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무엇이 문제인가-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 1. 역사의 사법화 (4)

1.역사의 사법화

(4)일본인과 천황–대통령과 문희상의장께

위안부문제 관계자들은 2000년에 있었던 여성국제전범재판을 통해 히로히토천황을 ‘유죄’로 단죄했다. 변호사였던 박원순 시장은 그 판결을 내리도록 종용한 ‘검사’중 한사람이었다.

아키히토전천황을 ‘전범의 자식’이라고 규정한 문희상의장의 인식이 2000년 여성국제전범재판의 영향을 받은 것일 가능성은 커 보인다. 그렇다면 이 역시도 ‘법적판단’이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케이스가 된다.

물론, 국제여성전범법정은 위안부문제 발생 이후, 냉전붕괴와 세계화의 영향으로 더 가까워진 세계여성들이 급격히 교류의 장과 시간을 늘릴 수 있었고 그 결과로 국경을 넘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놓은 장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본인’ 위안부는 이 자리에서도 배제되었고 그런 한 이 ‘여성’법정은 반쪽짜리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법정’의 권위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이해를 오히려 정체시켰다.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한 연합국조차 히로히토 천황을 ‘전범’으로 판결하지는 않았다. 군부와 천황을 따로 놓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판결이 맞는지 여부는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아직 위안부문제에 관해 충분한 이해가 없는 채로, 또 왜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벌하는 대신 ‘상징’으로나마 천황으로 남겨두었는지를 모르는 채로 50여년 후 ‘현대’의 법관들이 성급한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처벌’을 강조하는 이들은 곧잘 매춘을 강요한 군인을 사형시킨 스마랑 사건을 강조하지만, 스마랑사건판결은 국가의 수장이나 군대의 수장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천황이 ‘처벌’당하지 않은 이유는 일본국민의 동요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합국은 일본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황은 전쟁을 하지 못하게 한 헌법9조와 맞바꾸어져 말 그대로 ‘평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이후 44년을 살았다.

그런데 과거의 연합국의 판단에 대한 국제여성전범재판의 관심은 오로지 ‘처벌’여부에만 있었던 듯 하다. 그 판결은 시대적 진보의 양상을 띠었지만 실제로는 시대를 정체시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판결은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여론을 급격히 악화시켰다.

일본의 천황은 일본인들에게는 정치가 아니라 문화다. 일본인들에게는 국제여성전범재판의 판결이나 문희상의장의 발언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부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다만, 문의상의장이 천황의 사죄를 요구한 건 다른 한편으로는 지원자들이 주장해 온 ‘법적사죄와는 대치되는 발언이기도 하다. 일본은 그런 맥락도 읽을 필요가 있다. )

더구나 설령 천황이든 상황이든 일본을 상징/대표하는 이의 사죄가 있다고 한들 위안부문제자체와 해결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그것이 곧바로 한일관계우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일이 가능하기엔 오해와 과장과 독주가 만든 상호불신과 혐오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한국사회는 그저 ‘사죄하지 않던 뻔뻔한 일본이 국제사회 압박에 못이겨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고만 여길 것이다. 

이 4반세기동안, 법률가에 의해 역사문제가 좌지우지되고, 법정은 개인의 입을 틀어막고 정부를 조종하고 타국을 겁박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되었다. 정의롭고 공정해야 할 법의 공간, 책임을 져야 할 주체조차 존경의 념을 가져야 할 공간을 그렇게 만든 건 누구인가? 복잡다단한 역사를 외교/정치문제화시키고, 단순한 예스 혹은 노로 대답하도록 만든 건 누구인가?

‘재판이 (일본재산의) 가압류판결을 내린 건 당연한 일이다. 일본과 한국정부가 사법부의 말을 들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최봉태)는 주장은 가히 오늘의 사법의 권력화 현장을 보여준다.

물론 그 조치가 옳다면 사법이라는 권력사용은 고귀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지원자들은 정부가 지원자들과의 논의를 거쳐 일본과 협의한 끝에 ‘한일합의’를 내놓자, 이번에는 그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서 반대에 나섰다. 곧바로 수용하겠다는 의견을 낸 위안부할머니도 있었지만 그런 분의 목소리는 곧바로 묻혔고 지금까지도 그 정황엔 변함이 없다. 그 분들을 그저 회유당한 것으로만 보는(보게 만든 이들이 물론 있다)시선은,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던 이 4반세기 한국사회를 상징한다. 

한일합의에 대해서는 다시 쓰겠지만, 그 정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 사실은 기억되어야 한다. 사법이 역사를 관장하는 주체로 나서 개인과 정부와 타국에 대한 압박의 도구로 쓰여졌으나, 정작 ‘당사자’의 목소리는 무시되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대통령과 국회의장께 제안한다. 한일관계를 회복시키고 장기적인 화해평화를 지향한다면 대화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동시에 그 논의과정을 언론이 국민들에게 전달해 모든 국민들이 듣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시급히 접점을 만들어야 하는 문제는 1년 단위로, 긴 시간이 필요한 프로젝트는 5년 10년 단위로 대화하면서 학자와 관계자들에게 논의를 맡기고 언론이 보도하도록 하면, 국민들은 그 보도내용을 바탕으로 생각하면서 싸우지 않고 교류할 수 있다. 10년, 30년, 50년,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간의 논의를 정리하고 합의된 사항을 각각의 교과서에 반영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한일양국은 역사인식에서 접점을 만들 수 있다. 물론 그 프로세스에는 북한도 참여해도 좋을 것이다. 백년대계란 그런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2005년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면서 나온 징용문제는 한일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민관합동위원회의 견해와 이후, ‘피해자’들을 위해 한국정부가 해 온 일을 제대로 공지할 필요가 있다. 논의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아직 이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했다.

홍길동전의 작가가 허균이 아니라는 것이 이제야 밝혀진 것처럼, 역사에 대한 이해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도 지원자들과 법정은 자신들만의 이해와 판단만이 옳다고, 그것에 따르라고 무려 4반세기동안 주장해 왔다. 심지어 알게 된 사실을 언론이나  국민들에게 공식적으로 밝히는 일도 없었다. 그 결과가, 현재의 한일관계다.

이 글은 그 과정에 참여한 이들의 사고를 재검증하기 위한 글이다.

한일관계, 무엇이 문제인가-위안부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목차 (전체보기)

1.역사의 사법화
(1) 들어가며
(2) ’법적사죄’주장과 ‘소송’의 무기화
(3) ‘역사의 사법화’에서 역사 ‘대화’로
(4)일본인과 천황–대통령과 문희상의장께