었던 “당사자”들. 세월이 가면서 지원자와 국가의 목소리에 묻혀 “삭제”당했던 목소리들.
나는 그렇게 해서 우리시야에서 사라졌거나 혹은 여전히 존재함에도 들리지 않는,”언로”를 갖고 있지 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위안부 할머니의 목소리를 나는 아직 세상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시도하자마자, 고발당했다. “당사자”란 하나가 아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yuha-park/story_b_8695314.html…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9404569419788

渦中日記 2015/12/2

기자회견과 지식인 성명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한국언론 일본언론은 물론 미국 스페인 언론까지 와 주어 장내가 가득 찼을 정도였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기자,언론인 여러분들, 특히 Facebook 친구 언론인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저를 위한 성명에 참여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어떤 국면이 될지 모르지만 선생님들이 함께 해주셨으니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려주신 분 중 한 분인 김원우 선생님께서 내내 뒤에 앉아 계시다가 가셨는데 저와 함께 찍힌 사진이 있기에 올려 둡니다. 우연히도 옆에는 역시 오래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군요

우선 간단히 보고 드립니다. 먼저, 오래오래 소중하게 기억될 이름들, 191분의 성함을 옮겨 둡니다.

————

학계

강남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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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보드래 (교수)
권순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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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건영 (교수)
최길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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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욱 (연구자)
허병식 (학자)
홍윤표 (교수)

*작가・문인

고영범 (극작가)
고종석 (작가)
김경옥 (공연평론가)
김곰치 (소설가)
김도언 (작가)
김병익 (평론가)
김원우 (작가)
김현호 (사진비평가)
류 근 (시인)
문강형준(문화평론가)
문부식 (시인)
박일환 (시인)
배수아 (소설가)
배홍진 (작가)
변정수 (평론가)
서준환 (소설가)
손이상 (문화평론가)
송태욱 (번역가)
신은실 (영화비평가)
양한승 (문인)
양혜진 (번역가)
유시민 (작가)
이광호 (평론가)
이문재 (시인)
이원석 (문화비평가)
이제하 (작가)
장윤선 (번역가)
장정일 (소설가)
정과리 (평론가)
정숙희 (극작가)
정찬용 (작가)
조영일(평론가)
최규승 (시인)
최 범 (평론가)
함성호 (시인)
홍미화 (번역가)
홍세화 (작가)

*문화・예술인

강운구 (사진작가)
경 순 (다큐감독)
고성용 (건축사)
김인범 (예술가)
박진영 (사진작가)
안악희 (독립음악가)
유성준 (예술가)
임옥상 (화가)
장현우 (사진작가)
정경록 (독립영화감독)
조미영 (예술가)
조민숙 (예술가)
조세영 (독립영화감독)
최정우 (작곡가)
태준식 (독립영화감독)

*언론・출판인

김규항 (칼럼니스트)
김다미 (출판인)
김용범 (프로듀서)
김종영 (언론인)
김지현 (언론인)
노재현(출판인)
박성태 (언론인)
안보영 (프로듀서)
오태규 (언론인)
이강택 (프로듀서)
이수경 (언론, 예술인)
임현규 (광고인)
장혜경 (언론인)
정종주 (출판인)
조기조 (출판인)
조동신 (출판인)
조용래 (언론인)
주연선 (출판인)
최성욱 (언론인)
황성기 (언론인)
황영식 (언론인)
*법조인

금태섭 (변호사)
김용찬 (변호사)
김향훈 (변호사)
박도준 (변호사)
정우성 (변리사)
최명규 (변호사)

*의료계

김택수 (의학박사)
박성환 (의사)
윤종완 (의사)
윤준호 (치과의사)
정 부 (의료인)
최명환 (의사)

*종교계

이정우 (목사)

총 서명인 194명

『제국의위안부』의 형사 기소에 대한 지식인 성명

2015년 11월 19일, 서울 동부지방 검찰청은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종군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묘사하고 일본군과 종군위안부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하였다는 이유로 저자를 형법상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17일, 서울 동부지방 법원은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로 『제국의 위안부』의 내용 가운데 서른네 곳의 삭제를 명하는 “가처분 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일련의 조치에 대해 우리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검찰 측에서 제시한 기소 사유는 책의 실제 내용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습니다. “자발적 매춘부”라는 말은 저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인사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자가 그들의 발언 중에서 인용한 것이며, “동지적 관계”라는 말은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된 식민지 조선인의 사정을 그 전쟁의 객관적 상황에 의거해서 기술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입니다. 검찰이 과연 문제의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기소 결정이 과연 공정한 검토와 숙의의 결과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국의 위안부』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론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책입니다. 특히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집단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와세다 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국내 출판사 마흔일곱 곳이 참여하는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의 삭제판 출간이라는 오늘의 출판현실에 주목하여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한 권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에 논란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학술적으로 보다 철저한 조사와 정교한 분석을 요하는 대목이 있을 수 있고, 국내외의 이런저런 정치사회단체의 비위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는 당초부터 갈등을 유발할 요소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까다로운 사안입니다. 이 사안을 다루는 합리적인 방법은 어느 특정 정치사회집단이 발언의 권위를 독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자유롭게 표출되고 경합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검찰의 기소 조치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사법부가 나서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여론을 국가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와 발언의 자유가 당연히 제한을 받을 것이고, 국가 이데올로기에 편승한 주장들이 진리의 자리를 배타적으로 차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군위안부 문제의 범위를 넘어 역사 문제 일반과 관련해서도, 국가가 원한다면 시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도 무방하다는 반민주적 관례를 낳을 것입니다.

한 학자가 내놓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사법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1987년 권위주의 정권을 퇴출한 이후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민주적 관례와 제도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며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구 또한 그러한 사회적 진보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검찰이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은 그러한 민주화의 대세에 역행하는 조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박유하 교수에 대한 기소 사태를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부디 검찰의 기소가 취하되기를 바라며,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12월 2일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39315759428669&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theater

渦中日記 2015/12/1 – 기자회견 전야

그저께는 마이니치신문 인터뷰를 했고, 어제는 뉴욕타임즈 인터뷰를 했다. 한 일본인기자는 나에게 전화해서 한국언론의 반응을 물었다. 한국언론에서는 아직 인터뷰신청이 없고 기소를 직접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은 내가 아는 한 아직 없다고 했더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유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응원을 보내 주는 분들은 계시다.

내일 기자회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1년반 동안 재판소와 세상을 향해 “내 책은 위안부할머니를 비난하는 책이 아니다” 라고 외쳐왔지만 그 외침은 철저하게 묵살당했다. 읽은 이든 안 읽은 이든 나를 비판하는 이들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피해를 호소하는 할머니”라는 두가지 대비되는 이미지인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그들에게 내 책은 그러한 “정황”에 대한 인식이 없는, 그러한 “정황과 싸우고 있는 할머니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 읽은 이들조차 “똥을 먹어봐야 아느냐”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제”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자문하지 않는다. 조금 사려깊은 이들은 “책이 설사 그런 의도를 담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상처입었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검사는 내게 책의 문맥을 보면 의도가 나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 “구절”이 문제제기되는 한 그건 “법적”으로는 문제삼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1년 반동안 알게 된 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검찰과 법정이라는 공간은, 하나의 사태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방면으로 생각하려 한 인문서적에 대해 “판단”이 맡겨져서는 안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법학자의 발상이 인문학자의 발상과 얼마나 다른지도 알았다.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이 나의 책을 성실하게 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나의 답변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자발적 매춘부”라고 말했다고 쓴 원고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데서 드러난다. 그럼에도 검사는 “내가 한국에서 이 문제를 세번째로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아마도 검사는 원고측이 제출한 방대한 자료들–유엔보고서니 그외 자료들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출한 또다른 자료, 1992년에 한국정부가 만든 자료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료는 나의 견해와 아주 비슷하다.

그들은 나의 책을 판단할 때 단순히 “할머니의 명예”침해 여부로만 묻지 않는다. 그들이 갖고 있는 현대일본에 대한 이해,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 책에 대해 말한다. 나눔의집 측이 내 답변서를 읽고 “허위!”라고 주장했던 처음 주장을 바꾸어 나의 “역사인식”이 “공공선”에 반한다고 말하면서 내가 “전쟁범죄를 찬양”하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그런 그들의 전략은 유효했고 “삭제하라”는 명령과 “기소”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내 책은 바로 그런 그들의 “전제”와 “사고”에 대해 물으려 한 책이었다. 그러니 나는 어쩌면 그동안 접점자체가 없는 싸움을 해 온 셈이다.
수십번 한 이야기지만 이 싸움은 할머니와의 싸움이 아니다. 지원단체와의 싸움조차 아니다. 그저, 20년 이상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했이들, 그들이 이 사회에 심어놓은 “인식”과의 싸움일 뿐이다. 그 인식의 뒤에는 때로 이런저런 권력도 보이지만.
나를 지지해 준 이들 중에 외국등 “바깥”에 있는 이들이 많았던 건, 이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과 힘에서 자유로운 이들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안”에 있을지라도 우연한 인연이나 통념을 존재와 생각과 행동의 근거로 삼지 않고, 그래서 생각이 자유로운.

나를 위한 “지식인성명”에 서명을 받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내일 나의 기자회견에 이어 발표된다. 주로 학계, 문인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출판계, 언론계, 그리고 법조계 분들이 참여해 주었다.
오래 교류해 온 학문적동지이기도 한 분과, 고발이후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셨던 명망가가 나서주고 계신데 나는 늘 교류하는 페이스북 친구들에게조차 미처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유명진보논객들이 동참해 주었지만, 발표되는 첫성명에 늘 지지해 주었던 페북친구들의 이름이 없으면 그간의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성명서라는 느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었습니다.

혹 이제부터라도 참여해 주실 “해당분야” 분들은 아래 댓글에 있는 백승환군에게(이미 저에게 보내신 분은 괜찮습니다) 페이스북메시지로 이메일주소와 함께 성함(신분)을 적어 알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예:박유하(연구자), 홍길동(언론인)등. )
오늘밤 10시까지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8473506179561

渦中日記 2015/11/27

아침에 나를 기소한 검사가 전화를 했다. 검찰에 오라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전자 지문날인”을 위해서라고 했다. 처음으로 “범죄 혐의자”가 되었음을 절감했다.

만인의 비난을 받는 사태는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조금씩 그 양상이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작년 6월에는 내 담벼락에 쏟아지는 댓글과 비난에 시달려야 했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다.
어떤이는 내가 친구만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한 건 다른 의견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힐난하지만 나는 들을 만한 의견은 듣는다. 두번의 경험에 의해 그런 비난의 대부분은 들을 만한 의견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어떤 비난들이 있는지는 내가 원하면 트위터로 쉽게 볼 수 있다. 해명이 필요하다고 여겼던 부분들은 메모 중이다. 사태가 안정되면 쓸 생각이다.

김규항 선생님이 올려주신 정철승씨의 글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나는 그런 이들의 글에 더이상 상처받지 않는다. 가부장제의식으로 똘똘뭉친 남성들의 비난이 내포한 폭력성에 대해서도 조만간 쓸 예정이다. 그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은 그런 이들이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고발 이후 모든 비난은 고발을 지탱했다. 특히 “박유하의 책은 문제 있는 책”이라는 암시를 흘려 대중을 호도했던 지식인들의 비판이야말로 기소를 이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식인의 권위”는 때로 우아하게 폭력을 유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고발에는 반대한다”는 말은 지극히 자가당착적이다. 정말 비판하고 싶었으면 고발부터 비판했어야 했다. 그런 아이러니한 정황을 만든 것이 고발이라는 사태였다.

다음 주 수요일에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서구 언론들이 관심을 보여 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서글프다. 위안부 문제를 미국에 호소하지 말고 직접 일본에 이야기하자고 나는 말해 왔는데, 정부와 지원단체가 기댔던 매체들이 이제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찾아오는 아이러니라니. 나는 이런 사태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아사히신문칼럼은, 어제 성명에 언급하면서 “하지만 정말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한국인들”이라고 쓰고 있었다.

가능한 일이라면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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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안내 記者会見案内

<제국의위안부>검찰 기소관련 박유하교수측 회견

언론매체 각위

일시 : 2015년 12월2일(수) 오전 10시
장소 :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

『제국의 위안부-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을 쓴 박유하 교수가 검찰기소와 2014년6월의 고발사태 전후, 그리고 그 이후의 정황에 대해 말합니다.

기소 이후 대부분의 언론들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 로 썼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위안부들을 그렇게만 보아온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그들이 한 말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고발당시 원고측이 보도자료를 통해 내보내고 법원제출서류에도 사용했던 이러한 오해는 박유하교수가 법원제출서류와 그밖의 매체를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설명했음에도 1년반 가까이 지나도록 시정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소라는 사태를 맞아 반복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원고측 주장을 전혀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법원과 검찰에 특히 중대한 책임이 있다 하겠습니다.

그동안 박유하교수는 여러 정황을 감안하여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수단을 충분히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가처분재판부와 검찰에서 상식에 바탕한 결론을 내려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를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었음이 판명되었으므로 이제 언론을 향해 이 고발과 기소,그리고 책에 대해 설명하려 합니다.

2015년11월26일 무라야마담화의 무라야마 전수상, 고노담화의 고노전관방장관, 그리고 작가 오에겐자부로선생까지 동참한 일본에서의 성명을 받아 한 언론인은 박유하의 책이 “오독되었을 가능성” 을 제기했습니다.
위안부문제는 너무나 여러갈래로 착종되어 있어, 짧은 시간에 책과 고발사태에 대해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언론/학문의 자유가 없는 것으로 비치게 되어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마저 땅에 떨어지게 된 지금, 우선 시급하게 해명과 항의가 필요하다고 간주했습니다. 언론관계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2015년 11월 27일

세종대 박유하
뿌리와 이파리 대표 정종주

본문: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236676153025963&set=a.296221900404731.91201.100000507702504&type=3

渦中日記 2015/11/26

오늘 오후에, 나에 대한 기소를 비판하는 성명이 나왔다.

이번에 중심에 있어준 건 와카미야 아사히신문 전주필이고, Masahiko Nishi 교수, 우에노치즈코 교수, 고모리요이치교수, 작가 나카자와 게이선생등이 각각 발벗고 나서 주었는데, 오에겐자부로 선생에 더해 무라야마담화의 무라야마전수상, 고노담화의 고노전관방장관까지 동참해 주었다.

일본 최고의 지식인들이, 입을 모아 내 책은 세간에서 말하는 그런 책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얼마전에 통화했던, 원고가 된 한 할머님도, “당신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었다.

기사에 서명자 이름이 빠져 있어 첨부해 둔다. 오래오래 잊을 수 없을 이름들.

浅野豊美(Asano Toyomi, 아사노 토요미)、蘭信三(Araragi Shinzo, 아라라기 신조)、石川好(Ishikawa Yoshimi, 이시카와 요시미)、入江昭(Irie Akira, 이리에 아키라)、岩崎稔(Iwasaki Minoru, 이와사키 미노루)、上野千鶴子(Ueno Chizuko, 우에노 치즈코)、大江健三郎(Oe Kenzaburo, 오에 겐자부로)、大河原昭夫(Okawara Akio, 오카와라 아키오)、大沼保昭(Onuma Yasuaki, 오누마 야스아키)、小倉紀蔵(Ogura Kizo, 오구라 키조)、小此木政夫(Okonogi Masao, 오코노기 마사오)、加藤千香子(Kato Chikako, 가토 치카코)、加納実紀代(Kano Mikiyo, 가노 미키요)、川村湊(Kawamura Minato, 가와무라 미나토)、木宮正史(Kimiya Tadashi, 기미야 타다시)、グレゴリー・クラーク(Gregory Clark, 그레고리 클러크)、ウィリアム・グライムス(William Grimes, 윌리엄 그라임스)、栗栖薫子(Kurusu Kaoru, 쿠루수 카오루)、河野洋平(Kono Yohei, 고노 요헤이)、アンドルー・ゴードン(Andrew Gordon, 앤드류 고든)、古城佳子(Kojo Yoshiko, 코죠 요시코)、小針進(Kohari Susumu, 고하리 스스무)、小森陽一(Komori Yoichi, 고모리 요이치)、酒井直樹(Sakai Naoki, 사카이 나오키)、島田雅彦(Shimada Masahiko, 시마다 마사히코)、千田有紀(Senda Yuki, 센다 유키)、添谷芳秀(Soeya Yoshihide, 소에야 요시히데)、高橋源一郎(Takahashi Genichiro, 다카하시 겐이치로)、竹内栄美子(Takeuchi Emiko, 다케우치 에미코)、田中明彦(Tanaka Akihiko, 다나카 아키히코)、茅野裕城子(Chino Yukiko, 치노 유키코)、津島佑子(Tsushima Yuko, 쓰시마 유코)、東郷和彦(Togo Kazuhiko, 도고 가즈히코)、中川成美(Nakagawa Shigemi, 나카가와 시게미)、中沢けい(Nakazawa Kei, 나카자와 케이)、中島岳志(Nakajima Takeshi, 나카지마 다케시)、成田龍一(Narita Ryuichi, 나리타 류이치)、西成彦(Nishi Masahiko, 니시 마사히코)、西川祐子(Nishikawa Yuko, 니시카와 유코)、トマス・バーガー(Thomas Berger, 토마스 버거)、波多野澄雄(Hatano Sumio, 하타노 수미오)、馬場公彦(Baba Kimihiko, 바바 기미히코)、平井久志(Hirai Hisashi, 히라이 히사시)、藤井貞和(Fujii Sadakazu, 후지이 사다카즈)、藤原帰一(Fujiwara Kiichi, 후지와라 키이치)、星野智幸(Hoshino Tomoyuki, 호시노 도모유키)、村山富市(Murayama Tomiichi, 무라야마 도미이치)、マイク・モチズキ(Mike Mochizuki, 마이크 모치즈키)、本橋哲也(Motohashi Tetsuya, 모토하시 데츠야)、安尾芳典(Yasuo Yoshinori, 야스오 요시노리)、山田孝男(Yamada Takao, 야마다 다카오)、四方田犬彦(Yomota Inuhiko, 요모타 이누히코)、李相哲(Lee Sangchul, 리상철, Li Sotetsu, 리 소테츠)、若宮啓文(Wakamiya Yoshibumi, 와카미야 요시부미)  (54명)

사무국:西成彦( 니시 마사히코) [email protected]

http://news.donga.com/Inter/3/02/20151126/75041382/1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6093969750848

渦中日記 2015/11/25 강의가 없었던 날.

강의가 없었던 날.

하루종일, 제 시간에 식사조차 못할 정도로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중인 성명작업을 지켜보는 일과, 전화와 메일과 이런 저런 연락에 시달렸다.
일본에서의 성명은 내일 오후에 동경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다고 한다. 회견에 나서 줄 이들은 와카미야 아사히신문 전 주필, 여성학자 우에노치즈코 교수, 일본근대문학자이자 “헌법9조를 지키는 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아온 고모리요이치 교수가 될 듯 하다.

처음으로, 일본언론 중 아사히신문의 인터뷰에 응했다. 다른 언론들에는 다음주 기자회견(12월 2일 오전 10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을 기다려 달라 했지만, 아사히신문은 책을 낸 곳이기도 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발 후 받았던 형사조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때 느꼈던 수모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고통스러웠다.

뉴욕타임즈 한국인기자에게서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내 사태가 “인권문제”로 보이고 그래서 관심이 있다 해서 응할 생각이 들었다.
고발 이후 짓밟히고 실제로 명예를 훼손당한 건 위안부할머니가 아니라 나다. 내 책을 읽고 할머니들한테 “매춘부!”라고 손가락질했을 이는 아무도 없었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렇게 말해온 이들과 그런 차별의식에 동조한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언급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다 해서.

저녁 무렵에, 비로소 기소장을 받았다. 내용을 읽고 그만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고측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위안부문제 연구자가 아닌 그들이 어떻게 내 책이 거짓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일까.
결국 그들은 누군가의 주장을 믿고 대리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데, 박유하라는 개인보다는, 지원단체라는 오랜 권력, 힘을 가진 “기존”연구, 여론과 국가라는, “다수의 주장”을 선택한 셈이다.

기소장에 대해 썼던 메일 일부를 옮겨 둔다.
이제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다행히 구토증세는 없어졌다..(걱정해 주신 분들,감사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한 과거의 이해를 그냥 적고, <박유하의 책은 그런 기존인식을 부정하고 있으니 범죄>,라는 논리입니다.
그런 논리가 성립한다면 학자는 누구나 기존인식만을 말해야 하고 국가를 대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저로서는 물리적강제연행을 부정했으나 구조적 강제성을 강조했고 실제로는 위안부연구자들도 그점에서 일치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고
제가 업자의 책임을 강조한 것을 두고 <국가책임 없다>(이것을 법적책임주장을 비판한 것과 연계시켜 <박유하는 일본의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하는 거지요)
고 말한 것으로 간주하거나 왜곡하고 있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지적된 내용 대부분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이처럼 이중삼중의 비틀림들에 의한 억압이 제가 처한 상황입니다..”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5603783133200

渦中日記 2015/11/23

며칠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실망과 절망과 분노와 슬픔과 위안이 교차했던 시간들. 나쁜 기억은 내 안에만 기록할 생각이지만, 한가지만 써 두려 한다.

기소 다음날 아침, 대일피해자 보상문제분야에서 오래 일해 온 한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와는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차 한잔 한 사이일 뿐이다. 그는 나의 책의 취지를 이해한다면서, “해결하고 화해하자는 것이니, 당신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했다. 뭐냐고 물으니 일본외무성이 뭔가 자료를 감추고 있는데 그걸 공개하라는 요구를 한국에서 기자회견이나 글로 주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에 대해 요구할 것이 있으면 한국이나 외압동원이 아니라 직접 일본을 향해 말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니 그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럼 재판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나눔의집과 가까운 사이다. 그들의 생각이 새삼 명백히 보이는 듯 했다. 함께 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 나에 대한 고발은 분명 그런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런 요구를 받아 들였다.

암담한 건 기소 다음날 아침에 전화해서 나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 자체가 아니다. 그런 감성을 가진 그가, “약자”를 대변하는 이로 자신을 정의하고 또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부하리만큼 횡행해 왔다는 것. 그게 어쩌면 우리사회의 본질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

내 사태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는 성명서 작성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만간 발표될 듯 하다. 두군데가 될 것 같다.

나는 나대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한 날, 냉전 종식후 태어난, 1992년의 문민정부를 상징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서거했다. 위안부문제는 문민정부의 출발과 궤를 같이 한다. 그리고 이어진 20여년에 대해 고찰한 책으로 인해 나는 국가에 의해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었다.

며칠동안, 무기력과 나를 포함한 세개의 의견표명을 위한 작업과 예정되었던 일정을 펑크내지 않기 위한 긴장의 무게에 짓눌렸다. 오늘은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는데 그러자 구토가 시작되었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구토할 때가 있는데 컨디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별로 없던 현상이 일어나는 걸 보니 생각이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기소 축하합니다. 유죄가 되기를 빌겠습니다” 라고 일본어로 트윗에 쓴 걸 봤다. 아마도 재일교포일 것이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눈의 여왕”얘기를 떠올렸다. 세상엔, 무언가가 눈에 박힌 채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있는 거울조각은 씻겨내려질 수 있을까. 게르다와 카이의 이야기는 늘 내게 많은 시사를 준다.

(며칠전 포스팅에 달아주신 격려의 댓글과 좋아요에 감사드립니다. 당분간 일방적인 글쓰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日本の友人たちへ
ご心配をかけています。大丈夫ですから心配しないでください。少数ではありますが、韓国人友人たちにも支えられています。検察の暴挙は検事の考えに過ぎません。時間がかかるかもしれませんが、なんとかこの難関を打開していきたいと思ってます。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4594109900834

渦中日記 2015/11/19 – 起訴

검찰이 나를 어젯밤에 기소했다고 한다.
조금 전에 간접적으로 알았다.

나눔의집에서 내보냈다는 보도자료를 우선 올려둔다.

検察が、私と出版社を起訴したよう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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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나눔의 집

<제국의 위안부>저자 박유하를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님들이 동부지검에 2014년 6월10일에 고소를 했습니다.

나눔의 집 할머님들은 저자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책에서 할머님들을 <자발적 매춘부>, <일본군의 동지이자 협력자>로 묘사하여 모욕했다고 하여, 출판물에 의한 <일본 군’위안부’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를 했습니다.

동부지방검찰청은 2015년 11월 18일 저녁, 저자 박유하와 출판업자 정종주를 기소(불구속)했습니다.

그리고 저자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 책이 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출판금지가처분을 받은 상태에서 문제된 내용을 “ㅇㅇㅇㅇㅇ” 하여 출판하고, 일본어판을 출판하는 반인권적 행위를 했습니다.

다시 말해 사법적 판결도 무시하는 반복적인 범죄 행위로 할머님들을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 했습니나.

권방문 검사(02-2204-4440)
사건번호 서울동부지방검찰청2014형제 25099

본문: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123221678347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